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0:1-12/ 풍성한 생명 / 한경직 목사 2014-08-27 12:04:28 read : 1869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은 양이요, 예수님은 목자올시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인간의 생명을 해치는 도적들이 많이 왔습니다. 인간의 육신을 파괴하는 도적도 많이 왔습니다. 폭군, 독재자, 흉악자들도 많이 온 것입니다. 인간의 영의 생명을 파괴하는 도적들도 또한 많이 왔습니다. 무신론자들, 유물론자들, 악덕 사상가들이 많이 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히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생을 부정합니다. 생에 대한 욕망까지도 부정합니다. 불교는 이러한 소극적인 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러하지 아니합니다. 기독교는 생을 긍정합니다. 풍성한 생명을 주는 종교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잠깐 생각하는 가운데서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주님은 죽은 생명을 살리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는 언제나 죽은 자를 만나면 곧 다시 살리셨습니다. 야이로의 죽은 딸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베다니의 죽은 청년 나사로도 다시 살렸습니다. 주님은 장례식을 주례한 일은 없습니다. 이것은 주님은 생명의 본체로서 주님 앞에는 육신의 죽음도 용납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영적으로 죽은 모든 생명을 다시 살리는 큰 진리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의 말씀과 같이 인간은 허물과 죄로 그 영이 다 죽었습니다. 이성과 양심의 불이 꺼졌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첫째 되는 목적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하러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도 모르고 살게끔 된 것입니다. 이 죽은 영들을 다시 살리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이 죄에서 죽은 영을 다시 살리기 위하여 자기가 친히 그 죄의 짐을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3일 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 영을 주님께서 또한 부활하게 하십니다. 현재에 부활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인간의 옳은 길을 알고 옳은 길을 걷게끔 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죽은 생명을 다시 살리려고 오신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은 병든 생명을 건강케 하기 위하여 또한 오셨습니다.
여러분께서 복음서를 읽어 보면 주님은 언제나 병자를 만나면 고쳐주셨습니다. 소경의 눈을 밝게 하셨고 귀머거리로 하여금 듣게 하였고 문둥이들을 깨끗게 하였고 중풍병자들을 일으켜서 걷게 하셨습니다. 사실 주님 앞에는 어떤 병이든지 용납되지 아니하였습니다. 주님은 육체의 병도 다 고쳐서 건강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요한삼서 2절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믿는 사람들은 영혼이 번영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번영해야 하고 육신도 건강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의 병도 고쳐서 건강을 주시고, 또 병든 영혼도 고쳐서 건강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영혼이 병든 사람이 또한 많습니다. 영혼의 썩는 부분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근대 의학계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마음의 병이 육신의 병으로 나타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주를 믿고 옳은 마음을 가질 때에 곧 기쁨과 사랑과 화평과 용서와 많은 병도 물러가는 것입니다. 이적은 옛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병을 고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기억할 것은 제일 중한 병은 마음의 병, 물론 죄악입니다. 이 죄를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을 때에 육신의 병도 또한 나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하여 물론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우리는 반드시 언제나 이적을 구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의 약도 있고 모든 현대 의학을 또한 발전하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교회와 병원이 옛날부터 나란히 서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건강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신과 영혼이 아울러 건강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이올시다.
셋째로, 주님께서는 구속된 생명을 해방해서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 이하에 주님이 오신 목적을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눈먼 자는 다시 보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기 위하여” 오셨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얽매인 생명들이 많이 있습니다. 죄의 사슬에 얽매인 생명들이 많이 있습니다. 욕심에 얽매인 영혼도, 생명도 많이 있습니다. 정욕, 탐욕, 지위욕, 명예욕, 이런 온갖 욕심의 사슬에 얽매인 생명들도 많이 있습니다.
무지의 사슬에 얽매인 생명도 많이 있습니다. 미신의 사슬에 얽매인 생명이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근심과 걱정에 얽매인 생명들도 많이 있습니다. 빈곤에 얽매인 생명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북의 동포처럼 불의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사상에 얽매인 생명들도 많이 있습니다. 세상 풍조, 좋지 못한 풍조에 얽매인 생명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이 모든 인간의 생명을 얽매이는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자마다 죄악의 사슬에서 해방됩니다. 온갖 욕심의 사슬을 끊고 해방을 받게 됩니다. 무지 가운데서, 미신 가운데서, 근심 가운데서, 공포 가운데서, 모든 쇠사슬에서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가는 곳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도 반드시 해방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를 참으로 믿는 자마다 그 심령이 마치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는 독수리와 같이 됩니다. 움직입니다. 활동하게 됩니다. 각 방면으로 향상합니다. 그 마음 속에는 언제나 하늘의 기쁨과 천국이 깃들이는 것입니다. “주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함이 있느니라” 이런 믿는 이의 심령 속에는 언제나 자유와 평화가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이 가는 곳마다 그 사회에는 사회적으로 민족적으로도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이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넷째로는, 주님께서 오신 것은 파리한 생명을 살지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죽지도 않고 병도 없고 구속도 안 되었지만 피폐한 심령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마른 심령들, 배고픈 심령들, 따라서 나약한 심령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이러한 심령들에게 생명수를 주시고 생명 양식을 풍부히 주어서 힘을 얻고 든든하게 되고 윤택하게 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13절에 예수님께서 물 길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야곱의 물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심령에게 성령을 물 붓듯 부어서 우리 심령 속에 생명이 풍성하게 만듭니다.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언제나 충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넘치게 하십니다. 생명이 약동하게 하십니다. 그리해서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게 하시고, 어떤 유혹도 물리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깊은 감옥 속에서도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는 과연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풍성한 생명을 주님께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참 믿음으로 주를 영접하는 이에게 주님께서는 이 시간도 풍부한 성령의 생명수로써 우리의 심령을 채워 주십니다. 이 은혜를 오늘 아침 받으시기 바랍니다.
추운 겨울에는 모든 나무는 생명이 위축되고 또 위축되어 죽은 모양과 같이 됩니다. 그러나 봄이 돌아와 깨끗하고 따뜻한 햇볕이 나뭇가지에 부딪히게 될 때에 나무 속에 잠자던 생명은 깨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움직입니다. 싹이 나옵니다. 꽃이 활짝 핍니다. 아름다워집니다. 윤택하여집니다. 또 열매까지 맺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와 질병과 구속과 영양 부족으로 죽고 병들고 메말랐던 인간의 심령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볕에 쬐이게 될 때에 인간의 죽었던 생명은 다시 살아납니다. 움직입니다. 잎이 핍니다. 꽃이 핍니다.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영적 방면뿐만이 아닙니다. 육적 방면도 그러합니다. 지적 방면도 그러합니다. 도덕적 방면도 그러합니다. 문화적 예술적 방면도 그러합니다.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서 주님께서 임하게 되실 때에 생명이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인간 생명의 모든 방면에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피폐하고 파리한 생명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까? 이 생명의 원천인 그리스도에게 나오셔서 풍성한 생명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생명이 없는 까닭으로 어떤 이들은 어떤 청년들은 어두운 뒷골목이나 찾아다니고, 냄새나는 극장 구석에나 가서 앉고, 댄스홀이나 이따금 가며, 음탕한 소설이나 읽고, 더러운 공상으로 그 마음을 채우고 나날을 보냅니다. 실로 가련한 청년들입니다. 젊었을 때에 모든 생명의 근본이 되시는 주님을 마음 가운데 영접하면 일생토록 풍성한 생명 가운데서 살며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이런 풍성한 생명은 영원무궁합니다. 이런 생명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흔히 이런 생명을 영생이라고 합니다. 이런 생명은 단절될 수 없습니다.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살므로 너희도 살리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3장 16절 여러분 다 기억하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여러분, 새 봄에 새 생명을 얻으세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은 아름답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은 깨끗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은 향기를 발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은 장성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은 영원불멸합니다. 주님은 이런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 또 풍성히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주님께 나와 오늘 아침 이 생명을 풍성히 받으십시다. 기도합시다.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슬픔과 죄악과 죽음으로 덮인 이 세상에 주님께서 생명을 주시되 풍성히 주시기 위하여 오셨사오니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 이 시간 우리 가운데 오시고 우리 각 사람 심령 가운데 오셔서 우리가 이 시간 주님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풍성한 생명을 다 받고 기쁨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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