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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엡5:15-17/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조용기 목사
    2014-09-09 12:38:10   read : 1236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이다를 늘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인생에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고 구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길을 다 정해 놓고 하나님 앞에 떼를 쓰면서 자기 뜻대로 이루어 달라고 외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창세전에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지으시기 전에 이미 우리 일생의 삶의 길을 계획하시고 예정하시고 다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알파요,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시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밝은 대낮처럼 보입니다.

    이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미 여러분과 나의 삶을 위해서 모든 일에 예비하시고 이미 예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가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위해서 고속도로를 닦아 놓았는데 이것을 제켜 놓고 우리가 우리 길을 만들겠다고 삽과 괭이 들고 피땀 흘리면서 파나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바로 하나님이 우리 위해서 예정하시고 예비해 놓으신 그 길을 찾아서 믿고 순종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자기 계획과 생각이 아무리 확고하더라도 하나님의 계시가 오면 자기 길을 당연히 버려 버리고 하나님의 길을 따라 나서는 것이 우리 신앙의 도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함과 같으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 모든 일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인생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험한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 상처투성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첫째로,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마음속에 탐욕을 버리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는데 죄라는 것이 바로 무슨 말이냐 하면 빗나간다는 말인 것입니다. 활 쏘는 사람이 과넠을 향해서 살을 당겼는데 과녘을 맞추지 않고 빗나갈 때 이것 죄라고 말합니다. 죄는 빗나갑니다.

    우리 마음에 욕심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지 아니하고 자기 욕심을 쫓아 빛나가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렇게도 아름다운 극락의 에덴동산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동산에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명명백백히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는 동산 중앙에 와서 따먹지 말라는 나무열매를 늘 쳐다보았었습니다. 그러자 사탄이 꾀임으로 봄으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얻기에 탐스러운지라 그만 하와가 먼저따서 먹고 남편에게 주어 그 두 사람이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몰라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명명백백히 알면서도 불구하고 그 마음속에 탐욕이 들어오면 욕심으로 말미암아 그만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빗나가 버리고 만 것 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탐욕이 들어오는 것 욕심이 들어와서 욕심을 따라서 산다는 것은 벌써 하나님을 저버린 삶인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벌써 욕심가지고 태어납니다.

    이러므로 욕심을 저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서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서 살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없이는 안 됩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성경에 이스라엘의 처음 초대왕 사울왕이 있습니다. 사울왕은 처음에 겸손하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셔서 이스라엘 초대왕으로 만드셔서 그만 나라를 융성케 하고 잘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점점 왕성해 지자 그 마음속에 교만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 사무엘을 보내서 사울에게 명령했습니다.

    “내가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낼 때 심히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하고 막은 아말렉을 기억하노니 너희는 아말렉을 진멸하되 왕으로부터 백성과 유아까지 다 진멸하고 짐승의 새끼까지 멸하라.”
    하나도 살려놓지 말라고 했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사울왕은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아말렉을 이 땅에서 저 땅끝까지 쳤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명예욕이 생겨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승리를 보고할 때 아말렉의 왕을 끌고가야 되겠다 싶어서 아각 왕을 죽이지 않고 끌고 그 다음에는 살찐소와 염소와 양은 한 마리도 죽이지 않고 그대로 끌고 왔습니다.

    욕심으로 말미암아 벌써 하나님의 명령에 빗나가게 된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계시가 사무엘에게 임하였습니다. “사무엘아! 내가 사울을 세워 임금을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아각 왕을 살리고 수많은 짐승을 노략물로 잡아서 끌고 오고 있다.”

    그때 사무엘이 밤새토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아침에 나가서 사울을 맞이했습니다. “사울 왕이여, 어찌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습니까?”
    “아니오. 나는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저 뒤에 우는 양이나 소떼의 울음소리는 무엇입니까?”
    “아 그것이요? 그것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서 짐승 중에 살찐 것을 죽이지 않고 살려서 온 것입니다.”

    그는 꾸중을 들었을 때 그 자리에 엎드려서 회개하고 자복하고 통회하지 아니하고 변명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진노해서 삼상 15:22~23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무리 종교의식을 잘 집행하고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고 수양의 기름으로 하나님께 드린다 하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저버리고 하는 행동은 성경에 말하기를 ‘사술의 죄와 같고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당을 세우고 말씀을 증거하고 예배의식을 장엄하게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받아들이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제켜 놓고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종교의식을 집행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가인 보십시오. 재단을 쌓아 놓고 자기가 농사지은 것을 다 재단위에 얹어 놓고 아무리 예배 드려고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빌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드릴 때 반드시 제단 쌓고 어린양을 잡아 피를 흘려 재물을 드리라고 했는데 하나님 음성을 저버리고 자기혼자 좋다고 생각하는데로 예배드린다고 해서 하나님 그 예배 받아들입니까?

    사울왕은 자기 생각에 살찐 송아지와 양과 염소를 끌고와서 번제를 드리면 하나님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 말씀 듣지 아니하는 것은 우상에 절하는 죄와 같고 사술을 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단호하게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순복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탐욕이 들어오면 이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보이더라도 그것을 부정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때 피땀을 흘렸었습니다. 자아를 저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서고 자기 뜻을 저버리고 하나님 뜻을 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욕심을 버리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의 뜻은 알려지지 않습니다.
    내 자식, 내 남편, 내 아내, 내 장사, 사업터, 내 지위, 내 명예, 내 권세 이것을 꽉 부여잡고 여기에 손해 나는 일은 절대로 안하겠다고 하는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뜻을 보일 턱이 있어요. 우리 하나니 앞에 나가서 하나님 뜻을 알려면 내 욕심과 탐심을 주의 재단에 내어놓고 주님께서 명령하시면 무엇이든지 따라가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이루어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꽉차 있을 때는 눈도 어둡고 귀도 어두워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또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우리 마음속에 고정관념을 버려야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기 전에는 모두 다 자기의 생각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의 지시가 임하시면 자기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는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할 것이라는 그런 생각을 저버려야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바람과 같이 역사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바람이 이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와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언제 어떻게 역사할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바람이 마치 동에서 서로 불다가 서에서 갑자기 동으로 불고 남에서 북으로 불다가 북에서 남으로 부는 것처럼 하나님 당신 뜻 정한데로 하시지 우리가 마음에 이렇게 할 것 이라고 정해놓고 있으면 안 됩니다. 고정관념은 하나님의 뜻을 저항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리아의 대장군 나아만은 위대한 장군이었습니다. 수리아의 왕이 존경하고 온 백성의 추앙을 받는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위대한 장군이나 속은 문둥병이 걸려서 그 살이 문드러지고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는데 자기 병사들이 변경에서 잡아온 이스라엘인 여종이 집에서 수종 들고 있는데 하는 말이 “우리 주인께서 이스라엘의 엘리사 선지자 앞에 섰으면 좋겠나이다. 엘리사는 그 문둥병을 고칠 것이며..” 이 말을 듣자 뛸 뜻이 기뻐하여 이 나아만은 아람 왕에게 추천서를 받아서 이스라엘 왕에게 갔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편지를 받자마자 옷을 찢고 하는 말이 “아람 왕이 나하고 싸움을 걸려고 여기에 조건을 만드는 도다. 내가 어찌 하나님이기에 사람을 죽이고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이 할 수 있느냐?” 그럴 때 엘리사가 말을 전달했습니다.

    “왕이여 그렇게 마음에 괴롭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내가 보여 드리리이다. 그를 내게로 보내소서.” 그러자 나아만은 큰 수레에 타고 병사들을 거느리고 장엄한 행렬을 이루어서 엘리사가 우거하는 곳으로 갑니다. 그는 고정관념을 가졌습니다.

    엘리사의 집에 가면 문 앞에 나가서 ”이봐라!“ 부르면 엘리사가 장엄한 법복을 입고 나와 가지고서 그는 우슬초에다가 물을 찍거나 피를 찍어서 흔들어 자기위에 뿌리고 그리고 주문을 외우고 장엄하게 안수해서 거룩하게 고쳐줄 것으로 고정관념을 가졌습니다.

    그래도 적어도 ”내가 나아만 장군인데 나 같은 사람이 오는데 엘리사가 나와서 장엄한 종교의식을 통해서 나를 고쳐 줄 것이라“ 그렇게 생각을 하고 엘리사의 집에 당도해서 ”이봐라! 누가 있느냐?“ 하니까 엘리사의 종이 이렇게 허리를 굽히고 나와서 절을 굽신거리면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아~ 나는 대 나아만 장군인데 엘리사 선생을 만나서 문둥병을 고치러 왔다.“고 하니까
    ”아 그래요? 우리 엘리사 선생이 바빠서 만날 시간은 없고 말씀하기를 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퐁당퐁당 목욕을 하라고 합니다.“

    그 말에 나아만 장군은 대노했습니다. 자기의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적어도 엘리사가 거룩한 옷을 입고 두건을 쓰고 나와서 자기를 위해서 거룩한 물을 뿌리고 장엄한 주문을 외우고 안수해 줄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 요단강에 가서 퐁당퐁당 일곱 번 목욕하라고 그러니까 그가 하는 말이 ”이런 고약한 사람이 있나. 이것은 나를 모욕하는 도다. 내가 모욕당했다.

    우리나라에 가면 바르바르나 에발가면 얼마나 물이 맑고 좋지 않느냐? 강물에 가서 목욕해서 병 나을 바에야 우리나라에 맑은 강에 가서 목욕해서 병이 낫지 이 흙탕물인 요단강에서 내가 세례 받겠느냐? 물에 퐁당퐁당 들어가서 내가 병 낫겠느냐? 돌아가자! 모욕을 당했다.“

    보십시오. 자기 마음속에 하나님이 이렇게 해줄 것이라고 고정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고정관념 이외에 일을 하는 것은 용납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해야 낫겠다고 그랬는데 자기 생각은 엘리사가 나와서 장엄하게 종교의식을 행해야 낫는다고 고정관념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이 고정관념을 버려야 됩니다. 고정관념을 가지고서 우리식으로 해야 하나님이 역사한다. 장로교식으로 해야 하나님이 역사한다. 감리교식으로 해야 하나님이 역사한다. 침례교식으로 해야 하나님이 역사한다.

    순복음식으로 해야 하나님이 역사한다. 이런 고정관념을 가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바람이 입으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와 같으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돼요. 그럴 때 이 나아만 장군의 부하들이 나아만 장군을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장군이여 아버지여, 엘리사 선생이 더 어려운 일을 하라 해도 병낫기 위해서 했을 것 아닙니까? 요단 강에 목욕 일곱 번 하라는 것 그것 못할 리가 어디 있습니까? 그건 하세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밑에 있는 보좌관을 잘 거느려야 됩니다.

    보좌관을 잘못 거느리면 높은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 나아만은 보좌관을 잘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보좌관들이 계속해서 ”그 고정관념을 버리세요. 하나님이 요단강에 세례 받으라면 요단강에 가서 퐁당퐁당 해야지요. 그렇게 씻어 내야지요. 그렇게 하세요.“ 나아만 장군은 자기 고정관념을 버리고 그 장엄한 옷을 입은 사성장군이 요단강에 가서 옷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가니 흙탕물이 그냥 올라옵니다.

    그물에 들어가서 퐁당, 퐁당, 퐁당... 나중에는 장군이 아니라 쥐새끼 같습니다. 흙탕물이 쪼르르...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째 물에 들어갔다가 일어나니 순식간에 그 살이 어린아이와 같이 깨끗하게 되어 버리고 만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려면 자기의 생각, 고정관념을 버려야 돼요. 인간의 생각이나 인간의 고정관념을 초월해서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성령께서 말씀하시면 우리는 그 말에 복종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십자가를 짊어져야 된다는 것을 마음속에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하기를 “아브라함아, 네 전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할 땅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러분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해내야 됩니다.

    70평생을 살아온 자기 전토를 다 버리고 친척을 다 멀리하고 그 다음에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아비 집과 인연을 끊으라.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세상에 붙은 인연의 줄을 끊어야 될 때가 많은데 그 끊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70년 동안 살아온 자기 고향땅을 버려야 되고 그 많은 친척들을 떠나야 되고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기의 부모, 아비 집을 떠나야 됩니다. 부모하고 인연을 끊고 떠나라. 아브라함은 여기에 부모하고 인연을 끊을 수가 없어서 그만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장작 20년이 넘도록 조카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조카 때문에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십자가를 짊어져야 돼요.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네 부모나 형제나 처자를 나보다 더 사랑하면 내게 합당치 않으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아니하면 내게 합당치 않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데 만일 부모가 거역하면 부모라도 하나님을 택해야 되고 형제가 거역하면 형제보다 하나님을 택해야 되고 처자가 거역하면 처자보다도 하나님의 편을 택해야만 되고 자기 자신이 거역하면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라도 하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여러분 단호하게 주님 중심으로 서는 것이 신앙입니다. 내 탐욕을 다 가지고서 거기에 적합하면 하나님 뜻을 따르고 거기에 적합하지 않으면 버린다. 이런 심사를 가지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수가 없습니다. 내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하나님의 뜻을 행하겠습니다. 내 친척의 뜻을 들어 보고요. 내 처자의 의견을 들어보고 하나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 안 따르는 것이지요. 내 부모나 형제나 처자라도 하나님 뜻에 거역되면 단호하게 돌아서서 하나님 뜻을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자니까 핍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부모에게 버림을 당하는 일도 있게 되고 형제간에 싸우는 일도 생기게 되고 처자와 서로 갈등을 가지게 되는 일도 생깁니다.

    이것이 쉬운 것 같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내가 어제도 편지 한통 받았는데 편지에 보니까 자기는 시집을 와서 예수를 잘 믿고 사는데 종가집안이라 제사를 드려야 된다. 자기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자니까 종가집의 제사를 모실수가 없고, 제사를 지내자니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 같고 그는 말할 수 없는 마음에 갈등과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번민에 꽉 찬 편지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는 가장 가까운 부모, 형제, 처자 이러한 사람들의 핍박이 가장 마음에 괴롭습니다. 그것은 마음에 피를 흘립니다. 눈물을 흘립니다. 고통을 당합니다. 성경에는 그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단호하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십자가를 짊어지겠다는 각오를 해야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내게 이익 될 때는 받아들이고 내게 어려움이 다가오면 그 십자가 벗어 버리겠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뜻 알려 줘봤자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할 수 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예수님 오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 그렇게 원할 리가 없습니다. 그 말할 수 없는 수치와 고통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내가 십자가를 지는 것이 나의 뜻이라고 말할 때 예수님은 자기를 버리고 그 수치를 당하고 곤욕을 당하고 한없는 괴로움을 겪으면서도 아버지 뜻을 쫓아 자기를 십자가에 재물로 내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넷째로,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탐욕을 버리고 자기 고정관념 버리고 십자가를 짊어질 각오를 하고 났으면 이제는 하나님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소원을 일으켜서 인도하십니다.

    빌2:13~14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구름기둥과 같고 불기둥과 같은 소원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뜨거운 소원이 일어납니다. 이 마음에 뜨거운 소원이 너무나 구름기둥과 불기둥 같이 뚜렷하게 마음에 일어나므로 의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우리 마음을 붙잡고서 이리로 가라. 이리로 가라고 끌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성령께서 이 마음속에 우리의 의지를 붙잡아 끌고 가는 뜨거운 소원이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34년을 목회하면서 저의 모든 크고 작은 일에 거의 대다수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마음속에 뜨거운 소원을 일으켜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국민일보를 시작할 때도 하나님이 뜨거운 소원을 구름기둥과 불기둥같이 마음속에 일으켜 주어서 이 길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몽고전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성령으로 오셔서 마음속에 뜨거운 소원을 구름기둥과 불기둥같이 마음속에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있는구나 알고서 그 길로 우리는 따라갑니다.

    저는 지금까지 저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불기둥 같고 구름기둥 같이 세워 주신 그 소원을 쫓아 나왔을 때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는 그런 상황에도 언제나 결과에 가서 위대한 일이 성취되고 성공되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면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라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능력으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해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께서 탐욕을 버리고 고정관념을 버리고 십자가를 짊어질 각오를 하고 주님께 결사적으로 매달려 기도하면 하나님은 모든 일에 소원을 일으켜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분명한 소원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절대로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이 확실한 것입니다. 또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환히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무지의 어두움이 걷히고 빛이 비췹니다.

    깜깜한 밤중에는 내 눈앞에 지척도 안보이지만 태양이 떠오르면 눈 앞이 환하게 보이는 것처럼 마귀가 내 마음을 누리고 있을 때는 세상 탐욕이 꽉 들어차서 아버지의 뜻을 알수가 없지만은 기도하고 마귀가 쫓겨나가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성령의 빛이 비취면 갑자기 마음이 깨달아 집니다.

    갑자기 ‘아~ 이것이구나! 아 이것이구나. 왜 내가 전에 이것을 몰랐을까?’ 마음속에 밝히 깨달음을 가지고서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이 마음속에 대낮같이 환하게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한 환경을 통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엘리야가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비가 오도록 갈멜산 위에서 기도할 때 그는 한번 기도하고 종을 산꼭대기 올라가서 천지를 바라보라 했습니다. 내려와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했습니다.

    세 번까지 올라가서도 안보입니다. 일곱 번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라. 일곱 번째 산에 올라가서 내려오더니 “엘리야 선생이여, 저 동해바다 끝에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입니다.”

    3년 6개월 동안 푸른 놋같이 푸르고 구름한점 없었는데 기도하고 난 다음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인다 할 때 엘리야가 하는 말이
    “큰 비의 소리가 들린다. 빨리 빨리 왕에게 말하기를 병거를 정비해서 수도로 빨리 들어가라”고 말했습니다. “큰비가 온다.” 조그마한 손바닥만한 구름장 이것이 바로 환경에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온 하늘이 먹장구름으로 덮이고 거대한 비가 쏟아졌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환경 가운데 조그마한 손바닥 만한 그러한 증거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이리로 오라. 이리 오라. 환경의 문이 열립니다.

    그것을 가지고 기도해 볼 때 마음에 불안이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이 있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길로 우리는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우리의 환경에 하나님의 부르시는 손길이 나타나는지 환경에 하나님의 증거가 나타나는지 자세히 살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환경을 통해서 우리를 인도할 때가 대단히 많습니다. 또 그렇지 않으면 특별한 예언이나 계시를 통하여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바울이 드로아에서 기도할 때 마게도니아에 환상이 일어나서 바다를 건너 마게도냐로 와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한 것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도 있습니다.

    고넬료가 기도할 때 천사가 나타나서 욥바에 가서 시몬이라는 베드로를 청하라. 특별한 계시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특별히 꿈이나 환상이나 계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실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특수한 사람에게만 있지 보통으로는 마음에 뜨거운 소원과 깨달음과 환경에 하나님 증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뜻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우리의 선택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좋다고 이것 선택하고 저것 선택한다고 그래서 삶이 아름답게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만세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갈 길을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생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일생을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미래가 이미 지나간 과거처럼 알려져 있으며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길을 따라서 사는 길이 우리의 참된 삶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제켜 놓고 내가 스스로 갈 길을 닦겠다고 괭이나 삽을 가지고 나가서 뒤지는 것은 스스로를 절망에 처하게 합니다.

    우리 구원도 한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구원받은 길을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2천년 전에 보내셔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몸 찢고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죄악의 길을 다 제키고 천당가는 대로를 닦아 놓았습니다. 천당가는 고속도로가 닦여 있습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피땀 흘리지 않고 그대로 그 길로 천당을 갑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길을 저버리고 자기 스스로가 영생의 길을 닦겠다고 여러 가지 종교를 찾아가고 윤리와 도덕적인 행위로 천국 길을 닦겠다고 괭이와 삽을 가지고서 뒤지기 시작한다면 그는 천국의 길도 닦지 못하고 자기 일생을 피땀 흘리다가 고생을 하다가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여러분과 제가 은혜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하나님이 일을 다 하시고 하나님이 다 예비해 놓으신 것을 우리가 알아서 그것을 믿고 순종해서 피땀 흘리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고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일생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진선, 진미의 길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이 우리 금새와 내새에 가장 좋은 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일생의 뜻을 다 챙겨 놓으셨습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 앞에서 탐욕을 저버리고 고정관념을 저버리고 십자가를 짊어질 각오를 하고 매일매일 주의 뜻을 구하고 매일매일 주님을 따라 가십시다. 여러분 하나님은 매일매일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목자가 양을 인도하지요. 양이 목자를 인도를 하지 않습니다. 목자가 양을 돌보지 양이 목자를 돌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양인데 우리가 하나님을 끌고 가려고 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돌보아 주려고 하는 건방진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 이리와요. 이리와. 날 따라와요. 따라 오라니까요.” 그런 법이 어딨어요. 양이 어떻게 목자를 끌고 갑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하나님 사업 내가 해드릴께요. 하나님. 내가 하나님 돌보아 줄께요. 하나님. 하나님이 약해서 꿈쩍 못하는 노인이니까 내가 다 돌보아 드리지요.”

    웃기는 소리 하지 마세요. 내가 왜 돌봐줘요. 목자가 양을 인도하고 목자가 양을 돌보는 것처럼 하나님 우리 목자시므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도하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따라갈 따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져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에 탐욕과 고정관념과 십자가를 피하는 안일한 마음 때문에 주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 길을 가다가 가시넝쿨에 걸리고 바위에 막히고 엉겅퀴에 찔리고 절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야훼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기도하오니 아버지의 뜻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하늘에서 그 뜻이 다 이루어졌으니 이 자리에 고개숙인 성도들의 가슴속에 다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뜻을 반드시 알고 나가게 도와주옵소서.

    자기의 탐욕을 따라가지 말고 고정관념을 따라가지 말고 십자가를 피해서 가지 말고 아버지의 뜻이면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아버지의 뜻대로 따라가겠다는 결심과 각오를 가지고 나갈 때 하나님 아버지여 마음에 구름기둥과 불기둥 같은 소원을 통하여

    어두운 밤이 지나고 밝은 태양이 비취는 대낮이 다가오는 것처럼 마음에 깨달음을 통해서 주위 환경을 통해서 혹은 특별 계시를 통해서 주의 백성들에게 아버지의 뜻을 보여 주시고 아버지께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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