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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일1:1-10/ 빛 가운데 행하라 / 한경직 목사
    2014-08-23 19:19:06   read : 1587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一․六-七)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오늘 아침 우리에게 축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우리가 새해 첫 주일의 날로 이처럼 모였습니다. 새해에는 우리가 피차에 복을 빌고 흔히 소망을 말하고 또는 소원을 말하는 때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의 앞길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입니다. 개인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의 가는 길은 옛날 아브라함이 하란 을 떠나서 가나안을 향해 갈 때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고 한 것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내일 일을 모릅니다. 금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국제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국내적으로 무슨 일이 생길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고 우리의 갈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어두운 우주에 빛을 주신 하나님께서 어두운 인생 길에도 빛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빛을 우리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는 생명의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여기 요한 一서 一장 七절에 사도 요한 이『빛 가운데 행하라 빛 가운데서 걸어가라』고 우리에게 권면(勸勉) 하십니다. 그 뜻은 알기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햇빛에는 여러 가지 광선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광선은 눈으로 볼 수 있으나 어떤 것은 볼 수 없는 적외선이니 자외선도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빛 가운데도 몇 가지 광선이 있는가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십니다. 진리의 광선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공의의 광선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도덕적으로 순결의 광선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광선이 있습니다.

    『빛 가운데 행하라』의 뜻은 빛은 밝아서 빛 아래서는 모든 것이 자세히 보입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아래서는 보통 때는 볼 수 없는 작은 먼지까지도 보입니다.

    빛 가운데 행하라고 하는 말은 언제단지 이 하나님의 빛 아래에서 즉 진리와 의와 순결과 사랑의 이 빛 아래에서 나 자신을 살리고, 내가 사는 주위를 살리고, 내가 당면한 문제를 바로 보라고 하는 뜻입니다.

    나 자신을 빛 아래에서 바로 보는 목적은 나 자신에 어두운 무엇이 없는가 살피라고 하는 말입니다.『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방금 여러분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진리와 의와 성결(聖潔)과 사랑의 빛 아래에서 내 마음을 살피고 내 말을 살피고 내 행실을 살펴서 이 가운데 어찌 어두운 무엇이 깃 들었으면 이것을 없애라는 말입니다. 죄를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빛 가운데 행하는 생활입니다.

    그러나 어두움의 세력은 내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는 주의에 있습니다. 내가 사는 환경에 있습니다.

    내가 사는 주위에서, 내가 사는 환경에서, 내가 하는 사업, 직장에서 내가 처해 있는 어떤 곳이든지 그 곳에서 이 빛 가운데 모든 것을 살펴서 어두움의 세력, 불의의 세력 불결의 세력, 모든 부정한 세력, 부패의 세력들을 밝히 보고 내가 빛의 아들로서 이것들과 싸우고 이것을 제지하기 위해서 바로 살라는 그 말입니다.

    『빛 가운데 행하라』고 합니다. 행하라고 하는 것은 전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 자신의 생활에도 진보가 있고, 내 환경과 내 사업 및 직장에서도 모든 것을 빛 아래에서 바로 분석해서 모든 불의와 어두운 세력을 정리하면서 나아가라는 말입니다. 중퇴하지 말고, 중단하지 말고 타협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라는 말입니다.

    그리해서 이 땅의 자유를 지키고 이 땅이 어떻든지 정결한 땅이 되게 하고 이 땅에서 참된 민주주의를 수호하라는 말씀입니다. 빛 가운데 행하라는 말은 계속해서 싸우면서 나아가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빛 가운데서 행하며 나아가게 되면, 마치 물위에 햇빛이 비쳐서 물 속에서 해를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혹 우리를 볼 때에 우리 가운데서 햇빛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햇빛 아래에서 즉 하나님의 빛 아래서 내 생활을 살피면서 나 자신을 깨끗케 하고, 내가 사는 그 환경을 깨끗케 하며, 나아갈 때에 예수 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빛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은 반사하는 빛으로 너희 주위를 밝히면서 살라고 하는 그 뜻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겠다고 했습니다. 빛으로 향해서 나아가며 빛 가운데서 걸어가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사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가 있습니다. 동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천국의 사회가 있습니다. 교제가 있습니다.

    동양의 성현도 일찍이 하신 말씀 가운데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하는 뜻입니다. 빛 가운데서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사귐이 있습니다.

    어떤 형제나 자매를 본다면 처음에 예수를 믿을 떼에, 내가 교회에 들어가서 예수를 믿게 되면 전에 사귄 친구를 다 잃어버리지 않을까? 외로와 지지 않을까? 이런 염려를 하는 사람도 혹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빛 가운데 행하게 되면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들과 같이 사귐이 있습니다.
    세상에도 물론 사귐이 있습니다. 세상의 사귐은 대체로 어떤 권세를 중심 한다든 가, 이익을 중심 한다든 가 혹은 취미를 중심해서 사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당이 생기는 것이고, 그래서 경제단체도 생기는 것이고, 그래서 운동단체도 생기고, 사회단체, 문화단체가 생기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사귐은 권세가 없어지고 이익이 없어지고 취미가 달라지면 다 무너지고 맙니다.

    빛 가운데서 행하는 사람들의 사귐은 무너질 때가 없습니다. 영원히 계속할 것입니다.

    우리가 또한 이런 사귐에 대해서 생각할 것은 언제든지 죄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나뉘게 합니다. 부부간에 죄가 들어올 대에 부부도 서로 이혼하는 수가 있습니다.

    부자간에 죄가 들어올 대에 부자도 서로 불상견(不相見)하게 되는 경우도 없이 않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친구 사이에도 죄가 들어올 때에는 그 친구가 나뉘어지게 됩니다. 빛 가운데서 행하는 사람들의 사귐만이 참으로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 성도의 교재, 성도의 사귐이 매우 필요합니다. 이것은 피차에 도움이 됩니다. 또 한 가지고 힘을 합해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어두운 세력과 싸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도 이런 말을 한 줄로 생각하는데 여기 우리말로는 적절한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지만 영어에 썸바디(,Somebody)라는 말이 있고, 노바디(Nobody)라를 말이 있습니다. 그 섬바디 라고 하는 말은 좀 아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아무개가 우리 동네 썸바디 하면 좀 아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노바디 라는 사람은 누군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되 어떤 교회의 교인이 되었으면 그 교회 안에서 썸바디 가 되어야 합니다.

    좀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회에 와서 같이 예배를 보지만 다른 사람이 전연 모르는 노바디 가 되면 그것은 성도의 교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와 같은 좀 큰 교회에서 그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이 성도의 교제를 가지는 게 필요한데 성도의 교제를 가지려고 한다면 여러분께서 여러 단체에 가입해서 함께 활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여러분이 들어오실 때에 주보를 다 받으신 줄 압니다.

    여기 각 성경공부반의 장소와 시간을 연령에 따라서 참여할 수 있게 안내해 놓았습니다. 성경공부 시간에 들어가서 같이 성경도 공부하고, 피차에 서로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빛 가운데서 행하는 이들에게는 빛의 사귐이 있습니다. 이 사귐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내게도 필요하지만 피차에 사귐을 통해서 힘을 합해 이 세상에서 어두움의 세력과 싸워 이기는데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와 같이 사귀는 생활을 계속하게 되면 우리는 좀더 깨끗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사회의 어떤 사귐은 오히려 사람 깨끗하게 하지 못하고 더럽게 합니다. 그런 단체도 있습니다. 그런 모임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도의 사귐은 깨끗하게 만듭니다.『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하는 이 말씀은 간단하게 말하여 두 가지 의미가 있는 줄 생각합니다.

    첫째는 여기의 그리스도의 피라고 하는 말은 십자가의 보혈을 의미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보혈을 흘리고 속죄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그 때에, 다시 말하면 죄를 회개할 때에 과거의 모든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과거의 모든 죄에서 깨끗함을 입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칭의(稱義)의 교리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의롭다 함을 일컬음 받았다고 하는 그 뜻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과거의 모든 죄에서 사함을 받았다고 하지마는 그랬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가운데 옛 사람이 아주 죽은 것은 아닙니다. 죄의 잔재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아주 완전히 성결한 자리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성결한 자리에 이르는 것은 매일매일 회개한 다음에 계속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그리스도의 피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보면 피를 항상 생명을 의미했습니다. 우리가 주를 믿고 예수를 내 구주로 받게 되면 예수님의 새로운 생명이 우리의 심령 가운데 들어와서 옛 사람은 점점 죽어 없어지게 만들고 새 사람은 점점 힘을 얻어서 건강하게 만듭니다.

    이것을 성화의 교리라고 합니다. 점점 거룩하여진다는 뜻이 있습니다. 아마 여기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하는 뜻은 이 후자의 의미가 더 많은 줄 생각합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말하면 그리스도의 순결한 그 피가 우리의 심령의 혈관 속에 들어와서 모든 더러운 것을 깨끗케 하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며 우리의 성품과 생활을 새롭게 해서 더욱 깨끗한 자리에 이르게 한다고 하는 그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너희가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고 내 살을 먹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생명이 없다』고 하는 뜻은 바로 이 뜻입니다. 예수 님의 생명을 받아서 우리가 점점 깨끗하여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행하고 성도의 교제를 가지고, 이 참된 신앙생활을 계속하면 내 속에 있는 옛 사람은 점점 죽어서 없어지고, 우리의 속 사람은 점점 성결해지고 장성해서 성경에 있는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를 때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 때에 중요한 것이 많다고 하지마는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다 살고 육신이 죽어 마지막으로 관을 덮을 때에 요컨대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속 사람의 인격이 얼마나 고결하게 장성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자리에 있던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돈을 많이 모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책을 많이 쓴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요컨대 문제는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인격이 얼마나 고결하고 얼마나 장성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과연 미쳤는가 하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행하면 그와 같은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미 말한 대로 우리의 장래는 금년도 미지의 세계입니다. 알 수 없습니다. 인생행로에는 갈래길이 많습니다. 그러나 간단히 말하면 두 길입니다. 하나는 빛의 길이요, 하나는 어두움의 길입니다. 하나는 주님의 길이요, 하나는 세상의 길입니다.

    하나는 질리, 의, 성결(聖潔), 사랑의 길이요, 또 하나는 불의와 허위와 불결과 증오의 길입니다. 하나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요, 하나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여호수아가 자기 백성을 이끌어서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을 다 점령한 다음에 모든 백성의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마지막으로 한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나안 복지를 다 점령했는데 당신들이 앞으로 이 땅에 살면서 누구를 섬기며 살겠는지 작정하시오. 여호와를 섬길 분은 여호와를 섬기고, 무슨 다른 신을 섬기기를 원하면 다른 신을 섬기기를 작정하시오.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 나와 내 집은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여러분, 신년 벽두에 이와 같은 작정이 있습니까? 나와 내 집은 빛 가운데 걸어가겠습니다. 이 결심이 있으면 다른 것은 염려할 것 없습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조금도 근심할 것 없습니다. 태산과 준령이 앞을 가린다고 할지라도 에스라서에 있는 말씀과 같이 태산이 내 앞에서 평지가 되겠다고 말씀했습니다. 홍해가 우리 앞을 가리운다고 할지라도 홍해를 마른 땅 과 같이 건너갈 수 있습니다.

    시편 四十六편 二절에 기자가 기록하듯이『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생명도 사망도 다 승리로 인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빛 가운데만 걸어갈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 꼭대기에서 四十일 四十야를 하나님과 교통하고 뭇 백성들에게 내려올 때에 여러 백성들이 얼굴을 들어서 감히 모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왜?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고 했습니다.

    빛 가운데 오래 있게 될 때에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우리도 신령한 의미에서 빛 가운데 계속해서 걸어가게 되면 우리의 얼굴에서도 우리의 생활에서도, 광채가 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나만 구원할 것이 아니고, 내 가정만 구원할 것이 아니고, 내 친구, 내 민족까지 우리의 작은 빛을 발해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새해에 우리 민족과 우리 국가가 다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사실 축복을 받는 길이 어디 있습니까?『축복을 받으십시요』이렇게 이야기한다고 받는 것입니까?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두운 길을 버리고 빛 가운데서 행해야 됩니다. 모든 불의, 모든 허위, 음란과 방탕, 탐욕과 삭, 협잡, 모략, 모든 어두운 길을 버리고 빛 가운데서 행하면 자연히 우리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국민 하나 하나가, 우리 국가의 지도자 하나 하나가 공원이나 국민이나 할 것 없이 누구든지 어두움의 세력을 버리고 항쟁하고, 내 속에 있는 어두운 것을 내 자신이 먼저 깨닫고 나사는 주위에서 어두운 길을 떠나서 빛 가운데 행하면, 금년에 우리 민족은 큰 축복을 받고 금년이 축복의 해가 될 것입니다.

    요한 복음 三장 二十절과 二十一절의 말씀을 읽을 때에 들어보세요.『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 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여러분은 이 빛에서 떠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빛으로 오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먼저 빛으로 오십시다. 우리 가운데 한 분이라도 아직까지 온전히 빛으로 오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까?

    오늘 이 아침 온전히 빛으로 오십시다. 과거에는 어찌했든지 이 시간부터 어두운 길을 버리고 빛 가운데서 행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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