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 한경직 목사 2014-08-25 18:58:47 read : 1397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듣는 대로 오늘 아침이 금년에 제일 추운 아침이라고 하는데, 여러분 이른 아침에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특별히 성가대원들이 일찍이 나와서 좋은 찬송을 들려주시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제 읽은 말씀 가운데서 여러분도 잘 아시는 요한복음 1장 1절, 또 그 다음에 14절을 다시 한 번 읽고 그 내용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오늘 읽은 이 말씀은 요한복음의 서문입니다. 시작하는 말입니다. 이 복음뿐 아니고, 다른 복음들 곧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소개하기 위해서 쓴 책들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러한 말씀으로 이 복음을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여기에서 ‘그리스도’를 ‘말씀’이란 말로 소개합니다. 얼른 듣기에 좀 이상하지만, 조금 생각하면 그 뜻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태초에’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여러분이 기억하시는 대로 창세기 1장 1절이 역시 같은 말 곧 ‘태초에’라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태초란 말은 물론 맨 처음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셨고, 또 1장 3절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셨는데, 여기에서 ‘가라사대’라는 말은 지금 한국말로 말하면 ‘말씀’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되’라는 말을 옛날은 ‘가라사대’ 이런 말로 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말씀은 그러니 태초부터 계셨고, 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의사 혹은 의지, 능력을 표현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태초로부터 하나님과 같이 계셨고, 또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당시는 헬라 문화 시대인데 당시 헬라의 많은 철학자들이 천지의 창조주인 하나님을 믿었고, 또 이 하나님은 ‘로고스’ 곧 번역하면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모든 일을 하신다고 그들도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로고스’란 말은 ‘말씀’이란 뜻도 있고, 혹은 ‘생각’, 혹은 ‘이성’이란 뜻도 있습니다. 사실 말씀은 생각의 표현입니다.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각은 조용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고, 말씀은 나타나는 생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생각이 곧 그 사람이란 성경 말씀도 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표시한 것은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생각이요, 곧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와 하나님은 하나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2장 6절에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곧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말로 기록하였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흔히 신학적으로 ‘성육(成肉)’ 즉 육을 이룬다고 하는 성육의 교리라고 합니다. 곧 말씀이 육신으로 화하였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는 본래 말씀이신데,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좀 이해하기 어려우나 이것이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또 여러분이 잘 아시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기록되었습니다.
모두 같은 진리를 가르칩니다. 본래 하나님의 본체시요, 독생자이시던 그리스도는 처녀의 몸을 통하여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곧 크리스마스의 깊은 뜻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거한다’는 뜻은 ‘장막을 치고 있다’고 하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기억하시는 대로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광야를 지나올 때에 어떤 곳에서나 그곳에 머물게 되면 모두 장막을 치고 있었는데, 그 중앙에는 하나님의 장막, 성막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 성막에 임재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인간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성막과 같이 인간 사회에 계셨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는 육신의 장막을 입으시고, 우리 인간 사회에 오셔서 우리와 같이 거하셨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베들레헴 마구간에 아기로 태어나신 후부터 애굽에 도피도 하셨고, 나사렛에서 장성하여 목수일도 하시며, 그리고 마지막에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까지 우리 인간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것은 큰 목적과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들에게 참된 삶을 친히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누가복음 2장 40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이것이 참 아기의 모습입니다. 모든 아기는 자라야 하고 곧 성장하여야 하고, 강하여져야 하고, 지혜가 충족해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참 아기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또 누가복음 2장 52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여기에 모든 유년기의 참된 모습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혜도 성장해야 합니다. 키만 성장하고 미련한 아이가 되면 곤란합니다. 또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을 받을 만한 어린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어린이들은 그리스도께서 어렸을 때의 그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일반 교육뿐 아니고 기독교 교육이 필요합니다. 사람에게만 칭찬을 받을 수 있게 체육이나 학문만 배워서는 아니 됩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삶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에는 다 수록되지 못하였으나 외경에는 예수의 유년시대에 대한 이야기도 많고, 예수님께서 어릴 때에 어떻게 어머니를 도왔다는 효도에 대한 이야기도 적지 아니합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순종하고 효도하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에서 목수 일을 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목수 일을 잘하였으며, 특별히 당시 말이나 소의 목에 메우는 멍에를 꼭 잘 맞게 만들었다는 이야기, 전설도 있습니다. 모든 근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부지런하고 정밀하고 꼭 바르게 일하는 법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올 때에, 곧 일을 시작할 때에는 먼저 다른 무리들과 같이 세례 요한에게 나와서 겸손히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것도 다 오고 오는 시대의 모든 젊은이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줍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에는 나오면서도 세례는 받지 않는 이들이 혹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 배웁시다. 좋은 모범은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는 꼭 회당에 가서 성경도 읽고 가르치기도 하시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옛날 안식일은 오늘의 주일입니다. 주일을 잘 지켰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좋은 모범을 또한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분주한 때에도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일찍이 미명에 산에 가서 기도한 때도 적지 아니합니다. 새벽기도의 좋은 모범도 보여주셨습니다. 또 예수께서는 어떤 때에는 밤새도록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철야기도의 모범도 남기신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는 대중에게 가르치신 것만은 아닙니다. 특별히 그 가운데 열두 제자 또는 70인을 특별히 뽑아 가르치시고 훈련하셨습니다. 이것은 지금 말로 하면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께서는 기회가 있는 대로 개인전도도 힘썼습니다. 천한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개인적으로 전도를 하셨고, 돈만 알던 삭개오에게도 친히 가서 가정에서 전도를 하였습니다. 대중 전도뿐 아니고, 개인 전도, 가정 전도의 모범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주린 자에게는 음식을 먹여 주었습니다. 심지어 오병이어의 기적도 주린 자를 먹이기 위하여 행하셨습니다. 또 병든 자는 만나는 이마다 친히 기도하여 주시고, 또는 손을 그 머리에 얹으시며 혹은 만지시면서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나 병을 고쳐주었다고 자랑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모든 자선사업, 의료사업에 모범도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어린아이들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영접하시고 그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복하셨습니다. 그는 어린아이들을 귀히 여기시고 천국에 있는 이들이 이 어린아이들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어린이들에 대한 태도와 책임이 어떠하다는 것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삶을 땅에 떨어지는 한 알의 밀알로 보셨습니다. 땅에 떨어지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을 아시고, 십자가가 기다리는 줄 아시면서도 담대히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셨습니다. 사명감과 충성의 모습을 또한 보여주셨습니다. 그는 우는 자들과 같이 우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 때에 주님도 같이 우셨습니다. 또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오실 때에 감람산 위에서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면서 눈물과 탄식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과연 애국자이시며, 애족자이시며,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간추려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최후로 십자가 위에서 인간은 어떻게 죽어야 한다는 모습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먼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용서하시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도 회개하는 강도의 영혼을 구원하였습니다. 또 외로운 자기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최후로 그의 영혼은 아버지께 부탁하였습니다. 인간이 살다가 어떻게 죽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죽는 모범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으시고 인간사회에서 일생을 사셨는데, 그 목적은 모든 인간들에게 참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최후로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는데 그 삶의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14절 하반절에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의 삶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는 그 육신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참 삶에는 영광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 친히 말씀하셨고, 또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향하여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다. 참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이 얼마나 고귀한 삶입니까? 참된 신앙생활은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또 그리스도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하였습니다. 본래 ‘은혜’란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거저 준다’ 혹은 ‘거저 받는다’는 뜻이고 또 하나는 ‘아름답다’고 하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주고 어떤 물건을 샀다고 하면 그것은 은혜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분이 귀한 물건을 돈을 받지 아니하고 거저 선물로 주면 그것은 은혜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상거래의 관계가 아니요, 모두 은혜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모든 것을 거저 주십니다. 천지만물도 거저 주셨고, 오곡백과도 거저 주셨습니다. 우리 생명도 거저 주셨고, 그리고 우리의 구주도 곧 그의 가장 귀한 독생자도 거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는 은혜가 충만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은혜의 계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저 주는 것도 이러한 계절에 좀 배워야 하겠습니다.
또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은혜’란 말은 ‘아름답다’는 뜻이 있습니다. 은혜스럽다고 하면 아름답다는 의미가 본래 헬라말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새벽별이라고 성경에는 기록한 데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름답고, 성품이 아름답고, 뜻이 아름답고, 그 삶이 아름답고, 그 죽음도 아름답고, 그 부활도 아름답습니다. 그리스도에게는 이렇게 은혜가 충만합니다.
또 그리스도에게는 진리가 충만합니다. 그리스도는 그 자체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에게는 추호의 거짓이 없습니다. 그는 그 삶을 통하여 참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참 인간의 삶을 보여주시고, 그의 죽음을 통하여 영원한 인간의 삶의 진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에게는 이렇게 진리가 충만합니다.
이 크리스마스 계절에 그리스도를 새롭게 바라봅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같이 계신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을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와 같이 계셨습니다. 최후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참된 삶의 영광을 같이 보여주셨습니다.
뜻 깊은 계절에 우리는 예수를 새롭게 바라보고, 우리도 예수와 같이 좀 살고, 예수의 하던 일을 계속하고, 예수를 따를 수 있는 이런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계절에 새롭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사오니 이 시간 우리의 아득한 눈을 열어서 신령하게 우리 주님의 모습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아기 때 어떻게 났던 것부터 십자가에서 일생을 마친 그 삶을 한번 다시 새롭게 바라보고, 이 귀한 삶을 우리에게도 주셨사온즉 이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이 삶을 꼭 주님과 같이 살 수 있도록 이 시간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특별히 크리스마스 계절에 주님을 본받아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이 은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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