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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13:1-11/ 겸손하신 예수 / 한경직 목사
    2014-08-25 19:21:49   read : 999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 아침 읽은 요한복음 13장에서 제가 14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께서 육신으로 이 세상에 계시던 마지막 날 저녁에 된 일입니다. 주님은 그때에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셨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성경에 있는 말씀과 같이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또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도 기억하셨고,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으로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여러분 다 잘 아시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자기 차례가 올 때에 처음에는 너무 황송해서 “제 발은 도저히 씻길 수 없습니다”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주님께서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라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후에 물론 베드로는 순종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은 두 가지의 큰 뜻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첫째는 신령한 씻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령한 의미에서 우리를 씻겨 주십니다. 둘째는 서로 발을 씻기라는 뜻, 곧 겸손히 서로 봉사하라는 교훈을 주십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누구나 신령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참된 회개와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가운데 이러한 신앙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우리는 제자들의 발까지 씻겨 주시는 예수님의 겸손을 오늘 아침 이 시간에 신령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의 겸손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사실 겸손의 화신이십니다.

    그 뜻은 몸으로 친히 겸손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 이하에는 이러한 말씀이 있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실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렇게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하셨습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의 마음을 배우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도 겸손해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이하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주님의 마음은 겸손하십니다. 이 겸손을 배우는 이들은 그 마음에 또한 안식을 그 축복으로 얻습니다.

    그의 전생애를 잠깐만 돌아보아도 그의 생활은 실로 겸손하였습니다. 그는 호화주택에서 태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그분은 마구간에서 나셨고, 그의 누운 첫 자리가 구유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겸손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그는 세상에 나타나 천국 복음을 전하시기 전까지는, 작은 촌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곳의 한 작은 모퉁이에서 목수 일로 생계를 유지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의 전생활의 모습은 그가 친히 말씀하신 대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노라” 그대로입니다. 그런 생활을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겸손하고 검소한 삶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최후로 무리들의 환영을 받으시면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에도, 전쟁에서 쓰이는 말을 탄 것이 아니라, 평화의 상징인 작은 나귀새끼를 타시고 들어가신 기록을 여러분이 읽어 봅니다. 이보다 더 겸손한 왕을 세계 역사상 어디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최후로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저녁에는 친히 자기의 손으로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겨 주셨고, 그 다음 날 아침에는 수정같이 맑은 죄 없는 몸이 만민의 죄를 친히 짊어지시고 물과 피를 흘리시며 십자가 위에서 최후를 마치셨습니다.

    그는 일찍이 자기의 오신 목적을 다음과 같이도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곧 내가 온 것은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장 45절을 여러분 모두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실로 겸손의 화신이십니다.

    사실 겸손은 신앙의 입문이라고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겸손해야 신앙이 들어옵니다. 겸손해야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요, 또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은 겸손하지 못해서 예수를 믿지 못합니다. 어떤 이는 지식의 교만 때문에, 어떤 이는 돈의 교만 때문에, 어떤 이는 지위나 권력의 교만 때문에, 곧 여러 가지 교만 때문에 신앙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심지어 아마 그 속에는 이런 말을 하는 거 같아요. “교회에 가보면 대부분 여자들과 아이들뿐이니, 나 같은 신분에 나가기가 무엇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거 같아요. 또 어떤 이는, “나는 도대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가 힘쓰고 자기가 노력하여 좋은 사람도 되고 성공해야지 무슨 남의, 예수의 공로를 믿어서 죄 사함을 얻는다는 말은 우리 같은 이에게는 도무지 맞지 아니하다.” 이런 오만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교만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교만이 마음에 가득하니 어떻게 겸손하신 예수를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러한 이라도 때로는 보니 하나님께서 말하자면 철퇴를 내려서 그 교만을 꺾어 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야 겸손하게 되고, 그때에야 신앙에 들어와서 구원을 얻는 이들도 적지 아니합니다. 성경은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싫어하는 것만이 아니요, 미워하는 것만이 아니요,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베드로전서 5장 5절 여러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거예요. 잠언 16장 18절에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이러한 실례가 어제나 오늘이나 역사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오직 겸손이 신앙의 입문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만 복을 주셔서 그 영혼을 회복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저는 이따금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20세기에 많은 사람들이 왔다갔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도 가장 교만하던 사람들은 누구일까? 혹 여러분 생각해 보셨어요? 우리가 사는 20세기, 물론 세계적으로 생각할 때 여러 사람의 이름들이 마음에 떠오를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 그 중에서도 아마 보통으로 세계적으로 제일 교만한 사람들을 꼽는다고 하면, 아마 독일의 히틀러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혹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생각합니다. 혹은 소련의 스탈린을 생각합니다. 혹은 우리 동양에서는 소위 대동아 전쟁을 일으킨 동조 대장, 그런 사람을 아마 생각하게 돼요. 이들의 세계정복의 야망 때문에 얼마나 많은 무죄한 사람들이 이 땅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졌으며, 얼마나 많은 재산과 문명이 파괴되고 말았습니까? 실로 생각만 하여도 몸서리쳐집니다. 문자 그대로 교만은 멸망의 앞잡이입니다. 거만한 마음이 패망의 선봉입니다. 그건 개인으로도 그렇고, 단체로도 그렇고, 나라로도 그렇습니다.

    들으니 유명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에게 어떤 분이 와서 묻기를, “구원의 첫 단계가 무엇입니까?” 했다고 합니다. 그때에 그는 조금 생각하더니 “그것은 겸손일 것입니다.” 다시 묻기를, “그러면 둘째 계단은 무엇일까요?” 마틴 루터는 조금 생각하더니, “그것도 겸손입니다.”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때에 그 묻는 분은 세 번째 물었다고 합니다. “셋째 계단은 무엇일까요?” 그가 더욱 힘을 주어 대답하는 말이, “그것도 겸손입니다.” 겸손은 회개의 좁은 문입니다. 겸손해야 죄를 깨닫고 회개합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러므로 오직 겸손, 회개일 뿐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겸손은 신앙의 척도입니다.

    신앙을 재어보는 자, 척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에 깊이 들어갈수록 인간은 더욱 겸손하여집니다. 여러분, 돌아가셔서 찾아들 보세요. 고린도전서 15장 9절에 사도 바울은,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실로 사도 바울이 겸손한 사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보면 모든 사람이 아마 다 그를 사도 중에 제일 큰 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중에 제일 작은 자’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3장 8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어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라는 구절이 있어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 ‘성도’라는 뜻은 ‘모든 믿는 이들’을 가리킨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는 모든 믿는 자들, 지금으로 말하면 평신도들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가 한 분 있다고 하면 그보다도 조금 더 작은 ‘나’라고 자기가 친히 기록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모든 믿는 사람보다도 제일 작은 자신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제 한 절만 더 기억해 보십시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는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에 ‘죄인의 괴수’라는 말이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는 모든 죄인보다 죄가 제일 많은,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지금 우리는 그분을 성자라고 그러는데, 그분 자신은 죄인의 괴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얼마나 겸손합니까?

    어떤 성서학자는 이러한 사실도 지적합니다. 이 편지들 중에 고린도전서가 제일 먼저 쓰여졌고, 그 다음에 기록된 편지가 에베소서요, 맨 마지막으로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쓴 것이 디모데전서인데, 이것들로 미루어 보아서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또 나이 많아갈수록 더욱 자기의 죄를 깨닫고, 더욱 겸손하여졌다고 지적합니다. 처음에는 ‘모든 사도 가운데 지금의 교역자 가운데 제일 작은 자’라고 이렇게 말하더니, 그 다음에는 ‘모든 교인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보다도 나는 더 작은 자’라고 하더니, 나이 좀더 많아가고 참 이러한 때에 이분은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제일 큰 죄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신앙에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겸손하여집니다. 사실 가을의 곡식밭을 보면, 알곡이 많이 맺힌 이삭일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알곡이 조금 달린 이삭은 고개를 조금 숙입니다. 그리고 알곡이 도무지 없는 가라지는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있습니다. 신령한 세계도 아마 그와 비슷할 거 같아요.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를 내려다보실 때 어떤 모습을 보실까 하고 혹 생각하는 것도 필요할 줄 압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자기의 약점과 자기의 허물을 알고 더욱 겸손하여져야 하겠습니다.



    겸손하신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온유와 겸손은 같이 갑니다. 겸손한 이는 다른 이들을 온유한 눈길로 봅니다. 허물이 있어도 가려주려고 합니다. 겸손한 이는 자기의 허물은 기억하나 남의 허물은 잊으려고 애씁니다. 겸손한 이는 참기를 힘씁니다. 오래 참으려고 힘씁니다. 혹 오해가 있어도 참습니다.

    겸손한 이들의 모임은 흔히 조용합니다. 싸움이 없습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려고 힘쓰는 까닭입니다. 겸손한 이들은 할 수 있는 대로 말을 적게 하려고 힘씁니다. 겸손하신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권면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개인이나 교회나 나라도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겸손하신 예수를 바라보는 오늘 아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겸손하신 주님, 주님께서는 친히 그 거룩한 손으로 더러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신령한 눈을 열어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우리도 겸손을 배우고 피차에 서로 따를 수 있는 이 은총까지 더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 하나하나가 주님의 겸손을 바라보고,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갈 때에 좀 괴로우나 좀 어려울 때도 많으나 주님의 발자취를 옳게 따라갈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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