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47:3-5/ 헤엄치는데 까지 나아가라 /조용기 목사 2014-09-11 15:50:01 read : 1264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 이 시간에는 여러분과 함께 "헤엄치는데 까지 나아가라"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 보니까 하나님의 성전이 동편을 향해 있는데 그 성전 밑에서 물이 흘러 내려옵니다. 그 강물이 점점 점점 크게 흘러 내려가는데 그 강물에 일천 척을 재고 들어간 즉 물이 발목에 채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재고 들어가니 물이 무릎에 차더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또 일천 척을 재고 들어가니 물이 허리에 차이더니 또 다시 일천 척을 재고 들어가니 이제는 발이 밑에 닿지 않습니다. 도저히 서서 건널 수 없는, 헤엄쳐서 갈 수밖에 없는 깊은 물이 창일 하게 흘러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대단히 깊은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께 나아오면 하나님의 성전에서 성령의 생수의 강이 흘러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령의 생수의 강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비유해서 설명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발목까지 물이 채이더라 그렇게 말씀한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여러분, 발은 일상생활을 말합니다. 우리가 미일같이 일어나서 동서남북으로 걸어다니면서 사업도 하고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발은 일상생활을 말하는데 그 발목이 잡히어 버리면 꼼짝을 못합니다.
우리가 세상적으로도 속되게 말하기를 그 사람 발목이 잡히었다 그래서 그 사람 꼼짝도 못한다. 이런 말을 종종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받기 전의 생활이란 것은 사람들이 자기중심의 생활을 하며 육체와 마음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마귀의 유혹을 따라 이 세속에서 흘러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푹 빠져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 것조차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음 저 건너편의 문제는 아예 나와 상관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이 세상에서 부귀와 영화와 공명을 얻기 위해서 눈에 혈안이 되어 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발목에 밧줄로 묶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혹은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의 사람과 강요에 끌려 교회에 왔다가 성령께 발목이 잡히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질병으로나 생활고로 말미암아 혹은 삶의 의미를 찾아서 방황하다가 교회 와서 성령께 발목이 잡히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우리교회에 사업에 실패한 한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이 사람은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하고 파산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다리 밑에 가면 다리가 무너졌으면 좋겠다, 한강다리를 건너갈 때는 그만 핸들을 틀어서 한강에서 떨어질까 보다,
그러한 유혹 속에 나날이 삶을 살다가 우리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는 예수를 믿으려 나온 것이 아니라 조용기 목사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돈을 훔쳐낸다고 그러는데 얼마나 기술이 좋기에 그 많은 사람을 매 주일마다 모아 놓고 그들 포켓에서 돈을 빼앗아 내는지 나도 가서 기술을 좀 배워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는 교회에 와서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자 이제 설교를 시작하니까 어떻게 혼을 뽑는지 보아야지, 나도 혼 안 뽑히고 단단히 보아야지 그렇게 앉아서 설교를 듣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말씀이 두 날 가진 검보다 예리하여 그 영과 혼과 골수를 쪼개었습니다.
설교 중간쯤 되어서 그만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어떻게 설교를 해서 돈을 빼앗는지 그것도 다 잊어버리고 그만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통회하고 여태 까지 예수를 모르고 이 세상에서 돈만 벌기 위해서 뛰어간 자기의 삶이 어리석음을 통회 자복했습니다.
그때로부터 성령께 발목이 잡혔습니다. 그는 교회를 떠나고 난 다음에 다시 교회에 올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지만은 주일날만 되면 교회로 끌려왔다는 것입니다. 성령께 발목이 잡혀서 교회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의 온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고 그 다음 하나님께 성수 주일하고 십일조 드리게 되고 주님께서 다시 그 사업을 복구시켜서 그는 새롭게 성공적인 삶을 출발할 수 있었다는 간증을 했었습니다.
우리가 자기 고집이나 이기주의가 아직 깨어지지 아니한 생짜 세상이 아직 꽉 들어차 있는 사람이지만은 그러나 발목이 잡히면은 버둥대면서 교회를 옵니다. 안올라고 하면서도 성령이 끄니깐 버둥대면서 어찌할 도리 없이 교회로 옵니다.
머리 속에는 아직 세상이 꽉 들어차 마음에도 세상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리 없이 어찌할 수 없이 주일이면 버둥대고 발이 교회로 끌려갑니다. 요번에 오고 안 와야지 그러면서 다음주에 또 오게 되고 이제 다음주에 오고 또 안 와야지 하면서 또 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쩐지 모르게 발목이 잡혀 가지고서 끌려오는데 반항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신앙 생활을 상당히 오랫동안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었지만은 성령께 발목은 잡혔지만은 그러나 아직 마음과 생각은 세상이 꽉 들어차 있고 언제고 나는 예수를 믿지 않겠다 그러한 반항심을 가지고 발버둥을 치며 저항할 때가 대단히 많습니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의 성령께 발목이 잡혀 놓으면 여러분 하나님의 성령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잡히기 전에 말이지 한번 잡혀 놓으면 하나님께서 끝까지 따라와서 그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저항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에스겔이 본 환상 가운데 에스겔이 일천 척을 재고 들어가니 물이 발목에 차이더니 또 일천 척을 재고 들어가니 그 다음에는 물이 무릎에 차더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발목에 잡히어서 교회를 왔다갔다한 세월이 얼마간 지나고 나면은 이제는 별도리 없이 물이 무릎까지 차 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께서 발목만 잡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무릎을 자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잡는다는 것은 꿇어 엎드려 항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별도리 없이 하나님 성령이 무릎을 잡고 하나님 앞에 꿇어앉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 생에를 하나님 앞에 항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75세 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 발목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끄는 대로 그 전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그 아내와 함께 가나안땅에 갔습니다. 그러나 머리와 마음속의 생각은 아직 세상으로 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께 발목이 잡히었으나 언제나 자기 고집대로 버둥댔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에 가서 어려움이 다가오니까 성령이 시키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아내와 조카 롯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자기 생각대로 애굽에서 잘 살려고 하다가 수치와 곤욕을 당하였습니다.
그 다음 또 회개하고 가나안에 들어와서는 자식을 낳기 위해서 첩을 얻어 가지고서 가정에 큰 분란을 가져오고 많은 실연과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그는 75세 하나님께 발목이 잡혔으나 그가 완전히 무릎을 꿇은 때는 25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나이가 100살이 되었을 때는 성령께 완전히 무릎이 잡히어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100살에 낳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재물로 바치라고 말할 때 이제는 자기의 인간적인 생각이나 고집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재물로 바치러 올라갈 정도로 항복해 버린 무릎을 꾼 사람이 되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삭 같은 사람은 순식간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발목이 잡히고 무릎을 꾸는 그 시간이 길게 걸리지 않았습니다. 모리아 산에 올라가서 아버지가 재단을 쌓고 너를 잡아 재물을 드리라고 할 때 그는 조금도 반항하지 않고 발버둥치지 않고 주께서 나를 재물로 원하시면 이 시간에 재물로 받으시옵소서 즉시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의 아들 야곱은 무릎을 꿇는데 20여년이 걸렸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발목이 잡히었습니다만 자기의 인간의 지혜나 수단이나 방법으로 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그 다음에는 또 아버지가 눈이 어두운 것을 기회로 에서 형의 옷을 입고 양을 잡아서 털로 형처럼 부슬부슬하게 양가죽을 붙여서 아버지를 속여서 형에게 줄 장자의 축복을 다 받고 그 때문에 형이 죽이려고 하면 외아저씨집으로 달아나고 외아저씨를 속이고 또 외아저씨에게 속고 하는 세월을 20여년 걸렸었습니다.
그래서 발목은 잡히었으나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자기 고집으로 사는 야곱이었지만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얍복 강가에서 그는 형이 사백 인의 군대를 데리고 자기를 죽이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창자가 녹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전진도 후퇴도 못할 그 어려운 고비에서 얍복 나루터에서 몸부림을 치며 기도하다가 하나님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주님께 나의 모든 삶을 다 내어 맡깁니다.
무릎을 꿇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그를 인도해서 형과 화해를 얻게 하시고 그 다음에도 승승장구하여 살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같이 깨끗하고 정결한 청년이었지만 그는 하나님께 발목이 잡히었으나 그 의지를 굽히고 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무릎을 꿇는데는 기나긴 13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애굽의 저 바로 왕의 군사를 지배하고 바로를 보호하는 시위대 대장의 집에 종으로 팔려 들어가서 거기에서 종으로서의 많은 수업과 고통을 당하고
그 다음에는 또 모함을 받아서 감옥에 들어가고 그런 가운데 요셉은 완전히 깨어져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항복한 그를 하나님이 들어서 애굽의 국무총리로 사용했습니다.
더구나 모세 같은 사람은 지식도 많고 건장하고 웅변도 잘 하고 미모의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린 것보다는 자기의 계획과 수단과 방법으로 정치인이 되고 이스라엘을 수출하려고 했습니다만
실패하고 위대한 광야로 쫓겨가서 40여년 동안 그는 사람도 만나보지 못하고 인정도 받지 못하고 하나님 목동으로서 울며, 울며 세월을 지나 나이 80이 되어 이제는 완전히 지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호렙 산 가시넝쿨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 다음 그는 80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들어 사용하셔서 40청춘에 이루지 못한 것을 80에 뜻을 이루게 해서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는 역사적인 위인이 되고 지도자가 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이 발목을 잡고 난 다음에는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압축해서 무릎을 꿇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애 속에서 하나님께 발목이 잡히었으면 빨리 무릎을 꿇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발목이 잡히고 난 다음에 그걸 틀려고 발을 잡아당기고 하나님을 밀어 젖히고 또 발을 잡아당기고 틀고 깡충깡충 뛰고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한 번 잡아 놓으면 놓지 않습니다. 마귀도 잡으면 안 놓는데 하나님이 잡았는데 놓을 것 같습니까?
하나님과 씨름을 하면 상처만 자꾸 깊어질 따름이지 별도리 없이 나중에 가서 무릎을 꿇게 됩니다. 젊을 때 안 꿇으면 80에 가서라도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잡히면 하나님 앞에 신속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항복해야 됩니다.
영도 마음도 몸도 나의 삶 전체를 하나님 그분 앞에 내어놓고 하나님 아버지여 이제는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주님께서 이끌어 가소서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입니다.
물이 발목까지 찼습니다. 그 다음에는 물이 무릎까지 찼습니다. 거기에서 또 일천 척을 재고 들어가니깐 물이 허리까지 찼습니다. 이 허리까지 찼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 것입니까? 여러분 허리는 바로 우리 힘을 말합니다.
허리를 다치면 사람은 일어나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아무 것도 못합니다. 사람의 힘은 허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허리가 튼튼하면 무거운 짐도 들 수가 있고 무거운 짐도 어깨에 걸머질 수 있고 활발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허리를 다치면 그 사람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이 허리에 찼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이젠 우리 허리를 붙잡고 이젠 이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해서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인간의 지혜나 수단을 최고로 알고 그것을 힘입어 살았을 때는 깨어지지 않았었지만 깨어지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항복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을 나의 생명의 힘으로 삼고 이제 사는 것입니다.
이제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인간의 노력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의지하세, 의지하세 곧 의지하세 구하겠네 구하겠네 곧 구하시네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의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만사를 젖혀놓고 아무리 바빠도 주일날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성수주일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십일조는 떼어서 주님께 반드시 드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리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믿고 의지하며 강한 신념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허리까지 물이 찬 사람은 이제는 하나님을 붙잡고 삽니다. 어려운 일이 다가올 때도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당장 보따리 싸고 오산리 기도원으로 가든지 새벽기도원에 나오든지 철야하든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습니다.
돈이 없을 지라도 사람의 도움이 없을지라도 가정의 문제가 생겼을지라도 사업에 문제가 있을 지라도 이 사람은 이제 인간의 수단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 허리를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주의 능력을 의지해서 그는 의롭게 살수 있고 주의 능력을 의지해서 거룩한 삶을 살수 있고 주의 능력을 의지해서 모든 질병을 이기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고 주의 능력을 의지해서 생활의 모든 가난을 척결하고 저주를 척결하고 살게 되며 주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사망을 이기고 영원한 천국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살며 주님이 마음의 기쁨이 되고 소망이 되고 평안히 되고 그리고 능력이 됩니다. 오직 주님만 의지해서 사는 삶, 이것이 성령이 와서 허리를 붙잡은 삶, 성령이 허리를 붙잡으면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반드시 하늘나라의 능력으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또 천척을 더 들어가니까 이제는 물이 너무 많아서 발이 땅에 닿지 않습니다. 물에 두둥실 떠서 이제는 물위에 헤엄을 치게 된 것입니다. 이 삶은 무슨 삶이냐 하면은 이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서 사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 자신은 사라지고 주님만 보이는 것입니다. 나와 세상은 사라지고 구속한 주만 보이 도다 이젠 주님만 의지하고 주의 은혜와 능력에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물위에서 헤엄을 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시편23편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완전히 나의 목자가 됩니다. 내가 이제 나의 목자가 아닙니다. 나의 생각이나 나의 지혜나 나의 경험이 나를 이끌어가지 않습니다. 이제 완전히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우리를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구원해 주시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그 십자가 밑에서 푸른 초장을 만들어 주시고 그 십자가 밑에서 생수를 마시게 해 주시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옵시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의의 길로 걸어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 은혜에 헤엄칩니다.
내가 마귀의 시험이 다가와서 생명이 없어지고 캄캄한 흑암이 다가옵니다. 여러분 흑암은 마귀의 역사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광명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기쁨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사망은 마귀에게 속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우리에게 시험을 갖다 걸어서 개인에게 시험이 다가오고 가정에 시험이 다가오고 생활에 시험이 다가와서 사망의 세력이 와서 파괴되고 시험의 골짜기를 지날 때라도 이제는 인간의 힘으로 발버둥치지 않습니다.
은혜의 강에서 헤엄칩니다. 내가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릴지라도 내가 어둡고 캄캄한 길을 걸어갈지라도 전폭적으로 주님의 은혜의 강물에 내 몸을 던져버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한가지 압니다.
주님께서 나의 목자이시므로 이 캄캄한 골짜기에도 같이하여 주셔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여 주시옵시고 마귀가 아무리 공격을 해도 해를 받지 아니하고 결국에는 승리로 나올 것을 확실히 알고 인식해 버리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가 원수의 공격을 받아 사람들이 피난합니다. 혹은 가족들이 일어나서 비난하고 친구들이 일어나서 비난하고 모든 사람이 나를 다 버리고 떠나가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주님 중심으로 살다가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는 이러한 때 원수들이 와서 내 살을 먹고 나를 찢으려고 할 때 그때도 이제 은혜의 강 위에 헤엄치는 사람은 그러한 때도 그 원수를 바라보고 이웃을 바라보고 원망, 탄식하지 않고 전폭적으로 인생을 주님께 내어 맡겨버립니다.
은혜의 강물에 내어 던져서 맡겨버립니다. 그러면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주님께서 은혜로서 책임져서 원수가 오면 원수의 목전에서 나에게 진수성찬 차려 주옵시고 그리고 나에게 기름을 부어서 힘을 더 주어서 내 삶의 잔이 넘치게 해 주십니다.
원수가 없을 때보다도 원수가 다가옴으로 말미암아 내 삶의 잔이 더 넘친다 기쁨의 잔 소망의 잔 능력의 잔 평안의 잔이 더 넘치게 된다 더 삶에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전폭적으로 이제는 주님께 의지해 버립니다. 주님이 책임집니다.
그래서 나의 삶의 길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아니면 다릅니다. 내 모든 삶에 주님께서 그저 선하심을 보태고 인자하심을 보태면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이 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다가와도 주님이 그저 선하심을 보태고 또 인자하심을 보태어서 또 합동하여 유익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인생을 살면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보태어져서 모든 일이 합동하여 종국적으로는 선하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결과를 좋게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이 나를 다가와도 내가 은혜의 물에 헤엄치는 것은 주께서 나를 책임지고 손을 잡고 이끌어서 우리 아버지 야훼의 집에 들어가서 영원히 그 속에서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땅의 삶보다 더 영원한 미래의 삶이 더 희망차고 좋은 것입니다. 눈물과 근심과 탄식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앓는 것이나 죽는 것이 없는 세상에서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연로한 몸이 젊은 몸으로 변화되어서 섞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상속으로 받아 영원히 살게 됐을 것입니다.
저는 요번 인도에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너무나 사람들이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립니다. 하루에 돈 천원 가지고서 사는 그런 삶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는 생활이 말이 아닙니다. 자, 집이 있나 옷을 잘 입었나 음식을 잘 먹나 내일의 희망이 있느냐 인간적으로 볼 때 도저히 무엇 때문에 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는 의미가 없어요 그런데 힌두교를 믿고 막 힌두에 절을 해요, 이슬람교를 믿고 막 절을 합니다. 그런데 힌두신과 이슬람의 신이 오늘날 대대로 이어 살면서 그들에게 준 것은 무엇입니까? 가난과 슬픔과 질병과 고통과 절망 밖에 준 것이 없습니다.
힌두의 신이 살아 있다면 이슬람의 신이 살아있다면 자기의 백성들을 그렇게 그처럼 비참하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천국을 증거하고 희망을 증거하니까 그들이 와서 하는 말이 우리 힌두에도 그런 것이 있다. 이슬람에도 꼭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실제로 귀신이 소리치며 나가고 장님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고 절름발이가 일어나서 뛰기 시작하고 하니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그들 하는 말이 우리 힌두교에는 이런 것이 없는데 이슬람에선 이런 것이 없는데 어떻게 예수그리스도의 신앙 안엔 이런 것이 있느냐 그런 우리가 간단히 말했습니다.
힌두는 죽은 종교요 이슬람도 인간이 세운 죽은 종교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는 하늘에서 오셔서 이 땅에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걸머지고 몸 찢고 피 흘려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시고 성령을 통해서 이런 기사와 이적을 행하셔서 당신을 회개시키고 그러니까 두말하지 않고 회개합니다.
무릎을 꿇어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기뻐 뛰면서 예수님만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예수님만이 구주 시라고 외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진실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서 그리스도의 은혜에 헤엄이기 시작하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가운데는 이미 성령께 발목이 잡힌 사람도 있고 살아오다가 발버둥치다가 도저히 안되어서 무릎을 꿇어 항복한 사람도 있고 그 다음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허리로 삼고 권세와 능력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여러분은 신앙은 최고의 신앙에 들어가서 이제는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주님의 은혜의 강에 헤엄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이것에 관여하지 않고 좋으신 우리 하나님 목자 되신 예수께 모든 것을 맡겨 버리고 언제나 불평하지 아니하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믿음을 고백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어두울 때도 밝을 때도 답답할 때도 시원할 때도 공격을 받을 때도 평안할 때도 그런 것으로 관여하지 않고 주님을 찬미하며 감사하며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나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주님께서 완전히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주님이 인도하셔서 천국까지 올라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다 헤엄치는 물까지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과 마음과 몸과 생활 전체를 완전히 맡겨 버리고 주님을 의지해서 찬미하며 살아가는 이러한 신앙생활 속에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를 성령의 능력으로 붙잡아주소서. 우리의 신앙이 자꾸 자라서 더 풍성하고 넘치는 성령의 바다 속으로 이끌어 주심을 생각할 때 감사드리옵나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의 발목을 잡으셨으면 무릎을 꿇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릎을 꿇었으면 허리를 붙잡아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시옵소서 허리가 붙잡혔으면 이제는 은혜의 강물에 인생을 내어 맡겨 헤엄치고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 살아 계신 우리 아버지를 감사합니다.
그 수많은 인도 힌두교 사람들을 깨우치시고 회개시키시고 그 가운데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 이 자리에 우리와 같이 계심을 감사드리옵니다. 오늘도 우리의 심신에 기사와 이적을 행하여 주시옵시고 오늘 우리가 성찬을 뜰 때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속에 임하시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