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3:31-43/ 조용한 혁명 / 한경직 목사 2014-08-27 11:31:02 read : 1864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13장 33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여러 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 겨자씨 비유, 좋은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 감추인 보화의 비유, 값진 진주의 비유, 물고기를 잡는 그물의 비유, 또 그리고 지금 읽은 누룩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 모든 비유들은 당시 사람들이 흔히 보는 자연계의 현상이나 혹은 일상생활의 경험에서 온 것들입니다.
이 누룩의 비유는 유대 사람의 가정에서는 늘 보는 현상입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누룩이 없이 떡을 만듭니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떡을 만들려면 먼저 가루 속에 누룩을 넣고 반죽을 합니다. 그리고 몇 시간 기다려서 그 반죽이 다 부풀어 오른 후에 그 떡을 난로에 넣어서 굽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 사람들은 이 누룩이 가루 속에서 부풀게 하는 이치를 잘 알고 있습니다. 누룩은 가루 속에 숨어서 조용히 일합니다. 조용한 가운데에 온 가루 속에 침투하고 퍼지며 온 가루를 변케 합니다. 부드럽게 합니다.
성경에 보면 누룩은 어떤 때에는 악의 상징으로 사용된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도 바리새인의 누룩을 삼가라고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의 좋지 않은 사상과 생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선의 상징으로 누룩을 사용하였습니다. 곧 천국의 진리를 의미합니다. 천국의 진리가 조용한 가운데에 인간 심령 속에 확포(擴布)되어 전생활을 변화케 하는 깊은 뜻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현대 우리 사회에서 많이 들리는 말 가운데 하나는 혁명이란 말입니다. 혁명이라고 하면 흔히 데모나 폭동이나 방화나 파괴, 살인 등 폭풍우를 연상케 합니다. 사실 이러한 혁명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혁명이란 이런 방법으로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조용한 중에 일어나는 혁명이 또한 있습니다.
사실 혁명 가운데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분주한, 요란한, 파괴적인 혁명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조용한, 건설적인 혁명입니다. 기독교는 조용하고 건설적인 혁명의 종교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누룩의 비유를 통하여 기독교의 이 조용한 혁명의 원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 시간 이 조용한 혁명의 교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자연계의 현상을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조용한 가운데 큰 혁명을 가져옵니다. 가령 봄은 조용히 옵니다. 조용히 따뜻한 햇볕이 대지를 비출 때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새가 울고 온 땅에는 새로운 생명이 약동하게 됩니다. 이슬도 조용한 가운데에 내립니다.
이렇게 조용한 가운데 큰 혁명이, 새롭게 되는 혁명이 자연계에 이루어집니다. 지금이 여름이지만 여름도 조용히 왔습니다. 만물이 조용한 가운데 장생합니다. 녹음방초가 무성하여집니다. 곡식이 자랍니다. 열매가 점점 큽니다. 조용한 가운데 여름이 왔습니다. 그리고 또한 가을도 조용한 가운데 올 것입니다. 곡식이 조용한 가운데 누러지고 과실은 붉어지고 단풍은 아름답게 물이 들게 됩니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사뿐사뿐 땅에 떨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겨울도 조용히 올 것입니다. 눈송이가 조용히 솜처럼 땅을 덮기 시작할 것입니다.
대우주를 바라보세요. 달과 별들이 조용한 가운데 비춥니다. 사실 자연계를 보면 폭풍우나 지진 같은 요란한 혁명보다도 조용한 혁명이 더욱 큰 결과를 가져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영적 세계에서도 조용한 가운데 큰 혁명을 일으킵니다. 조용한 가운데 청년 아브라함을 불러서 가나안으로 인도함으로 만민에게 미칠 큰 축복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조용한 시내산 기슭에서 청년 모세를 불러서 그 백성을 영적으로 또는 육적으로 구원하는 위대한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조용한 성전 안에서 청년 이사야를 불러서 국가가 위기를 당할 때에도 잘 인도할 수 있는 위대한 예언자를 삼으신 것입니다. 역시 조용한 가운데서 소년 예레미야를 불러서 국가의 가장 비극적인 시대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눈물의 사자를 삼은 것입니다.
역시 조용한 중에 하나님께서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어 만민의 구주를 삼으셨습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이 천국 운동은 조용히 갈릴리 해변에서부터 시작되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아니 전 세계에 확포되어 세계 역사에 큰 혁명을 가져오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조용한 가운데 큰 혁명을 가져오시는 것입니다.
누룩은 조용한 가운데에 역사합니다. 보이지 아니한 가운데에서 역사합니다. 속에서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속에, 우리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46편 10절에는,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하셨습니다. 조용한 가운데 우리 심령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직면합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엘리야가 일찍이 호렙산 기슭에 섰을 때에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강한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에는 온 땅을 뒤흔드는 지진이 일어난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후에는 큰 불길이 일어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그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지나간 후에 그는 세미한 소리, 하나님의 조용한 작은 음성을 들었습니다. 조용한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 심령 깊은 곳에서 들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보이지 아니하는 인간 심령 속에 새로운 생명을 주어서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조용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이 중생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가 중심에 받고, 그리스도의 말씀, 그 진리를 우리 맘 속에 참으로 간직하면 조용한 중에 우리 마음 속에서 혁명이 일어납니다. 과거의 온갖 죄들을 깨닫게 됩니다. 그 죄들을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더럽던 마음이 깨끗하여집니다. 교만하던 마음이 겸손하여집니다. 강퍅하던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거짓되던 마음이 참되어집니다. 미움과 시기는 사라지고, 긍휼과 사랑으로 충만하여집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이 조용한 혁명이 이루어졌습니까? 먼저, 우리 하나하나의 마음 속에 이 조용한 혁명이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사실 이러한 혁명은 모든 다른 혁명의 기초가 또한 됩니다. 이러한 인간의 깊은 속에 혁명이 이루어질 때에 다른 방면의 혁명은 또한 따라오게 됩니다. 이런 분이 있는 가정에는 역시 그 가정에서도 조용한 혁명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런 혁명을 체험한 이들을 통해서 온 사회에도 이 혁명이 침투하게 될 것입니다.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문화나 모든 방면에 이 조용한 혁명이 이루어질 때에 부정과 부패는 자연히 사라지고, 사회는 명랑하고 깨끗하여지며 화평하고 아름답게 될 것입니다.
제가 듣는 대로 혹은 책에서 읽는 대로, 우리의 우방 가운데 하나인 미국의 사회도 상당히 소란한 것 같습니다. 월남문제니 인종문제니 실직문제니 범죄문제니 히피문제 등 사회 상태가 매우 소란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또한 얼마 전에 어떤 잡지를 보니 미국 사회 안에서 현재 이곳저곳 각계각층에서 조용한 혁명 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혁명이라고, 예수님을 중심한 혁명 운동이라고. 이 조용한 혁명 운동은 대학 캠퍼스에서도 일어납니다. 상점에서도 일어납니다. 동서남북 도처에서 이 조용한 혁명 운동은 일어나고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 미국의 소망이올시다.
미국뿐만 아니고 이런 혁명이야말로 모든 나라의 소망입니다. 우리 한국의 소망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70년대는 어떠한 시대인가? 요새 갑자기 동서화해무드가 일어나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게 할 정도로 충격을 주는 사건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러한 움직임이 세계평화에 참으로 도움이 되고, 특별히 이 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평화와 자유 확보에 큰 기여가 있기를 기대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든지 우리의 기대요, 우리의 희망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희망과 기대와 동시에 또한 기억할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몇몇 정치가들이 피차에 내왕한다고 장래의 평화가 반드시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행전 27장을 읽어 보면 바울과 그때 사람들이 그레데에서 배를 타고 로마로 향하게 될 때, 그레데항을 처음으로 떠날 때에는 남풍이 훈훈하게 불어와서 모든 사람들이 그리한 줄 알고 평안히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유라굴로라는 큰 태풍이 불어와서 그 배를 탔던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고난을 겪었는지 이 얘기를 우리가 읽어봅니다.
이상한 것은 우리가 역사를 볼 때에 어떤 때에는 큰 폭풍우 전날 밤은 오히려 평온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마음을 놓습니다. 그런 가운데 갑자기 큰 역사적 파동, 이런 것들이 일어나서 큰 고난을 당한 예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세계의 장래는 문자 그대로 누구나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에 속합니다.
우리는 이런 때일수록 우리 하나하나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내 자신 속에 그리스도를 참으로 영접하여 새 사람이 되고, 영원한 세계에 대한 분명한 준비를 갖추고, 각각 내 직장에서 내 책임을 바로 감당해서 내 나라를 옳게 지켜야 합니다. 허영, 사치, 향락, 음란, 방탕, 모든 퇴폐한 것들을 일소하고, 문자 그대로 정신혁명을 일으켜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정신혁명이란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러나 이 정신혁명은 무슨 신문에서 사설이나 몇 번 쓰고, 무슨 시민회관에서 강연이나 몇 번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참으로 우리가 각각 과거의 내 죄악을 회개하고, 해이하고 세속적인 사상과 습성을 일소하고, 새 생활을 시작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참으로 중심에 영접함으로 시작이 됩니다. 이것이 나를 구원하는 길이요, 내 가정을 구원하는 길이요, 이 파도 높은 역사의 물결 속에서 우리 민족과 국가를 보존하는 길입니다.
여러분 중심에 이 조용한 혁명이 이루어졌습니까? 이 시간 온전한 회개와 참된 신앙을 통해서 이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고. 내 가슴 속에 이 조용한 혁명이 있은 후에야 우리가 살아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빛이 되고 소금이 되면, 빛도 조용한 가운데 비춥니다. 빛이 비출 때 무슨 소리를 냅디까? 소금도 조용한 가운데서 남 보지 않는 가운데서 역사합니다. 무슨 소리 안 냅니다.
다시 말하면, 내 자신 속에 조용한 혁명을 체험한 이는 어디 가든지 조용한 혁명가가 됩니다. 어디 가나 조용한 혁명을 일으킵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어디 가나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혁명가는 이러한 혁명가입니다. 먼저 우리 자신 속에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고 또 우리 사회 속에 조용한 혁명을 일으켜야 합니다. 이것이 내 자신도 구하고, 내 나라도 구하는 유일의 길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성령이시여, 이 시간 우리 심령 깊은 곳에 임재하셔서 조용한 역사를 통하여 우리 마음에 혁명을 일으켜 주시고, 우리가 참으로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서 어디 가든지 또한 조용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참된 혁명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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