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6:13-20/ 영혼의 닻 / 한경직 목사 2014-08-26 21:23:26 read : 1756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성경은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다고 하였습니다.
옛날부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바다에 비유해서 생각한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한 고해(苦海) 같은 세상이라고, 곧 괴로운 바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 인생이란, 이 풍파 높은 바다에서 한 일엽편주(一葉片舟)에 지나지 못합니다. 한 조각 작은 배에 불과합니다. 망망한 바다의 한 조각배와 같은 것이 인생의 일면입니다.
그런데 배에는 꼭 있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곧 닻입니다. 큰 파도가 일어날 때에 이 닻이 깊이 바다 밑에 박혀 있어야 배가 밀려가지 아니하고, 또한 파선을 면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고해와 같은 세상을 지나가는 우리 인간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곧 소망이올시다. 소망은 닻과 같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닻은 소망의 한 상징으로 사용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영혼의 닻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주시기를 바랍니다.
배마다 닻이 있습니다. 작은 배에는 작은 닻, 큰 배에는 큰 닻이 있습니다. 물론 한강에 떠있는 놀음배 같은 것은 닻이 없을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인생은 놀음배는 아닙니다. 아무리 작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배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닻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바다를 건너야 하는 배입니다. 그러므로 다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매일 일하며 사는 것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은 소망으로 공부를 하고, 농부는 소망으로 농사를 짓습니다. 상인은 소망으로 상업을 경영하고, 실업가는 소망으로 공장을 운영합니다. 부모는 소망으로 자녀를 기르고, 선생은 소망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칩니다. 사실 모든 활동, 모든 사업의 배후에는 이 소망이 잠재해 있습니다. 특별히 모든 노력의 배후에는 이 소망이 있습니다. 비록 어려울지라도 인내하며 희생적으로 무슨 일을 계속하는 그 배후에는 반드시 소망이 있습니다.
인간은 사실 소망으로 일하고, 소망으로 견디고, 소망으로 꾸준히 싸워 나아가고, 사실 인간은 소망으로 매일매일의 생활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소망은 인간 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할 필요불가결의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닻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물론 실제 배의 닻 가운데에는 크고 작은 종류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질에 있어서는 별로 다를 것이 없을 줄 생각합니다. 다 튼튼한 쇠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신적인 닻에 있어서는 크고 작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학생의 소망은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인격을 함양하고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것입니다. 농부의 소망은 가을에 곡식을 많이 추수하는 것입니다. 상인들의 소망은 이익을 많이 얻는 것입니다. 실업가의 소망은 많은 물건을 생산하는 데 있습니다. 예술가의 소망은 아름답고 새로운 예술품을 창작하여 내는 데 있을 것입니다. 음악가의 소망은 보다 더 아름다운 음악을 창작하고, 연주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의 소망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것을 더 발명하여 내는 데에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이렇게 소망이 다릅니다. 어떤 이들은 무슨 지위나 권세 자리를 소망하고 노력합니다. 어떤 이들은 특별히 명예를 많이 생각하는 이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큰 소망, 작은 소망, 이런 소망, 저런 소망, 소망 가운데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세상에서 가지는 소망이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이 모든 세상의 소망은 공통한 점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이런 모든 세상의 소망은 그대로 이룰 수도 있고,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소망한다고 그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에 시험을 치른다고 해서 다 입학이 되는 것도 아니요, 입학이 되어서 공부를 한다고 해서 다 학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장사를 한다고 다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니고, 어떤 때에는 오히려 손해를 볼 때도 있는 것입니다. 지위를 구한다고 다 그 자리를 얻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 인간 생활의 실망과 환멸이 따릅니다. 여러 가지 소망을 가지나 수포로 돌아가는 소망이 많습니다. 안개처럼 사라지는 소망이 있습니다. 꿈으로 멎는 소망이 많습니다. 여기에 인간 생활의 한숨과 눈물이 내포되는 것입니다. 소망한다고 이 세상의 소망들이 다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 둘째는, 이런 모든 인간적인 소망에 있어서는 설사 이런 소망들이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본래 기대하던 것처럼의 만족은 찾을 수 없습니다. 여기 어떤 청년 실업가가 새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가 꼭 이 사업에 성공을 하고 돈을 많이 벌겠다고 하면서 열심으로 자지 아니하고 일하고, 생각하며 많은 수고를 합니다. 그런 이들 가운데도 성공 못하는 이들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하는 이들도 또한 있습니다.
그래도 성공한 이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그저 사업만 성공하고 돈만 모으면 천하를 얻을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정작 사업에 성공해 놓고 보면, 또는 돈도 모아놓고 보면, 기대하던 것처럼 만족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돈이 많아짐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유혹과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시기하는 사람도 많아집니다. 돈을 내라고 하는 사람도 많아집니다. 도둑놈도 많이 옵니다. 여러 가지로 변화무쌍한 사회는 항상 돈 있는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사실 사업에 성공하고 돈을 모은 사람 가운데도 환멸의 비애를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사이 웬만한 젊은 사람들은 다 사진기계를 하나씩 가지고 다닙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사진기계를 제일 먼저 발명하고 제일 많은 돈을 모아서 크게 성공한 이는 미국에 살던 이스트 맨이라고 하는 사람이올시다. 미국 뉴욕주에 라체스타라고 하는 곳에 가보면, 이스트 맨 코닥 회사가 한 큰 들판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돈은 몇 억불을 모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사람이 이렇게 크게 성공하고 돈도 많이 모았지만,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는지 압니까? 결국은 인생에 환멸을 느껴서 최후에는 자살로 마쳤습니다.
이 세상의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바라볼 때에는 굉장한 것 같지마는 결국 얻어놓고 보면 거기에도 참 만족은 없습니다. 공부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내가 어떻든지 이번엔 물론 학사 학위는 말할 것도 없고, 석사도 되고, 박사도 되어야지. 박사학위를 꼭 받을 테야.’ 이렇게 생각하면서 열심으로 공부도 하고 굉장히 노력도 합니다. 그렇다고 다 박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혹 박사가 된다고 할지라도, 정작 박사가 되고 보면 그것도 뭐 별것은 없습니다.
글줄이나 쓰는 사람은 문학으로 세계에 이름을 날리려는 소망을 가집니다. 그러나 혹 이런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거기에 참 만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한 저명한 문학자는 노벨상까지 받았으나 결국은 인생에 환멸을 느껴서 가스 파이프를 물고 자살하였다고 하는 이야기는 여러분의 기억에 아직도 새로울 줄 생각합니다.
혹 관청에 있는 이들은 아마 혹 이런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과장쯤 되는 사람이면 ‘아, 그거 내가 꼭 국장이 한번 돼 보면 좋겠다.’ 혹 국장쯤 된 이는 ‘아, 내가 이번엔 한번 장관을 해야지.’ 아마 이런 소망 가질 수 있는 줄 압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런 소망을 두고 열심으로 힘쓰는 이들도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저는 미리 말합니다. 국장이 정작 되어 보면 그것도 별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한국과 같은 상황 아래에서는 장관이 되었음으로 말미암아 큰 화를 입은 이들도 과거에 더러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결혼기에 있는 청년 남녀들도 많이 앉아 있습니다. 물론 누구나 이상적인 배우자를 구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상대자를 만나서 ‘아, 내가 이 남자하고 결혼하면 좋겠다.’ 혹은 ‘아, 내가 이 여자와 결혼하면 좋겠다. 그렇게만 되면 참 행복이 있을 것이다.’ 생각하고 간절히 원하고 성혼되기를 힘씁니다. 그러나 저는 미리 말합니다. 그런다고 다 결혼이 되는 것도 아니요, 혹 결혼이 된다고 할지라도, 보통 경험을 보면 결혼한 후에 몇 달만 지나보면 또 그것도 별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 세상에는 천사는 없는 법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세상에서 가지는 모든 소망은 우리가 설사 그것을 성취한다고 해도, 내가 기대하던 것처럼 만족은 받지 못합니다. 이것이 인생의 공통한 경험이올시다.
마치 바닷물 속에 들여다보이는 해초와도 같습니다. 물속으로 들여다볼 때에는 해초가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아름다운 경치입니다. 그러나 정작 들어가서 그 해초를 움켜쥐면서 꺼내 보면 별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성취한다고 하는 소망은 흔히 환멸의 비애로 그 종말을 거두는 것이 보통의 경험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세상의 소망은 설사 성취되어 어느 정도의 기쁨을 얻는다고 할지라도, 분명하고 엄숙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들은 다 잠깐 뿐입니다. 옛날부터 ‘화무십일홍이요 세무십년과(花無十日紅 勢無十年過)’라고 하는 말이 내려옵니다. ‘열흘 붉은 꽃이 없고 10년 이상 가는 세도가 별로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소망은 쇠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풀과 같이 시들고 꽃과 같이 떨어집니다. 결국은 썩어버립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덧 흰 서리가 우리 머릿가에 내릴 때가 옵니다. 우리가 마지막 숨결을 내쉴 수밖에 없게 되면, 백만장자이면 무엇하며, 박사이면 무엇하며, 장관이면 무엇합니까? 헛되고, 헛되고, 모든 것이 헛됩니다.
이 세상의 소망이 설사 그대로 성취된다고 하더라도, 아침 안개처럼 결국은 사라져 없어집니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소망은 절망의 식은 재로 화하고 말 때가 반드시 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참 소망은 될 수 없습니다. 썩은 소망, 죽는 소망이 무슨 소망입니까? 그러므로 이것들은 사실 영혼의 닻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로다”
불멸의 영혼의 닻이 어디 있는가? 참 영혼의 닻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시편 62편 5절 이하를 읽을 때에 자세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느니라” 이것은 무슨 공상적으로, 어떤 이상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생생한 체험, 피어린 경험에 의지해서 솔직히 고백하는 말씀이올시다.
참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71편 5절에 한 시인은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니이다”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우리의 참 소망이 되십니다.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만 우리의 불멸의 영혼의 닻이 되십니다. 골로새서 1장 27절에,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주시는 그리스도만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 되십니다. 왜? 그리스도는 부활과 생명이 되셔서 그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게 하시는 까닭입니다. 그는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셔서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까닭입니다. 오직 그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아니하시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게 소망을 두는 사람은 어떠한 풍파가 있을지라도 흔들리지 아니합니다. 왜? 그리스도는 만세반석이신 까닭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에 우리 주님께서는 친히 우리 믿는 이들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영혼의 닻으로 삼는 이는 어떠한 실패, 어떠한 타락, 어떠한 환난, 어떠한 슬픔이 있을지라도 움직이지 아니합니다. 그 배가 바람에 밀려가지 아니합니다. 암초에 부딪히지 아니합니다. 파선할 수 없습니다.
일전에 어떤 신문을 보니 미국 상항(샌프란시스코) 만 위에 가로놓인 골든 게이트 브릿지(Golden Gate Bridge)라는 큰 다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리 위에서 어떤 미국 청년이 500번째로 자살을 했다는 그런 뉴스가 났습니다. 이 다리를 언제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이 다리를 놓은 후에 미국 사람 500명이 그 다리 위에서 뛰어내려서 자살을 했습니다. 우리 한강 다리에서도 자살한다는 말을 더러 듣습니다. 그 다리 놓은 후에 몇 명이 자살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자살의 이유가 있는 줄 생각합니다. 실직이 그 하나요, 사업의 실패가 그 둘째요, 혹은 심령의 병, 혹은 신병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컨대 한마디로 말하면 소망의 닻이 없는 까닭입니다. 아무리 사업에 실패하였어도, 아무리 실직을 하였어도, 아무리 병이 났어도, 아무리 실패를 했어도 소망이 있는 사람은, 곧 영혼의 닻이 있는 사람은 자살하지 아니합니다. 왜? 영혼의 닻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까닭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런 때에도 같이 하시는 까닭입니다.
20세기의 파도는 사뭇 높습니다. 더욱이 38선을 지니고 사는 이 땅 위에는 때때로 풍파가 거셉니다. 그러나 아무리 동해바다의 파도가 높다고 할지라도, 금강산 일만 이천 봉과 같이 움직이지 아니하는 튼튼한 영혼의 반석을 의지하는, 곧 영혼의 닻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절망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절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소망인 이 영원불멸의 닻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 이 닻을 분명히 붙잡았습니까? 우리 작은 배에 이 닻이 있습니까? 내가 과연 이 닻이 있다고 하면, 이 예배당 문 밖에 닻 없는 작은 배를 타고 노도광풍(怒濤狂風)에 시달리는 가련한 우리 민족에게 이 영혼의 닻을 전파해야 될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우리에게 영원히 움직이지 아니하는 영혼의 닻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 우리 주님에게 감사함을 드립니다. 이 시간 우리 하나하나에게 참된 믿음을 주셔서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이 영원불멸의 영혼의 닻을 든든히 붙잡고 이 풍랑 이는 세계일지라도 바로 항해해 갈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