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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6:22-34/ 몸의 등불 / 한경직 목사
    2014-08-26 10:38:24   read : 1507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22절을 다시 봉독합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예수께서 지적하십니다. 눈을 통하여 온몸이 밝아집니다.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눈이 성해야 합니다.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워집니다. 밝은 눈이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눈이란 육신의 눈뿐이 아니고, 마음의 눈, 양심의 눈, 영혼의 눈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에베소 1장 마지막 부분에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야 합니다.

    먼저, 인간의 눈을 어둡게 하는 것들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그것을 분명히 알아서 조심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물욕일 겁니다.

    전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당시 소돔 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부패했는가는 보지 못하고, 그 근처에 무성한 푸른 풀만 보고 그 지경으로 가족과 가축을 끌고 갔다가 얼마나 큰 실패와 곤욕을 당했는가 하는 사실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배후에는 푸른 풀만 보는 물욕이 그 눈을 가리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지를 점령할 때 처음에 큰 성 여리고를 정복하였지만, 매우 작은 아이 성을 공략하려다가 실패를 당하였습니다. 그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금과 은을 비밀히 간직한 아간의 물욕 혹은 탐심이 있었습니다. 여기도 결국 물욕이 그의 눈을 가리었습니다. 왜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 같은 이가 예수를 잡아주었습니까? 역시 은 30냥이란 물질이 그 눈을 가린 것 같습니다.

    이런 일들은 옛날만 있은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신문 사회면을 읽어 보세요. 온갖 부정부패의 추악한 뉴스들을 거의 매일 같이 봅니다. 한마디로 이 탐심이 현대인의 눈도 가리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탐심을 삼가라고, 탐심이 곧 우상숭배라고 엄히 경고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정욕일 것입니다.

    다윗 왕 같은 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실로 위대한 분이었습니다. 위대한 목자요, 군인이요, 시인이요, 음악가요, 또한 위대한 정치가였습니다. 그러나 큰 범죄를 한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와 간음을 행하고 자기의 충복인 우리아를 최전선에 고의로 내보내서 전사케 만들었습니다. 왜? 역시 정욕이 그의 눈을 가리었습니다. 이런 일은 옛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에도 이런 추악한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삼가라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는 권력욕일 겁니다.

    우리는 단종애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왜 수양대군이 나라의 충신을 모조리 학살하고, 마지막에는 당시 임금으로 있던 자기 친조카인 어린 단종까지 모살하였습니까? 한마디로 권력욕에 그 눈이 가리었던 까닭입니다. 권력욕에 눈이 가리어서 온갖 만행을 저지른 이들은 옛날만 있은 것이 아닙니다. 현대에도 적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시기입니다.

    전에 사울 왕이 어찌해서 자기의 충신이요, 또 자기 친사위였던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까? 한마디로 시기가 그 눈을 가리었습니다. 자기보다 나은 이를 시기함으로 일어나는 온갖 불행한 사태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너무나 많습니다. 시기에 눈이 가려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편견, 선입견 혹은 독선일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를 모해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편견 혹은 선입견입니다. 그들의 그릇된 전통적인 사상, 메시아관에 대한 편견 때문에 그런 범죄를 감행하게끔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편견에 눈이 가리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둘째로,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것은 보되 바로 볼 줄을 알아야 합니다. 볼 때에 주의할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발끝만, 곧 가까운 데만 보지 말고 멀리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전에부터 내려오는 이야기 가운데 우물 속의 개구리가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이 돈 닢만 하다고 했다고 하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얘기 가운데 민충이가, 그 벌레의 이름이올시다. 민충이가 쑥대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고 천하가 작다고 했다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자기 주변만 보지 말고 좀 널리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세계의 정세, 세계적 동향도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세계적인 시야에서 내 자신, 내 교회, 내 나라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또는 부분만 보지 말고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일면만 보지 말고 양면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회 등 어떤 문제에 당면하든지 일면만 보지 말고 전체를 보아야 올바른 해결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일면만 보고 피차에 고집하다가 전체의 복리를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방휼지쟁에 어부지리(蚌鷸之爭 漁父之利)’란 옛 속담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닷가에 큰 조개 한 놈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을 때 큰 황새가 한 마리가 지나가다가 그것을 보고 그 조갯살을 먹으려고 쪼니 그 조개는 입을 꽉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황새도 날아가지 못하고 피차에 싸우는 동안에 한 어부가 지나가다가 황새와 조개를 같이 잡아서 자기 구럭에 넣고 갔다 하는 옛얘기입니다. 옛이야기이나 의미심장합니다.

    한편만 보고 너무 싸우지 않아야 합니다. 특별히 기회를 노리는 원수 앞에서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교회 전체, 국가 전체의 복리를 보고 모든 문제를 양해와 겸양과 화해의 정신으로 해결하고 풀어 나가야 합니다. 이런 슬기를 꼭 배워야 합니다.

    또 현재만 보지 말고 미래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현재의 향락, 이익만 보지 말고 장래의 영향과 결과도 미리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탕자처럼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방탕한 생활만 하다가 몇 해 후에 남의 돼지를 치는 사람으로 전락해서도 아니될 것입니다.

    또 현세만 보고 내세를 못 보아도 아니됩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한 부자와 같이 현세에서는 매일 열락을 하다가 죽은 후에 지옥 불에 떨어져도 아니될 것입니다. 세계 장래도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일전에 싱가포르에 잠깐 여행할 때에 그곳 신문에 기재된 한 논문을 읽었습니다. 그 내용은 간단히 말하면 대략 이러했습니다. 세계 1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약 60년간의 세계 역사를 회고하면서 특별히 공산주의 운동의 동향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이 운동이 세계 2차대전 이후에 동구, 아시아, 심지어 아프리카까지 확포(擴布)된 사실을 지켜보면서 그러면 앞으로 30년간에 이 운동이 어떻게 될까? 그것을 또한 전망해 보았습니다.

    그의 결론은 한마디로 말하면, 앞으로는 공산주의 세력은 점점 퇴조할 것이라고, 물러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첫째는 과거 30년간 같은 민족, 같은 환경에서 분열된 나라들이 몇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민주주의제도, 다른 편에서는 공산주의제도를 약 30년 동안 각기 실험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공산국가는 민주국가보다 경제 발전에 모두 뒤떨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서독과 동독을 비교해 보고, 대만과 중공을 비교해 보고, 싱가포르와 중공을 비교해 보고, 혹은 남한과 북한을 비교했습니다. 공산주의가 경제발전에 실패하면 공산주의의 약속은 물질에 있는데 무엇에 쓸 수 있겠는가?

    둘째로 이분이 지적한 것은 민주주의제도는 대다수에 의지한 정치이니까 언제든지 국가 정세에서 얼마든지 적응할 수 있게 변할 수가 있지만, 공산제도는 일당독재, 일인 체제로 그 자체를 개선할 길이 별로 보이지 아니한다, 다시 말하면 변하는 시대에 적응할 수가 없는 제도인 것을 지적했습니다.

    또 셋째로는 공산주의로 말미암아 소위 유명하다고 일어난 지도자들이 몇 사람 있는데 모두 폭군으로서 사실 인류에게도, 공산당 자신에게도 존경을 받는 이가 누가 있는가? 스탈린이 그래요? 모택동이 그래요? 김일성이 그래요? 카스트로가 그래요? 현재만 보지 말고 장래를 옳게 전망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꼭 보아야 할 것을 반드시 보아야 합니다. 꼭 보아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을 읽어 보면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왜?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까닭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계십니다.

    우리 주님은 산상보훈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마음이 깨끗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젊었을 때에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것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신령한 눈으로 본 것입니다.

    지금도 다 같이 성전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지만, 오직 마음눈이 밝고 깨끗한 이들만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신을 벗습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할 때에, 그 마음눈이 열려서 하늘의 보좌와 그 옆에 서신 예수를 보고 모든 사람에게 보라고 그 신앙을 간증하였습니다. 우리의 신령한 눈이 열려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도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보이는 나라뿐 아니고, 보이지 않는 나라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육안으로는 보이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눈으로는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읽노라면 사도 요한이 그 계시록을 쓰면서 종종 ‘내가 보니’ 하는 말이 나옵니다. 그는 신령한 눈이 열려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찬란한 새 예루살렘 성, 하나님의 보좌, 그 옆에 서신 어린 양, 24 장로, 천군천사, 각 나라 각 방언, 각 백성에서 온 구원받은, 몸에는 흰 옷을 입고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든,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도 신령한 눈으로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신령한 눈이 열려 하나님 나라도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본향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4장 35절에 있는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들으세요.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고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밭을 보아야 합니다. 눈을 들어 한국의 밭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아시아의 넓은 밭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온 세계의 밭을 보아야 합니다. 곡식이 이미 익어 희어졌습니다. 추수하게 되었습니다. 이 넓은 일터, 무르익은 곡식은 한국의 일꾼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기는 특별히 한국의 기독청년들이 눈을 들어 이 밭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령한 눈이 열린 청년들만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옛날 이사야와 같이 대답하면서 일터로 나갑니다.

    마지막으로 히브리 12장 첫절을 기억하십시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바라보십니다. 세상을 보지 말고, 예수를 바라보십니다. 롯과 같이 푸른 풀만 바라보지 말고,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롯의 처와 같이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예수만 바라보십시다. 베드로와 같이 물결을 보지 말고, 능력의 주가 되시는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담대히 나아가십시다. 그래야 우리의 한 번밖에 못가는 인생의 길을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우리 주님은 일찍이 경고하셨습니다. 내 눈이 밝아야 나도 옳은 길을 가고 다른 이들도 옳은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 시인은 기도하였습니다. “내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리이다.” 우리도 이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마음눈이 열리는 이 크신 축복을 더하여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빛의 근본이 되시는 주님이시여, 우리 각 사람의 마음눈을 이 시간 열어서 모든 가리는 것은 없이 해 주시고 모든 것을 바로 살피고 슬기 있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현세만 보지 말고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이 육신의 생활이 비록 잠깐 되는 듯하지만 영원한 삶의 시작인 것을 깨달아서 우리 하나하나가 옳은 인생길을 걸을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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