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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김기홍 설교학(전체리스트)

    14, 전통적 대지설교
    2024-06-18 07:41:23   read : 101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설교 작성하면서 한계를 만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운동선수처럼 설교자도 영적 슬럼프에 깊이 빠질 때가 있다. 토요일 밤에 내일 할 설교가 전혀 없는 수가 있다. 교인들의 모습이 떠오르며 두려워진다. 이미 다 했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설교 작성할 때만이 아니다. 주일 아침에 설교 전이나 설교 도중에도 경험한다. 잘 나오지 않을 때. 아멘 하는 이가 없을 때, 열심히 듣지 않을 때, 뒷좌석의 대부분이 다 혼수상태에 있을 때 한계를 경험한다. 이런 일로 인해서 설교자는 충분히 겸손해 진다. 설교만 없어도 목회는 괜찮은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할까? 아프다고 할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까? 이러한 슬펌프는 누구에게나 다 있다. 유명한 목사들도 다 경험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경험 많은 유능한 설교자들의 말이 무엇인가? 이 슬럼프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계속해서 설교하는 것 외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계속 설교를 연구해 보자. 전통적인 설교작성법 하나이다. 강해설교건 제목설교이건 다 이 방법을 써왔다. 즉 제목 아래에 몇 개의 대지를 잡는 것이다. 대개 세 개나 네 개이다. 때로는 다섯 이상도 된다. 그렇게 해서 논지를 명확히 해 주는 것이다. 논지를 몇 개의 대지로 나눈다.

    대지는 두 개가 될 수 있고 여섯 개 또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전통적인 것은 세 개나 네 개이다. 그래서 논지를 서너 개의 대지로 설명해 나간다. 어느 신학교에서는 항상 세 개로 나누는 훈련을 시키기도 한다. 여하간 세 개나 네 개가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보면 문제가 없겠다.

    그러면 설교하면서 대지 숫자를 말할 것인가? 전통적인 방법은 그랬다. 설교 중에 첫째 둘째 셋째를 말한다. 다음으로는 중요한 부분에만 가서 첫째 둘째 셋째를 말한다. 설교 전체가 나뉘는 게 아니라 필요한 부분에서만 몇 단계로 나누고 나머지 대부분은 첫째 둘째를 하지 않는 것이다.

    덧붙여서 아예 대지 숫자를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작성을 위해서는 대지를 나누었다. 그러나 실제 설교할 때는 첫째 둘째를 말하지 않는다. 대지의 순서를 번호로 매겨서 나누는 것은 구식으로 들릴 수도 있다. 대지를 어떻게 나누던 설교를 전달할 때는 다양하게 해야 할 것이다.

    1. 전통적인 세 대지 설교

    알렉산더 메크레렌 (Alexander Maclaren)은 “양떼를 삼지창으로 먹였다”고 말했다. 늘 세 대지 설교를 했다는 말이다. 세 대지 설교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면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러므로 이 방법을 익혀두어야 한다. 아래 나오는 스펄젼도 강해설교를 세 대지로 나누어 하는 경우가 많았다.

    능력의 싸움 (스펄젼):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1:9)

    논지: 여호와와 함께 싸운다

    1. 피할 수 없는 싸움--“그들이 너를 치나”
    2. 패할 수 없는 싸움--“이기지 못하리니”
    3. 정복 당할 수 없는 약속--“내가 너와 함께 하여 구원할 것임이라”

    2. 네 대지 설교

    목재가 사각으로 된 것처럼 설교를 사각으로 정리한 것이다. 앞의 메크레렌도 이 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그의 설교집을 보면 20개 중 13개가 네 대지 설교이고 7개가 세 대지였다. 그의 네 대지 설교를 하나 살펴보자.

    제목: 능력의 비밀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마 17:19-20)

    1. 신자들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2. 이 능력이 나타나는 조건은 믿음이다.
    3. 이 믿음은 항상 불신앙에 의해 위협받는다.
    4. 믿음은 끊임없는 헌신과 엄격한 자기 부정으로 유지된다.

    3. 다섯 대지 설교

    제목: 그리스도의 마지막 복음 메시지 (William M. Clow)
    논지: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다섯 단계중 하나이다.(행 26:18)

    1.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열게 하신다.
    2. 그들의 얼굴을 어둠에서 빛으로 향하게 하신다
    3. 사탄의 능력에서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신다.
    4. 그리하여 죄사함을 얻게 하신다.
    5. 성화된 그들에게 유업을 주신다.

    위의 몇 예를 통해 전통적인 설교 방법을 살펴 보았다. 설교 요약한 책들을 보면 대체로 이런 식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비복음적 내용이 대부분이다. 여기 나온 것처럼 그렇게 복음적으로 요약이 되어있는가. 이글의 목적은 복음적인 설교를 작성하게 하는 것이다.

    이제 전통적인 세 대지의 설교를 실제로 작성해 보도록 한다. 여기 나온 설교의 구성을 잘 살펴보자. 복음적인 설교이다. 먼저 요약을 한 뒤에 완전한 설교를 실었다.

    <요약>
    간단히 설명된 구원

    논지: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1. 구원의 기초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선물은 공짜여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가 무엇을 해서 복 받고 은혜 받았다고 자랑할 수 없다.
    2. 구원의 통로는 믿음뿐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게 해주신 일의 내용을 믿어야만 한다. 거기에 대해 반응을 해야 한다.
    3. 구원의 불변성으로 우리는 계속 그 은혜 속에 있게 된다. 하나님의 상급에 참여하는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성화해 갈 것이다.

    <실제설교>
    간단히 설명된 구원

    엡 2:8-10


    헤쉘 홉스(Herschel H. Hobbs)

    칼 바르트라는 분은 아주 잘 알려진 현대신학자입니다. 그가 인생의 말년을 보내고 있을 때 누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발견한 신학의 진리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르트는 찬송 한 구절을 불렀습니다.

    예수 날 사랑하심 난 아네/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기
    우리 번역은 예수 사랑하심은 성경에서 배웠네

    질문하는 사람은 실망했습니다. 무언가 심오한 신학교리에 대해 열강을 들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르트와 같은 신학자라도 이 보다 더 명쾌한 답변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하게 하셨지만 인간이 복잡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또한 복잡한 것을 기대합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10절의 말씀보다 더 잘 표현된 것은 없습니다. 제 판단으로 이 부분이 성경에서 가장 명확하게 진술된 구원계획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이 여러 가지를 덧붙여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개교회에서 등록을 한다던지, 성찬예식의 준수, 율법의 부과, 계속적으로 강조되는 선행 등이 자꾸 덧붙여졌던 것입니다. 얼마나 복잡합니까? 그 결과 사람들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게 너무 무겁다 생각해 포기합니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절망과 무관심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간단하면서도 심오한 말씀을 잘 살펴보는 게 중요합니다. 그분은 공부 많이 한 지성인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간단하게 표현합니다. 여기 이 세 구절을 가지고 여러 권의 책을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 개의 단순한 설명으로 줄여봅시다.

    구원의 기초

    구원의 기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해 구원을 얻었나니.” 제 친구가 말했습니다. “은혜의 의미는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은혜(Charis)의 헬라어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선물을 주다.” “빚을 탕감해 주다.” “잘못을 용서해 주다.” “죄를 용서해주다.”

    근본적으로 은혜는 선물을 의미합니다. 신학자들은 “과분한 선물”이라고 불러요. 만약 어떤 사람이 십만 불짜리 땅을 1불에 팔았다 칩시다. 이것은 바겐세일이지 선물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강조해요.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은혜”와 “믿음”은 여성 명사입니다. 그리고 “이것”이란 대명사는 중성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라는 말은 은혜나 믿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구원 얻음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라는 말씀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라는 말씀에서 “...에게서(ex)”라는 단어는 “...으로부터”로 의미합니다. 그것은 구원의 원천으로부터라는 말입니다.

    말씀 중 “아니요(ouk)”는 강한 부정입니다. 그러므로 강조해서 말하자면 구원의 원천은 너희들 자신이 아니요, 너희들의 선한 행위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만드신바”(poiema)란 선한 일을 위하여라는 말과 연관되었습니다. 그 말은 어떤 사람이 한 일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하신 일의 열매입니다. 스스로 된 게 아닙니다. 지으심을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에 의해서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미 창조된 물질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는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물질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적인 작업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또는 “그리스도 예수의 영역 안에서”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단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 위해 하신 일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바울의 말씀을 잘 살펴보십시오. “너희가 구원을 얻었나니.” “얻었다”는 동사는 수동태입니다. “내가 공을 쳤다”는 능동태요 “내가 공에 의해 맞았다”는 수동태입니다. 수동태는 나 아닌 다른 대상에 의해 내게 일어난 일입니다. 여기에서 나 아닌 다른 대상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신학생 때 조지 트루에트가 은혜에 대해 설교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 생애에서 나를 가장 훌륭한 일을 했던 순간, 그 순간이 나를 구원했다고 믿지 않습니다.” 훌륭한 날이나 훌륭한 시간이 아니라 훌륭한 순간조차도 구원할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렇게 훌륭한 분이 그렇게 말했다면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구원의 통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말미암아”란 말은 헬라어로 디아(dia)입니다. 중간기능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다함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은혜의 샘물이 우리 삶 속으로 흐르게 하는 통로가 바로 믿음입니다.

    “믿는다”의 헬라어를 적절히 번역할 수 있는 영어 단어가 없습니다. 그 말에는 “믿는다” “신뢰한다” “맡기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에 대해 기록된 성경의 내용을 믿어야 합니다. 구원을 위해 우리 영혼이 그분만을 신뢰해야 합니다.(행4:12) 그리고 우리 자신을 그의 뜻과 의지에 맡겨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해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9). 귀신들도 예수가 누구신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그리스도를 신뢰하거나 자신을 맡기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신뢰하지 않고 그분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면 성경의 모든 내용을 지식으로 믿는다 해도 지옥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은행에 대해 듣고 은행을 믿습니다.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행에 돈을 맡기고 평안할 때 은행을 믿는 것입니다. 영혼에 대해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디모데후서 1:12 의미입니다.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 확신하노라.”

    그리스도에 관해 믿는다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 사이에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은행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의 의뢰한 것을”이라는 구절은 “나의 예금”으로 번역할 수 있어요. “믿는다” 그리고 “확신한다”는 동사는 모두 완료시제이므로 이미 완료된 상태를 말합니다.

    문자적으로 번역할 때 “내가 믿고 있는 그분을 내가 알고, 그분이 능히 내 예금을 그날까지 지키실 것을 내가 확신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날이란 마지막 심판의 날입니다. 바울은 그의 영혼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은행에 예금하고 그리스도께서 안전하게 보관해 주신다는 사실을 굳게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믿음은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것입니다. 대리적 믿음은 성경에서 없습니다. 수동적으로 “앉아서 가만히 기다리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일어나서 예수께로 가리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우리를 위해 누군가가 해주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들은 스스로 해야만 합니다. 살기 위해서 먹고 마셔야 하고 숨 쉬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을 얻기 위해 자신이 자신을 위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록펠러는 말년에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오하이오 클리브랜드에 있는 유클리드 애비뉴 침례교회 교인이었습니다. 어느 주일 외부 강사가 설교했습니다. 예배 후 록펠러는 설교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백 불짜리 수표를 드렸습니다. 목사는 기뻐하며 받았어요. 돈 자체보다 가장 부자로부터 개인수표를 받았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다음날 목사는 그 수표를 발행했던 은행으로 갔습니다. 창구 출납원이 그 수표를 보더니 도로 내밉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목사는 물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바로 이 은행인데요. 제게 발행된 것이지요. 록펠러씨가 준것입니다. 서명도 그가 했습니다. 확실히 백 불짜리입니다.”

    출납원은 대답합니다. “예, 이 은행이 맞습니다. 선생님 신분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서명도 틀림없고요. 여러 번 이 서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수표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단지 뒷면에 이서하시는 것을 잊으셨습니다.”

    그 수표에 이서를 함으로서 목사는 그 수표와 은행을 믿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래야 록펠러가 주려던 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이란 화폐를 지불할 수 있는 수표를 나의 이름으로 발행하셨습니다. 그의 무한하신 은혜와 자비의 은행에서 발행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지울 수 없도록 그 아들의 피로 서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나 자신이 받아서 이서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불변성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여기 구원의 불변성을 잘 보기 바랍니다. “믿는다” 또는 “확신한다”와 같이 “구원을 얻었나니”라는 동사도 완료시제입니다. 즉 과거 어느 시점부터 구원을 받아 현재 구원받은 상태에 있고 미래에도 계속 구원받게 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구원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이미 해놓으신 것에 달려 있습니다. 구원의 불변성 역시 매일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해 놓으신 일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선한 행위로 인해 구원을 얻었다고 말하지 않고 “선한 일을 위하여 구원 얻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선한 일은 구원의 열매이지 구원의 이유가 아닙니다. “행한다”는 말은 삶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곧 그 삶의 행위가 선해야 하고 풍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구원을 얻었다”는 동사는 감추다, 위험에서 구출하다, 혹은 문제를 풀다(빌 2:12)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세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문맥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 말은 거듭남(요 3:3,17) 성화(고후 2:15) 그리고 영화(히 9:28)의 뜻으로 쓰여집니다.

    거듭남은 믿는 자의 영혼이 구원받음을 말합니다. 성화 혹은 하나님의 섬김을 위해 구별된다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영화는 성도의 영광과 하늘의 상급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는 게 옳습니다. “나는 구원받았다.” “나는 구원받고 있다.” 그리고 “나는 구원받을 것이다.”

    거듭나는 순간 나는 성화되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되어집니다. 성화된 것이 아니고 성화의 상태로 자라며 봉사합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천국에 갑니다. 그러나 성화된 정도에 따라 하늘에서 영광과 상급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본문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구원은 전혀 하나님의 은혜로 그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얻습니다.

    구원의 불변성을 믿지 않는 어떤 사람이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믿고 싶소.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이고 그 다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맘대로 할 수 있을 것 아니겠소.” 상대방이 대답합니다. “물론이지요. 그러나 당신이 정말 구원받으면 당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지금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간단합니다. 그래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것이 복잡하지 않다고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꼭 해야합니다. 그러나 노력으로 될 일은 아닙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우리 주 예수뿐일세/우리 주 예수 밖에는/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그 위에 내가 서리라/그 위에 내가 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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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지도력과 설교
    21. 설교자의 이미지
    20. 설교자의 확신
    19. 설교계획
    18. 예화
    17. 시작과 마침
    16. 귀납법적 설교
    15. 사다리모양 설교
    14, 전통적 대지설교
    13. 원리 증명 적용
    12. 대조적 주제설교
    11. 설교 형태
    10. 주제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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