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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8:31-39/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생활 /한경직 목사
    2014-08-27 11:05:59   read : 1842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8장 37절의 말씀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로마서 8장이 전 로마서의 최고봉이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도 오늘 아침에 우리가 읽은 마지막 부분은 8장 가운데서도 산상보훈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다 읽지 못했지만, 30절을 제가 읽을 때에 들어보세요.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리라”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은 것은 우연히 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크신 예정과 섭리 가운데서 된 일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32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자기 아들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셨거든 하물며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주시겠다고 하는 말씀이올시다.

    그리고 38절 39절에는 이런 말씀으로 마치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기에 신앙의 우렁찬 개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읽은 이 부분을 가만히 우리가 읽어 보면, 사도 바울은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질문의 형식으로 우리 믿는 사람들의 말하자면, 안전보장을 선언합니다.

    가령 31절에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대적할 자가 없다는 말이요. 33절에는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송사할 자가 없다는 말이오. 34절에는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오”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여 주셨는데 정죄할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35절에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것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고. 그러면서 제가 읽은 이 37절에는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리라”

    오늘 이 절을 중심해서 잠깐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간단한 절 가운데 사도 바울은 세 마디를 하십니다. 첫째는 이 모든 일에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둘째는 이 모든 일에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보통으로 이기는 게 아니라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 믿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기되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기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셋째로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잠깐 생각하고자 합니다.

    여기 이 모든 일에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모든 일은 무엇인가? 35절에 제가 이미 여러분에게 읽어드렸어요. 그것은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이런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는 이길 수 있다고.

    첫째 ‘환난’이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환난’이란 원어의 뜻은 ‘타작한다’는 뜻입니다. 곧 곡식을 떨기 위해서 곡식을 두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방으로 두드림을 당하여도, 곧 공격을 당하여도 이 모든 환난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긴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다음에는 ‘곤고’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여러 가지 괴로운 것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심리적 고통과 번민을 흔히 의미합니다. 아무리 큰 심리적 고통이라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길 수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다음에는 ‘핍박’이라고 하는 말을 썼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안 믿는 사회에 있어서 여러 가지로 핍박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에 있어서 이 핍박일지라도 우리는 이길 수가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다음에는 ‘기근’이라고 하는 말을 썼고, ‘적신’이라고 하는 말을 썼습니다. 기근이라고 하는 말은 배고픈 것, 곧 굶주림을 의미합니다. 적신이라는 말은 물론 입을 것이 없어서 헐벗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굶주림과 헐벗음이라도 곧 빈궁이라도 이겨낸다고 하는 말입니다.

    다음에는 ‘위험’과 ‘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험은 생명의 위협을 말하는 것이고, 칼은 곧 칼에 죽임을 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이나 죽음을 직면하여도 이긴다고 하는 뜻입니다.

    단순히 이기는 것이 아니고, 제가 이미 말씀드린 대로 둘째로는 이기되 이 모든 것들을 넉넉히 이긴다고 여기에 선언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환난과 곤고와 핍박과 기타 모든 원수들을 정복하고 이길 뿐더러, 이 승리를 통해서 더욱 큰 은혜와 축복까지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모든 어려운 일을 통해서 더욱 큰 축복, 곧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은혜까지 받는다고 하는 뜻입니다. 이 말은 처음에 얼른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실 지내 보면 모든 참된 신자의 공통한 경험일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사도 바울이 지적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든 원수를 이기고도 남음이 있게 넉넉히 이기는 것은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무슨 힘이나 우리에게 있는 지혜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고, 곧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셔서 생명까지도 버리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렇게 이 무서운 원수들일지라도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곧 우리와 항상 같이 계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환난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과 적신과 위험과 칼 등 모든 원수를 넉넉히 이긴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이 모든 것을 이기되 넉넉히 이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 아시는 대로 사도 바울이 기록한 말씀이올시다. 바울이 여기서 무슨 이론을 전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경험을 통해서 증언하는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이하를 읽어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전파의 사자로서 어떠한 경험이 다 지나갔는지 우리가 짐작해볼 수 있어요. 제가 읽을 때 잠깐 들어보세요.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에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경험을 다 지나면서 이런 체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체험으로 하는 말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그의 생활을 우리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가 실라와 같이 빌립보에서 전도를 하다가 억울하게 그때 관청에 붙잡혀가서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갇히지 않았습니까? 물론 바울과 실라는 그 감옥에 있으면서 억울한 것도 참고 괴로운 것도 참고 모든 고통도 잘 참아서 이기었습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가운데서 밤중쯤 되어 크게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이기되, 말하자면 넉넉히 이기었습니다. 그 결과는 뜻밖에 큰 지진이 일어나게 되었고, 또한 빌립보 간수까지 회개하는 큰 기쁜 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기되, 넉넉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승리를 감옥 가운데서 거둔 것입니다.

    그때는 잠깐 갇혔다 나왔지만, 우리가 성경을 읽어 보면, 사도 바울은 말년에 오랫동안 로마에서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물론 감옥생활은 괴로운 겁니다. 그때 말년에 하는 감옥생활은 참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그 고난도 잘 이기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는 감옥에 있는 동안에 같이 감옥에 있던 어떤 청년을 만나서 전도를 했습니다. 전도를 하다 보니 그 청년은 오네시모라고 하는 청년인데, 일찍이 사도 바울이 잘 알던 아시아에 있는 빌레몬이라고 하는 사람의 종이었습니다. 이 젊은 종이 무슨 아마 죄를 짓고 도망해서 로마까지 왔다가 감옥에까지 들어와서 사도 바울을 만나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 청년을 다시 빌레몬에게 보내면서 편지를 써주게 되어서 그 빌레몬서가 우리 신약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지금도 읽어 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지키고 있는 로마 군인들에게 역시 전도를 했지요. 그래서 가이사 온 집에 복음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는 감옥에 있는 동안에 귀중한 옥중서신들을 기록해서 오고 오는 세대 사람들에게 생명과 용기를 주는 불멸의 업적을 남긴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그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환난과 곤고를 이길 뿐더러 넉넉히 이겼습니다. 이기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감옥에서도 외쳤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치 못한 것이 없느니라” 넉넉히 이겼습니다. 로마시 교회에 가보면 성 바울을 기념하는 성 바울 예배당이 굉장히 푸른 하늘에 솟아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설에 의지하면 사도 바울은 바로 그곳에서 참수를 당해서 목 베임을 당해서 순교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그 굉장한 예배당이 섰습니다. 사도 바울의 순교한 모습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물론 지금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말한 그대로 그의 최후 순교도 그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 줄로 믿습니다. 그는 일찍이 디모데에게 쓰기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일생토록 그와 같이 하시며 도와주신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의 얼굴도 스데반의 얼굴과 같이 천사의 얼굴로 변하면서 그 최후를 마치었음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는 그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생활을 하였고 또한 최후를 가진 것입니다.

    이것은 다만 사도 바울의 생활만은 아닙니다. 모든 참된 성도의 생활이 다 그리하였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순교자 렉티머 감독은 사형대에 올라서서 같이 순교하는 동지에게 이렇게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형제 리들리여” 그건 그의 이름입니다. “담대하세요. 오늘 우리는 영국에서 장차 영원히 끌 수 없는 진리의 촛불을 붙이는 것입니다.” 렉티머 감독도 그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위험과 죽음도 넉넉히 이겼습니다.

    사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는 조금도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참된 신앙이 있는 이는 기쁨으로 죽을 수 있는 은혜를 주님께서 그 최후 순간에 반드시 주시는 것입니다. 죽는 것만이 아닙니다. 생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구약시대에 요셉은 소년으로서 멀리 외국에 종으로 팔려갔지요. 그러나 믿음으로 고독도 이기고, 유혹도 이기고, 감옥의 고통도 이기고, 이기되 넉넉히 이기어서 마지막에는 애굽에서 총리대신까지 된 이야기를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도 신앙으로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전에 영국의 청교도 문학자 존 밀턴 같은 이는 중년에 불행히 실명이 되었습니다. 눈을 못 보게 되었어요. 그러나 그는 그 고통을 이길 뿐더러, 그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겨서 그 실명 가운데서 오히려 불멸의 시 <실락원>을 저술하게 된 것입니다. 넉넉히 이겼습니다. 존 번연 같은 사람은 11년간 감옥에 있는 동안에 모든 옥고를 이길 뿐더러, 넉넉히 이겨서 유명한 책 <천로역정> 같은 책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우리 신자들은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깁니다.

    제가 전에 옛날 해방 전에 그때 평양에 잠깐 있을 때에, 그 평양에 있는 여자고등성경학교에 청함을 받아서 한번 예배를 봐주기 위해서 갔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그때에는 이 평양 여자고등성경학교에서 전 장로교회에서 일하는 모든 전도사들을 양성하던 때입니다. 그 선교 부인들이 그 책임을 맡았었습니다. 예배를 다 본 후에 그 학생들의 형편을 물어보니 그 대부분이 과부가 아니면 생과부들이란 말이에요. 무슨 말이냐면 남편에게 소박 받아서 과부된 사람들이라고 해요, 그 대부분이. 옛날도 그렇고, 오늘날도 그렇고, 여자들 가운데 이런 슬픈 일을 당할 때에 참지 못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여자도 혹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주를 믿는 가운데서 고독과 비애의 모든 환난을 이길 뿐더러, 넉넉히 이겨서 그런 역경 가운데서 공부를 하고 교회에 헌신해서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사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한국 교회는 이러한 여전도사들의 공헌이 실로 위대합니다. 이들은 다 모든 환난을 그들을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이기되 넉넉히 이겼습니다.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생활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진주조개 얘기를 잘 알 겁니다. 지금은 인공으로 진주를 만드는데요. 그 진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일정한 종류의 조개 속에다가 모래알을 집어넣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 조개 속에서 여러 해 후에 진주가 나옵니다. 그 부드러운 조갯살 속에 딱딱한 모래가 들어갈 때에 물론 그 생명체인 조개는 큰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개는 그것을 참을 뿐더러, 가장 귀한 생명의 즙을 짜내서 그 모래알을 싸고 또 쌉니다. 그러는 중에 그 모래알은 점점 커서 마지막에는 아름다운 값진 진주로 나타납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환난을 겪게 하는 것은 이 진주 같은 보배로운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도 항상 간직할 만한 보배로운 영혼을 만들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기는 신자들이 되세요. 이기되 넉넉히 이기는 신자들이 되세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신자들이 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현재 당면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핍박입니까? 빈궁입니까? 고독입니까? 실패입니까? 질병입니까? 분명히 들으세요.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는 이상 염려할 것은 없습니다. 신앙으로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생활을 우리는 계속해야 될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하옵나이다. 이 세상에 환난도 많고 곤고도 많고 핍박도 많고 역경도 많으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이기되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은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 아버지시여, 오늘 아침 거룩한 이 시간 우리 하나하나에게 이와 같은 신앙을 주셔서 아무리 이 세상에 유혹이 많고 죄가 많으나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담대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크신 축복을 일일이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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