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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견디는 자/마10:16-23
2001-08-23 18:59:47   read : 523

끝까지 견디는 자

마10:16-23



오늘 우리 시대에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주님은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 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믿음 생활을 채점하지 않아서 그렇지 만일 채점하여 공고한다고 하면 진풍경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찰하시고 하감하시고 살피시고 있기에 하나님은 그의 눈으로 우리를 판단하시고 있습니다

. 우리 교회 한 500 명의 교인들을 석차대로 한 줄로 세운다면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은 줄 알았던 목사의 신앙점수는 꼴찌를 헤매고, 무명의 성도의 신앙은 일등신앙으로 올라있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내노라하며 존경받던 중직의 점수는 곤두박 질하여 바닥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천사와 같은 존재로 때로는 탕자와 같은 존재로 사인 코사인 곡선을 그리면서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 모두 일등신앙이 될 수도 있고 꼴찌의 신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쪼록 우리 모두 하나님에게 귀하 게 쓰임받고, 인정받는 일등신앙, 알곡신앙, 종자신앙이 되어 천국창고에 쌓여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만 믿는다고 하면 악을 쓰고라도 일등 신앙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일년 내내, 아니 우리 평생에 걸쳐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루 일등이 아니라, 평생 우등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지 만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22절 말씀에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 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tevlo"(텔로스)라고 하여 그 뜻은 '끝', '결론', '마침', '목표'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표준새번역 성경에서는 "끝까지 견 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역시 개정된 개역판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이라는 말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간 뒤"이라든지, "먼저 할 일을 한 다음"이라는 뜻입니 다. 먼저라는 말의 반대지요, 끝이라는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텔로스는 "최후의 목표를 달성하는 끝까지" 라는 의미의 말인 것입니다. "최종적인 단계", "목적을 이룰 때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끝까지"라는 말은 시간적으로 마지막을 말하지만 이 말은 "최선을 다하고", "생명을 바칠 각오를 가지고", "순교적인 각오를 가지고"라는 말이라고 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시작도 좋아야하지만, 마지 막을 잘 장식하면 은혜롭습니다. (계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라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은 "죽도록"이라는 말씀은 "끝까지", "생명을 다하여"라는 말씀입 니다.

우리 성가대가 찬양을 정말 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주일 들으니 잘 모르지만, 다른 교회에 가서 가끔 본 성가대의 찬양하 는 것을 들어보면 수준의 차이가 있다는 느낌이 드실 것입니다. 거기다가 음향시설이 노후되었거나 예배당에 맞지 않으면 참으 로 답답합니다. 설교를 할 수가 없는 교회도 보게 됩니다. 좋은 음향시설, 알맞은 조명, 수준 높은 성가대는 하루아침에 이 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의 장년의 교회가 되어야 그런 경험이 생기고 쌓이는 것입니다.

자, 성가대가 찬양을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좋았는데 나중 불협화음이 되면서 음정, 박자, 가사 전달 이런 것이 엉망이 되면서 끝에 가서 아주 우습게 끝났다고 하면 그것은 잘 부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작할 때는 이런 성가가 다 있어 할만큼 세 련되지 못하게 출발했지만, 나중에 가면서 호흡이 잘 맞고, 끝에 가서 정리를 잘했으면 그래도 후한 점수를 받을 찬양이라고 봅 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나중은 왕성해지는 것이 신앙의 세계입니다. 욥기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고 하셨습니다. 젊어서도 열심히 믿어야 하지만, 늙어 주님 앞에 서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으신 분들도 더욱 힘써야 합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참으로 난해한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난해한 구절 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의 23절 말씀입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 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입니다.

지난 92년에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얼마나 피해가 컸는지 모릅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999년에도 그런 자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보았는데 포항의 어떤 교회에서는 집단으로 교인들이 가출하여 이 산, 저 산을 전전하면서 집단 생활을 하면서 주님이 오실 것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세대주의들은 구약을 4000년 신약을 2000년으로 이해하고 새로운 천년은 천년왕국 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기말에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언제나 나타나곤 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는 시한부 종말론에 빠지거나 미혹받는 이들이 생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시 23절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를 가지고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마태복음 24:36절에서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 자신마저도 당신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과 때를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인정하셨듯 이 자기 자신도 재림의 때를 알지 못했다고 하면 성경의 다른 어떤 말씀도 재림의 시간을 정확하게 나타내려는 말씀으로 보아서 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말씀들도, 요한계시록이라고 해도 미래의 시간표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말이 어디쯤 이르렀다고 하는 식으로 교인들을 현혹하거나 이단 사상을 끌고 가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23절 말씀은 주님이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 열심히 복음전파에 힘쓰라는 말씀과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하신 말씀이지, 재림하시는 시간이나 날짜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주 난해한 말씀이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근본 의도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복음전파에 힘을 다하라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 동네 전 동리를 다니는 것을 복음 전파로 보아서 복음 전파가 다 이루어지기 전에 주님이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복음 전파하다가 핍박이 일어나면 다른 동리로 피해야 합니다. 이것은 비겁해서 피하는 것이 아니고, 무조건 죽으려고 하는 것도 만용일 뿐입니 다. 때를 알아 피하면서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는데, 그러나 내가 힘이 다하여 죽을 때가 되었다고 하 면 기쁜 마음으로 죽는 것입니다. 그때는 순교의 면류관을 받아 쓰는 것입니다.

오늘 제목을 "끝까지 견디는 자"라고 했습니다. "견디다"는 말은 "머무르다", "참다 ", "인내하다"라는 뜻입니다. "견디다"는 헬라어에 [휘포메노]라는 말은 "밑에 머무르다" 잘 참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초대 교회 시절에는 교회사를 읽어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핍박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로마의 황제가 자칭 신이라고 하면서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집단이라고 하여 무참하게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기독 교회의 은밀한 진리의 말씀을 오해하여 기독교인들은 비윤리적인 사람이라느니, 사회의 암적인 존재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최후의 심판이 불로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이 세상을 불바다를 만들어 놓을 사람이라고 방화범으로 몰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피를 좋아하는 사교라고 몰아붙이기도 했습니다.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예수님의 살이요 피라고 하니, 멀리 들은 사람은 예수 믿는 이들이 은밀하게 모여서 사람을 죽여 그 살과 피를 먹는다라는 헛소문을 퍼뜨려 곤경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 인들은 가족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믿는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신앙을 택한다고 하니 기독교는 가정을 파괴하는 종교라고 핍박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앞으로 닥칠 핍박을 예상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0:17-19)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 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나라에 처음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가지고 들어오셨던 선교사님들은 구한말 시대에 수많은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문화의 단절에서 오는 어려움이란 각오하고 들어왔지만, 기독교를 사교시하고, 조상 숭배와 미신 숭배에 젖어있는 우리 사회로부터 냉 대와 조소와 멸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기독교의 선교를 금하고 있었기에 숨어서 복음을 전해 야 하는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예수 믿기 시작하면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사랑받고 알아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 로 예수를 믿으면 박해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 그러면 오늘의 상황을 한번 점검해봐야 할 것입니다. 오늘 기독교인들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라 이 땅에 천만명이라는 수 로 증가했습니다. 선교 100년의 역사에 세계적으로 기적같은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제 교회에 간다고 집안 어른들이 작대기를 들고 가로막는 것도 아닙니다. 집안 어른들이 모여 호적에서 뺀다는 협박도 없습니다. 동리 청년들이 예배당을 짓는 다고 기둥을 빼고 부러뜨리는 일도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보릿고개라는 말을 잊어버리고 살만해졌습니다. 이제는 박해가 그리 워지고, 차라리 그럴 때가 좋았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어졌습니다. 신앙 생활에 긴장이 없습니다. 긴장이 없으니 죽은 신앙이 되고 맙니다. 교회에서 얻을 수 있었던 평안을 이제는 사회 활동을 통하여 얻고 있으며, 영적인 긴장이 끝났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상한 교훈의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신8:10)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먹을 것이 있어 배부르고, 땅이 기름져 서 소출이 풍성하다면 당연히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런 말씀도 경계의 교훈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느냐 고 하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반드시 들어야 하는 경계의 말씀입니다. 사람은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다가도, 좀 살만해지고 등이 따뜻해지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서원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 아래에서는 하나님을 잘 믿습니다. 그러다가 생활이 안정되면 언제 그랬느냐 하는 식으로 전혀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여름의 하루가 겨울의 10일 보다도 음식을 쉽게 부패하게 만드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어렵게 살 때보다, 지금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 전에는 상상도 못 할 범죄를 예사로 저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옛날 농경 사회의 적은 마을에서는 누가 누구인지 잘 압니다. 목사라고 하면 그래도 좀 활동한다는 하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장로님이라고 하면 동리의 유지요, 존경받는 인물로 널리 알려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익명성이 보장 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길에 나가면 누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을 얼마든지 숨기면서 살 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과 같은 사회가 되고 보니 빛이 되어야 하고 소금이 되라는 말씀이 실감나는 교훈입니다. 옛날에는 희소 가치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지천에 널려 있어서 목사도 많고 장로도 많고 집사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내가 교인인 줄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알고 하나님이 아신다고 생각하면서 빛이 되어야 하고, 소금이 되 어야 합니다. 어느 한 순간도 나 자신에게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을 생각 하면서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합니다.

18세기 유럽 대륙을 정복한 바 있는 나폴레옹이 사관학교 다닐 때의 일이었습니다. 사관학교의 교관이 사관생도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제군들, 똑같은 지형조건에서 똑같은 무기를 가진 두 군대가 싸운다 하자. 과연 어느 편이 이길 것 같은가/ " 이때에 나폴레옹이 일어나서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마지막 5분까지 견디는 자가 이길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버티는 사람이 이길 것입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인내로써 결정됩니다. " 이 대답은 오늘날까지 유명하게 전해져오고 있습 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견디는 자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후안까를로즈 오르띠즈 목사님이라는 분이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훌륭한 목회를 하고 계십니다. 그는 제자 훈련 목회를 하시는 분이신데 성공적인 목회를 하는 분으로 우리 나라에 많은 그분의 저서들이 소개되었습니다. [당신은 제자 입니까?]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제사장입니다], [우리들의 기도는 하늘나라에서 잡동사니처럼 취급을 받습니다]는 등등 여러 내 용의 책들이 나와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제사장입니다]라는 저서에서 교회를 제자훈련 목회하는 입장에서 두 가지 입장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유형은 레스토랑트 처치(restaurant church)와 팩토리 처치(factory church)입니다.

즉 음식점 교회와 공장 교회라는 유형입니다. 그가 설명하는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여러분 잘 들으시고 하나님 앞에 저와 같이 깊은 반성과 회개를 함께 해야 할 내용입니다.

음식점이란 자기 필요에 따라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가서 돈 내놓고 음식만 먹고 가면 되는 곳입니다. 거기에는 식사하는 사 람이 설겆이를 한다든지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돈 내놓고 먹고 가기만 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오늘날의 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주일 날 어김없이 교회 와서 예배시간에 헌금할 것 하고 목사님 주시 는 하나님의 말씀만 받아먹고 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신앙생활을 반복하는 성도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이 많이 있는 교회를 음식점 교회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공장형 교회입니다. 공장에는 숙련공이 있고 또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사실 우리는 하루만 예수 믿고 끝낼 사 람들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횟수의 복음을 듣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복음의 숙련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공원들은 열심히 일을 배워 숙련공이 되면 그 기술을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장을 위하여 재사용 합니다. 그리하여 생산력을 증 대시키고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내는데 음식점 교회는 재생산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오래 예수를 믿었어도 행동에 있어서 좀처럼 복음의 숙련공이 되지를 않습니다. 입술로는 숙련공을 뺨칠 정도인데도 행동에 있어서는 잘 알고 있는 복음을 교회를 위하여 재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많은 진리의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세우신 목회자들로부터 많은 복음을 듣습니다. 이미 숙련공이 되고도 남음이 있는 상태입니다 . 그러나 우리에겐 복음의 숙련공들이 나타나지 않아서 재생산이 없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깊게 새기고 이 어두운 죄악 세상을 기피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으로 주님의 보내 심을 받은 복음의 증거자인 것을 알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고 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평신도 선교 사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양으로 보냄을 받았고, 양으로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양으로 출발했다가 이리를 만나니까 따라서 이리로 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리를 만나거나 사자를 만나거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양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끝까지 인내로 서 성결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단의 시간입니다. 나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데 따르겠습니다. 다짐하셔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두고두고 쓰임 받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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