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2:4-13/ 주의 징계 / 한경직 목사 2014-08-25 19:10:11 read : 1686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히브리서 12장 5절 하반절을 제가 다시 봉독합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이 요절은 구약 잠언 3장 11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잠언 3장에 본래 이 교훈이 있습니다. 여기에 ‘징계’란 말이 있습니다. 징계는 벌은 벌이지만 사랑이 포함된 벌입니다. 좋은 목적을 가진 벌입니다. 허물이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게 하는 벌입니다. 어진 아버지는 이러한 의미에서 그 자녀들을 징계합니다. 이웃집 아이들을 징계하지 아니합니다. 자기 아들들, 딸들을 징계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녀를 더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구원을 받은 그 자녀들을 징계하십니다.
잘 믿는 이들에게 징계가 없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인간이 아무리 잘 믿는다고 할지라도 때로는 실수를 합니다. 징계의 배후에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징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2장 7절과 8절에 그렇게 엄히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혹 징계가 내 자신 혹은 내 가정에 올 때에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요, 또 그 자녀같이 우리를 사랑하여 채찍을 더하시는 것입니다.
징계의 목적은 한마디로 말하면 ‘바로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도 때로는 바로 가지 않습니다. 전에 요나는 선지자의 명목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라고 하실 때에 순복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다가 하나님의 큰 채찍을 맞은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 옛날이나 오늘이나 우리 인간의 보통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사업을 하는 데도 바른길이 있건만, 그 길로 잘 가다가도 어떤 때에는 다른 길을 가다가 채찍을 맞을 수 있습니다. 가정생활에도 바른길을 분명히 보여주었건만, 어떤 이들은 딴 길로 가려고 하다가 채찍을 맞는 이들도 있습니다. 징계의 목적은 한마디로 바로 가라는 것입니다.
징계를 바로 받아야 합니다.
본문에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고 권면하십니다. 먼저 “경히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을 사실 징계하시고 싶어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가기를 바라며 참고 또 참으시다가 그리하여도 잘못된 길을 돌이키지 아니하므로 부득이 채찍을 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채찍을 드실 때에는 반드시 큰 고통이나 환난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징계하실 일이 별로 없는데 징계하시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징계하실 때에는 부득이 다른 길이 없기에 눈물을 머금고 그 아들과 딸들을 때로는 징계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모습으로 그 징계가 오든지 우리는 경(輕)히 여겨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는 것을 기억하고 엄숙하게 겸손히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받되, 분명히 뜻을 알고 불평하지 말고 징계를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때로는 자기의 죄는 생각지 아니하고, 부끄럽고 아픈 것만 생각하여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이는 그냥 두고 왜 내게만 이렇게 징계하는가? 오해를 하면서 오히려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징계를 바로 받아야 합니다. 어떤 이는 불평할 뿐더러 한 걸음 더 나아가 원망하며 반항하려고 하는 이들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징계는 더 무거워질 것입니다. 징계가 올 때에는 불평하지 말고 겸손히 받아야 그 징계가 축복이 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징계로 말미암아 상심하고 낙심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왜 내게만 이런 징계를 하시는가?” “내게 이제 무슨 소망이 있는가?” “나는 아주 버림을 받은 모양이야.” 이렇게 절망에 빠지는 이들도 혹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 아버지의 징계의 크신 뜻을 잊어버리는 데서 일어나는 잘못된 생각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에게만 징계를 하십니다. 꼭 유익하고 복이 되게 하기 위하여 징계를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징계의 크신 목적을 언제나 기억하고, 비록 부끄럽고 아프나 불평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고 겸손히 감사함으로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 자신을 스스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 자신이 그동안 나도 모르는 가운데 점점 시험에 드는 일이 없는가? 잘못된 길로 가는 데는 없는가? 죄를 범한 일은 없는가? 한마디로 요나처럼 잘못된 길로 가지는 않는가? 스스로 내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원하시는 그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옛날 요나가 딴 길로 가다가 깊은 물 속에 던지우고, 큰 물고기 배 속에서 통곡하며 회개한 것처럼 참으로 우리도 잘못된 길을 분명히 깨닫고 회개하며 그 방향을 돌이키며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먼지 많은 거리를 지나갈 때에 우리 발에 알지 못하는 중에 먼지가 묻는 것처럼 우리가 이 죄악 많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직업도 가지고, 일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기도 할 때에, 나도 모르는 새에 죄악이 우리 삶의 속에 침입할 때가 적지 아니합니다. 죄를 용납하기 쉽습니다. 여러 가지 핑계로 용납하기 쉽습니다. 깊이 살피지 아니하면 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중에 계명도 범하고 나쁜 습관도 형성되고 부지불식간에 죄악의 깊은 속에까지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때로 우리 자신을 살피며 돌이킬 것을 돌이키고, 떠날 곳을 떠나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회개하라고, 하나님은 채찍을 그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더하십니다. 채찍을 통하여 회개를 재촉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내 사랑하는 딸아, 그 자리에서 떠나라. 그 관계를 끊어버리라. 돌이키라. 방향 전환을 온전히 하여라.” 재촉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징계가 올 때에 지체하지 말고 겸손히 감사하며 돌이켜야 합니다.
옛날 글방에서 훈장이, 그 선생이 종종 학생들의 종아리를 때렸습니다. 초달을 했습니다. 그때 서당에 다니는 학생들 사이에 돌아가는 말이 있습디다. “초달을 당할 때에는 훈장 앞으로 가까이 갈수록 덜 아프다”는 말입니다. 사실 종아리 맞아본 이들은 잘 알 거예요. 채찍 끝으로 멀리 서서 맞게 되면 더 아픕니다. 선생 가까이 가면서 맞아야 맞아도 덜 아파요.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도 아마 그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징계가 올 때에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올수록 덜 아픕니다. 조금 아픕니다. 사실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오라고 징계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징계가 올 때에 기도도 더하고, 성경도 더 열심히 읽고, 예배 시간도 더 잘 지키며, 가까이 나오면 징계의 아픔도 곧 사라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왜 그 자녀들을 징계하시는가? 그 징계의 크신 목표를 다시 한번 분명히 성경의 교훈대로 생각하십시다.
본문 히브리서 12장 10절 하반절에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징계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고 더욱 깨끗하여져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십니다.
잠깐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동참케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성경에 분명히 가르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베드로전서 1장 16절을 읽어 보세요.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이 비록 약하고 죄를 범하기 쉬우나, 하나님의 징계를 통하여 우리의 삶이 점점 깨끗하여져서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에 우리도 참여하게 하십니다.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우리 믿는 이들은 사실 누구나 이러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 믿는 사람들을 ‘성도’ 곧 ‘거룩한 무리’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참 성도가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에 징계를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징계가 올 때에 불평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히 받아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보다 더 거룩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조금 내려가서 히브리서 12장 11절을 계속하여 읽어 보세요.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느니라” 자세히 들으세요. 징계를 통하여 연단을 받고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요한복음 15장 2절에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게 하시느니라” 여기에서 ‘깨끗게 한다’는 뜻은 쉽게 말하면 ‘전지(剪枝)’ 혹은 ‘전정(剪定)’을 한다는 뜻입니다. 가지를 잘라낸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과수원을 하는 이들이 열매를 많이 맺게 하기 위해서 쓸데없는 가지들을 잘라 버립니다. 물론 아픕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로 하여금 열매를 많이 맺히게 하기 위하여 쓸데없는 가지들을 잘라 버립니다. 이것이 징계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열매를 많이 맺는 그의 아들과 딸들이 되게 하기 위하여 징계를 통하여 쓸데없는 생각, 쓸데없는 말, 쓸데없는 행동, 온갖 쓸데없는 것들을 잘라 버리시고 깨끗게 하십니다.
한마디로 징계는 우리로 하여금 열매를 더 많이 맺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더하시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택함을 받은 모든 자녀들에게는 때때로 징계의 채찍이 가해집니다. 이 징계는 예고 없이 옵니다. 갑자기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 늘 스스로 살피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옳게 하고, 바른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매일의 반성과 회개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생활을 바로 하여야 합니다.
옛날, 여러 해 전입니다. 어떤 교우가 큰 시험에 빠졌다는 말을 듣고 제가 한번 심방을 갔더니 그분이 뻔뻔스럽게 저에게 이런 말을 합디다. “처음에 죄를 지을 때에는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괴롭더니 뭐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 후에 그 친구는 단단한 징계의 채찍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야 회개하였습니다. 채찍이 오기 전에 회개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징계가 더디 온다고 회개를 미루지 마십시다. 징계의 채찍은 갑자기 옵니다.
때로는 큰 죄를 범하여도 하나님의 징계가 내리지 않는 경우가 혹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말로 사실은 소망이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증거입니다. 이러한 이들에게는 성경 말씀대로 죄의 양이 찰 때까지 기다리다가 마지막에는 최후 멸망이 올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징계는 개인에게도 오고 가정에도 오고 때로는 교회에도 옵니다. 징계를 바로 받으면 전화위복이 됩니다. 축복이 됩니다. 선이 됩니다. 이러한 축복을 우리 모두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저희들은 택함을 받아서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지만 너무 약하고 이 세상은 험악하고 이러한 가운데서 때때로 그릇된 길로 가고, 아버지의 원치 않는 일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을 사랑하시므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저희들에게 징계를 더하십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이러한 징계가 우리에게 올 때 낙심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징계의 참뜻을 깨달아서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잘못된 길로 가던 것을 바로 돌이키고 주님께 돌아와서 이 모든 징계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져서 저희들에게는 축복이 되고 아버지께는 영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자신이나 내 가정이나 내 교회에 이러한 징계가 있는 것을 깊이 깨닫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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