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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15:21-32/ 억지의 십자가 / 한경직 목사
    2014-08-26 21:05:45   read : 1879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마가복음 15장 21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 본문은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우리 주님께서 빌라도 법정에서 불의한 정죄를 받으시고 군사들에게 끌려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는 한 장면입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주님께서 처음에 십자가를 홀로 지시고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기를 시작하였으나 여러 번 쓰러지셨습니다. 오래 잠자지 못하고 끌려다니며 많은 육체적, 심리적 고난을 받은 까닭인 줄 생각합니다.

    이렇게 군사들이 주님께 십자가를 메우고 골고다로 올라갈 때에 물론 많은 사람들이 길 좌우편에 몰려왔습니다. 그 가운데는 주님을 아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알지 못하는 무리인 줄 생각됩니다.

    그 무리 가운데 멀리 아프리카 북방 구레네 지방에 사는 유대 사람 시몬이라고 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아마 이분은 비록 멀리 외지에 살지만, 경건한 유대인으로서 유월절을 예루살렘에 한번 와서 지키기 위해서 먼 길을 멀다 하지 아니하고 올라온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날 아침, 아마 성전에 올라가기 위하여 여관에서 나와서 길을 가다가 많은 무리가 모인 것을 보고, 구경하려고 잠깐 멈추어 예수님 행렬 가까이 왔던 모양입니다. 그때에 로마 군인 하나가 갑자기 그를 붙들고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우고 같이 가길 명령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식민지 백성으로서 로마 군인들이 언제나 마음대로 강제 부역을 시키던 때입니다. 그리하여 이 구레네 시몬은 이 무거운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에까지 올라갔습니다.

    이렇게 억지로 남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올라가는 시몬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속으로 매우 불평하였을 것입니다. ‘오늘 참 재수 없는 날이다.’ 아마 탄식했을 것입니다. 수고도 수고려니와 당시에 십자가를 진다고 하는 것은 실로 패역무도한 죄수들만 지는 것으로써 부끄럽기가 한량없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성전에도 가지 못하고, 그런 일을 당하게 되었으니 생각할수록 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할 수 없이 그 무거운 십자가를 땀을 흘리며 지고 골고다에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일이 어떻게 되었는가? 오늘 읽은 마가복음에 기록한 대로, 그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쓴 것을 보니, 당시 교회 안에서 알렉산더와 루포를 잘 알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16장 13절에는,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할 때에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내 어머니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로 미루어 보면, 그의 아들의 하나 루포는 그때 로마에 살았으며, 잘 믿을 뿐더러 그 어머니는 바울을 잘 도운 여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에 보면, 안디옥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어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택하여 전도하러 보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고 그들을 안수하여 보내었는데, 그 선지자와 교사들 가운데 둘째로 기록된 이름은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이라 하였습니다. 이 시므온은 시몬과 같은 이름이올시다. ‘니게르’라고 하는 뜻은 ‘검다’고 하는 뜻인데, 구레네 지방은 아프리카 북방으로써 열대지방이므로 시몬은 그 얼굴이 아마 다른 이들보다 좀 검었던 모양으로, 이런 별명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의 이 시몬은 곧 본래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시몬이라고 모든 학자들이 생각합니다. 또한 믿을 만한 전설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억지로 주님의 십자가를 진 시몬은 잘 믿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 자신뿐이 아니라, 그 온 가족이 주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면서 그런 주님의 모습을 자연히 좀 살폈을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우는 여자들을 향하여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는 주님의 음성도 들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못 박는 이들을 위하여 “이들이 알지 못하여 이런 일을 하오니 이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는 기도도 들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회개한, 같이 못 박힌 강도를 향하여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는 말씀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고 하는 말씀과 함께 해가 어두워지며 바위가 터지는, 하늘과 땅의 큰 징조도 목도하였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경험은 시몬으로 하여금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자기의 구주로 믿게 만든 것입니다. 믿은 후에 그가 억지로 진 십자가를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한마디로 오직 감사히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주님이 자기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는데, 그도 주님을 도와서 잠깐이라도 십자가를 진 것이 얼마나 감격스럽게 생각되었을 것입니까? 그때에는 실로 굴욕이었으나, 그 후에는 얼마나 큰 영광이었을 것입니까?

    사실 구레네 시몬은 한 무명의 순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졌으므로 말미암아 문자 그대로 그는 불멸의 이름을 또한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억지와 굴욕의 십자가는 감사와 영광의 십자가로 변한 것입니다.

    성경을 읽노라면, 억지로 십자가를 진 이들은 구레네 시몬만이 아닙니다. 구약에서도 더러 찾아봅니다. 가령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잘 기억합니다. 그는 행복한 가정에 태어나 부모의 총애를 받으며, 평안히 단란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년시절에 형들의 시기를 받아 갑자기 큰, 말하자면 억지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일조(一朝)에 종으로 팔려서 멀리 애굽으로 어린 몸이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가정에서 온갖 사랑을 다 받던 이 소년은 갑자기 남의 집에 종이 되어 새벽부터 저녁까지 여러 가지로 고역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셉도 물론 처음에는 마음에 큰 불평과 분노를 가졌을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꾸준히 시위대 장관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을 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수년 후에는 주인의 신임을 얻어서 그 가정의 모든 일을 관리하는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그때에 보디발의 아내를 통하여 젊은 요셉에게는 큰 정욕의 시험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으로 담대히 이겼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결과는 음란과 투기로 가득한 젊은 여인의 미움을 받아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그만 감옥에까지 던짐을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두 번째 억지의 십자가를 진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억울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참으며, 죄수로서 가장 착한 죄수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갚아 주신 것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입니다. 요셉도 역시 억지의 십자가를 두 번씩이나 졌으나, 그는 믿음으로 굴욕과 고통의 십자가를 축복과 영광의 십자가로 바꾸었습니다.

    요셉뿐만 아닙니다. 우리는 동방의 의인 욥의 이야기를 잘 압니다. 그는 실로 다복한 분이었습니다. 재산도 많았고, 자녀도 10남매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하루아침에 큰 환난을 당하여 재산도 사라졌고, 그 아름답던 자녀들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보통 십자가가 아닙니다. 실로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고통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반항하지 아니하고, 많은 번민과 고뇌 가운데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을 탐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통하여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듣게 되었고, 그 심령이 하나님을 뵙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모든 다른 방면에 축복도 갑절이나 받았습니다. 욥이 진 억지의 십자가도 결국은 감사와 영광의 십자가로 변하였습니다.

    여러분, 인생행로에는 종종 억지의 십자가를 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평소에 건강하였으나 불의의 사고를 만나서, 혹은 자동차 사고 같은 것을 만나서 크게 부상하여 그만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서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어떤 이는 불치의 병으로 말미암아 혹은 일생을 불구의 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어떤 어린이들은 어렸을 때에 부모를 잃고 일생을 고아로 살 수밖에 없게 됩니다. 어떤 젊은 자매들은 젊어서 남편을 잃고 어린아이들만을 데리고 홀로 고생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늙어 기력은 쇠약하여졌는데 부양할 자녀들이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남달리 고독의 십자가를, 어떤 이들은 남달리 빈곤의 십자가를, 어떤 이들을 남달리 큰 슬픔의 십자가를 지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이 많습니다.

    개인뿐 아니고, 우리는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또한 남달리 억지의 십자가를 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남달리 38선의 무거운, 진실로 억지의 십자가를 모두 지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 38선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눈물, 얼마나 많은 피가 이 땅을 적시었는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실 뿐입니다. 이 억지의 십자가는 지금도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모든 방면으로 우리의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중동전 이후로 우리나라뿐 아니고,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유류파동과 물가고와 거기에 따르는 모든 짐을 지고 허덕이고 있습니다. 실로 이것도 억지의 십자가입니다. 중동전이 사실 우리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러나 세계는 이미 좁아졌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에서 되는 일이 온 세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오늘의 인류는 개인적으로 또는 국가적으로 모두 이 억지의 십자가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오늘 우리가 인간으로서 당하는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는, 우리가 이 억지의 십자가를 어떻게 지느냐? 어떤 태도로 질 것이냐? 무엇으로 질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욥의 가정에 그러한 큰 환난의 십자가가 미칠 때에 욥의 아내는 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십자가를 지는 데 대한 욥의 아내의 태도가 있습니다. 곧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욥의 아내는 낙심했습니다. 분노했습니다. 그리해서 반항합니다.

    사실 억지의 십자가가 누를 때에 이렇게 대하는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불평하며 낙심하며 절망하며 자포자기하고 반항합니다. 그래서 사실 어떤 이들은 자살까지 합니다. 이런 이들을 볼 때에 우리는 실로 양해할 수 있고, 동정할 수 있고, 민망히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것은 이것은 옳은 길은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는 옳은 길은 아닙니다. 이것은 신앙의 태도가 아닙니다. 이런 태도로 나아가면 결국은 내 자신이 파멸을 당할 것뿐입니다. 이것은 개인도 그러하고, 한 민족도 그러합니다. 이런 태도는 분명히 잘못된 태도입니다.

    그러면 이 억지의 십자가를 옳게 지는 길이 무엇인가? 여러분, 욥의 아내의 말에 대해서 욥이 대답한 말을 분명히 들으세요. “욥이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곧 우리가 다 이런 일을 당할 때에, 어찌하여 그런 무거운 십자가를 져야 되는지 깨닫지는 못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믿고, 그의 공의와 사랑과 자비를 의지하면서 이 신앙으로 오는 힘으로 그 십자가를 꾸준히 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곧 신앙과 인내와 용기로 꾸준히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욥뿐만이 아니고, 과거 모든 성도들과 성자들과 순교자들이 가진 태도였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성도들에게 금생에, 그렇지 않으면 내생에 반드시 이 고통의 십자가가 변하여 기쁨과 행복과 영광의 십자가로 바꾸어 주십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남달리 무거운 억지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들이 계신 줄 압니다. 낙심하지 마십시다. 반항하지 마십시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뿐더러, 십자가에 달려서 고난을 받으신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인내와 신앙과 용기로,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꾸준히 주님의 말씀과 같이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라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은 주님도 같이 가시는 길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자비하신 주님이시여, 주님께서 저희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시며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저희들도 이 인생길을 걸어갈 때에 때로는 이 십자가를 지게 됩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럴 때에 저희들로 하여금 낙심하지 말게 해 주시고 반항하지 말게 해 주시고 오직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신앙과 인내와 용기로써 주님의 뒤를 좇을 수 있는 이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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