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9:28-36/ 변화산상의 그리스도 / 한경직 목사 2014-08-27 12:18:35 read : 1949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9장 29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부활주일 전 약 40일간은 옛날부터 ‘렌트(Lent)’ 혹은 ‘사순절’이라고 해서, 특별히 그리스도의 지상생활에 있어서의 최후 약 40일간, 곧 고난의 생활을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적 생활에서 중요한 몇 가지 사건을 특별히 기억합니다. 초기에 있어서는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일은 특별히 기억할 만한 일입니다. 그리고 또한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 일도 역시 특별히 유명한 일입니다. 그리고 말기에 있어서는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는 그리스도 곧 메시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일은 특별히 기억할 만한 일입니다. 또한 그리고는 변화산상에서 된 일입니다.
오늘 아침 이 시간은 특별히 이 변화산상에서 된 일을 잠깐 동안 생각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높은 산에 올라갔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변화산이 꼭 어느 산인지는 기록하지 아니했습니다. 따라서 학자간의 의견이 다소 다른 것입니다.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서 성지에 가면 안내자가 흔히 으레 갈릴리 지방에서 제일 높은 산, 곧 다볼산이라고 하는 산으로 데리고 올라갑니다. 이 산은 일찍이 사사시대에 유명한 여사사 드보라라고 하는 분이 바락과 함께 그때의 가나안 왕 야빈의 장군 시스라의 군대를 격파한 역사적인 산으로 유명한 산입니다. 그 산에 올라가 보면, 그 꼭대기에는 그리스도의 변형을 기념하는 기념 예배당이 지금 있습니다. 그 벽에는 그리스도의 변형된 빛나는 모습의 그림과 또 좌우편에 모세와 엘리야의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황홀에 도취된 세 제자의 모습도 보입니다. 주후 약 4세기부터 이 다볼산이 곧 그리스도의 변화산이라 하는 전설이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서학자들은 대체로 이 전설을 부인합니다. 그리고 유대 나라의 제일 높은 산 곧 헐몬산, 우리 한국의 백두산과 같이 언제나 높은 꼭대기에는 흰 눈이 덮여 있는 그 산의 한 봉우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이유로는 이 산이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메시아가 된다고 하는 것을 고백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멀지 않고 가깝습니다. 그리고 또 다볼산 위에는, 그때에는 산성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다볼산보다도 헐몬산 어떤 봉우리에,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어떤 저녁에 올라가신 것으로 대체의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위치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산성에 올라가신 목적은 무엇인가? 누가는 여기에 분명히 기록하였습니다. 그것은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인 것이 비로소 나타나게끔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또한 이 메시아는 당시의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바와는 달리,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가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살아나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런 말씀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간하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하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예루살렘을 향하려고 하는 예수님의 견지에서나 또는 메시아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가진 제자들의 형편으로 보아도 꼭 기도는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조용한 곳, 높은 산 한 봉우리를 향하여 가장 사랑하는 세 제자들을 데리고 올라간 것입니다. 산에서 된 일은 어떠한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밤에 기도하는 중에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졸던 세 제자들에게는 크게 놀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황홀함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받은 인상은 일생토록 잊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오랜 후에 베드로후서 1장 16절 이하에 이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에게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야고보는 물론 일찍이 순교를 했으므로, 무슨 문헌을 남긴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의 경험이 그가 기록한 요한복음 특별히 1장 14절에 반영이 된 줄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1장 14절을 읽어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리스도는 빛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그때에 예수의 변형된 육신보다도 그 정체인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목도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그들은 예수는 과연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더욱 확실히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곧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그들은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다 살아 있습니다. 죽은 자도 살아 있습니다. 이 살아 있는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시내산 꼭대기에서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여 준 위대한 율법의 수여자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불로 기도의 응답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여 준 가장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모세는 구약 율법의 대표자요, 엘리야는 구약시대 모든 선지자들의 대표자입니다. 이 두 분이 산상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씀의 제목은 예수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문제였습니다.
여기에 ‘별세’라고 번역된 헬라말은 ‘엑소더스(Exodus)’인 것입니다. 곧 ‘나간다’고 하는 말의 뜻입니다. 구약의 출애굽기를 지금도 ‘엑소더스’라고 헬라말 그대로 영어로는 부릅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아갔고, 마지막에 가나안 복지에 들어간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서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뿐 아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천하 만민을 죄악에서 떠나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와 엘리야가 다 같이 메시아는 이러한 고난을 통하여 만민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완성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은 변화산상에서 그리스도는 고난을 통하여 만민의 구주가 됨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에 베드로는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서 하리이다” 그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와서 덮었다고 하였습니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제자들은 엎드려서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구약에 보면 빛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모세가 지은 성막 위에도 빛난 구름이 머물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에도 구름이 임재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빛난 구름 가운데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곧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음성의 내용을 보면 다음 두 가지 진리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첫째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곧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임을 하나님께서 직접 선포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곧 예수의 말을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엘리야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다른 선지자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랍비들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예수님의 말만 들을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종교적 진리의 최고 성자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자요, 진리의 선포자입니다. 그가 곧 진리요 길이요 생명입니다. 오직 그를 통하여 우주와 인생의 깊은 진리를 바로 깨닫고, 그의 교훈을 통하여 인생의 바른길을 가고, 그의 십자가를 통하여 죄 사함을 받고, 그의 부활을 통하여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더 보이지 아니했습니다. 사라졌습니다. 오직 예수만 보이셨습니다. 오직 예수만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요, 만민의 구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고 따름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습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누구로 생각하십니까? 옛날 사람들과 같이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다만 세례 요한, 혹은 엘리야, 혹은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로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한 종교적 천재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혹은 예수를 한 위대한 종교가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혹은 고상한 도덕가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예수는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위대한 종교가입니다. 고상한 도덕가입니다. 그러나 이렇게만 알아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이 변화산상에서 제자들이 본 그리스도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빛나는 독생자의 정체를 보아야 합니다. 햇빛보다도 더 밝은 그 영광을 신령한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주는 과연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둘째로는, 이러한 그리스도는 만민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보혈을 흘리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 모습을 신령한 눈으로 밝히 보아야 합니다. 수난의 메시아, 고난을 받으신 메시아로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을 이어 주기 위하여 그는 그의 생명을 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세상의 죄를 지고 가신 메시아를 우리는 분명히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또한 보아야 합니다. 영원히 살아 계셔서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와 동고동락하시는 주님을 보고, 이러한 주님을 마음 속에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만한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만 더 드립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만 들어야 합니다. 어떤 종교가들의 말을 들을 것이 아닙니다. 어떤 무슨 신학자들의 말을 따를 것도 아닙니다. 어떤 광신 제자들의 외치는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말씀만 들을 것입니다. 그 명령에만 순종할 것입니다. 그대로 행할 것입니다. 그를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순절 기간에 이 변화산상의 그리스도를 신령한 눈으로 보고 그를 따라야 하겠습니다. 그의 빛나는 얼굴을 앙망하는 자마다 그의 얼굴도 빛날 것입니다. 주의 빛이 그의 얼굴에 반영이 될 것입니다. 그의 생활에 역시 반영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이의 생활도 역시 빛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 같이 세 제자들과 같이 신령한 눈을 들어서 변화산상의 주를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다 같이 변화산상의 빛나는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시여! 오늘 아침 저희들이 변화산상의 우리 주님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아득한 눈을 열어서 우리의 신령한 눈을 밝혀 주셔서 변화산상의 빛나는 우리 주님의 얼굴을 분명히 바라보고, 과연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나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시고 영원히 살아 계시는 주님을 우리의 심령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주님의 얼굴에 나타나는 그 빛이 우리 심령에도 반영이 되고 우리 생활에도 반영이 될 수 있어서 작은 의미에서 저희들도 역시 빛의 생활을 감당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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