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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일2:12-17/ 영존한 세계 하나님 나라 / 한경직 목사
    2014-08-23 19:19:51   read : 1586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二․十七)

    一九六五년도 이미 저물어서 어느덧 오늘은 이 해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세월이 빠른 느낌을 가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 때를 당하면 더욱 실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과연 세월은 여류(如流)합니다. 물 흐르는 것 같습니다. 광음은 여시(如矢)합니다. 활과 같이 빠릅니다.

    오늘 이 시간은 사도 요한을 통하여 주신 인생의 교훈을 잠깐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말씀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본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젊었을 때 가장 위대한 선생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바닷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그의 부르심을 듣고 그를 따르기 시작해서 그에게 배웠고 그에게서 모든 교훈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의 품에서 위대한 생명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인생을 깊이 보게 되었고 멀리 보게 되었고 또 높이 보게 된 것입니다. 요한 복음을, 요한 서신을,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에 우리는 그가 얼마나 깊은 인생을 깨달았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요한 일 서를 사도 요한 이 기록한 때는 매우 연로한 때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一00세를 넘어 살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모든 믿음의 식구들을 향해서「소자들아!」라고 말할 수가 있었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서신은 아마 그가 에베소에 있을 때 기록한 것 같습니다.

    당시 에베소라는 도시는 유명한 상업도시로서 상업이 융성하고 교통이 빈번하며 세계 문화가 집중되는 큰 도시였던 것입니다.
    거리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던 아덴의 신당이 높이 서 있었고 수 만 명을 앉힐 수 있는 대 원형 종합운동장이 있어서 세계의 선수들이 모여 자웅(雌雄)을 다투던 곳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이요, 문화가 발전된 때이므로 말할 수 없이 호화롭고 번창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 때에 늙은 사도 요한 은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아마 어떤 젊은 제자에게 이 서신을 불러주었을 것입니다. 이런 교훈, 저런 교훈을 주시다가 이 장 중간쯤 내려와서는 이와 같은 교훈을 주셨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느니라.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오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바울은『이 세상도 그 정욕도 자나가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하는 의미심장한 교훈을 여러 믿음의 식구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지나갑니다. 이 교훈은 사도 요한 만 쓴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경이 같은 교훈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만이 그런 것도 아닙니다. 많은 역사가, 많은 철학가, 모든 문학가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이 교훈을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七장 三十一절에『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三十四장 四절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말이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니라.』앞으로는 이와 같은 때가 있으리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四장 十八절에는『보이는 것은 잠깐이요.』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움직이고 변하고 썩고 지나갑니다. 시내와 같이 흘러가고 풀과 같이 마르고 꽃과 같이 시듭니다.

    개인의 생활을 돌아보아도 역시 그렇습니다. 어제 저녁에 본 교회에 나오셨던 분은 누구든지 아마 우리 영아부, 유치부에서 어여쁜 어린이들이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는 모양을 보았을 것입니다. 천진난만한 어린이 시대 그 얼마나 아름답고 귀엽습니까?

    그러나 그 시대도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나갑니다. 소년시대가 오고 청년시대가 옵니다. 청년시대가 그 얼마나 아름다우며, 그 얼마나 원기가 왕성하며, 그 얼마나 정열이 강하며, 그 얼마나 꿈이 푸릅니까? 문자 그대로 앞날이 수 만리같이 느껴지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청춘도 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나갑니다. 사라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중년시대가 곧 올 것입니다. 중년시대를 생각해 볼 때에 분주한 시대입니다. 그야 말로 중년시대는 모든 일을 이루는 때입니다.

    어떤 이들은 정치에 바쁩니다. 어떤 이들은 실업에 바쁩니다. 어떤 이들은 문학, 어떤 이들은 과학, 어떤 이들은 예술, 어떤 이들은 음악, 모든 방면에 분주히 정신을 차릴 사이 없이 활동하는 때입니다. 성장하는 때입니다. 이루는 때입니다. 열매를 맺는 때입니다.

    그러나 중년시대도 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라집니다. 지나갑니다. 어느덧 노년이 됩니다. 전도서 十二장을 여러분, 읽어보세요. 어느덧 강산 자가 구부러집니다. 허리가 굽어집니다. 창으로 내다보는 자가 어두워집니다.

    눈이 어두워집니다. 귀가 잘 들리지를 않습니다. 맷돌질하는 자가 적어집니다. 이가 하나 둘 빠져 버립니다. 머리에는 살구나무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노년시대가 옵니다.

    그러나 여러분, 노년시대도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 후에는 가까운 친구들이 모여서 조사를 읽을 때가 옵니다. 그 다음에는 북망산에 한 줄의 흙을 보탤 때가 옵니다. 지나갑니다.

    얼마 전에 저보다 몇 해 프린스턴 선배인 어떤 친구를 만나서 최근에 프린스턴을 방문한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그 이가 얼른 대답하는 말이 간 일이 없노라고, 뭐 하러 가느냐고, 지금 가봐야 알 사람 하나도 없고 낯선 사람만 많고 아무 재미가 없을 거라고 말하였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옛날 三十년, 四十년 전에 다니던 그 학교에 한 번 다시 방문해 보면 옛집도 그대로 있고 나무의 모습도, 푸른 잔디도 여전하지마는 낯익은 얼굴은 다시 볼 수 없습니다. 서글픈 경험입니다.

    몇 해 전에, 제가 四十년 전에 졸업한 엠포리아 대학을 가보니 아는 교수라고는 한 분밖에 안 남았는데 연세가 九十이 가깝고 귀도 잘 듣지 못하며 눈도 잘 보지 못하니 무슨 재미로 만나겠습니까?

    지나가는 것입니다.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역사가 흐릅니다. 一년이 흘러가고 二년이 흘러갑니다. 한 세기가 지나고, 두 세기가 지납니다. 二十세기도 거의 반 이상이 지나갔습니다. 이러는 동안에 문명도 지나가고 나라도 지나가고 세력도 지나하고 영광도 지나갑니다.

    몇 해 준 성지를 순례할 때 솔로몬의 동산가에 서서 보았습니다. 삼천 년 전 찬란하던 솔로몬의 영광은 동산의 돌 몇 개밖에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혹은 아덴의 말소산에 서서 보았습니다.

    고대의 찬란한 철학과 과학과 예술 문화의 근원지이던 아덴은 지금도 옛 신전에 남은 기둥 몇 배밖에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헬라의 문명도 지나갔습니다. 천여 년 동안은 온 유럽과 아프리카 북방, 근동 일대를 호령하던 로마의 권력, 로마의 제국을 찾아보려고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의 포름에 가서 서봅니다. 결국은 무엇을 찾습니까? 이 곳 저 곳에 부러진 석상, 부서진 석주, 혹 이따금 서있는 돌기둥 몇 개밖에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문명도 지나갑니다. 영웅도 지나갑니다.

    군인도 지나갑니다. 멀리 갈 것이 무엇 있습니까? 여러분, 경주에 가서 천년 신라의 문화를 더듬어 보세요. 찾는 것이 무엇입니까? 큰 무덤 몇 개 이외에 무엇을 찾습니까? 신라도 지나갔고, 고려도 지나갔고, 이씨 조선도 지나갔습니다. 정권도 지나갔습니다.

    해방 이후에 우리는 자유당 정권을 가져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정권도 지나갔습니다. 민주당 정권 아래도 있었습니다. 그 정권도 속절없이 지나갔습니다. 오늘은 공화당 정권 아래 있습니다.

    공화당 정권도 지나갈 때가 옵니다. 분명히 옵니다. 그러므로 세력이 있다고 너무 뽐낼 것 아니오, 세력이 없다고 너무 서글퍼할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시내와 같이 흘러가고 풀과 같이 말라 버리고 꽃과 같이 시들어 버립니다. 옛 글과 같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오 세무십년향(勢無十年享)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계속해서 말씀해서 말씀합니다. 그 정욕도 자나간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지나가니 거기 붙었던 정욕도 지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배가 가라앉으니 배 안에 있던 사람들도 물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무 가지가 꺾이어 내려지니 거기 붙었던 열매도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욕망이 큽니다. 그 욕망은 지나갑니다. 육을 근거로 한 모든 욕망은 지나갑니다.

    개인의 생활에 있어서도 어린 시절의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욕망은 지나갑니다. 청년시대에도 욕망이 있습니다. 애욕, 정욕, 아심이 불같이 강합니다.

    그러나 전도서 十二장을 읽어보세요. 원욕(願慾)이 그칠 때가 옵니다. 중년에는 시대의 많은 욕망이 있습니다. 사업욕, 금전욕, 권세욕, 지위(地位)욕, 선동(煽動)욕, 창조(創造)욕, 여러 가지 욕망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욕망도 지나갈 때가 오는 것입니다. 안목의 정욕이 그렇고 이생의 자랑이 그렇고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입니다.

    영원히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시편 九十편 一절을 여러분 기억하지요?『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 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나님만 영원하십니다. 하나님만 영존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만은 영원합니다.

    이사야 四十장 八절의 말씀과 같이『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섭니다.

    마태복음 二十四장 三十五절에 주님의 말씀한 바와 같이『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누가복음 一장 三十三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다함이 없는 것이며 즉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것입니다.

    여러분! 영존의 생활이 어디 있어요?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여기에 있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에 영원히 거하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리라.』

    인간 인생의 온갖 풍파를 다 겪은 요한 사도는 자기가 사랑하는 신앙의 식구들에게 두 가지 권고를 합니다.

    첫째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우리가 세상에 살기는 하지마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요. 왜?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을 같이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 이런 것은 아버지께로 온 것이 아니고, 이런 것은 세상을 좇아 온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세상은 지나갑니다.

    둘째로 너희는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그 환경, 그 시대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해서 그 뜻을 행하라. 그러며 너희의 일시적 생명이 영원한 생명으로 변하리라.

    여러분! 이 말씀은 사도 요한의 말씀만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바로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온 것은 내 뜻을 해하려 온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기도 를 가르쳐 주실 때에도,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게 해다라고 기도하라 하였습니다.

    한 번은 어떤 집에서 가르칠 때에 제자들이 하는 말이『선생님의 모친과 형제들이 지금 선생님을 찾으려 왔습니다.』라고 말할 때에 얼른 대답하는 말씀이『누가 내 모친이요 누가 내 형제뇨. 누구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가 내 모친이요 내 형제요 내 자매라.』영원한 의미에서는 그런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생활은 영원한 생활에 속합니다.『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사랑의 실천은 영원한 생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까닭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복음 전파의 생활은 영원한 생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영존의 비결이 무엇인지 우리는 배워야 될 것입니다.

    영국의 청교도시대에, 청교도 목사 가운데 한 분으로서 경건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경을 받은 리챠드 웹스터 라고 하는 목사가 계셨습니다. 이 목사가 임종시에 최후로 남긴 말이 바로 이 말씀이라고 합니다.

    『무엇이나 당신의 뜻대로, 어디나 당신의 뜻대로, 언제나 당신의 뜻대로.』 이 목사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무엇이든지 항상 내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듯대로 꼭 하기로 일생에 염원하면서 살아갔던 모양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맙시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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