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1:21-28/ 한나와 사무엘 / 한경직 목사 2014-08-26 15:30:51 read : 1257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사무엘상 1장 28절에 기록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말입니다.
5월은 꽃피고 나뭇잎이 새로 푸르러지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기후도 제일 좋은 달입니다. 본 교회에서는 이달을 ‘전도의 달’로 매년 지킵니다. 사실 전도하기에 제일 좋은 시기입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지정해서 온 국민이 같이 지킵니다. 또 5월 둘째 주일은 세계적으로 많은 교회가 ‘어머니 주일’로 지키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에 읽은 성경의 말씀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한나와 사무엘의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교훈을 주시기 바랍니다.
한나는 모든 어머니의 모범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나는 이미 오래 전에 살았던 분이지만, 그를 생각할 때는 경건한 모습이 연상됩니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에 살았으나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성전이 있던 실로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으며, 또 항상 간절히 기도한 여인입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는 또한 이루어져서 귀한 아들을 낳게 되었고, 또 그 아이가 점점 자라서 젖을 뗀 후에는 그를 데리고 가서 그 아이를 아주 하나님께 드리고, 여기에 기록된 말씀대로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어린 사무엘은 제사장 엘리 앞에서 항상 여호와를 섬기며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그 아들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길 뿐더러, 그는 또한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봉사를 다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라난 사무엘은, 한마디로 그 어머니의 드린 모든 기도가 문자 그대로 이루어진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 아들 역시 온전히 하나님께 그 몸을 드린, 경건한 사람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와 동행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에게 패하고 제사장 엘리가 비참하게 죽고, 온 민족과 사회가 혼란하게 되던 때에 이 기도의 아들, 청년 사무엘은 그 민족 가운데서 새로운 지도자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블레셋 사람들 손에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면, 먼저 우리의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야 한다. 모든 거짓된 우상과 거기에 따르는 온갖 죄악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 전심으로 돌아와야 한다. 우선 우리 자신들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모든 악을 제거하여 버리고,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자.”라고 외쳤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청년 예언자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백성을 미스바라는 땅에 불러 모으고 합심하여 죄를 회개하며 조국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마침 그때에 원수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를 일으켜서 침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한편으로는 기도를 계속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청년들을 뽑아 원수를 대적하여 싸우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폭풍우를 일으키시며 특별히 우레 소리로 도우시는 가운데 원수를 격파하고, 멀리 국경 밖으로 쫓아낸 후에 승전비를 높이 국경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해서 그 비석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기도의 아들 사무엘은 그 백성을 영적으로 중생케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민족과 국가를 중흥케 한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기도의 어머니와 기도의 아들은 위대한 어머니와 위대한 아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경건하고 어진 어머니의 품속에서 경건하고 위대한 아들들이 또한 자라납니다. 어진 요게벳의 품속에서 위대한 모세가 자라났고, 어진 유니게의 품속에서 경건한 디모데가 자라났고, 기도의 어머니 모니카의 품속에서 위대한 어거스틴이 자라났고, 참 믿음의 어머니 수산나의 품속에서 위대한 전도자 요한 웨슬리도 자라났습니다.
오늘, 이 어머니 주일에 저의 첫째 염원은 여기 앉으신 여러 어머님들은 모두 한나와 같은 어머니가 되시길 바랍니다.
먼저, 어머니의 특권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아기 적에는 어머니 손에 잡혀 있습니다. 영아기뿐만 아니라, 사실 전 유년기 곧 국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어느 누구나 그 어머니 손에 꼭 잡혀 있습니다. 나폴레옹도 어릴 적에는 어머니 손아귀 속에 있었습니다. 실로 어머니의 권세가 대단합니다. 사실 어머니가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또 영아기와 유년기야말로 인간 일생에 있어서 가장 감수성이 많은 시기이며, 사실 평생의 운명이 이때에 거의 결정이 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여기에 어머니로서의 특권이 있고, 또 그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머님들에게 이 귀한 특권과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오늘 여러 어머님들은 우선 이 어머니로서의 최대의 특권과 최고의 사명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무어니 무어니 하여도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인간입니다. 인간의 생명입니다. 인간은 존엄합니다. 이 가장 귀한 인간의 어린 생명을 맡아 올바르게 길러 조국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바치는 것처럼 귀한 일이 또 어디 있을 것입니까? 어머니들은 누구나 이 특권과 사명을 깊이 깨달아 그 책임을 바로 감당하여야 자기도 축복을 받고, 자녀도 축복을 받고, 그 사회와 교회와 나라도 또한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이 사명을 올바르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먼저 기억할 것은 우리는 누구나 내게 있는 것을 남에게 줄 수 있지, 내게 없는 것을 남에게 줄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게 믿음이 있어야 자녀들에게 믿음의 감화를 줄 수 있지, 내게 없으면 줄 수 없습니다. 내가 경건한 생활을 하여야 경건한 감화를 자녀들에게 줄 수 있지, 내게 경건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산 꽃만이 향기를 발합니다. 죽은 꽃은 향기를 발할 수 없습니다. 내게 참 생명이 있을 때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습니다. 내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는 없습니다. 참 믿음만 있으면 무언중에도 은연한 감화가 자녀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참으로 한나와 같은 어머니가 되려면, 한나의 가슴 속에 깊이 있던 그 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 마음 깊은 속에 산 믿음이 있다고 하면, 또한 그것은 자연히 생활과 행동에도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우선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데서 나타날 것입니다. 경건한 어머니는 자연히 기도하는 시간, 성경을 읽는 시간, 교회를 봉사하는 시간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또 돈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데에도 나타날 것입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 주님은 일찍이 지적하셨습니다. 우리가 피땀 흘려 벌어들인 귀한 돈을 어디에 쓰는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옳게 쓰는가?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사회를 봉사하는 데 쓸 줄을 아는가? 아니면, 다만 나의 사치한 생활, 나의 향락적인 생활의 허영을 채우기 위하여 자기중심으로 돈을 쓰는가?
기억하십시다. 자녀들은 그 말보다도 행동을 봅니다. 부모들의 행동을 이후에도 기억합니다. 제가 이번 미국에서의 여러 교회를 순방하는 중에, 또한 여러 교우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도 많이 가졌습니다. 어떤 경건한 여 성도는 자기가 어렸을 때에 당한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자기가 어릴 때에 한번은 자기 집에 목사님과 권찰님들이 심방을 왔었다고 합니다. 그때 자기 어머니가 자기에게 돈을 주며 나가서 사과를 사오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자기는 그 돈을 받아가지고 거리에 나가서 그저 보통으로 웬만큼 먹을 만한 사과를 사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어머니가 그 사과를 보더니 불쾌한 얼굴로 “이런 사과밖에 없더냐?” 하면서 자기가 다시 나가더랍니다. 그러더니 그 상점에서 제일 좋은 사과를 사다가 손님을 대접하더랍니다. 그리고 손님이 다 나간 후에 자기보고 하는 말이, “얘야, 교회에서 오신 손님을 대접할 때에는 제일 좋은 것을 대접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답니다. 자기는 이 경험을 항상 잊을 수 없다고 합디다.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을 봅니다.
이번에 가는 곳마다 이처럼 부족한 사람이라도 오랜만에 만났다고 여러 분들이 자기 집에 저를 청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거기에 다 응하려면 다른 걸 할 시간이 도무지 없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그 본 교회 목사님과 의논하고 그저 대부분은 거절할 수밖에 없고, 부득이 한 가정에만 가도록 의논을 했는데, 한번은 제가 가기 전에 그 본 교회 목사님에게 어떤 젊은 부인이 와서 자기 집에는 꼭 한 목사를 청해야겠다고 간절히 부탁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왜 다른 사람들은 다 그만두는데, 당신은 꼭 청하겠다고 하느냐고 했더니, 그 이유로 하는 말이, 우리 어머님이 계셨더라면 꼭 청하였을 것이라고 그래서 그 본 교회 목사님과 같이 그 집을 가보았어요. 가보니까 누구라고 말할 필요 없지만, 권사님의 딸이에요. 또 그 집도 높은 산꼭대기에 잘 짓고, 아래 전망이 좋은 집에 살고, 남편도 아주 젊은인데 아주 신앙이 독실한 좋은 가정이었어요. 제가 그 가정에 가서 대접을 받으면서 한 가지 깊이 느낀 것은 결국 자기 어머니의 신앙이 그대로 그 딸에게로 유전이 되었다고 하는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싱가포르에 갔다가 홍콩에 잠깐 들러서 하루 저녁을 쉬게 되었는데, 그 저녁에 우리 본 교회에서 그곳에 이사해서 사는 젊은 부부가 그날 저녁에 또한 찾아왔어요. 그래서 반갑게 만나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는 중에 그 젊은 부인이 이런 얘기를 제게 했습니다. “제가 들으니 우리 어머니가 금년에 영락교회에서 권사로 임명을 받아서 이제는 권사로 교회를 봉사한다고 해요.” 그러면서 아주 기뻐서 그런 얘기를 제게 해요.
저는 사실 몰랐습니다. 그 집사님이 권사가 된 줄 몰랐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을 들어 보세요. “저희 할머니도 권사로 봉사를 했고, 저희 어머니도 권사로 봉사하는 중인데, 이다음에 나도 권사가 되겠어요.” 아주 천진하게 그런 말을 해요. 내 그런 말을 들으면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에, “본래 내 외조모 로이스와 내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그 믿음이 네게도 있다”고 했던 그 말이 제 마음 속에 기억이 되었습니다.
사실 어머니의 믿음이 그 자녀에게 또한 유전이 됩니다. 어머니의 감화력은 절대적입니다. 참 경건한 어머니의 믿음, 그 기도는 그 자녀들에게 가장 큰 감화를 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에게 이 믿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어머님의 날, 제게 둘째 염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기 앉으신 모든 젊은 아들들은 사무엘과 같은 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무엘은 그 어머니의 기도가 다 이루어진 아들이었습니다. 잠깐 스스로 여러 아들 되신 이들, 내 자신을 살펴보세요. 내가 과연 내 어머니의 기도와 염원대로 내 현재 생활에서 이루어지는가?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에 하늘로써 소리가 있어서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또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또 기뻐하시는 아들이었습니다.
여기 앉으신 여러 아들들도 모두 어머님의 사랑을 받으시는 줄 생각합니다. 다 사랑받는 아들입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이 또한 기뻐하시는 아들이 됩니까? 혹 우리 가운데 그 어머님이 눈물을 흘리게 하는 아들은 없습니까? 사랑할 뿐더러 어머니가 볼 때마다 기뻐하는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아들이 됩니까?
그렇게 되려면 어머님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아들이 되셔야 합니다. 이러한 아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부모님에게 효도를 힘쓸 겁니다. 옛날부터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인륜과 도덕은 먼저 효도로써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도 윤리에 대한 계명을 가르치실 때에 제일 먼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변하는 것도 물론 많습니다. 사상이 변할 수 있습니다. 사회제도, 가정제도도 물론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또한 영원히 변치 않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연법칙은 변치 않습니다. 도덕의 법칙도 변하지 아니합니다. 풍속은 변합니다. 도덕의 원리, 원칙은 변하지 아니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변치 아니합니다. 이 부모와 자녀 간에 있는 천륜은 변치 아니합니다.
제가 들으니, 요사이 핵가족이니 뭐니 하면서 부모를 경시하는 경향이 점점 늘어간다고 합니다. 사실 몇 해 전에 여러분들도 기억하실 줄 압니다. 신문을 보니 어떤 노부모가 아들 3형제가 있는데, 맏아들 집에 가도 반가워하지 아니하고, 그래서 둘째 아들 집에 가도 반가워하지 아니하고, 그래서 셋째 아들 집에 가니 그 집에서도 반가워하지 아니하고, 아들은 3형제씩 있었지만 이 노부모는 몸 둘 곳이 없어 너무 실망해서 늙은 부모 둘이 같이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 여러분 아마 기억할 것입니다. 윤리와 도덕은 먼저 부모를 잘 봉양하는 데서 시작이 됩니다.
옛날부터 ‘충신은 효자의 문에서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효도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나라를 위해서 충성할 줄도 모릅니다. 사무엘처럼 어머니의 기도가 모두 이루어지는 자녀가 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무엘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민족 사이에서 큰 회개의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그 백성들이 모두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현대말로 바꾸면, 사무엘과 같은 아들이 되려면 우리 민족을 영적으로 구원하려는, 이 5천만복음화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을 영적으로 중생하려고 하는, 이 위대한 운동에 헌신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어머님들도 실로 크게 기뻐할 줄 생각합니다.
제가 바로 지난 주간에 큰 기독교 교육사업을 인계한 한 귀한 청년의 어머니를 방문했습니다. 그 어머님이 얼마나 기뻐하는지요. 왜? 자기 아들이 돈을 모았다가 이렇게 귀하게 쓴다고 기뻐합니다. 여러분, 어머님의 기뻐하는 아들이 되려면 전도사업, 교육사업, 봉사사업 등 좋은 일을 많이 하세요. 그러면 어머님이 기뻐합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이렇게 영적 부흥운동만 일으킨 것이 아니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기 나라를 침략하는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치고, 국경 밖에까지 내쫓고, ‘에벤에셀’의 승전비를 세웠습니다.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우리 한국의 젊은 아들들도 모두 사무엘과 같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려는 모든 원수들을 쳐서 물리치고, 저 국경 밖에까지 압록강, 두만강 저편으로 내쫓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하면서 ‘에벤에셀’의 승전비를 백두산 꼭대기에 세우는 아들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현대의 한국의 아들들에게는 이 막대한 책임이 있는 줄 압니다. 그래서 민족의 통일과 국가의 중흥을 이루는 대한의 아들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나와 같은 어머니, 사무엘과 같은 아들이 되는 비결이 어디 있는가?
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어떻게? 먼저 우리 하나하나가 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마음 문을 열어 놓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중심에 영접해야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우리 모두 오늘 그리스도를 새롭게 영접하십시다. 기도하십시다.
아버지시여, 우리 하나하나가 한나와 사무엘의 믿음을 본받아서 그리스도를 중심에 영접하는 이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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