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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엡5:22-33/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 /조용기 목사
    2014-09-08 18:10:03   read : 1180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은 그 누구를 불문하고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서로서로 관계를 맺고 삽니다.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부모와의 관계를 맺고 자라납니다. 그러자 곧장 형제들과의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친구와의 관계, 스승과의 관계, 부부와의 관계, 사업적인 관계, 정치적인 관계, 이와 같이 거미줄 같이 얼기설기 맺어진 관계 속에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적인 관계는 모두 다 아무리 좋다 해도 일시적이고 세상적인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생명이 끝나는 날에는 인간적인 관계라는 것은 하나도 없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저 영원한 세상까지 길이길이 뻗치는 관계가 있습니다. 이 관계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면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우리가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무관심의 관계, 적대심의 관계를 맺고 있으면 별 도리 없이 그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 속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이 세상에 우리가 살면서 예수님과 우리 예수를 믿는 우리들과의 관계는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가 이 사실을 알아보는 것은 대단히 의미 심장한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분과 예수님과 진실로 어떠한 관계에 있다고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을까요?

    첫째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관계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절대적인 관계입니다. 포도나무는 가지의 삶의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말씀하기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누가 가지를 받치고 있습니까? 가지가 나무를 받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가지를 받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붙잡고 우리를 받쳐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붙잡았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수없이 예수님을 놓쳐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춘풍추월을 지나면서 수 없는 시험과 환난을 지나면서도 떨어지지 않고 신앙을 견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너희를 내게 주신 이는 만유보다 크시매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나무가 가지를 튼튼히 붙잡고 있어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폭풍이 다가와도 가지를 놓지 않는 것처럼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힘차게 붙잡고 놓지 않고 계시고 우리의 신앙을 받쳐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나무가 뿌리를 통하여 수분과 영양을 공급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 생활을 살아갈 수 있게 영적인, 심적인 생활에 모든 영양을 공급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노력하고 애써서 신앙적인 영양을 공급받고 혹은 삶의 영양을 공급받는 것이 아닙니다. 에수님께서 책임지고 주님이 그 신비한 능력으로 하늘나라의 은혜를 가지고 우리들을 먹이고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의 수단과 방법으로 살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영육 간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양을 공급해 주시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가 절대로 영양을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 가지가 아무리 몸부림을 친다 한들 가지에게는 뿌리가 없습니다. 오직 나무가 뿌리를 깊숙이 파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힘차게 예수님을 의지하고 있으면 예수님께서 영육 간의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중국의 외지 선교에 크게 성공한 영국의 유명한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는 아무런 본토의 도움 없이 중국의 깊숙한 곳에 들어가서 그는 일생을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럴 때 그에게 수많은 난관이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이곳 저곳에 개척해 놓고 또 교역자들은 많이 보내 놓았는데 그들 뒤를 끊임없이 도와주어야 됩니다.

    그런데 자기 혼자 힘으로 나중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짐이 무거웠습니다. 아무리 본국에 편지를 써도 편지의 대답에서 날아오는 돈의 액수는 형편없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정신적인 분열증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그의 사무실에서 노한 사자처럼 왔다갔다하고 고함을 쳤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는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제 저는 물러가야겠습니다." 그렇게 고함을 치고 기도하는 데 하나님의 성령께서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아, 언제 너보고 일하라고 하더냐. 나는 너를 중국 내지에 보낼 때 너를 일하라고 보낸 것은 아니다. 너는 이곳에 와서 나의 시키는 일을 하라고 말했다. 나는 너에게 모든 것을 공급할 수 있다. 너는 가지요 나는 포도나무다.
    너는 내게 붙어있어 나만 앙망하고 있으면 내가 너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줄 것인데 왜 내게 붙어 있지 않고 네가 너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일하려고 하느냐? 내게 붙어 있으면 내가 네게 필요한 대로 모든 것을 공급해 줄 것이 아니겠는가."

    거기에서 그만 허드슨 테일러 박사는 마음에 크나큰 평화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모두 다 내가 교회를 세워야지. 내가 성직자들을 돌보아 주어야지. 내가 이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어야지. 이러한 노력으로 내가 내가 하다가 절망에 처했는데 그 날 그 계시를 받고 난 다음 나는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만 마음속에 보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무요 나는 가지니 가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힘껏 나무에 매달려서 그저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 공급은 주님이 하신다. 그때부터 마음에 안식을 얻고 큰 신앙으로 주님께 매어 달린 결과에 주님께서 기이한 역사로서 수많은 도움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래서 그는 중국 내지 선교에 성공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우리는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가지는 가지의 위치를 알고 전적으로 나무에 붙어 있어 나무에게 감사하고 의지할 따름이지 자기가 나무 역할을 하겠다고 하다가는 건방져서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가지의 사명이란 주님께서 성경에 말한 대로 "내 안에 거하라 그러면 내가 너희 안에 거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우리 삶이 주님 중심으로 살고 그리고 성경 말씀을 읽고 늘 주님께 기도하고 그렇게 살면 주님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셔서 주님이 모든 은혜를 부어 주셔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면 주께서 우리를 통해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열매를 맺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관계를 더 깊이 깊이 맺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도록 매일 같이 더욱 노력해야 됩니다. 더욱 주님 중심으로 살고 더욱 말씀을 많이 읽고 묵상하고 더 많이 깊이 기도하면 할수록 우리는 주님 속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고 주님 말씀이 우리 속에 깨달아지면 깨달아지는 대로 그 말씀을 좇아서 우리가 기도하면 주님께서 무엇이든지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능동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능동적이고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빨아들인 수동적인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관계를 머리와 지체의 관계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로 23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정을 비유해서 말씀하시기를 한 가정의 머리는 남편인 것처럼 교회 성도들의 머리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머리는 무슨 역할을 하는 것입니까? 머리는 우리 의식의 본산입니다. 우리가 깨어서 생각하는 모든 생각은 머리 속에서 하는 것입니다. 팔이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다리가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머리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머리가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지휘 본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머리가 고장이 나면 온 몸 전체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의식의 중심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나깨나 예수 생각으로 마음속에 꽉 들어차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생각 전체를 점령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통해서 생각하고 예수를 통해서 말하고 예수를 통해서 먹고 마시고 살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머리는 바로 의식의 중심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에 왔다갔다하면서 예수님은 주일날이나 생각하고 그리고 난 다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온전히 자기 생각, 세상 생각만 하다가 다시 주일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 보는 이러한 것은 엉터리 중의 엉터리인 것입니다. 예수가 우리 머리면 24시간 예수 의식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든지 생각하고 예수를 통해서 말하고 예수를 통해서 행동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 중에 여러분 가장 중요한 부분이 어디입니까? 머리입니다. 머리는 상처를 입으면 사람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팔이 상처 입으면 자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리가 상처 입으면 잘라 버릴 수도 있어요. 그러나 머리가 상처를 입어서 죽으면 그 사람은 죽는 것입니다. 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머리인 것처럼 우리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라고 하니까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우리 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입니다. 지위나 명예나 권세 이것은 먼지와 티끌입니다. 이것은 아무 것에도 쓸모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예수를 진실로 여러분 생애 속에 가장 중요한 중심으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를 언제나 경외하고 존경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가 맺어져야 주님께서 우리를 지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머리를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것으로 내어 던져버리면 그 몸이 아무리 튼튼해도 그 몸은 아무 쓸데도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머리의 지휘를 받고 우리는 머리가 중요하니 머리를 항상 보호하는 것처럼 우리의 생활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지휘를 항상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분으로 삼고 예수님의 지휘를 받고 예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을 사랑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머리와 지체는 어떠한 서로 관계를 맺습니까?

    성경에 보면 고린도전서 6장 15절에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여러분 우리는 머리에 붙은 지체입니다. 그런데 머리는 항상 자기 몸을 생각합니다. 내 몸을 먹이고 입히고 치료하고 돌보는 일을 생각합니다.

    머리만큼 가지인 몸을 생각해 주는 것이 없습니다. 몸이 머리를 생각하는 것은 거의 없어요. 그러나 머리는 항상 몸을 생각합니다. 추우면 입혀야지. 더우면 벗겨야지. 배고프면 먹여야지. 피곤하면 쉬게 해야지. 병들면 고쳐 줘야지. 위험이 오면 지켜 줘야지. 머리는 끊임없이 몸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몸이 늘 머리를 받들어야지 머리를 받들어야지 몸은 별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랑은 내리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자식이 부모를 사랑할 수 없고 형이 동생을 생각하는 것처럼 동생이 형을 생각할 수 없고 선배가 후배를 생각하는 것처럼 후배가 선배를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주님은 머리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24시간 예수님은 우리를 잊어버리지 않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지체를 먹여야지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주님은 끊임없이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또 머리는 우리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보내어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성령을 보내어서 회개시켜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일을 계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가 몸을 치료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 심신이 병들었을 때 늘 치료하시려고 애를 쓰고 계시며 우리 지체를 여러 가지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전력을 기울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주님은 구만리 장천에 있고 우리는 이 땅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나의 형편과 사정을 알고 계실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습니다. 이것은 마치 내 머리가 내 손과 발이 있는 처지를 알고 있을까 내 머리가 내 배고픈 사정을 알아줄까 이렇게 의심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 우리와 함께 주야로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떠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머리에서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되어서 주님은 우리의 머리요 우리는 그 지체로서 하나가 되어서 우리는 이 땅에서도 살고 영원한 천국에서도 살게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셋째로, 성경은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창세기 2장 23절에 보면 대단히 깊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잠재워서 그 옆구리에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들고 난 다음 하와를 아담에게 데려오니 아담이 하와를 보고 대단히 감격해서 말하기를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아담은 하와를 볼 때 그 하와는 나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나와 하나라'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31절로 32절에 보면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남편과 아내가 일치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는 그와 같은 관계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한 것처럼 예수께서도 교회와 여러분을 보실 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분리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여러분을 분리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여러분의 남편이요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드셨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드셨습니다.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서 하와를 만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옆구리를 찔러 심장을 터뜨려 피와 물을 흘리시고 그 몸을 찢어서 여러분과 저를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제가 구원받은 것은 어떤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은 것도 아니고 윤리와 도덕적인 행위를 함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살을 먹고 예수의 피를 마시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여러분을 보실 때는 이는 내 살 중의 살이요 내 뼈 중의 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니 이 얼마나 가까운 관계인 것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성경은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 말하기를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영적으로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이 들어와서 우리와 예수님은 한 영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를 분리시킬 수가 없습니다. 부부간에 한 몸이 되는 것처럼 이제 예수를 믿을 때 예수님과 우리는 한 영이 되어서 예수 안에 우리가 있고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우리는 또 한 아버지 안에 들어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4장 24절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우리는 완전히 하나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 안에 계시고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령과 여러분은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와 여러분을 분리할 것은 없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를 통해서 우리는 모든 환경과 운명을 정복하고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우리가 남편과 아내의 관계라면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쳐 준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신랑이 되셨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자신을 내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내 된 우리들을 건지기 위해서 주님께서 천사를 보낸 것도 아니고 주님께서 돈을 보낸 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자신을 내어 주었습니다. 하늘 보좌 버리시고 사람의 몸을 쓰시고 오셔서 자기 아내된 교회 성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친히 십자가에 올라가서 그 아내된 여러분과 저의 죄악을 대신 짊어지고 그 몸을 찢고 그 피를 쏟아서 교회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성도들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헌신적인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즉 독생자를 주었다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그의 몸을 주시고 그의 피를 주시고 자기를 내어 주신 사랑을 가지고 오늘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시각적으로 우리에게 말씀으로 깨끗케 하사 성령으로 거룩케 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매일같이 말씀을 읽게 하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으로 여러분을 회개시키시고 여러분 신앙이 자라게 하시고 기도를 통해서 성령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자기 앞에 영광스런 아내로 나타내게 하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고 애쓰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앞과 여러 천사들 앞에서 여러분 우리가 부활해서 일어서게 될 때 흠도 없고 점도 없고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장엄한 그리스도의 아내로 나타나게 하려고 주님께서 온갖 애를 쓰시는 것입니다.

    마치 사랑하는 남편이 아내를 아름답게 보이게 하려고 화장품도 사다 주고 몸에 여러 가지 장신구도 사다 주고 그리고 좋은 옷을 입혀서 자기 앞에 세워보고 난 다음에 '야, 멋있다. 야, 화려하다. 당신 데리고 나가면 모든 사람이 칭찬하겠다.' 그렇게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아내가 칭찬을 받는 것은 남편 마음속에 만족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잘 치장 시켜서 우리로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 세워 놓고 칭찬 받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 자신의 기쁨이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을 끊임없이 잘 보이게 하려고 주님께서는 영광스런 아내가 되게 하려고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양육하고 보호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어느 남편이 자기 아내를 양육하고 보호하지 않겠습니까? 자기 아내를 양육도 아니하고 보호도 아니한다면 그 사람은 장가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장가간 사람이면, 정상적인 남편이면 자기가 어떠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자기 아내를 양육하고 보호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이것을 못하면 남편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훌륭한 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는 실력이 넘치는 남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양육하고 보호할 실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러므로 우리가 불신앙을 가지고 불순종하고 뒤로 물러가는 이런 일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쁜 아내가 되어서 주님을 불신앙하고 불순종하고 항상 애를 먹이면 그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책임지지 못하겠습니까?

    성경에는 아내의 할 일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는 범사에 복종할 임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범사에 예수께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인도하시길 원하는데 우리가 예수님께 자꾸 반대하고 예수님 하신 말씀을 자꾸 거역한다면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무서운 완력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폐 일언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깨어지고 항복하고 주님께 범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시라고 하시면 긴말하지 말아야 돼요. 잔소리하지 말아야 돼요. 전적으로 주님께 순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자라지 못한 사람이 잔소리가 많아요. 신앙이 크게 자라면 잔소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 부부도 그렇지 않습니까? 서로 서먹서먹할 때 잔소리가 많지 서로 깊이 친해지고 깊이 사랑하게 되면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기 때문에 잔소리가 없습니다. 서로서로 마음이 합쳐서 이끄는 데로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범사에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밀고 당기는 일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경배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랑할수록 우리는 존경해야 합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그만 무시하고 짓밟으면 안됩니다. 옛말에 '손주 사랑하면 할아버지 수염까지 뽑는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랑해 주면 그만 행실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깨에 힘주고 행실 없는 말을 하기 때문에 나중에 그 사랑에 금이 가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뜨겁게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도 아내를 존경하는 것입니다.

    존경이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사랑 받았다고 해서 그만 교만해져서 목을 뽑아서 흔들고 어깨에 힘주고 돌아다니면 그만 그 사랑에 상처를 가져오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 받을수록 사랑해 주는 사람을 존경하고 경외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받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에 있는 만큼 우리는 또 주님을 전적으로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은 사람은 어찌할 도리가 없이 우리는 나무와 가지와 같은 관계가 있고, 머리와 지체의 관계가 있고 그리고 남편과 아내와 같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는 참으로 깊고 사랑이 넘치며 신비한 관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항상 근본이 되시고 자원이 되시며 능동적이 되십니다. 나무는 가지보다 능동적이며 머리는 지체보다 능동적이며 님편은 아내보다 능동적인 것입니다. 나무가 가지를 책임지고 머리가 지체를 책임지고 남편이 아내를 책임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의 책임은 예수님께서 져주시는 것이지 여러분이 책임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지는 나무에게 순종하고 지체는 머리에게 순종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우리는 순종하고 경외하고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으면 우리의 나무되신 예수님, 우리의 머리되신 예수님,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전적으로 도와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의지하고 안심하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를 깊이 깨닫고 그 관계 속에 들어가면 비로소 우리의 생활 속에 의와 평강과 희락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교회 왔다갔다 하면서 종교적이고 의식적이며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이러한 신앙생활하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와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심오하고 신비하고 깊은 신뢰와 사랑 속에 맺어져 있다는 사실을 오늘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보혜사 성령이시여

    , 우리 주 예수를 알게 하여 주옵시고,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깊이깊이 이해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이 관계 속에서 뜨거운 신앙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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