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33/ 히12:2-/구름같이 둘러싼 증인/한경직 목사 2014-08-27 11:18:01 read : 1797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 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장 1절과 2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오늘 이 간증주일 아침에 이 말씀이 우리를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 가운데 ‘경주’란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그리스도인의 생활, 곧 신앙생활은 경주입니다. 천천히 걸어가는 산보가 아닙니다. 달음질하는 경주입니다. 고로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력의 집중이 필요합니다.
경주하는 이는 일정한 목표가 있습니다. 목표를 향하여 직선으로 달음질을 합니다. 곧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목표인 예수를 바라보며 달음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관광 여행이 아닙니다. 빙빙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다가 저녁에는 떠난 그곳, 여관으로 되돌아오는 생활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매일매일 목표를 향하여 전진하는 생활입니다. 계속적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전진하기 위하여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허다한 증인 앞에서 달음질하는 경주입니다. 마치 서울운동장 안에서 경주하는 이와 같습니다. 관람석에 빙 둘러앉은 많은 관중 아래에서 경주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들 앞에서 경주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이 글을 쓸 때에는 물론 그때까지의 히브리 역사를 통한 신앙의 용사들을 의미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신앙의 용사들입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모세, 그밖에 모든 선지자들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당시보다 더 많은 증인들 앞에서 경주하게 되었습니다. 곧 사도시대의 모든 신앙의 용사들, 베드로, 요한, 야고보, 여러 제자들, 바울, 스데반 등 여러 용사들이 이 증인들 가운데 이제는 가담이 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과거 2,000년간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많은 신앙의 용사들, 폴리캅, 안토니, 암브로스, 어거스틴, 프란시스, 루터, 칼빈 등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또한 이 증인들 가운데 가담이 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또한 우리 한국에서도 이미 과거 80년 역사를 통해 많은 신앙의 용사들이 이 가운데 포함이 된 줄 생각합니다. 주기철 목사, 최봉석 목사, 손양원 목사, 그밖에 여러 분들이 계신 줄 압니다. 또한 우리 영락교회의 교우들에게는 우리 영락교회의 이미 하늘로 간 신앙의 용사들도 이 가운데 포함된 줄 생각합니다. 순교자 김응락 장로, 김창화 선생, 그밖에 여러 분일 것입니다.
이런 이들 앞에서 신앙의 경주를 우리는 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허다한 증인들 앞에서 우리 영락교인들이 신앙의 경주를 하는 중입니다. 여기 “구름같이 둘러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우선 많다고 하는 의미일 것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을 흔히 구름같이 모인다고 우리가 말합니다.
그러나 그뿐만 아닌 줄 압니다. 구름은 위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지금 하늘 위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경주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또한 구름은 때로는 빛이 납니다. 이들은 다 빛나는 증인들입니다. 이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은 이미 말씀드린 대로 여러 시대, 여러 나라, 여러 민족, 여러 방언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공통한 점도 있습니다. 이들은 다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졌던 인간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다 믿음으로 살며 그 생활을 통하여 신앙을 간증하였습니다. 어떤 이는 생활뿐 아니고 죽음을 통하여 역시 신앙을 간증하였습니다. 곧 피를 흘려서 간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헬라말과 영어에는 ‘증인’이라고 하는 말과 ‘순교자’라고 하는 말이 같은 말입니다. 곧 ‘마터(martyr)’라고 합니다. 간증자의 뜻입니다. 그들은 다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죽어서 이제는 신앙의 승리자로서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오고 오는 시대 사람들에게 말하자면 지금도 믿음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곧 간증합니다.
이들의 간증의 내용이 무엇일까?
이 간증주일에 이들의 간증을 잠깐 들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103편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혜를 잊지 말지어다 그가 내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내 모든 병을 고치시며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내 소원을 만족케 하사 내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치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도다” 이것은 다윗의 간증입니다.
다윗만이 이런 간증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허다한 증인들이 다 같이 입을 열어 하나님은 과연 자비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시며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신다고 간증합니다. 우리는 본래 다 죄인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보내셔서 모든 죄를 십자가 위에서 사하여 주시고 잃은 양을 찾아 주셨다고 간증합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얻었으니 감사할 것뿐이라고 이구동성으로 간증합니다.
또한 둘째는, 이들은 다 같이 우리 인간은 약하나, 믿는 이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강하다고 간증합니다. 이들도 낙심할 때도 있었고 쓰러질 때도 있었으나, 주님이 같이 하시므로 모든 슬픔과 환난과 고통도 이기고 다시 일어나서 인생길을 걸으며 최후 승리를 얻었다고 간증합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이 문자 그대로 풀무 같은 환난에 빠졌으나 주님이 같이 하시므로 타지 아니하고 불길도 이기고 나왔다고 다 같이 간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아침에 읽은 히브리서 11장 33절 이하에 기록한 대로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장의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였다”고 간증하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도 바울과 같이 입을 모아서 간증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다 같이 이 세상의 가장 행복되고 축복된 생활은 신앙생활이라고 간증합니다.
메마른 광야를 지나왔지만, 하나님께서는 생명 샘물로 흡족히 주셨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녔을지라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그들을 안위하셨다고 간증합니다. 그리해서 시편 30편의 저자는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여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그 노여움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간증하는 것입니다.
혹은 시편 34편의 저자는 이런 말로 증거를 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하며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저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혹은 시편 116편을 쓴 저자는 이렇게 증거하였습니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무엇으로 보답할꼬? 사도 바울은 외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찬송가의 한 절과 같이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간증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 우리에게 한 마디 간증을 더합니다. 아무리 깊은 물이라도 겁내지 말라. 그들은 다 인생의 맨 마지막 길에 아주 깊은 요단강을 건넌 분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아무리 깊은 요단강이라도 아무 걱정할 것이 없더라고, 주님께서 같이 계시니, 같이 동행하시니 홍해처럼 무사히 건너왔다고 증언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우리도 당신네들처럼 다 연약한 인간이었으나 오직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기었습니다. 당신들도 오직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낙심하지 말고 경주를 잘하라고, 말하자면 “이겨라, 이겨라.” 응원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 우리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앞에서 신앙의 경주를 하는 중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경주를 합니까? 이들에게 말하자면, 박수를 받을 만한 경주를 합니까? 혹은 그렇지 못하여 이들로 하여금 한숨을 쉬며 근심케 하는 경주를 합니까? 목표가 없이 경주를 하는 이는 없습니까? 달음질을 하지 아니하고 느릿느릿 걷는 이는 없습니까?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이는 없습니까?
우리는 어떠한 경주를 해야 되겠습니까?
오늘 아침 읽은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여 줍니다.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 버리고” 달음질하라고 권고합니다. 경주자는 옷을 가볍게 입어야 합니다. 몸도 가볍게 지녀야 합니다. 너무 뚱뚱해서 살이 쪄도 체중 때문에 경주를 바로하지 못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 버리고 달음질하라고 권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꼭 죄라고 할 수는 없으나 신앙에 방해되는 무엇이라도 벗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곧 신앙생활에 방해되는 무슨 습관, 방해되는 어떤 교제, 방해되는 어떠한 오락, 그밖에 무엇이든지 방해되는 것은 당연히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죄를 회개하면서도 아직도 한 가지 죄만은 채 회개하지 아니하고, 신앙의 경주를 하려고 하는 이들이 혹 있습니다. 그 한 가지는 사람에 따라서 각각 다릅니다. 어떤 이에게는 정욕에 관한 죄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물질에 관한 죄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거짓된 죄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사치와 허영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교만입니다. 각각 내 가슴에 손을 얹고 나를 얽매이는 죄가 무엇인가를 바로 찾아서 이 시간 곧 벗어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경주를 옳게 합니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앞에서 경주를 바로 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인내로써 경주하라고 하였습니다. 참고 견딜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도 참고 견디셨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주님은 지적하셨습니다. 참고 견디며 끝까지 달음질을 해야 합니다. 분한 것도 참고 견디며, 아픈 것도 참고 견디며, 슬픈 것도 참고 견디며, 실패도 참고 견디며,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면서 우리의 달려갈 길을 마치기까지 경주를 해야 합니다.
이 간증주일을 당하여 우리 영락 교우들은 이 세 가지를 꼭 기억하십시다.
신앙생활은 곧 경주입니다. 우리는 다 경주장에 나섰습니다. 둘째는 우리는 현재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위대한 증인들 앞에서 경주를 하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셋째는 우리 영락 교우들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오직 예수만 바라보면서 경주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해서 허다한 증인들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경주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여러분, 우리도 마지막에는 이 세상에서 달릴 경주를 다 마치고 우리도 하늘에 올라가서 평안히 쉬며, 우리를 계대(繼代 대를 이음)해서 땅에서 경주하는 이들을 응원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사랑하는 여러 교우들 쓰러지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모든 무거운 것, 얽매이기 쉬운 죄 다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끝까지 예수님을 향해서 달음질을 계속하십시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우리의 신령한 눈을 열어서 구름같이 둘러싼 위대한 허다한 증인들을 바라볼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이들 앞에서 오늘날에 매일매일 달음질하는 경주자인 것을 분명히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내 자신 하나하나가 참으로 무거운 것 다 벗어 버리고 얽매이기 쉬운 죄도 벗어 버리고, 오직 인내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음질 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은혜, 오늘 간증주일에 우리 하나하나에게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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