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9:1-7/ 인생항로와 봉사 / 한경직 목사 2014-08-24 20:31:03 read : 1295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미 읽은 요한복음 9장 첫절을 다시 봉독합니다.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이 묻기를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님은 대답하였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은 소경의 불행한 일을 과거에서 혹은 운명적인 견지에서 설명하려고 하였으나, 예수님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곧 예수님은 불행을 당한 이들을 볼 때에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곧 봉사의 견지에서 보신 것입니다. 오늘 이 간단한 사실을 통하여 이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당한 일입니다. 문자 그대로 우리 인간은 길을 가는 나그네입니다. 누구나 길을 갑니다. 쉬지 않습니다. 하루, 한 달, 한 해, 그리고 일생을 지나갑니다. 어느덧 어린이들이 학생이 되고, 청년이 되며,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됩니다. 그리고는 죽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서도 길을 갑니다. 마치 자동차를 탄 것과 같습니다. 기차 혹은 비행기를 탄 것과 같습니다. 빠르게 갑니다. 그리고는 누구나 죽습니다. 영원한 세계로 갑니다. 둘째, 인간은 길 가는 동안에 여러 다른 사람들을 또한 길가에서 만납니다. 특별히 나보다 더 불행한 이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당시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께 물었습니다.
저 소경이 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는데 누구의 죄 때문일까요? 자기의 죄 때문일까요? 혹은 부모들의 죄 때문일까요? 다시 말하면 제자들은 운명적 견지에서 불행을 당한 소경의 문제를 해결하여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태도는 온전히 달랐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그러한 불행한 이들을 잘 봉사하여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셋째, 그리고 주님은 계속하여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때가 아직 낮임에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인생행로에 밤이 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낮에 일을 하여야 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사실 인생행로에도 밤이 옵니다.
때로는 질고의 밤이 있습니다. 실패의 밤이 혹 있습니다. 노년의 밤이 반드시 옵니다. 일은 낮에 하여야 합니다. 젊었을 때에 하여야 합니다. 건강할 때에 하여야 합니다. 사업도 잘 될 때에 하여야 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에 기회를 포착해서 하여야 합니다.
얼마 전에 한국기독교선명회 창립 기념예배를 보았지만 여러분이 잘 아시는 미국의 피어스 박사라고 하시는 분은 1950년 봄에 한국에 전도 집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나오셨다가 그 후 6?25 전쟁의 발발을 친히 보고, 문자 그대로 그 마음이 깨어져, 다시 말하면 너무 상심되어서 피난민 구호와 많은 고아, 과부, 노인 등 많은 이들을 구호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면서 기독교선명회를 창립하였습니다.
한국의 불행한 동포들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불행한 이들의 참상을 보고 본 선명회를 통하여, 사실 제가 알기에 그 당시에는 세계 어느 누구보다도 큰 봉사를 하고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인생행로에 불행한 길손들을 만나 아마 누구보다도 제일 많이 봉사하고 가신 분이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인생행로를 걸어가노라고 하면 우리는 종종 불행한 이들을 만납니다.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이들을 대하고 이들을 도와줍니까? 지금은 세계적으로 신체 장애자들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때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선천적으로 혹은 후천적으로, 정신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남과 같지 못한 장애자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눈으로 이들을 보며 또 얼마나 이들을 도우려고 힘을 씁니까?
넷째, 성경은 지적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지적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예수님의 모든 봉사의 역사는 그 남기신 신령한 몸 곧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지금도 이 역사 속에서 길을 가시며 여러 가지 일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아시는 대로 예수님의 신령한 몸인 교회를 통하여 전도, 영적 봉사를 합니다. 교육, 지적 봉사를 합니다. 온갖 복지 봉사를 계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역사 속에서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본 영락교회는 1945년 말엽에 건립되어 지금까지 지나옵니다.
초창기에는 무엇보다도 피난민들을 봉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산당의 압박으로 모든 소유를 빼앗기고 적수공권으로 살 길을 찾아 이남으로 피난하여 오는 교우들을, 본 교회로서는 먼저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계신 분은 기억하시는 바와 같이 그때에는 본 교회 구내에도 근 30세대의 피난 교우들이 같이 살았습니다.
아무래도 본 교회 구내는 너무 좁으므로 당시 빈터로 남아 있던 현재 YWCA 뒤에 있는 공지를 얻고 천막을 군대에서 얻어다가 약 130세대가 항상 거주할 수 있는 천막촌을 건설하였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석 달만 있고 자기 처소를 구하라고 부탁했지만 그대로 꼭 되지는 못했습니다. 본 교회는 건립 초기에는 이처럼 피난민 구호에 전력을 쏟았습니다.
몇 달 전 시내의 한 유력한 교역자가 남한산성에 와서 저와 인사를 하면서 바로 떠나기 직전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제가 어디서 낳은 지는 기억하지 못하시지요? 제가 영락교회에서 친 천막에서 났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초기에도 듣지 못하는 교우들이 상당히 많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영락 농아인 교회를 특별히 설립하고 본 교회 구내에서 따로 수화로 예배를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농아인 교회가 몇 해 전 서대문 안에 있는 한 예배당을 사서 지금은 유일한, 아마 전국에 유일한 영락 농아인 교회가 설립된 것도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또 가난한 교우들이 가정 안에서 불행하게도 먼저 세상을 떠나는 교우들을 돕기 위해서 아마 본 교회에서 제일 먼저 교회 묘지를 준비한 것도 여러분 모두 기억하시는 일입니다.
묘지뿐이 아닙니다. 피난민 교우들의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대광 중고등학교를 세웠고, 그 후에 보성여자 중고등학교를, 본래는 선천에 있었으나 이곳에서 재건하게끔 하였습니다. 지금 일부 대학생들의 행동으로 온 사회의 물의를 빚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 상도동에 재건된 숭실대학교도 본 교회 구내에서 설립이 되어서 4년간이나 육성한 후에 지금의 상도동으로 나간 것도 아마 기억하시는 분들이 더러 계실 것입니다.
바로 지지난 주간에 본인이 영락 중고등학교 창립 39주년 기념예배에 참여하고 모든 설비가 구비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였지만, 사실 영락 중고등학교는 본래 6?25 당시에 피난아동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본 교회에서 경영한 성경구락부가 지금은 발전해서 모든 설비를 구비한 영락 중고등학교로 발전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억하시는 대로, 본 교회 안에는 여러 자선사업 기관이 있습니다. 가령 무의무탁한 고아들을 수용하는 보린원, 무의무탁한 노인들을 보호하는 영락 경로원, 그리고 불행하게도 젊어서 외롭게 된 미망인들을 보호하는 영락 모자원, 그리고 최근에 된 일이지만 감사한 것은 본 교회 한 권사님이 장애자들을 위한 기관을 설립하여 달라고 약 30억 가치의 집 한 채를 영락복지재단에 기부하였습니다.
아마 오래지 않아서 좋은 장애자 센터가 설립될 줄 믿습니다. 이 모든 노력은 부족하나마 주님의 몸 된 영락교회가 이 파고 높은 역사 속을 지나가면서 주님의 남기신 일을 조금이라도 계속하고자 하는 중심에서 생기게 된 일입니다. 그리고 본 교회 남녀 전도회를 통해서 제일 먼저 인천에 제일 장로교회를 세우고, 그 후에 전한국을 통해서 세워진 교회의 수는 아마 분명히는 하나님께서만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시대는 변합니다. 역사도 변합니다. 본 교회가 창립된 지 40여 년이 되었습니다. 오래지 아니하여 50주년을 맞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이 남한도 과거 40여 년간 역사의 파고는 높았지만, 그러나 그동안 여러 가지 면으로 교회도 발전했고, 경제도 크게 발전하였으며, 지금은 서울거리의 생활양식이 상당히 변하여졌습니다.
신문을 보니 한국의 GNP가 세계 15위라고 지적합디다. 지금은 아마 많은 교우들도 아파트에 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거리에는 자동차가 너무 많아 골칫거리가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 이러한 사회 속에서 예수님의 몸이 된 교회의 새로운 사명이 무엇일까? 아마 이러한 생각 가운데서 50주년 기념사업도 구상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어른들이 모이는 대예배당 안에서 몇십 분에 불과하는 주일학교 성경교훈으로써 주일학교 교육이 넉넉한가? 30여 년 전에 건립된 기도원이 오늘의 자라나는 중고등학생들에게 적절한 세미나 장소가 될 것인가? 대학은 많이 설립되었으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제일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계층은 소위 대학생들이 아닌가?
대학은 보내면서도 중심으로 염려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은 사회가 되었으니 어떻게 하여야 대학생들을 바로 지도할까? 이러한 등등의 새로운 문제가 한국 사회와 특별히 교회의 문제로 등장하게 된 듯싶습니다. 아마 이러한 염려로 뜻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구상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몸 된 영락교회가 이러한 시대 속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아마 이러한 염려와 구상 가운데서 50주년을 맞는 사업으로서 교육관 신축, 기도원 개축, 주차장 설비, 장래 지도자를 위한 학사 등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본 영락교회가 마땅히 할 일들을 구상하는 듯싶습니다.
성령께서 본 교회를 친히 지도하시어 이 시대 한국의 거리를 지나가는 주님의 심정을 표현하는 모든 사업들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이러한 큰일을 이룩함에는 온 교회가 합심하여 협력하는 일일 것이며, 또 온 교우가 각각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솔선수범하는 데 있지 아니한가 생각합니다. 밤이 오기 전에 일하라고 주님은 경계하십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지금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이 현실 속 역사의 길을 지나가면서 마땅히 하시기 원하는 일이 무엇일까? 이런 문제를 생각하였습니다. 아버지시여, 주님은 언제나 무슨 문제를 당하든지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를 이루어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낮이 될 때에 일하라는 모범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아버지시여, 오늘의 역사 속을 걸어가는 이 영락교회가 오늘에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듣고 이대로 순종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로 길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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