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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12:12-27/몸과 그 지체 /한경직 목사
    2014-08-24 21:27:01   read : 1677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고린도전서 12장 12절을 다시 봉독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몸은 하나이나 지체는 여럿입니다. 여러 지체가 모여 한 몸을 이룹니다. 이러므로 몸과 지체들은 불가분리 곧, 서로 떠날 수 없고 동일한 운명에 처하여 동고동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몸 가운데는 분쟁이란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깊이 생각하면 교회와 교인들의 관계는 몸과 지체들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 국가와 국민들 간의 관계도 또한 그러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금 더 넓게 생각하면 회사와 회사원들 혹은 한 기업과 근로자들의 관계도 몸과 지체들 간의 관계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나 국가나 회사를 막론하고 범사에 대결이 아니고 협동이 삶의 원칙입니다. 이 시간 이 몸과 지체들 간의 관계를 생각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우리 하나하나를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갈라디아서 6장 5절에는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이렇게 가르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몸이 건전히 살려고 하면 눈은 눈의 책임을, 귀는 귀의 책임을, 입은 입의 책임을 다할 때에 그 몸은 건전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도 그러합니다.

    교역자는 교역자들의 책임을, 장로, 권사, 집사님들과 온 교우가 각자 그 책임을 바로 감당할 때에 교회는 건전하고 발전할 것입니다. 나라도 역시 그러합니다. 나라가 잘 되려면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회의원들, 국무위원들, 공무원들, 경찰, 군인, 일반 국민들까지 각각 자기 책임을 잘 감당하여야 그 나라가 발전하고 번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나라가 잘 되는 길은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란 말이 있습니다. 곧 임금은 임금 노릇을 잘해야 하고, 신하는 신하의 책임을 잘 감당해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책임을, 아들들은 아들들의 책임을 바로 지켜야 나라가 잘 되리라고 말하였습니다. 물론 회사나 공장도 그러합니다. 사장을 비롯하여 직공에 이르기까지 각각 자기의 책임을 바로 하고 충성되게 하여야 그 회사가 발전할 것입니다.

    둘째, 그런데 갈라디아서 6장 2절에는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권면합니다.

    짐을 서로 지는 것이 또한 몸과 지체의 원리입니다. 그 이유는 때로는 한두 지체가 병이 나든지 약하여져서 자기 짐을 질 수 없을 때가 혹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1절에는 이렇게도 가르쳐 줍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권면합니다. 또 이것이 몸과 지체가 살아가는 하나의 원칙입니다. 건강한 지체가 약한 지체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에서도 건강한 부모들이 약한 어린아기나 자녀들을 도와줍니다.

    교회나 사회가 잘 되려고 하면 이 원칙이 꼭 실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국민이 신체장애자들을 반드시 도와주어야 하고, 넉넉한 이들이 가난한 이웃을 반드시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 봉사의 원리를 깨달아 실천하는 교회, 실천하는 회사, 사회, 국가들은 축복을 받고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셋째, 고린도전서 7장 17절에는 또한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그리고 역시 고린도전서 14장 40절에는 이렇게도 가르쳐 줍니다.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여러분,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혹은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 하신 이 말씀들은 무슨 뜻입니까? 쉽게 말하면 눈은 눈이 되고 귀까지 되려고 하지 말라. 남자는 남자가 되고 여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고 하는 그 뜻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자연계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인간사회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이 천연질서를, 특별히 선천적인 천연질서를 존중히 하면서 모든 활동에 정의를 추구할 것이나 자기 분수를 지킬 줄 알라고 하는 뜻인 줄 생각합니다.

    성경에 보면 남자가 여자의 옷을 입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또 마찬가지로 여자가 남자의 옷도 입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천연질서를 존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에도, 교회에도, 사회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가령 근로자들이 얼마든지 협동조합이나 혹은 근로자조합을 조직해서 정의에 입각한 임금교섭은 할 수 있습니다. 해야지요. 그러나 그 회사의 사장까지 물러가라고 한다고 하면 그것은 도에 지나치는 행동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정당한 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총장선거나 학사운영까지 맡겠다고 한다면 이것은 깊이 생각하여야 할 문제입니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삼가야 할 일이 많지만, 누구나 명심해야 될 것은 질서를 존중히 여기고 과욕을, 욕심을 삼갈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욕심이 땅보다 더 두껍다.’고 하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속담이 있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도 경고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장 15절을 읽어 보세요. 꼭 그대로 됩니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질서를 존중하고 과욕을 삼가서 각각 분수에 맞게 사는 일입니다.

    넷째, 빌립보서 2장 5절 이하에는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여기에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면서 예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하면, 한마디로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이지만 자기를 비어 낮추어서 사람이 되었고, 십자가에까지 달려서 만민의 죄를 사하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피차에 겸손해야 가정도 화평하고, 교회도 화평하고, 회사도 화평하고, 나라와 사회도 화평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이미 다 여러 번 들으신 줄 생각하지만, 옛날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번은 염소 두 놈이 강을 마주 건너오다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서로 싸우면 모두 강에 떨어져서 죽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두 놈이 서로 물러가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사실 염소는 외나무다리에서 뒤로 물러갈 수 없는 짐승이라고 합니다. 그런 환경에서 염소 두 놈 가운데 한 놈이 먼저 엎드려서, 겸손히 엎드려서 다른 염소로 하여금 자기의 등을 짚고 건너가게 함으로써 두 놈이 같이 살아났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되는 일들을 보면 대결이 너무 많습니다. 여야의 대결, 노사 간의 대결, 학교 당국과 학생 간의 대결 등 모두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두 염소처럼 되었습니다. 실로 답답합니다.

    오늘의 한국의 문제는 대결로 해결할 것이 못되고 피차에 몸과 지체의 관계를 재인식하고 화해와 협동의 길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전체를 살리려고 하는 새로운 결심과 노력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되겠습니다.

    한국의 현실은 실로 우려됩니다. 우리 사회의 실정은 너무나 혼란과 혼돈에 빠져 거의 무법상태가 되어 갑니다. 도처에 불법 폭력, 폭행, 화염병 시위, 분규, 재산파괴, 그리고 각종 흉악범과 살인강도, 인신공격, 인신매매, 횡령, 절도 등 온갖 범죄로 양민이 마음 놓고 살아 갈 수 없을 만한 상태로 점점 변하여 갑니다.

    우리 민족은 누구나 새로운 각성을 해야 할 때입니다. 법과 질서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학원문제나 노사 분규도 하루빨리 해결을 하도록 피차 필사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세계 모든 민주 국가들이 평화로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생활을 하여 가는데, 왜 이 땅에서만 혼란한 상태가 그치지 아니합니까?

    우리 국민 모두가 몸과 그 지체의 원리를 깊이 깨달아서 우선 질서를 회복하고, 무슨 문제를 당하든지 오직 이성과 화해의 정신으로 모든 것을 빨리 해결하도록 각자 새로운 결의를 하여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이러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중요한 한 가지 원인이 있다고 하는 사실도 직시하여야 합니다. 곧 38선입니다. 38선이 무너지고 민족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누구나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정부도 소위 북방정책을 선포하였습니다. 남북 간에도 대결이 아니라 대화와 협조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자는 선의의 제안입니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정부차원에서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중구난방이란 말이 있거니와 국민 모두가 서로 대표로 나서면 무엇이 될 것입니까?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은 이러한 시대에 오히려 북한의 적화통일 정책의 음모에 휘말려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 통일은 간절히 원하지만 어떤 통일이든지 선하다고 하게 되면 큰 과오에 빠지게 됩니다. 모든 통일이 선하다면 적화통일도 괜찮다는 말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순하기는 비둘기같이 하지만 지혜는 뱀과 같이 하라고 경계하였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통일은 오직 자유 민주주의를 중심한 통일뿐입니다.

    신문을 보니 미국의 한 고관이 소련을 향하여 이제부터는 소련이 중남미에 쓰레기 사상과 쓰레기 군수품을 보내지 말라고 하였습디다. 쓰레기란 쓰다가 쓸데없어 내버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사상을 과거 40여 년간 실험하여 보다가 이 제도로는 도저히 모든 문제, 특별히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지금은 동구제국에서, 그리고 소련까지도 내어버리는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북한만은 이 쓰레기 사상에 대한 태도가 조금도 변함이 없고,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 남한에서 도리어 이 쓰레기 사상에 감염되는 분자들이 더러 있는 듯하니 실로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쓰레기 사상에 감염되어 오히려 이 한국을 해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하고 이런 분자들을 경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믿는 이들을 향해서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때에 우리 기독신자들의 책임이 중하지 아니하리오마는, 이때야말로 우리의 책임이 큽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새롭게 하여 사상적으로,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혼란에 빠지는 이러한 사회에서 우선 내 생활을 바르게 하고, 어디서나 빛을 밝혀서 이 혼란한 사회를 밝히고, 혼미한 이 무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여 우리나라를 굳게 지키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민족 전체를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횃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같이 계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지금 저희들이 몸과 지체의 진리를 잠깐 묵상하였습니다. 우리는 다 한 몸에 속하는 지체입니다. 한 나라에 속하는 지체요 한 회사에 속하는 지체요 한 교회에 속하는 지체입니다. 몸과 지체는 서로 떠날 수 없습니다. 운명을 같이 합니다.

    그러므로 몸과 지체의 살아가는 원리는 대결이 아니고 화해와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 온유와 겸손의 원칙인 것을 저희들이 깨닫고 저희들뿐만 아니고 우리 온 국민들이 이점을 깨달아서 이 난국을 무사히 돌파해 나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우들은 먼저 이 원칙이 우리 교회 안에서 잘 실현이 될 수 있도록 내 책임을 바로 감당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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