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1-8/ 내 증인이 되리라 /한경직 목사 2014-08-24 21:30:58 read : 1732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몇 절을 다시 봉독합니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최종의 말씀이올시다. “내 증인이 되리라”
요사이 우리 사회에서 자주 들리는 말 가운데 하나는 증인이란 말입니다. TV를 통해서 국회 청문회에 나오는 증인들의 증언을 들은 이들도 우리 가운데 많이 있을 줄 생각합니다. 증인은 아무나 될 수는 없습니다. 어떠한 사건에 직접 참여한 이라야 증인의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오늘 본문에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들이요, 또 증언을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도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지금도 찬송을 부른 바와 같이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종종 우리는 이 찬송을 부르지만 사실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서 받은 증거가 많아야 증인이 될 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내 중심에 영접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참 신앙이 그 전제조건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과 같이 우리의 올바른 기도생활을 통하여 성령을 충만히 받을 때에 권능을 얻어서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도 오순절에 성령의 은사를 받은 후에 담대히 서서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사도들과 믿는 이들도 오순절 후에 모두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 믿는 이들은 모두 예수의 증인들입니다. 또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예수의 증인이 되려고 하면 이미 말씀드린 대로 참된 신앙의 체험과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받으면 자연히 우리는 모두 우리의 입을 통하여 예수를 증거할 수 있는 증인들이 될 것입니다. 곧 우리의 개인적인 권면과 증언으로써 복음을 전파할 수 있으며, 약한 자를 도우며 슬픈 자를 위로하며 유혹에 빠져 들어가는 이들을 권면하여 새로운 삶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거듭난 우리의 성품과 삶 자체를 통하여도 예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곧 우리의 성결한 생활, 성실한 책임의 수행, 친절과 사랑의 봉사, 용서와 협동의 생활 등을 통하여 예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본 교회에서 시무할 때에 학습 문답 자리에서 한번은 예수를 믿게 된 동기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한 청년은 대답하기를 본 교회에서 집사일 보던 어떤 분의 이름을 말하면서 그분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분이 직접 인도하였느냐고 물어보니 그 대답이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사업관계로 그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분은 자기에게는 없는 무엇을 가진 것을 발견을 하였는데, 그 후에 알고 보니 그는 크리스천이요, 또 영락교회의 집사라는 말을 들었노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집사는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그의 친절과 정직한 사업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어떤 분은 가정 생활을 통하여서도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단란하고 화평한 기독교 가정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직장 생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또한 됩니다.
성실, 근면, 충성, 협동정신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됩니다.
이렇게 참 신앙과 성령의 은사를 받은 이들은 입으로 전도를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 곧 가정생활, 직장생활, 사교생활 등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항상 평화롭지는 못합니다. 때로는 광풍이 불고 험한 파도로 뒤덮일 때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러한 때를 지나게 될 때에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도 큰 풍파가 뒤덮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믿는 이들 가운데는 큰 핍박을 받아서 곤란을 당하고 때로는 피를 흘려 생명을 바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피를 흘리며 생명을 바쳐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는 이들도 적지 아니합니다. 이러한 이들을 흔히 영어로는 ‘Martyr’라고 곧 ‘증언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순교자’라는 말을 씁니다. 곧 생명을 바쳐서 신앙을 증거하는 이들을 순교자라고 부릅니다.
오늘이 바로 성서주일이지만 이 성서 가운데는 순교자들이 적지 아니합니다. 일곱 집사 중에 하나인 스데반은 문자 그대로 예수를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곧 순교하였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야고보는 헤롯왕에게 생명을 잃어 순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이는 언제나 순교의 각오를 가지고 전도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리해서 그는 일찍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장 24절에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이러한 각오로 일생을 살던 사도 바울은 말씀 그대로 마지막에는 로마성 밖에서 참수를 당함으로 최후의 순교를 통해서 예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다만 그 기록은 신약에는 없습니다. 교회사에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 같은 이도 여러 곳에 다니면서 자유롭게 전도를 하였지만은, 최후에는 로마 성내 지금 베드로 성당이 건축되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순교한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아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된 배후에는 말과 생활로 그리스도를 증거할 뿐더러, 그 생명까지 바쳐서 증인이 된 순교자들로 말미암아 또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최후에 피를 흘려 순교자가 되기 전에 날마다 순교자의 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아마 그 뜻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하여 온갖 고난을 사양치 아니하였다는 말일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문자 그대로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지만 주를 증거하기 위하여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한 이들이 또한 많이 있습니다.
가령, 성 프란시스 같은 이는 본래 부잣집 아들이었으나 집을 나와서 일생을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과 고아들과 문둥이들을 위하여 봉사하며 살았습니다.
성 다미엔 같은 이는 자진해서 하와이 섬 가운데 문둥병자들만 모여 사는 곳에 들어가서 일생토록 그들을 봉사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살았습니다. 독일의 슈바이처 박사 같은 이는 본래 신학 교수였지만 다시 의학을 더 공부하고 멀리 아프리카에 가서 일생토록 흑인들의 병을 고쳐주며 그 일생을 마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도 이러한 이들이 적지 않은 줄 생각합니다. 부모 없는 고아들, 무의무탁한 노인들, 온갖 신체장애자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이들이 적지 아니합니다. 연말뿐 아니라 어느 때나 생활 자체를 통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예수님의 증인들이 우리 교회 안에는 많은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이들의 희생적인 증인 생활을 통해서 축복을 받고 또한 발전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종자’라고 유명한 교부 터툴리안이 일찍이 말씀하였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예수님의 증인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봉사하는 증인들, 그의 일상 생활에서 무언의 증언을 하는 수많은 증인들, 사회의 가장 불쌍한 이들과 장애자들을 묵묵히 봉사하는 증인들, 때로는 생명까지 즐겁게 바쳐 피를 흘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신자들로 말미암아 심어지고 자라고 확포(擴布)되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현재의 축복도 이러한 경건한 희생적인 증인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제일 처음으로 개신교 복음을 가지고 한국을 방문하였던 영국 스코틀랜드 토마스 목사도 대동강변에서 피를 흘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일찍이 일본에서 복음을 듣고 성경을 제일 먼저 번역한 이수정 선생도 본국에 돌아오자마자 참수를 당했습니다.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제하에 애국자운동을 하다가 또는 신사참배 문제로 피를 흘려 증인이 된 이들도 적지 아니합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본 교회 주광조 집사님의 선친이신 주기철 목사님을 비롯하여 여러 분들이 피를 흘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해방 후에 이북과 이남 그리고 공산당의 남침으로 6?25 사변으로 말미암아 피를 흘려 증인이 된 순교자들의 수는 오직 하나님만 아실 것입니다. 아직도 조사한 자료가 없습니다. 본 예배당 앞에도 순교자 김응락 장로의 기념비가 있습니다. 본 교회 백옥현 권사님의 남편으로 당시에 집사였던 김창화 집사는 서울 사범대학 부속학교 교정에서 총살을 당해서 피로 증인이 된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한국 교회도 순교자들의 피밭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잊지 아니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회에서는 인천에 첫 선교사를 위해서 기념비를 세우고, 양화진 외인묘지에는 기념예배당을 세웠지만, 지금 저 용인에 순교자 기념관을 짓는 중에 있습니다. 수개월 내에 완공될 줄 믿습니다.
금년도 다 지나갔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이제 10년이 지나면 주후 2,000년 곧 21세기가 시작됩니다. 여러분도 그러리라고 생각하지만 제게는 특별한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21세기가 되기 전에 우리 남한이 우선 복음화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들으니 약 1,000만의 개신교도가 있다고 하는데, 사실 우리가 힘써서 두 번만 배가운동을 하면 온전히 복음화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남북한이 물론 평화적으로 민주통일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또 지금 듣는 대로 북한에 교회 하나가 섰다고 하는데 머지않아서 10개, 100개, 1,000개, 10,000개쯤 교회가 서게 되면 아마 북한도 다 복음화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말로, 성품으로, 생활로, 부득이하면 생명을 바쳐서 증인이 된다고 하면 우리 민족의 복음화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기 최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너희는 내 증인이 되어라” 내 증인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됩시다. 내 삶을 통해서, 내 사업을 통해서, 내 가정생활을 통해서, 내 입을 열어서, 또 부득이한 때가 되면 생명이라도 바쳐서 예수님의 증인이 됩시다. 그렇게 되면 내가 나를 구원할 뿐더러 우리 온 민족을 구원하고 세계를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사랑으로 독생자를 보내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최후로 남기신 그 말씀, 너희들이 성령을 받으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마지막 말씀,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을 생각하였습니다. 아버지시여, 우리를 불러서 아버지의 자녀를 삼아주셨습니다.
삼아주신 저희들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말을 통해서 우리의 하는 일을 통해서 또 하나님 뜻이면 생명까지 바쳐서라도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는 이 축복을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해서 우리 남한은 물론 우리 북한 동포들이 다 구원을 얻고 온 세계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우리 한국 민족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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