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1-10/ 성서적 신앙의 의미 / 한경직 목사 2014-08-25 20:44:50 read : 1658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성경에 많이 나타나는 말 가운데 하나는 ‘믿음’이란 말입니다. 믿음. “하나님을 믿으라” “주 예수를 믿으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것이 없느니라” 여러 번 나타납니다. 이 시간 그 말의 뜻을 성경이 설명하여 주는 대로 생각하고자 합니다.
오늘 읽은 히브리서 저자는 11장 1절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먼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어떤 번역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확신”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라는 것들이란 장래에 대한 소망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은 장래에 희망하는 것이 마음 속에는 이미 실현됨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한번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지경을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 문둥병자 10명이 멀리서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병을 고쳐 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곧 하시는 말씀이, “그 길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뜻은 그때에는 문둥병자가 병 고침을 받은 후에는 제사장에게 증명서를 받아야 일반 사회인과 섞여 살 수가 있던 때입니다.
이 문둥병자 10명은 그 말을 듣고 곧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갔다고 하였습니다. 올라가던 도중에 그 병이 나았습니다. 여기에 문둥병자들의 믿음이 어떠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말씀만 듣고, 아직 그 몸에 병이 있었으나 꼭 나을 줄 알고 그 믿음대로 행동하였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그들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었습니다. 마음 속에는 벌써 실상이었습니다.
그런 예가 성경에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예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을 읽어 보면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그때에 믿는 이들이 마가 요한의 어머니의 다락방에 모여서 베드로가 석방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마침 그날 밤에 천사의 도움을 받아서 베드로가 옥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기도하는 집에 와서 대문 밖에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때에 로데라고 하는 작은 계집아이가 아마 문간에 가까이 앉았던 모양이지요. 곧 나가서 보니까 베드로의 음성입니다.
너무 기뻐서 미처 대문을 열어주지 못하고 곧 뛰어들어와서 외치는 말이 베드로가 지금 대문 밖에 섰다고 했어요. 그때에 기도하던 여러 분들이 무슨 말 했는지 여러분 기억합니까? 아, 저 애가 미쳤다고 그랬어요. 이것 보세요. 미쳤다고 했어요. 그 뜻은 ‘베드로가 감옥에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나왔겠는가?’ 하는 그 뜻입니다. 여러분, 그들이 옥에서 나오게 하여 달라고 기도는 하였으나, 그대로 믿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우리도 종종 이렇게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을 집에 가서 읽어 보세요.
어떤 분은 ‘믿음이란 꽃에서 열매를 맛보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지금은 꽃만 피었지만 그 꽃 가운데서 그 마음 속에는 이미 열매를 볼 뿐더러, 맛보기까지 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도 설명을 했습니다. ‘믿음이란 새알을 보면서 종달새의 소리를 이미 듣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새 둥지 속의 새알뿐입니다. 그러나 그 알을 보는 그 마음 속에는 이미 공중에 솟아올라 지저귀는 종달새 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우리는 다 장래의 천국과 영생을 믿습니다. 얼마나 믿습니까? 여기에 우리 종종 부르는 찬송가 가운데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 하는 찬송이 있지요? 우리가 다 현재에 이 영생을 맛보며 삽니까? 참 믿음이 있는 이는 그러합니다. 여러분, 찬송가 425장 한번 찾아서 그 가사를 저와 같이 읽어 봅시다. 자, 이거 첫절을 읽습니다. 여러분 마음으로 뜻을 생각하시면서 따라 읽으세요.
“내 영혼이 은총을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이거 믿음의 체험이올시다. 참 믿음을 가지고 죄 사함 받은 이는 천국으로 화합니다. 둘째 절을 보세요.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 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아직 하늘나라에 가지 않았어요. 그러나 하늘나라가 내 마음 속에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믿음 있는 이의 체험의 고백이올시다. 3절을 보세요.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내 주 예수를 내 마음 속에 믿음으로 모실 때에 어딜 가나 하늘나라를 체험하는 이런 믿음입니다.
그리고 후렴 보세요. “할렐루야 노래하자 내 지은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사실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그들은 어디서나 하늘나라의 체험을 가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다음 구절을 생각해 보세요.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하였습니다. 보이지는 않으나 너무 확실히 알아서 ‘증거’란 말을 여기에 썼습니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배당은 보입니다. 그러나 천당은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 있는 성경책은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 히브리서 11장을 그냥 읽어 내려가면 11장 27절에 모세의 믿음을 설명할 때에 모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같이 하여서 모든 고난을 참고 이겼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진 않아요. 그러나 보이는 것같이 체험하면서 모든 고난을 이겼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요셉의 얘기 다 아실 줄 압니다. 젊은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서 시위대 장관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합니다. 그러나 그 집에서 모든 걸 얼마나 정직하고 바르게 했던지 보디발의 전적인 신임을 얻어서 온 살림을 맡게 됐습니다. 그런데 큰 시험이 들어왔습니다. 그건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정욕에 대한 유혹입니다. 젊은 사람으로서, 또 독신자로서 그 시험이 얼마나 컸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런 위기를 당해서 요셉이 대답한 말씀 기억하십니까? “주인께서 나를 신임해서 당신 외에는 이 집의 모든 걸 다 내게 맡겼는데 내가 어떻게 이 악한 일을 해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나 보이는 것같이 요셉은 믿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시험을 이겼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사야 6장을 읽어 보세요. 여기 보면 이사야가 성전에 가서 기도하다가 거룩하신 하나님이 높고 높은 보좌 위에 앉으신 것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또 그 음성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건 물론 환상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통한 환상입니다. 그 뜻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귀로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요한계시록 여러분들 읽어 보시면 거기에 사도 요한이 종종 ‘내가 보니’, ‘내가 들으니’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거 다 믿음의 눈으로 보았단 말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늘나라를 보았단 말입니다. 믿음의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단 말입니다. 이렇게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예배당에는 다니긴 다니지만, 그 행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는 이들이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체험하면서 사는 이들은 죄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11장 첫절에 이렇게 믿음의 뜻을 설명하고, 그 다음에 계속해서 이런 믿음을 가진 이들의 생활은 어떠했다고 하는 것을, 히브리서 11장 전장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다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로 간추려 우리가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먼저, 이런 믿음으로 산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늘 그 앞에서 살았으니 자연히 그들은 용감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이겨내는, 유혹도 이기고, 역경도 이기는, 이겨내는 생활을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이러한 믿음으로 자기의 나아갈 길은 모르지만 용감히 부름에 순종해서 나아갔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모세도 홍해를 능히 건너갔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여호수아도 가나안을 정복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다윗도 골리앗을 쳐서 이겼습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그들에게는 중퇴, 좌절, 낙심, 절망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떠한 환경, 위기, 역경에서도 용감히 싸워 이기면서 살았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처럼 하니 순종 안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뜻을 간단히 두 가지로 그들은 이해했어요. 그것은 공의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올시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까닭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미가는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여” 제일 먼저 공의입니다. 그 다음에 한 말은 “인자를 사랑하며” 그 사랑이에요.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성경을 읽어 보면,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 하는 교훈이 있는가 하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또한 가르쳤습니다.
예수님도 꼭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렇게 하면 세상이 너희가 내 제자가 된 줄 알리라” 산상보훈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할 때에도 먼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고, 곧 계속해서 다음에 하신 말씀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이는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의와 사랑, 이 두 가지는 하나님을 믿는 이들의 생활의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르게 옳게 착실하게 의롭게 살았을 뿐더러, 민망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불우한 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고, 죄를 용서해 주고, 사랑하면서 화평한 생활을 항상 하도록 힘을 썼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신앙의 모든 용사들은 또한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한 것뿐만이 아닙니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온갖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셋째는, 과거 신앙의 이러한 용사들은 그 시대에 있어서 가장 지혜롭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하나님이올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혜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신은 지혜와 총명의 신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한 그들은 그러한 암흑시대에서도 모든 우상을 타파하고, 미신을 그 사회에서 일소하기 위해서 애썼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인간으로서 가장 미련한 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고 사람이 만든 우상에게 절을 하고, 온갖 미신에 빠지는 게 이게 인간으로서 가장 부끄러운 노릇입니다. 지혜의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이런 것을 다 없애 버려야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한 다음에 모든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오늘날 너희 섬길 자를 택하라” 그 다음 말이 무슨 말인지 기억합니까?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노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잠언 4장 5절 이하에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지혜를 얻기를 힘쓰라고 권면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열두 사도를 전도하러 내어 보내시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고 말씀했습니다. 믿음의 생활은 절대로 어리석은 생활이 아닙니다. 이 사악한 세상에서 성령의 지혜와 총명을 받아서 슬기롭고 순결하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리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를 지키고 우리의 자유를 보존하려면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 국민 하나하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평화통일을 이루려고 해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회 안정, 근면, 절제, 노력,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 운영도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사업 운영도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이 신앙의 용사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사악한 세상을 슬기롭게 살고, 슬기롭게 일하였습니다.
우리는 1981년이란 새해에 이미 돌입하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금년에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는 못합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도 옛날 아브라함과 같이 알지 못하는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유명한 역사가 토인비는 ‘역사란 도전과 응전의 계속’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금년에 내 자신, 내 가정, 내 사업, 아니 우리나라와 세계에서 어떠한 도전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떠한 도전이 있든지 참 신앙으로 응전하는 이에게는 승리가 반드시 옵니다. 과거의 모든 신앙의 용사들이 모두 이렇게 새로운 도전에 신앙으로 응전해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러한 역대의 신앙 용사들의 후계자가 여러분 하나하나가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서적 신앙의 뜻을 항상 기억하십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우리 모두 가지고 이 새해를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공의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지혜의 하나님, 이 새해를 당해서 여기 앉은 우리 모두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옛날 신앙 용사들과 같이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인 신앙, 이런 참 신앙을 주어서 우리가 금년 1년 동안 살 때 이러한 신앙으로 모든 것을 이기고 언제나 공의와 사랑의 생활을 하며 지혜롭게 살며 승리할 수 있는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머리 들기 전에 우리 하나하나에게 이러한 신앙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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