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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딤후4:1-8/ 신앙생활과 스포츠 / 한경직 목사
    2014-08-24 21:34:28   read : 1657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4장 7절을 다시 봉독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여기에 사도 바울의 일생의 회고담이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한마디로 그분은 자기를 한 경기자로, 요샛말로 스포츠맨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싸움’이란 말은 전쟁마당의 싸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경기장에서의 싸움’을 의미합니다. ‘달려간다’는 말은 물론 ‘경주’를 의미하고, 믿음을 지킨다는 말도 릴레이 경주자들의 바톤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만이 아니고, 신앙생활을 한 경주로 생각한 것은 성경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립보서 3장 14절의 말씀이올시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브리서 12장 1절입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린도전서 9장 24절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는 이렇게도 권면하였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여기에서는 신앙생활을 씨름에 비유해서 교훈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습니다.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9장 26절의 말씀인데, 아마 이런 말씀은 권투를 생각하면서 기록하지 않았는가, 이렇게도 생각됩니다.

    또 고린도후서 4장 9절에는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한국 성경에 번역된 구절이 있는데, 어떤 영문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Knocked down but not knocked out.” 지금말로 하면 우리 믿는 이들이 혹 거꾸러뜨림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KO는, 권투에서는 KO 당하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까? KO는 당하지 않는다고 하는 뜻입니다. 다시 일어난다는 그 말입니다. ‘Knock out’이라는 말을 간단히 KO라고 보통 부릅니다.

    이렇게 성경은 신앙생활을 여러 가지 경기자로 비해서 교훈을 줍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모두 운동장의 한 경기자들인데, 금번 올림픽을 지켜보면서 배울 바를 또한 배워야 될 줄 생각합니다. 첫째로 경기자들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면 아주 주의할 것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절제하도록 힘씁니다.

    경기자들은 절제를 배워야 합니다. 성경 역시 우리들에게 절제를 하라고 교훈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린도전서 9장 25절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씀도 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린도전서 9장 27절의 말씀이올시다. 여기에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는 말은 절제를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을 옳게 하려면 때로는 이러한 엄한 절제 생활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온갖 시험을 이깁니다.

    모든 경기자는 체중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가집니다. 너무 뚱뚱해도 안 되고 너무 파리해도 안 되고, 꼭 자기가 맡은 경기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체중을 유지하려고 애씁니다. 그렇게 하려면 절제가 필요합니다. 식욕도 절제하여 너무 많이도 먹지 않습니다. 식욕뿐이 아닙니다. 모든 육체의 욕망, 혹은 정욕에 대하여도 철저하게 절제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이렇게 절제를 강조하는 것은 우리는 모두 신령한 경기자인 까닭입니다. 과식과 과음을 피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서는 기독교에서는 옛날부터 금주 단연을 강조합니다. 쓸데없는 거 먹지 말자고 하는 것입니다. 요새 신문에 보니 어떤 이들은 양담배 추방운동을 하는 모양입니다. 그것도 좋아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모든 담배 추방운동이 더 필요합니다.

    절제를 배워야 합니다. 요사이 우리 젊은이들 가운데는 절대로 입에 대서는 안 될 것들을 더러 대는 모양입니다. 가령 마약과 같은 것입니다. 사실, 이 마약문제는 지금 한국에 문제로 대두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미국과 같은 나라에는 이 청소년 가운데 마약문제로 말미암아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절제가 부족한 가운데서 이러한 현상이 생깁니다.

    절제가 없는 곳에는 사치, 음란, 방탕 등 온갖 범죄가 자생합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나를 위해서, 또 다른 이들을 위해서 이 절제 생활에 있어서 솔선수범하고 내 자신도 구원하고 모든 동포, 아니 온 세계를 구원하도록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경기자들의 삶을 가만히 보면 그들이 경기가 가까울수록 아주 힘쓰는 것이 있습니다. 훈련입니다. 연습입니다.

    모든 경기자들은 자신을 훈련합니다. 연습합니다. 성경에도 이러한 면에 대하여 엄히 가르쳐 줍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디모데전서 4장 7절과 8절에서 이와 같이 가르쳐 줍니다.

    아마 여러분께서 모두 태릉선수촌에 가 보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러나 아마 텔레비전을 통해서 연습을 하는 모습을 구경은 한 줄 생각합니다. 그곳에서 하는 일들은 한마디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피나는 연습을 반복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피나는 연습을 반복합니다. 경주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권투하는 사람이나 레슬링하는 사람이나 사격을 하는 사람이나 온갖 훈련을 계속합니다.

    성경은 우리 모든 믿는 이들에게 경건을 연습하라고 엄명합니다. 세상 경기자들은 육체를 훈련하지만 믿는 이들은 영혼을 훈련합니다. 경건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훈련합니다.

    여기에는 인내가 또한 필요합니다. 하기 싫으면 그만 두는 것이 아닙니다. 참고 견딜 줄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고 권면합니다. 좀 괴로우나 인내를 가지고 경건한 생활을 하도록 힘을 쓰는 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입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또 저녁마다 아무리 피곤해도 성경을 꼭 읽고 기도하고 자고, 주일을 거룩히 지켜서 반드시 교회에 나가 예배하고, 정성껏 바칠 것을 바치는 것은 모두 경건의 연습 혹은 훈련입니다. 어떤 때는 피곤해서 아마 여러분이 교회 나오는 것이 싫은 때도 없지 않아 있을 거예요. 그러나 나옵니다. 그것은 훈련입니다. 연습입니다.

    이렇게 반복하는 가운데 우리는 점점 더 경건한 생활에 들어가고 옳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생각과 말과 모든 행동도 자연히 성경의 말씀대로 따르게 됩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이 경건의 훈련을 게을리하지 아니하여야 마지막에 의의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이 경기자들에게서 배울 것은 준법정신이올시다. 법에 따라서 사는 정신입니다.

    모든 경기자는 법에 따라 경기를 합니다. 달음질도 하고 싸우기도 하여야 합니다. 권투나 씨름하는 것을 경기의 규칙을 모르는 분이 보면 그저 되는 대로 막 때리고 메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절대로 그런 게 아닙니다. 때릴 때 때려야 되고 법대로 씨름을 해야 됩니다. 권투하는 이들도 꼭 법을 따라서 싸웁니다. 씨름하는 이들도 그러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경기, 탁구니, 야구니, 농구니, 축구니, 무슨 경기든지 일정한 법 아래에서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경기자들에게는 준법정신이 꼭 필요합니다. 법대로 싸워 이겨야 금메달을 받습니다.

    성경도 이 원리를 모든 믿는 자들에게 분명히 가르칩니다.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한다”고 하는 말씀은 신앙생활도 법대로 하여야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구원은 믿음으로 얻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참 신앙의 생활을 하나님의 법 아래에서 살아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그 육신 생활은 하나님 지으신 자연법칙 아래에서 살아야 합니다. 자연법칙을 거스르면 내가 벌을 받습니다. 육신이 벌을 받습니다. 또 우리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일반 사회 생활은 언제나 성경과 양심을 따라서 주신 도덕의 법칙 아래에서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 더 밝히 사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항상 읽어야 합니다. 신앙의 경주자들은 이 성경이 교훈하는, 언제나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겸손과 온유와 성결과 정의의 모든 교훈을 따라서 우리는 살 줄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도 모두 이 세상에 살 때에는 국가의 한 국민입니다. 국민으로서 국가의 법을 준수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자유화, 민주화라는 말은 그저 제 맘에 드는 대로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국가의 법을 무시하고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민주국가일수록 준법정신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모든 불법한 언행을 삼가야 합니다. 모든 폭력을 삼가야 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이 세상에 살 때에 모두 특정한 교회에 속합니다. 교회의 일원 곧 교인으로서 교회의 법도 순종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은 법을 따라 옳게 사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나 사회나 국가 안에서도 준법정신의 본을 보여줄 책임이 우리 믿는 이들에게 있습니다.

    모든 경기자들은 법대로 달음질하며 법대로 싸워 이겨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경주자들도 법대로 달음질해서 승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꼭 배울 게 있습니다. 경기자들이 이렇게 절제도 하고 모든 준비를 다해서 훈련을 많이 쌓고 결국은 경기장에 나가게 되는데 경기장에 나가서 어떻게 싸웁니까? 물론 법대로 싸우면서 그저 한마디로 말하면 경기자는 경기장에 나가면 자기의 전정열을 다 바쳐 싸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달음질하는 사람들, 가령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한참 뛰다가 좀 피곤하면 앉아서 쉬는 사람 있습디까? 그렇지 않아요.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절제와 인내와 훈련을 통해서 쌓은 온 체력을 다 바쳐서 전적으로 온 정력을 다해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야 금메달을 땁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점에 대해서도 주의하고 꼭 배워야 할 줄 압니다. 내가 어떤 싸움을 하는가? 내가 어떻게 달음질을 하는가? 스스로 돌아봐 생각해 보세요.

    여기 바울이 친히 말씀했어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했는데, 내가 지금 현재 어떤 싸움을 싸우고 있는가? 싸우다가 곤해서 덜렁 주저앉은 일은 없습니까? 달려갈 길을 다 갔다고 했는데, 내가 어떻게 경기장에서 달리고 있습니까? 가다가 주저앉은 분은 없어요? 믿음을 지켰다고 했는데, 릴레이 운동하는 사람이 바톤을 잃어버린 것처럼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은 없어요?

    이미 신앙의 경주를 마친 허다한 간증자들, 신앙의 선배들이 오늘날 우리 한국에서 현재에 달리고 있는 우리들을 말하자면 하늘에서 내려다봅니다. 운동장에 모인 관중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허다한 증인들이, 이미 달음질을 마치고 하늘에 간 분들이 우리의 경주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세계 올림픽대회가 다음 토요일부터 이곳 서울에서 모이게 됩니다. 자연히 많은 세계 사람들이 이곳에 모이게 됩니다. 모이게 되면 여러 가지로 많이 살피게 될 겁니다. 한국 교회의 모습도 보게 될 겁니다.

    교회도 구경하러 올 겁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한국 교회의 모습을 자연히 보여드리게 되는데, 우리가 이 사실도 분명히 기억하고 책임 맡은 이들, 특별히 제직 여러분들은 책임을 바로 하도록 해서 우리 교회의 모습도 바로 보여줄 수 있도록 힘을 써야 할 거예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우리 주님이 부탁하셨는데, 이건 우리 개개인이 다 할 수는 없어요. 이대로 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금년은 온 천하가 말하자면 서울로 모이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도 힘써야 하겠고, 올림픽 전도협의회의 전도사업도 적극적으로 협력하여야 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부탁합니다. 우리가 다 이대로 해서 여기 앉으신 여러분들은 이다음에 금메달보다 더 귀한, 성경에 기록한 그대로 의의 면류관을 다 우리 주님께로부터 받으시는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을 운동경기자로 비해서 가르쳐 주신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다 싸우는 사람들이올시다. 우리는 다 달음질을 하는 사람들이올시다. 또 우리의 달음질은 과거에 모든 선배들이 이미 달음질을 마치고 우리의 달음질을 주목하여 보는 가운데 현재에 신앙의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시여! 아버지시여!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합니다. 간절히 빕니다. 여기 앉은 여러분 하나하나는 이 경기장의 경기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신앙의 경주를 바로 해서 우리 모두 이다음에 우리 주님께로부터 친히 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그때까지 온 정열을 다해서 경주할 수 있는 저희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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