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4:15-23/ 하나님 나라 / 한경직 목사 2014-08-23 20:11:26 read : 1486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느 四․十八)
예루살렘 성을 재건할 때에 그 광경을 가장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구절인 줄 생각합니다. 느헤미야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대략 아실 줄 생각합니다. 느헤미야는 일찍이 큰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 멀리 바벨론으로 잡혀간 포로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후에 그는 파사 궁전 높은 고관의 직위에까지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것은 물론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요, 둘째는 그의 인격과 그의 재능과 그의 노력의 결정인 줄 생각합니다. 그리해서 그의 생활은 이국에 있지만 비교적 안일한 생활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는 자기의 고국인 예루살렘에서 하나니라고 하는 분과 몇 사람이 같이 와서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동포의 정황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그 때에 남아 있는 사람은 큰 환난에 빠졌고 사방 많은 민족들에게 능욕을 받는 중에 있었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毁破)된 그대로 있다고 하는 참상의 말씀을 그대로 들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말을 듣고 느헤미야는 크게 울었다고 하였습니다. 금식하며 기도를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말할 수 없는 슬픔은 그의 얼굴에까지 나타나서 그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왕 앞에서 시중을 들 때에도 얼굴에 수심이 있었던 것이 보여진 모양입니다. 그리해서 그 왕은 이상하게 생각해서 어디 불편한 데가 있느냐고 물어 본 것입니다.
그때에 느헤미아는 솔직히 대답했습니다. 불편한 것이 아니고 나의 열조(烈祖)의 모실(墓室)이 있는 성읍(城邑)이 황폐하였다고 하는 이런 소식을 들을 때 제 마음이 상해서 그렇다는 말씀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때에 왕은 그 말씀을 깊이 들으시고 그러면 자네가 무슨 일을 하기를 원하느냐고 물어 볼 때에 그는 성경에 기록한 대로 곧 하나님께 묵도를 하고 왕에게 아뢴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왕께서 원하시면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서 이 황폐한 예루살렘 성을 다시 쌓을 수 있게 하여 달라고 하는 간절한 부탁을 한 것입니다. 왕은 쾌히 허락을 했고 조서를 내려서 느헤미야로 하여금 고국에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을 쌓으라고 하는 명령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돌아왔고 돌아와서는 즉시 그 때 지도자들을 한 자리에 청해 놓고 우리가 예루살렘 성을 중건해서 다시는 수치를 받지 말자고 하는 말을 할 때에 모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다 일어나서 건축하자고 하는 결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예루살렘 재건을 시작하였는데 옛날 속담에 「호사다마」 란 말처럼 좋은 일에는 마귀가 많다고 하는 말처럼 그 당시 호론 사람 산발낫, 아몬 사람 도비야 등이 중심 한 외국 사람들은 이 일을 시기해서 여러 가지로 비방을 하고 조소를 하고 멸시를 하며 왜곡 선전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당신들이 성을 쌓는 의도가 어디에 있느냐고, 왕을 배반하려고 하는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하며 혹은 비웃기를 이 사람들이 성 쌓은 것을 보니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질 것이라고 방해만 할 뿐더러 적극적으로 이들을 습격하자고 하는 음모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해서 그때부터 부득이 느헤미야는 절반은 역사를 하게 하고 절반은 무장을 하고 방비를 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한 손으로는 일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칼을 차고 건축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에 예루살렘 성의 준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역사는 이상스럽게 반복이 됩니다. 그로부터 약 二천五백여 년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팔레스틴에 가보면 거기에 신생 나라 이스라엘이 꼭 二천五백여 년 전 자기의 조상들이 당했던 경우와 같은 환경에 나라를 건설 중에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도 사방에 둘려 싸여 있는 아랍 사람들과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자기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눈부신 활동을 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산에 나무를 심고 요단강 물을 관개(灌漑)해서 토지를 개척하고 공장을 건설하며 도시를 건설하는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먼 이스라엘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의 모습이 이러하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에서도 역시 싸움은 계속이 됩니다. 삼팔선에서도 계속이 됩니다. 해안선에서도 계속이 됩니다. 멀리 월남에 가서 싸우는 우리 장병들이 있지마는 전선은 같은 전선입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내적으로 건설을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합니다.
아마 세게 어는 나라보다도 개발과 건설에 바쁜 모습은 우리 한국에 와야 볼 줄로 생각을 합니다. 서울을 방문한 외국 사람들이 흔히 한국에 와서 보고 일하는 서울 사람들이라고, 건설하는 한국이라고, 이런 인상을 가지고 간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편에는 방비, 한 편에는 건설하는 중에 있습니다. 여의도 개발을 비롯해서 각 곳 공장도 건설할 수밖에 없고 고속도로도 만들 수밖에 없고 건물도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방비와 건설을 우리도 국가적으로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좀 깊이 생각하면 세상 나라뿐이 아닙니다. 크게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도 이 두 가지 권면이 있습니다. 한편에 방비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편에 건설이 있어야 합니다.
작게는 내 개인의 건설 혹은 내 기독교 가정의 건설도 역시 이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한편에 방비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편에는 건설의 면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리해서 성경에서 언제든지 두 가지 면을 항상 힘쓰기 위한 권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甲冑)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방비를 의미합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였습니다. 마귀의 궤계(詭計)를 대적하라고 하였습니다. 역시 방비를 의미합니다. 깨어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역시 방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는 일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들아,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낮이 될 때 반드시 일하라. 밤이 되면 일할 수 없다고 하는 경고의 말씀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경고를 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어 주를 섬기라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성경은 언제나 이 방비와 건설의 두 가지 면을 우리에게 권고하는 것입니다.
넓은 의미 좁은 의미 깊은 의미에서 우리는 다 예루살렘 성을 쌓는 사람들이올시다. 예루살렘 성을 어떻게 느헤미야와 그 당시의 사람들이 준공할 수 있었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면서 오늘날 우리 실제 생활에 필요한 교훈을 몇 기지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는 이들에게는 애국심이 있었습니다. 혹은 애국심,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이 있었습니다. 온 민족이 다 같이 남에게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고 살기 위해서 우리는 예루살렘 성을 쌓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아에게도 이런 사랑이 있었고 백성의 마음속에도 이런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 애국심은 느헤미야로 하여금 예루살렘의 참상을 들을 때에 눈물을 흘리게 하였습니다. 수심에 잠기게 하였습니다. 밤잠을 이룰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결국 불타는 느헤미야의 가슴속에 애국심이 그냥 안일한 수산궁에 있을 수가 없게 했습니다. 그곳을 떠났습니다. 고국을 향하여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험악한 사막 길을 건널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산 준령을 넘고 장단 대하를 건널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느헤미야의 애국심은 그로 하여금 자기의 안일을 희생하게 만들었습니다. 자기의 시간도 희생하였습니다. 자기의 재산도 희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에 돌아와서 고생하는 대중과 운명을 같이 하였습니다. 같이 수고했습니다. 같이 땀을 흘렸습니다.
이 민족을 사랑하여 다 같이 살기 위하여 자기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이 마음이 결국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게 만든 것입니다. 오늘날 서울을 볼 것이면 서울 장안에서 이곳 저곳 고층 건물이 올라갑니다. 서울 주변에 가 볼 것이면 고급 주택이 많이 건축되는 것을 봅니다. 물론 대단히 경하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깊이 생각할 것은 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이 저 산꼭대기 판잣집에서 살며 혹은 무허가 주택에서 살다가 쫓겨나서 있을 곳을 찾지 못하고 허둥지둥 하는 이 대중에 대해서 같이 살며 이들과 같이 수고하겠다고 하는 마음이 얼마나 잇느냐?
결국은 여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전에 신문을 보니까 미국에서 한국에 나와 일하는 젊은 사람들 평화 봉사단원이 있는데, 피스코라 합니다. 그 봉사단원 한 사람이 경마장에 가서 경마 하는 것을 구경하고서 신문에 글을 써서 보냈습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경마장에 경기를 즐기는 한국의 부유층 계급이 상당히 많지만 이 부유층 계급들이 아직도 빈곤 가운데 허덕이는 대중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려는 생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참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에도 경제가 점점 발전됨에 따라서 물론 외국이 다 그러니까 한국에도 컨트리클럽도 생기고 아주 값비싼 운동 경기인 골프를 배우고 그런 것을 즐기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진다고 하는 말이 들립니다.
물론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요컨대 이만큼 특별한 부유층에 있는 이들이 굶주리고 헐벗고 심지어 집단 자살을 할 수밖에 없는 이런 동포들에 대해서 얼마나 같이 살고자 하는 동포애를 발휘합니까?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애국심은 자기자신을 희생함으로 나타났습니다. 자기 자신의 안일을 희생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시간을 희생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재산을 희생했습니다. 자기 희생의 애국심이 결국은 예루살렘을 재건한 것입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 희생의 애국심만이 우리 한국도 바로 건설할 수 있다고 하는 이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둘째는 이 예루살렘 성을 재건한 중요한 요소 가운데 또 하나는 느헤미야의 신앙심이올시다. 좋은 일에는 언제나 방해자가 나타납니다. 이 세상에는 언제나 악의 세력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신앙으로써 이 모든 것을 극복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 공사를 방해하기 위해서 습격한다는 말을 듣고 느헤미야가 여러 사람들을 모아 놓고서 부르짖은 말씀이 이 말씀이올시다.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 우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신다."
그의 신앙은 철저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여,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명령을 지키는 자의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 하나이다." 하나님께 간구 했습니다.
왕에 대답할 때 먼저 하나님께 묵도를 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이 습격하는 음모를 듣고도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파숫군을 세웠다고 기록했습니다. 조국을 위하여 싸울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신했습니다.
반드시 성공할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 믿음이 용기를 주었고 담대하게 만들었고 어떠한 역경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게 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시편 一 二七편 一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警醒)함이 허사로다."
하나님의 도와주실 때에만 무슨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었습니다. 사실이올시다. 집을 짓는 것이나 성을 쌓는 것이나 나라를 세우는 것이나 천국을 건설하는 것이 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때에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옛날 동양 사람들도 「모사는 재인」 이나 「성사는 재천」 이라,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에 있다. 이 믿음이 예루살렘 성을 재건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이런 애국심과 신앙의 터전 위에 두 가지를 병행했습니다. 한편에는 방비, 한편에는 일, 그래서 파수꾼을 세워서 밤낮 파수를 보게 했습니다. 갑옷을 입고 활과 창과 방패를 가지고 무장을 하고 일을 하게 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적을 방비하는 데 필요합니다.
개어 있는 것, 무장하는 것, 암만 깨어 있어도 무장을 잘못하면 적을 방어할 수 없어요, 또 아무리 무장을 잘했다고 할지라도 깨어 있지 못하고 조는 군대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깨어 있고 무장을 하고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항상 깨라는 말을 많이 봅니다.
깨어 기도하여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띠를 띠라고, 의의 흉패(胸牌)를 붙이라고,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느혜미야는 외적만 방비한 것은 아닙니다. 안에 있는 적도 또한 방비했습니다. 시간이 없어 다 읽지 못했지마는 느혜미야 五장을 볼 것이면 하루아침에 분주히 일하는 중에 많은 사람들과 여자들도 밀려와서 느혜미야에게 호소를 합니다.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살집이 없습니다. 우리의 집 모두 전당 잡혀 먹었습니다. 우리의 토지 다 전당 잡혀 먹었습니다. 이자도 물었습니다. 이제 이자 물 것이 없으니까 돈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딸들을 데려 다가 종으로 팔아먹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집도 없어지고 토지도 다 없어졌는데 어떻게 성을 쌓겠습니까?
이 말을 들을 때 느헤미야는 노했습니다. 너 이스라엘 우리 한 종족이 가난한 사람을 이렇게 학대할 수가 잇느냐? 이렇게 높은 이자를 받을 수가 잇느냐? 돈을 내지 못한다고 남의 딸을 데려다가 같은 종족으로서 종으로 팔 수가 있겠느냐?
빚을 탕감해 주고 이자를 받지 말라. 요즈음 말로 말하면 부정을 막고 불의와 착취를 막고 사회 정의를 구현한 것이다. 이것을 막았습니다. 이것 막지 못했으면 성 쌓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이 예루살렘 성을 쌓는 중에 잇습니다. 물론 외적을 막아야 합니다. 총이 필요하고 모든 무기가 필요합니다. 그것만 막아서 됩니까? 내 적을 막아야 합니다.
부패와 부정을 막아야 합니다. 불의와 착취를 막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사회 정의가 구현되어야 합니다. 고층 건물이 올라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임금이 얼마나 올라갔습니까? 농민들의 생활 수준이 얼마나 올라갔습니까? 이것을 막아야 합니다. 안으로의 적을 박멸해야 합니다.
여러분 보세요! 이렇게 느헤미야가 밖의 대적을 수비하고 안의 이 부패를 다 없이하니까 습격을 하려고 하던 이 사람들이 감히 침노를 못했습니다. 평안히 일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꼭 그렇습니다.
우리가 외적을 잘 방비를 하고 우리가 내정을 잘해서 사회정의가 구현되면 우리가 이런 사회를 이룩하면 외적이 침입 못합니다. 사실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은 이길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바깥 원수와 안의 원수를 막으면서 열심히 일해야겠습니다. 여기에 보니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일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아마 노동법이 없던 모양입니다. 여기에 보니 "내가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자들이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 밤에도 옷을 벗고 자지 않고, 일했다고 했습니다. 이것 보니 지도자들이 먼저 솔선수범 했습니다.
내가 들으니 서울 시장을 비롯해서 오늘날 서울 시정을 맡은이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온 서울시를 돌아다니며 감독을 하며, 격려를 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일이 됩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게 하니 백성들이 일치하고 협력했다고 그랬습니다. 백성들이 마음에 일을 두니 일이 빨리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일해야 됩니다.
서양 속담에 "생이라고 하는 것은 만드는 가운데 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최대의 행복은 일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청년들은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일할 것이 많은 나라에 났으니까. 황폐한 강산이 다 일꾼을 부르고 있습니다. 여의도 개발을 위해서 윤중절을 백일만에 준공했다는 말을 듣고 감격스레 생각했습니다. 여의도 개발뿐이 아닙니다. 한강 개발뿐이 아닙니다.
낙동강 개발뿐이 아닙니다. 전 삼천리 강산이 개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꾼을 부릅니다. 일하는 이에게 최대 행복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일하는 이에게 성공이 있습니다. 일하는 이에게 이 다음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애굽 카이로에 들려서 금자탑 앞에 앉아서 한 두 시간 묵상을 한 일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四천 五백년 전에 말하면 그 때에 세계 대부분 인류들이 아직도 굴속에 살던 때요, 그런데 이들이 벌써 그렇게 웅장한 꿈을 꾸었고 꿈만 꾼 것이 아니고 일했습니다. 그래서 만고 불 휴(不休)의 금자탑을 지금까지 남겨 놓은 것입니다. 일해야 남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 한번 이 세상에 왔다 가는 것뿐인데 일하는 것이 남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예루살렘 성을 쌓는 이들입니다. 내 인격의 성, 내 기독교 가정의 성. 하나님 나라 또 우리 실제적으로 대한민국 또 무엇이 필요합니까?
참 사랑이 필요합니다. 나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랑, 믿음이 필요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믿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서 방비와 건설을 겸해서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