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9:1-12/ 신앙생활과 기회 / 한경직 목사 2014-08-27 12:21:35 read : 1992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 아침에 읽은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얘깁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에 길가에 나면서부터 눈 먼 사람이 하나 앉았습니다. 제자들이 묻습니다. “저이가 저렇게 나면서부터 소경된 것이 자기의 죄입니까? 자기의 부모의 죄입니까?” 예수님께서 얼른 대답하시는 말씀이, “그것은 자기의 죄도 아니고, 자기의 부모의 죄도 아니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시는 것이다.” 대답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태도는 어떤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했으면, 그것을 무슨 철학적으로 신학적으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명감에서 그런 모든 불행을 당하는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그런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서 그 소경을 고쳐주시면서 이러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여기에 예수님께서 일할 수 있는 때 곧 낮이 있고, 일할 수 없는 때 곧 밤이 있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인간 생활에는 이렇게 낮과 밤이 있습니다. 일할 수 있는 낮이 있고, 일할 수 없는 밤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씨를 뿌릴 때가 있습니다. 낮이 있습니다. 봄이올시다. 거둘 때가 있습니다. 가을입니다. 가을에 거두지 않으면 거둘 수 없습니다.
공부도 할 때가 있습니다. 낮이 있습니다. 젊은 때입니다. 공부할 수 없는 때가 옵니다. 나이 많으면 공부할 수 없습니다. 사업도 그렇습니다. 모든 게 다 그렇습니다. 범사에 기회를 놓치지 아니해야,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한 세상 사는 것을 바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이렇게 낮과 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기회가 있습니다.
가령 첫째로, 신앙생활의 시작에 있어서도, 곧 회개에 있어서도 기회가 있습니다.
낮과 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에 나타나셔서 제일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하실 때에 이와 같은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신 때는 문자 그대로 역사의 낮입니다. 때가 찼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습니다. 회개할 때입니다.
이사야는 55장 6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할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물론 깊은 의미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가까이 계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경험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가까이 계실 때가 있습니다. 회개할 수 있는 낮이 말하자면 있습니다.
종교 심리학자들의 보고를 들으면, 연령으로 보면 보통으로 청소년시대에 회개하고 신앙의 옳은 길에 들어서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는 너무 어려서 진리를 모릅니다. 나이 많으면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습관과 사상에 너무 굳어져서 진리를 받기 어렵습니다. 젊었을 때에, 소년시절에, 청년시절, 말하자면 낮입니다.
제가 이번 인도에 가서도 보니까 노인들 가운데 새로이 믿는 이는 별로 없어요. 거의 고등학생, 대학생, 청년들이 새로 믿기로 작정합니다. 청소년 시대는 특별히 회개할 때인데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 열 처녀의 비유를 압니다. 슬기 있는 처녀는 잘 준비했다가 밤에 신랑이 올 때에 등불을 밝혀서 맞았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다가 결국은 신랑이 올 때에 영접을 못하였습니다. 다섯 처녀는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입니다. 다섯 처녀는 놓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될 때에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두 명이 큰 시험에 들었습니다. 하나는 베드로고, 또 하나는 유다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씩 모른다고 큰 죄를 지었지만 마침 그때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 말씀을 기억하고, 곧 그 자리에서 나가서 통곡하며 회개하였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실 때에 회개했습니다.
유다는 어땠지요? 유다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마지막 저녁에 예수님께서 같이 음식을 잡수시면서 무슨 말을 하셨습니까? “너희 가운데 하나가 나를 팔고자 하느니라 우리와 음식을 같이 먹는 이 가운데 하나가 나를 배반하리라” 그때 유다가 있었습니다. 유다에게 회개의 기회를 재촉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때 유다는 회개 안했습니다.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결국 그 후에 암만 후회했지만 쓸데없습니다.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아니하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한 분이라도 혹은 신앙생활을 하는 이 가운데에도 어떠한 죄를 짓고 아직도 회개하지 못한 이가 있으면 이 시간 회개하시길 바랍니다. 회개의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시는데 놓치지 아니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예배를 통한 은혜의 기회를 우리가 또한 놓치지 아니해야 합니다.
은혜의 낮과 밤이 또한 있습니다. 여러분 시편 42편 잘 아시는 줄 아는데, 제가 몇 절 읽을 때 들어보세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이 시인은 하나님을 대단히 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갈망한다고 하는 말을 무슨 뜻입니까? 일찍이 성전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이렇게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많이 받던 이가 어떤 형편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멀리 다른 나라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로만 둘러쌌습니다. 옛날 교회에 나가서 성전에 나가서 찬송 부르고 예배하던, 그것을 간절히 사모하면서 여기에 탄식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따금 우리 교회를 떠나서 외국에 간 우리 교우들한테 이와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받습니다. “사실 외국에 나가보니 전에 서울에서 영락교회 다니면서 예배하며 은혜 받던 생각이 매우 간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건 외국이죠.
여러분 북한의 사정, 철의 장막 배후의 사정을 압니다. 북한에 있는 교우들이 참 모여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얼마나 사모합니까? 그래서 저 용천의 어느 지방에서는 몰래 몇 사람씩 모여 예배 보다가 발각이 되어서 지도자들이 전부 처형당했다는 얘기, 여러분 듣지 않았습니까? 어떤 탄광에서도 역시 몰래 따로 따로 몇 사람씩 모여서 예배를 하다가 그게 발각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역시 처형을 당했다는 얘기 있잖습니까? 북한은 지금 밤입니다. 예배를 드리려고 해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찬송을 부를래야 부를 수가 없습니다.
남한은 낮입니다. 맘대로 종을 치고, 맘대로 성경 찬송을 가지고 다니고, 맘대로 기도를 하고, 맘대로 예배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거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해서 과연 우리가 예배시간을 존중히 여기면서 마땅히 받을 대로 우리가 은혜를 받습니까? 여러분 예배에 참여할 수 있을 때 참여하세요. 병나면 암만 사모해도 예배 참여 못합니다. 정 나이 많아 늙어도 암만 예배에 참여하려 할지라도 참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에 제자들에게 “나와 함께 깨어서 기도하라”고 간절히 말했죠? 그러나 제자들은 잤다고 했습니다. 그게 사실 밤이지만, 자정 넘어서 새벽입니다. 저는 그걸 읽을 때마다 ‘이 제자들이 새벽기도회 못해서 잠잤구나.’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그 후에 큰 시험에 들고 맙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올 수 있을 때에 나와서 기도 좀 해보세요.
여러분, 도마 얘기 다 알죠? 이건 저녁때입니다. 제자들이 다 모여서 그때 기도하고 계셨을 거예요.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때 도마는 오지 않았어요. 마지막 저녁 예배에 참여 안했습니다. 그러고선 예수님 못 만났습니다. 그리고 한 주 동안 얼마나 고통을 당했어요?
여러분, 이런 얘기 들을 때에 저녁 예배 소홀히 생각하지 마세요. 예배의 기회가 있습니다. 찬송 크게 부를 수 있을 때에 크게 부르세요. 기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때 기도하세요. 남한은 지금 낮입니다. 북한과 철의 장막 배후는 밤이올시다. 기도와 예배의 자유를 위해서 감사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일하는 데도 기회가 있습니다.
낮이 있고 밤이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 여러분 알죠?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일할 수 있을 때 일을 잘해서 이익을 남기고 주인에게 칭찬을 받고 복을 받았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일할 수 있는데 일 안했습니다. 그냥 가지고 있었습니다. 책망받고, 있던 것도 다 빼앗기고 형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 시간도 주시고, 재능도 주시고, 물질도 주셨습니다. 이것 가지고 일하라고 준 겁니다. 일할 때에 일하지 아니하면 밤이 오면, 다시 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 봉사나 국가 봉사도 낮과 밤이 있습니다. 성가대를 하거나 교회학교에서 가르치거나, 심방을 하거나, 혹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하거나, 이것도 낮이 있습니다. 건강해야 합니다. 젊었을 때야 사실은 합니다. 병들고 나이 정 많으면 봉사할래야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을 때 하세요. 낮에 봉사하세요.
국가를 위한 봉사도 역시 그렇습니다. 젊었을 때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전도에도 낮과 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전도의 기회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우물가에 잠깐 섰을 때도 사마리아의 여자가 나올 때 기회를 포착해서 전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뽕나무 위에 올라간 것을 보고서 기회를 포착해서 삭개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전도의 기회를 잃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 남한에는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크게 열었습니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 믿는 사람들의 책임이 있습니다. 이 열린 문이 닫히기 전에 마땅히 우리가 할 책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도 한번 말했지만, 몇 해 전에 저 월남 가서 우리 국군 장병을 방문할 때 그 여호수아 중대라고 하는 데에 가보니깐, 전부 다 100여 명이 예수를 믿죠. 원래는 도무지 믿는 이가 10여 명밖에 없었는데, 그 기회에 열심히 전도해서 동료 군인들을 다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낮에 일해야 됩니다. 남을 도와주는 것도 그렇습니다. 모든 사회봉사도 그렇습니다. 낮과 밤이 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아십니다. 나사로가 자기 문 앞에 있건만, 부자는 도와줄 생각이 안 났습니다. 결국은 부자는 음부로 가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습니다.
산양과 면양의 비유를 다 아십니다. 산양 편에 있던 이, 면양 편에 있던 이가 있습니다. 면양 편에 선 이들은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었고, 모든 봉사의 기회 가운데서 봉사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산양 편에 있는 사람은 기회를 주었지만 사용 안했습니다. 그러므로 형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도 압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봉사의 기회가 당착했건만, 봉사 없이 지나갔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만 봉사를 했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입니다.
해방 직후에 어떤 자매가 잘 아는 자매, 부자 자매인데 저를 처음 만나더니, “목사님, 제가 이 자리에 예배당을 나 혼자 짓겠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저는 참 감사합니다. 예배당 하나 잘 지읍시다.” 그러나 그 후에 얼마 후에 공산당 들어왔는데, 예배당 어떻게 짓습니까? 또 다른 어떤 자매가 “학교를 하나 내가 짓겠습니다.” “아, 그거 좋습니다. 지읍시다.” 학교 어떻게 짓습니까? 이북에서. 모든 게 기회가 있습니다.
제가 전에 이북에서 고아원을 지을 때에 그때 한 500원씩 내는 분들에게 500원씩 얻어서 그 고아원을 짓고 경로원을 그때 지었는데, 그때 어떤 분은 기쁜 마음으로 도운 이가 있었고, 어떤 분들은 도울 수 있는데 종내 돈 안내는 분도 있었어요. 그분들이 그 후에 다 잃어버리고 남한에 내려왔는데 어떤 분은 저를 만나서, “그때 저한테 돈 500원 바로 쓸 수 있게 해 주어서 참 감사하외다.” 어떤 분은 “그때 목사님 말할 때 올렸으면 좋았을걸, 어찌 미안한지 얼굴을 못 들겠습니다.”
남을 돕는 데도 낮이 있고 밤이 있습니다. 도울 수 있을 때 도와야 합니다. 이거 미안한 말이지만, 일본 사람들이 돈을 오마와리상이라고 합디다. 그 무슨 말인 줄 압니까? 빙빙 돌아다니는 사람이오. 돈이 내 손에 있다고 늘 내 손에 있는 거 아닙니다. 그놈이 빙빙 다른 사람 손에 갑니다. 내가 도울 수 있을 때에 도와야 합니다.
지금 이 새해에 남녀 전도회에서 배가 운동을 하는데, 내가 직접 많이 전도 못하지만, 내가 전도회에 다 가입을 해서 그저 한 달에 몇백 원, 몇천 원만 내면 큰일을 할 수 있어요. 아마 우리 교회 장년이 9,000명~10,000명이 되는데, 다 전도하면 큰일을 할 수 있어요. 여러분 깊이 생각하세요. 전도회에 들 수 있는 분들은 다 드시길 바랍니다.
범브란트 목사의 책을 보는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공산당 감옥에서 갇혀서 다른 사람에게 성경을 가르칩니다. 가르친다고 간수가 데리고 가서 죽도록 때려서 졸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도로 감방에다 뒀습니다. 시간이 지나 얼마쯤 정신없다가 정신 척 차리고 일어나 앉더니 그 다음에 하는 말이 “내가 무슨 말까지 했지요? 또 시작합시다.” 그냥 또 가르칩니다. 아, 그러니까 또 잡아내서 때립니다. 졸도합니다. 또 들여왔단 말이에요. 정신 차려서 또 가르칩니다. 이러니까 마지막에 간수도 “이런 놈 별 재간 없구만.” 하면서 내쳐둡니다.
남은 이런 가운데서 성경을 가르치고 전도를 하는데, 우리 남한에 살면서 우리가 얼마나 이 전도에 대해 생각합니까? 전에 우리 교회에 와서 말씀하신 조세광 박사의 말 가운데는 잊혀지지 않은 것이 있는데, 말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위해서 크게 말하라. 돈을 쓸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위해서 다 쓰라고. 자기가 이 얘기를 해방 후 중국 본토에서 했다고.
청년시대에 일하세요. 건강할 때에 일하세요. 밤이 오기 전에 일하세요. 우리 교회로도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가 금년에 여자 신학교도 짓고, 영락 상업고등학교도 짓고, 교육관도 짓고, 우리 여자 기숙사도 아마 지어야죠. 왜 이렇게 모든 일을 하는가 하니 일할 때 해야 합니다. 일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밤이 오리니 아무도 일할 수 없습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우리 하나하나에게 또 우리 온 교우들에게 온 교회에 은혜를 주셔서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일할 수 있는 낮을 주실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밤이 오리니 아무도 일할 수 없으리라, 이 경고의 말씀을 깊이 들을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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