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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13:31-35/ 새해에 새 계명 / 한경직 목사
    2014-08-26 14:23:51   read : 1795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먼저 하나님께 감사함을 드립니다. 50년 전에 이곳에 완산 교회를 설립할 수 있게 도와주셨고, 또 충성된 여러 종들을 이 교회에 보내셔서 특별히 귀 교회 원로목사 되시는 김 목사님, 현재 당회장 되시는 목사님 지도 아래서,

    또 여러 장로님들과 집사님들과 온 교우들이 같이 협력하는 가운데 오늘 50주년 되는 거룩한 주님의 날, 또 이 부족한 사람 또한 하나님께서 특별한 기회를 주셔서 이곳에 와서 여러분과 예배를 드리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이 교회가 이만큼 발전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신 것을 보고 감사함을 드립니다.

    오늘 읽은 말씀 가운데서 여러분 잘 아시는 요한복음 13장 34절, 35절을 제가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저녁에 여러 가지 간곡한 교훈과 권면과 같이 한 계명을 주셨습니다.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서로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오늘 또 이 새해에 둘째 주일을 당하는 성일입니다. 이 새해에 이 새 계명, 또 여러분께서 50주년을 맞이하는 이 교회가 이 새 계명을 새롭게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10가지 계명은 다 기억하지만 때로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오직 한 가지 계명, 이 새 계명을 잊을 때가 더러 있습니다. 이 새 계명에 대해서 사도들이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또한 여러 교우들에게 가르쳐 주셨는가? 우리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사도 요한이 이 새 계명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제가 읽을 때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이것 이 새 계명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하고 우리 믿는 사람은 이 사랑 안에 새로 난 사람임을 기억시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계명에 대해서 어떻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는가? 베드로전서 4장 8절을 아마 기억하시는 분이 많은 줄 압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힘쓸 것이 많아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하기를 힘쓰라. 그렇게 되면 허다한 죄가 덮어지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계명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셨는가? 여러분 잘 아시는 고린도전서 13장 가운데 혹은 12장 마지막 절 몇 절을 읽을 때 여러분 자세히 들으시길 바랍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히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한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는데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서 어떤 은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방언의 은사나 지식의 은사나 구제하는 은사나 심지어 순교의 은사까지 받았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햇빛과 비슷해서 아무리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할지라도 빛이 있기에 이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어요. 이 방에 빛이 없어져요. 그러면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통해서 아무리 많은 은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사랑의 은혜를 그 위에 더 받지 못하면 모든 다른 은사는 소용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면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본래 큰 것은 사랑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뜻 깊은 성일에 주님의 새 계명을 우리가 새롭게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이 우주를 지으셨습니다. 사랑으로 우리 인간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 삶의 법칙으로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우리 개인생활의 법칙이요, 사랑은 우리 가정생활의 법칙이요, 사랑은 우리 교회생활의 법칙이요, 사랑은 온 사회생활의 법칙입니다.

    어린아기가 세상에 나서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부모님들의 사랑입니다. 사랑 없이 그 어린 생명이 세상에서 유지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바로 크지를 못합니다. 저는 늘 잊지 못하는 얘기 가운데 하나인 기독교 선명회 회장 무니햄 박사가 해 준 얘기입니다.

    그분이 월남이 망하기 전에 사이공과 온 월남 전역에서 여러 가지로 봉사사업을 많이 했습니다. 특별히 고아사업, 영아사업을 많이 하였습니다. 버리는 아이들을 많이 데려다 기르는 큰 영아원에 자기가 처음으로 가서 한 방에 들어가니까 그저 버림받은 애들을 갖다가 모두 바구니에 뉘어 놓았지요. 그런데 이상하더라는 겁니다. 모두 팔을 이렇게 하고 있고 다리를 이렇게 오므리고 있고, 다음 방에 가보니까 같은 어린이들인데 모두 다 팔을 펴고 다리도 펴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그 의사에게 물었답니다. “이거 왜 이렇습니까?” 그러니 그 의사가 하는 말이 “나도 잘은 모르지만 이 버림받은 애들이 세상에 나서 어머니나 다른 이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안아주고 뽀뽀를 해주고 만져주고 그런 사람이 없으면 어린아이들이 이렇게 하고 있더군요.”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처음에 버림받은 애들을 데려올 때는 모두 어린애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가 병원에 와서 간호원(간호사)들이 이 아기를 안아 주고 우유를 먹여 주고 쓸어 주고 이렇게 한 달을 하면 이 아기들이 다 팔을 펴고 다 자연스럽게 자라난다고 합니다.

    결국 어린아기가 세상에 와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여러분 잘 아십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도 불량 소년 소녀 문제가 점점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애들이 보통 어떤 가정에서 오느냐? 가정이 있어도 사랑 없이 길러지는 애들 가운데, 혹은 가정이 파탄이 되어서 사랑 못 받고 길러지는 아이들 가운데, 혹은 부모가 아주 없어져서 사랑 없이 길러지는 아이들 가운데 불량 소년 소녀들이 많이 생긴답니다.

    결국 인간이란 육신도 그러하고 더욱이 마음도 그러합니다. 사랑의 분위기 속에 자라날 때에만 구김이 없이 자라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여러분, 김대두 사건 다 기억하지요? 끔찍한 살인 사건 많이 일으킨 김대두씨. 지금 이미 사형 집행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이가 마지막에 예수 믿고 이 세상 떠났다고 합니다. 거기에 가서 전도를 하니까 그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그러면서 “나는 사실 이 세상에 와서 지금까지 한 사람에게도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또 한 사람도 사랑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답니다. 이런 이들이 흉악범으로 전락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살합니다. 왜? 하루하루의 삶이란 사랑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다 살길 원해요. 내일도 살기를 원해요. 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있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는 까닭입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라도 한 사람이라도 누구를 사랑할 사람도 없고 그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앞에서 한 말과 같이 그런 사람은 흔히 자포자기해서 자살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흉악범으로 전락할 거예요. 산다고 하는 것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 인간은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너희는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을 떠나서 신앙생활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도 무슨 일 갑자기 당할 때 섭섭한 일 당하면 마음에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일시적으로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성경은 뭐라 말했습니다. “분을 내어도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그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누굴 미워하는 마음을 마음 속에 두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왜? 내가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을 마음에 품으면 그 사람 마음 속에선 은혜가 떠납니다. 자기 자신이 은혜에서 떨어지고 맙니다.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지 않았어요? “너희가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고 가져왔지만 만일 너희 가운데 너희 형제 가운데 네게 대하여 큰 불만을 가지고 원망을 품은 그런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이 생각나면 예물을 앞에 놔두고 먼저 그 사람에게 가서 사과를 하고 그다음에 와서 예물을 드려라” 미운 마음을 품고 신앙생활이란 있을 수 없어요. 사랑이 삶의 법칙이오. 신앙의 법칙이오.



    여러분, 그러면 사랑은 무엇이냐?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서 7절까지 사랑은 무엇이라고 사도 바울이 그 예리한 머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분석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제가 한 번 읽을 때 여러분 자세히 들어보세요. 여러분들, “사랑은 오래 참고” 우리가 사랑한다고 하면 오래 참을 줄 알아요. 하나님은 사랑이죠?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오래 참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사실 마틴 루터 선생이 한번은 이런 얘길 했다고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내게 이 온 세상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세를 맡겼다고 할 것이면 아마 나 같은 사람은 세 시간이 채 지나지 못해서 그놈의 세상 모조리 멸망을 시킬 것이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안 해요. 공산당도 참아요. 무신론자도 참아요. 악한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참습니다.

    그다음에는 무엇이라고? “사랑은 온유하다”고. 그저 쉽게 말하면 친절하다는 말입니다. 참는다는 말은 내가 손해를 봐도 참는다는 말입니다. 온유하다는 말과 친절하다는 말은 선을 행한다는 말이오. 그다음에 “사랑은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한다” 쉽게 말하면 시기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잘되면 시기하지 않아요. 왜 시기합니까? 사랑이 부족해서 시기합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은 우리 한국에 ‘사촌이 밭을 사면 배를 앓는다.’는 말이 있어요. 왜 배를 앓아요? 아들이 밭을 샀는데 아버지가 배 앓는다는 말 누구 들어봤어요? 전주는 그런 얘기 더러 있어요? 그런 얘기 없어요. 왜? 아들은 더 사랑해요. 사촌쯤 가면 사랑이 부족해요. 그래서 잘 되는 데 시기의 감정이 일어나요. 이거 다 사랑이 부족한 탓이에요.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한다”고 그랬습니다. 해주고도 자랑하지 않아요. 전에 어떤 어머니가 아이를 기르는데 11살쯤 되니까 아이를 데려다 놓고 내가 너를 위해서 무슨 수고를 하고, 무슨 수고를 하고 이런 얘기를 종종 하더랍니다. 거 이상하다. 이웃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다음에 알고 보니까 자기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라구요. 무슨 말인 줄 알겠어요? 누가 자기 낳은 아기 기르며 수고한 다음에 자랑합니까?

    이거 다 길게 얘기할 시간 없어요. 내가 다 읽고 말죠.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것 열다섯 가지 요소로 설명을 했는데 이것 다 기억할 수 없고, 처음에 세 가지만 실행을 해 보도록 하세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친절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우선 이 세 가지만 실행해 보세요.

    가령 가정에서 이 세 가지를 꼭 실행해서 사랑이 그 가정에 있다고 할 것이면 늘 화평할 것이에요. 가령 우리 여러 교우들이 사랑의 뜻을 깨달아서 우선 이 세 가지를 실행을 해요. 오래 참고 온유하고 시기하지 아니하고 그렇게 하면 우리 교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언제나 화평한 교회가 돼요.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 가운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지요. 집안이 화평하면 일만의 일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뜻입니다. 교화만사성(敎和萬事成)입니다. 교회가 화평하기만 하면 모든 일이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제일 큰 은사인 사랑의 은사를 우리가 새롭게 받아야 하겠습니다. 사랑이 이렇게 귀한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다 사랑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랑을 북돋울 수 있을까? 이런 면을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해요.

    첫째는 새 계명의 중요성을 우리가 꼭 깨달아야 할 거예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계명을 주시지 아니했어요. 이 한 가지 계명만을 주었습니다. 왜? 이 한 가지 계명만 잘 지키면 다른 은혜는 다 따라와요. 그리고 어거스틴의 말 가운데 “그저 사랑만 하라. 그다음엔 네 마음대로 하라.”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사랑이 중요해요.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어떤 때에는 우리가 진리를 위해서 사랑을 잊어버리는 때가 더러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건 우리 기독교에 있어서는 진리와 사랑이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진리이고 하나님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곧 사랑입니다. 사랑이 떠난 기독교 진리는 있을 수 없어요. 중요성을 기억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사랑의 영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첫 열매는 사랑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사랑. 그다음에 기쁨, 화평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는 가운데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까? 그러면 우리 가슴 속 사랑이 충만합니다. 이 충만한 사랑 가운데 성령께서 계속해 주시는 능력이나 지혜를 사랑 가운데서 써야 될 것입니다. 성령은 사랑의 영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는 언제나 십자가를 묵상하고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 십자가의 뜻이 무엇인지 여러 가지 신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알아듣기 쉽게 한마디로 말하면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들 사이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사랑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죄인까지도 사랑하셔서 자기 몸이 죄의 값을 대신 받으시고 죽으시고 모든 사람을 살려주시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원수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사랑의 상징이 십자가입니다.

    저는 몇 달 전에 여주 지방에 잠깐 가서 집회를 하다가 특별히 손양원 목사님 묘소가 있는 곳에 가서 제가 기도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참, 손 목사님 같으신 분은 그 십자가의 사랑을 그대로 실천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모든 게 다 그렇지만 우리가 무엇을 배우려면 연습이 늘 필요하지 않습니까? 이번에 보니까 성가대가 잘하는데 성가대가 잘하려면 연습이 필요합니다. 피아노 잘하려면 연습이 필요해요. 그래서 어떤 분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사랑도 꼭 배워야 되겠는데 사랑을 배우는 데도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사랑을 좀 실천해 보고 한 번 해서 실패하면 또 다시 하고 이렇게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이해하는 분들이 있어요.

    가령 어떤 얘기가 있는가 하니 여러분 이런 얘기 들으신 분들도 많이 계신 줄 압니다. 전에 어떤 나무 하는 노인이 아주 건강합니다. 그래도 한 번 건강에 대해서 종합진단을 받으라는 권면을 받고 자기 건강을 위해서 어떤 의사에게 가서 다 한 번 진찰을 받았대요. 그런데 나이 80이 지난 노인인데 병이 하나도 없답니다. 아주 건강합니다. 그러니까 의사가 놀라면서 “참 노인께서 그렇게 건강하신 데 비결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비결 없어요.” “그래도 비결이 있겠지요. 좀 말씀해 보세요.” 그러니까 조금 생각하더니 “그저 내 지금까지 지나온 내 생활을 가만 돌이켜보는 가운데 건강에 필요한 부분이 있었다고 하면 난 아마 누구보다도 산보를 좀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더라구요.

    그러니까 그 의사 말씀이 “그래요? 그거 산보하는 것 건강에 좋지요. 언제 그렇게 산보를 했습니까? 아침에 늘 했습니까?”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구요. 내가 나이 많아 결혼을 했는데 나이 많은 사람이 결혼을 해가지고 가정이 불우하면 안 되겠거든. 그래서 어떻게든 우리 가정을 화평하게 지키기 위해서 결혼한 그날 저녁에 내 아내하고 나하고 약속한 게 하나 있어요. 그건 뭐인고 하니 가정을 화평하게 유지해 나가야 할 것인데, 그러나 사람이라 어떤 때는 성날 때도 있고 화날 때도 있는데 그저 내 부인과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저 우리가 살아나가다가 내가 그만 갑자기 성나면 그저 당신은 대답하지 말고 얼른 주방으로 가서 그릇이나 닦으시오. 그리고 만일 당신이 먼저 성내면 나도 아예 대답 안하고 얼른 문 열고 밖으로 나가서 산보를 나가겠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했단 말이오.

    이 노인의 말씀이 “결혼한 지가 40여 년이 됐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참 내 가정이 화평한 가정이었어요. 그런데 그 대신 내가 산보는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참는 것도 연습하면 더 참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도 조금이라도 화나고 그럴 때 꼭 참아야 되겠다 하고서 한 번 참으면 그다음에는 참기 더 쉬워요. 두 번 참고 세 번 참고. 우리 교회에서도 역시 그런 줄 압니다. 우리 교회가 다 한 주님을 믿고 한 하나님을 섬기지만은 다 각각 성품은 달라요. 생각도 달라요. 배경도 달라요. 그러니까 충돌할 때 있지요. 참을 줄 알면 성도의 교제가 끊어지지 않아요. 화평한 교회가 되어야 우리 교회를 지킬 수 있어요.

    여러분 압니까? 우리 한국 교회가 은혜 많이 받은 교회 가운데 하나인 줄 압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에 그렇습니다. 가령 우리 한국 교회에서 전도 열심히 잘합니다. 또 모이기도 잘합니다. 또 헌금도 잘합니다. 십일조하는 분도 많습니다. 봉사도 잘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 한 가지 은혜만 더 받았으면 더 좋겠어요. 그것이 무엇이오? 서로 사랑해서 화평한 교회로 꼭 지킬 수 있었으면 얼마나 더 큰 일을 할 수 있겠나 싶어요.

    저는 솔직히 이렇게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있어서 “사회 부조리를 없앱시다.” 담대히 말할 수 있어요. “부패와 부정을 없이 합시다.” 담대히 말할 수 있어요. “여러 가지 제도를 고칩시다.” 담대히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끼리니 말입니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향해서 “여러분, 조금도 싸우지 말고 화평한 사회를 만듭시다. 하나가 됩시다.” 이 말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이 담대히 사회를 향해서 말할 수 있나? 이것을 생각할 때에 부끄럽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여러 가지 은혜 많이 받았는데 참 한 가지 가장 큰 은혜를 더 받아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화평하여 일치단결하는 이런 은혜를 더 받는다고 하면 우리 사회를 위해서 얼마나 큰 공헌을 할 수 있겠는가? 전도도 더 잘 됩니다.

    전에 아브라함이 벧엘에 살 때 아브라함의 육축도 많아졌고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이 같이 있었는데 롯의 육축도 많아졌습니다. 목장은 좀 좁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육축을 먹이는 목자들과 롯의 육축을 먹이는 목자들이 서로 싸움을 합니다. 다툽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 하는 말을 여러분 기억합니까? “롯아, 너나 나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지 말자. 왜? 우리는 한 골육이야. 골육. 혈족이야. 다툴 수 있느냐?” 그러면서 거기 무슨 기록이 되어 있는 줄 압니까? “또 그 근방에는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들도 있더라”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이렇게 이방 사람도 있는데, 우리 골육간에 다투면 어떻게 하겠느냐? 다투지 말자 하는 말입니다. “네가 동으로 가면 나는 서로 가겠고, 네가 서로 가면 나는 동으로 갈 테야. 나는 양보해.”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가 왜 화평한 교회가 꼭 되어야 하겠느냐? 이유는 꼭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는 다 하나의 골육이요 민족적으로 볼 때도 한 혈육이지만, 다 신령한 그리스도의 보혈로 같이 구원을 받은 신령한 혈족이오. 그러나 한 가지 이유 더 있어요. 우리 사이에는 가나안 사람과 같은 아직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가운데는 교회를 괄시하는 심지어 공산당들도 이북에 많아요. 우리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각오해야 하느냐? 무엇보다도 사랑해야 할 책임이오. 그래야 우리 온 민족을 구원할 수 있고 우리나라를 옳게 받들어 섬길 수 가 있어요.

    오늘날 우리 한국 기독교도가 400만, 500만 하는데 이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면 우리 사회나 우리나라가 얼마나 더 영향력을 지며 크게 공헌할 수 있겠느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어요.

    전도하는 법이 세 가지 있어요. 첫째는 말로 합니다. 예수 믿을 이유를 설명합니다. 예수 믿자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해요. 둘째로는 행실로 합니다. 우리의 생활로 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통해서 무언의 전도를 합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 뭐인지 압니까? 모든 믿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기쁨과 화평이 충만한 성도의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이 성도의 교제가 참 하나님께 드릴만한 교제가 되어서 옛날 1세기의 예루살렘 교회처럼 온 교우가 서로 사랑하고 한가지로 기뻐하고 피차에 돕고 유무상통하고 서로 도와서, 그저 교회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 사랑의 분위기가 충만하게 된다고 하면 이 세상 사람들은 그런 교회로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마치 봄 동산에 꽃이 만발하면 벌과 나비는 저절로 들어오는 것처럼 교회 교회마다 이런 화평하고, 기쁨이 충만하고, 사랑이 충만하고, 봉사가 충만한 교회가 되면 이 세상 사람들이 자연히 그런 교회를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왜? 이 세상은 냉정한 세상이니까요. 이 세상은 쓸쓸한 세상이니까요. 이 세상 사람처럼 안 믿는 사람처럼 고독한 사람이 없어요.

    오늘 새해 둘째 주일, 오늘은 이 완산 교회로서는 50주년 기념일입니다. 온 한국 교회도 그렇겠지만, 이 완산 교회가 우선 이 새 계명을 새롭게 받아서 참 과거에도 이런 은혜를 받은 까닭으로 이만큼 발전이 되었지만, 앞으로 더욱 이런 은혜를 충만히 받아서 온 한국 교회의 모범이 되고 따라서 온 한국 교회가 무슨 문제가 생긴다고 하면 과거 전주 완산교회를 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새 계명을 충만히 받아서 오히려 이 50주년을 맞는 이 계기가 완산교회 큰 발전에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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