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6:25-34/ 백합화를 보라 / 한경직 목사 2014-08-26 22:22:40 read : 1915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산상보훈 중에서 마태복음 6장 28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대자연은 하나님의 동산이올시다. 또 진리의 보고입니다. 우리 주님은 자연을 사랑하시고, 자연을 통하여 깊고 신령한 진리를 또한 가르쳐 주셨습니다. 겨자씨가 매우 작으나, 어떻게 큰 나무로 자라는가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자가 다 이러하니라”라고 또한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하는 말도 하셨습니다. 또 오늘 읽은 이 산상보훈에서는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특별히 자연을 가까이 하는 계절입니다. 자연을 즐기는 때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대로 백합화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백합화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백합을 보라고 말씀하시면서,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그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백합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 모습이 아름답고, 그 빛깔이 아름답고, 그 고안(考案)이 아름답습니다. 백합은 그 열매를 위해서 존재하지 아니합니다. 백합은 그 꽃 자체, 곧 그 아름다움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백합의 사명은 곧 이 세상에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동산입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이 동산의 꽃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백합같이 아름다운 꽃이 되라고, 백합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광야가 백합화같이 피리라” 이사야 선지자는 일찍이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광야같이 황폐한 심령이나 우리가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으면, 그 심령이 백합같이 아름답게 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아름다워집니다. 성품도 아름다워집니다. 행실도 아름다워집니다. 다 백합같이 아름다운 심령이 되라고, 주님은 백합을 가리키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백합화를 보라.”
또 그 향기가 얼마나 좋은가 보세요.
아마 모든 꽃 중에 제일 우아하고, 또 강한 향기가 가득한 꽃은 백합일 것입니다. 백합은 또한 이 세상을 좋은 향기로 채웁니다. 이것이 또한 백합의 사명입니다. 이 백합화는 우리에게 또한 말하여 줍니다. 백합같이 향기로 가득한 심령이 되라고 말합니다. 사실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일찍이 사도 바울은 지적하였습니다.
가장 좋은 향기는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되라고 백합은 말하여 줍니다. 신앙의 향기가 있습니다. 진리의 향기가 있습니다. 소망의 향기가 있습니다. 사랑의 향기가 있습니다. 추한 냄새가 너무 많은 이러한 세상에, 어디 가나 그리스도의 향기로 채우라고, 그리스도는 백합을 통해서 우리에게 또한 말씀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 특별히 백합이 어떻게 자라는가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수고합니까? 아닙니다. 무슨 길쌈을 합니까?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름진 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햇빛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와 이슬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공기를 주십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운데서 그저 백합은 잘 자랍니다. 백합은 그저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며 염려하지 아니합니다. 그러한 점에 하나님께서는 가장 아름답게 자라게 하고, 아름답게 입혀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분명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다시 말하면, 우리 주님은 백합화를 보고 우리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권하십니다.
백합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또한 염려하지 말라는 그 말이올시다. 분명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기에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은, 장래에 대해서 미리 생각하지 말라는 뜻은 아닐 겁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장래에 대해서 무엇을 준비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도 아닙니다. 그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장래에 대해서 무슨 일을 미리 하지 말라고 하는 말도 아닌 줄 압니다. 다만 염려는 그치라는 말씀이올시다.
다시 말하면, 내일 일 때문에 미리 근심하며 두려워 말라고 하시는 말씀이올시다. ‘염려는 아직 꾸지도 않은 돈에 이자부터 모으는 것이라.’고 어떤 분이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염려하지 말고 장래는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의 책임만 잘하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오늘 읽은 산상보훈에 가만히 자세히 읽어 보면, 우리 주님은 백합을 보라고 말씀하시면서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서, 우리 믿는 사람은 염려하지 않을 것을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아주 귀한 우리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서 이 생명에 필요한 물질을 주시지 아니 하시겠느냐고,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공중에 나는 새들을 내신 이가 새들이 살기에 필요한 것을 또한 준비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내신 이가 물고기가 물 속에서 살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또한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
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여기에서 ‘하물며’라고 하는 말을 특별히 주의하여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새나 백합 같은 것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하물며’ 가장 귀한 그의 자녀들을 도와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반드시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염려는 아무 쓸 데가 없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십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염려는 무익합니다. 쓸데없습니다. 무익할 뿐더러 염려는 오히려 해롭습니다. 인간의 등이 굽어지는 것은, 그 무거운 책임보다도 염려의 짐 때문이라고, 어떤 심리학자는 말하였습니다. 어떤 의사는 말하기를, 개에게서는 위궤양 병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 개는 염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개가 사람보다 나은 모양입니다.
우리 주님은 계속해서 염려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십니다. 사실 염려는 무신론에 속하는 것입니다. 실제적 무신론자들이 염려하는 것입니다. 믿기는 믿지만, 하나님을 분명히 모르고 그를 의지하지 않는 데서 생기는 마음의 병입니다. 그를 의지하지 아니하는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책망까지 하십니다. 믿음 있는 이는 염려하지 아니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우리 믿는 사람들은 범사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내일 일은 주님께 맡기고 오직 그날그날의 책임을 주를 의지하고 잘 감당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한 주일에 꼭 하루만 염려하겠다.’ 생각을 하고 매 토요일을 염려하는 날로 작정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날 무슨 염려되는 일이 생기면 그날은 염려하지 않고, 그 문제를 종이에 써서 함에 넣어두었다가 토요일이 되면, 그 함을 열어서 쓴 종이를 다 펼쳐보고 염려를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사실 그 함에 들어간 염려감들은 대부분이 벌써 지나갔더라고 합니다. 염려가 대체 그렇습니다. 염려의 8할은 염려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백합화를 보고 염려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백합은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입히십니다. 그리고 사실 백합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의 순결, 그리스도의 아름다움,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리스도는 가장 아름다운 백합화입니다. 아가서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는 골짜기의 백합화요 가시덤불 가운데 백합화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된 이 세상에, 백합 같은 주님이 오셨습니다. 가시덤불 처럼 환난과 재앙이 많은 이 세상에 백합 같은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그리스도와 같이 지나갈 수 있습니다. 가시덤불이 아무리 많아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헤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백합같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인, 백합같이 그리스도의 향기로 가득한 심령, 백합같이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 참 백합이신 그리스도의 영이 충만한 그리스도인, 오늘 아침 이와 같은 축복을 우리에게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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