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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일4:11-21/ 그리스도인의 품격/ 한경직 목사
    2014-08-23 19:20:37   read : 1517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四․二十一)

    사도 요한이, 모든 믿는 형제들에게 주님께서 주신 계명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요한 복음에는 이 계명이 좀더 자세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말씀하는 사람은 특별히 형제간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믿는 형제간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여러 번 생각한 대로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 후서 一장에서 그리스도인의 품격에 있어야 할 요소를 열거하는 가운데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그 다음에는 형제우애』 혹 전의 번역대로 형제화목을 더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형제우애라고 하는 본래의 헬라 말은 필라델피아라고 합니다. 이 말은 지명으로도 많이 사용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보면 소아시아에 있던 일곱 교회 가운데 하나의 이름을 필라델피아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또 지금 미국에 가면 이 필라델피아라는 도시가 있는 것을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뜻은 형제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경건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옳은 관계를 말하는 것이요, 형제우애는 형제와 형제 사이의 옳은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른 생각해 볼 때에 형제를 피차에 사랑하라고 하는 권면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지 않으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보는 대로 우리 인간 사회에서 첫 살인사건이 어떻게 이러 났는가요? 그것은 우리 가정에서 형제간에 일어난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거니와 누가 요셉을 멀리 애굽에다 팔아먹었습니까? 동네의 다른 청년들이 그랬습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요셉의 친형들이 이런 일을 행한 것입니다.

    우리가 고구려 말기의 역사를 보면, 그 때에 유명한 정치가 연개소문에게 아들이 삼 형제가 있었는데, 남생, 남건, 남산이라고 하는 모두 잘난 아들이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에 삼 형제를 불러다 놓고서 내가 죽은 후에 어떻든지 너희가 마음을 합해서 나라를 잘 받들라고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아버지가 죽음 다음에 이 아들들이 한 것을 보면 그렇게 않았습니다. 남생이 재상이 되니 그 두 동생들이 그를 시기했습니다. 분쟁이 빌어졌습니다. 결국은 남생이 쫓겨났습니다. 자기 나라에 그냥 있지도 못하고 다른 나라에 가서 중국의 당나라 군대를 끌고 와서 고구려를 쳐서 고구려가 망한 것입니다. 형제간의 싸움으로 한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이조 五백년 역사를 우리가 읽어 볼 때에도 종종 이런 일이 있은 것을 기억합니다. 단종 애화를 비롯해서 영창대군을 죽인 사건 등 여러 가지 골육상쟁이 접종한 것을 우리가 읽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싸움이 추하나 골육상쟁(骨肉相爭)은 가장 추합니다. 형제간에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형제간의 화목을 알아야 합니다. 믿는 형제들이 피차에 사랑할 줄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은 일반적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전에 먼저 형제끼리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새 계명을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리라』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교훈 하였습니다.『기회가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시편 一三三편의 저자는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형제가 화목해서 동거하는 것을 이렇게 찬양한 것입니다.

    우리 형제들이 먼저 사랑해야 할 이유를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설명해 줍니다.

    가령 사도 요한 은『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였음이니라.』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하나씩 하나씩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피차에 사랑하여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다 한 형제가 되었습니다. 한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한 신앙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한 천국의 시민이 되고, 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고 한 주의 종들이 되고, 한 곳을 향해서 한 길을 가는 우리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 기록한 대로『몸도 하나이요, 성령도 하나이요, 소망도 하나이요,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라.』그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이 우선 피차에 사랑할 줄을 알고 하나가 되는 것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형제화목은 우리 예배의 전제조건인 것을 예수님께서 친히 지적하셨습니다. 그리해서 그는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시기를『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우리에게 권고하신 것입니다.

    형제화목은 전도의 전제조건이 됩니다. 이미 새 계명을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가 된 것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는 물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합니다. 우리의 입으로도 합니다. 우리의 손과 발을 통한 봉사로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항상 기억할 것은 우리 믿는 사람의 화평한 교회생활로도 전도한다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가 서로 유무상통하고 즐거움과 화평이 충만한 가운데서 교회생활을 한 것은 자연히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어 낸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형제화목은 반드시 하여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원수들이 많은 까닭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가 서로 목장을 가지고 다툴 때에 아브라함이 롯을 향해서 우리가 서로 싸우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두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한 골육이니까 다투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한 가지 더했습니다. 여기는 가나안 사람과 불레셋 사람이 많이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끼리 싸워서는 안 되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신령한 안목으로 생각할 때에 기독교의 원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신론자들이 많고, 유물론자들이 많고, 인본주의 자들이 많고, 공산당들이 많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화목하지 못하고 서로 사이 좋지 못하면, 어떻게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으려는 이 원수를 대항할 수 있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 믿는 형제들끼리 서로 사랑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형제 화목에 있어서 우리가 항상 기억할 것 몇 가지가 있는 줄 압니다.

    첫째는 우리가 특별히 조심할 시험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시기에 대한 시험입니다. 가인이 어떻게 되어서 아벨을 죽이게 되었습니까?
    시기로 인하여 그렇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어떻게 요셉을 죽이려 하다가 멀리 종으로 팔아먹었습니까? 역시 시기가 그 원인이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외적 상황은 역사의 흐름을 따라고 많이 변하지마는 인간의 본성은 고금과 동서를 물문하고 별로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에도『사촌이 밭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시기를 이렇게 끼리끼리 되는 것입니다. 형제끼리 시기하기 쉽습니다. 동서끼리 시기하기 쉽습니다. 믿는 사람끼리 시기하기 쉽습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시기는 최후가지 성도의 발꿈치를 따라 다니는 시험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모든 유혹과 시험을 다 이기지마는 마지막에까지 우리를 시험하는 시험은 시기라는 시험입니다. 우리가 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또 기억할 것은 용서의 정신입니다. 요셉의 위대한 품격은 그 형들을 용서해 주는 장면에서 특별히 나타납니다. 예수 님께서 얼마나 이 용서의 정신을 강조한 것은 우리가 두 번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몇 번이나 형제를 용서하랍니까? 일곤 번까지 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제자가 물을 때에 예수 님께서 곧『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우리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주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에도 그저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이『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용서의 정신을 꼭 배우야 형제간에 화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양보의 덕입니다. 지금도 말씀드렸지만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싸울 때에 아브라함이 롯에게 한 말이, 이거! 우리는 가축이 많고 우리 사는 지경은 좁아서 이렇게 목자간에 싸움이 있는데 안 되겠으니 네가 말일 동편으로 가기를 원하면 나는 서편으로 가겠고 네가 만일 서편으로 가길 원하면 나는 동편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관대한 마음과 양보의 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나는 삼촌이니 너는 내 말대로 해라, 내 뜻대로 해라, 너는 동편으로 가라,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양보의 덕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촌 교회에 형은 복사요 아우는 장로인데 오래 한 집에서 살다가 그후에 분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분가를 하게 될 때에 재산을 자연히 나누게 되니까, 재산 나누는데 그만 의견이 달라서 형제간에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되니 형제간의 싸움이 아니고 결국은 목사와 장로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적은 농촌 교회에 장로라고는 도무지 두 세 사람밖에 없는데 얼마나 큰 타격을 주었을까를 여러분께서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양보의 덕을 배워야 합니다.

    또 성경에 보면 어떻든 양보하여 서로 화목할 뿐 아니라, 두 사람이 아무래도 중재할 수 없으면 잘 믿는 친구에게 가서 중재하기를 요구한다든지 부득이 하면 교회에 나와서 중재하기를 요구하려니와 절대로 안 믿는 세상 법정에 나가지 말라고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양보의 덕과 피차 화목의 정신을 우리가 꼭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한 걸은 더 나가서 상부상조의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쳐죽인 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가인에게 물었습니다.『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그 때에 가인이 대답하는 말이『나는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기키는 자이니까?』오히려 반문했습니다.

    아우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요 아우가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르오, 내 동생이 어떻게 되든지, 같은 믿음의 식구가 어떻게 되든지 나는 모른다고 하는 태도는 가인의 태도입니다.

    사랑은 가족에서부터 먼저 시작되어야 합니다. 형제 사이에서 먼저 시작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식구들 사이에서 먼저 시작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발전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끼리 서로 화목하고 상부상조해서 같이 살아나갈 수 있도록 마련한 것입니다. 같이 살아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처음으로 교회 안에서 양로원 제도가 생기게 되었고, 고아원이 나타나게 되었고, 병원도 나타나게 되었고, 여러 가지 자선사업기관이 교회 안에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특별헌금을 하는 것도 모자원과 유치원을 도와주어야 하겠다는 정신도 포함되어있는 것을 여러분께서 기억하실 것입니다. 경건에 형제우애를 더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의 가정이 화평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형제끼리, 친척간에도 화목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화평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 사이에, 제직 사이에, 주일학교 직원들 사이에 꼭 화목해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일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교파간에도 화목과 협조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에규메니칼 정신이라고 합니다.

    우리 가운데 한 분이라도 서로 불화 하면서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하는 이가 있으면 오늘로 화목하시기 바랍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용서하는 정신으로, 양보하는 정신으로, 화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한 말을 다시 기억하십시다.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의 품격의 최대 결함은 이 형제화목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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