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17-31/ 모세의 신앙 / 한경직 목사 2014-08-23 08:39:07 read : 1253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히 十一․二十七)
모세의 믿음에 대하여 히브리 저자가 기록하였습니다. 전 성경을 통해서 신앙의 위대한 인물이 많은 중에 특별히 아브라함과 모세와 사도 바울 이 세 사람은 그 가운데도 뛰어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이런 세 사람 가운데 하나인 모세를 생각하고자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민족을 애굽의 구속 가운데서 해방해서 자유를 주고, 장차 독립한 민족국가로서 발전할 기초를 닦은 민족의 구주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모세는 율법의 수여자(授與者)올시다. 이 율법은 유대교의 기초가 된 것은 물론 옛날부터 서양 도덕의 기초가 된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법 제도의 기초적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문명의 한 기초로서 위대한 역사적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세의 위치가 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고, 그의 신앙 생활은 오고 오는 사람들에게 귀한 모범이 되는 것이올시다.
모세라고 하는 말의 글자 뜻은 우리가 출애굽기를 읽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건져냈다고 하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모세는 아기 때에 그의 부모들이 할 수 없이 애굽 나일 강변에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애굽 왕 바로의 딸, 공주가 목욕하러 나왔다가 그 아기를 귀엽게 생각해서 건져내어 그를 기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세라고 하는 이름은 그러한 이유뿐만 아니고 그의 일생사업을 우리가 돌아다볼 때에 또한 적당한 이름이라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자신이 그 민족을 건져내는 위대한 사업을 하신 분이올시다.
오늘 아침 그의 신앙을 잠깐 생각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말씀드렸지 만은 모세는 기구한 운명으로 장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혈통은 이스라엘 민족이올시다. 그러나 자라기는 애굽 궁전에서 자랐습니다. 공주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모든 궁중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고 또한 모든 궁중에 있는 자녀들이 누릴 수 있는 배움의 기회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경을 읽는 대로 이 모세가 점점 커서 장성한 후에는 그의 가슴 깊은 곳에 남모르는 숨은 번민(煩悶)이 깃 드리게 된 것입니다, 고통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기는 그처럼 애굽 궁중에서 호화롭게 지내지마는 실상 자기와 피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 애굽 사람들에게 불우한 대우를 받고 핍박을 받는 가운데에 있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가운데 내가 어떤 편에 서야 하는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청년 모세의 가슴속에 큰 문제가 된 것입니다.
물론 그냥 애굽 사람으로 살려면 살 수 잇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 개인적으로 안일한 생활이 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돈이나 세력이나 영광이나 모든 면에 부족함이 없는 호화로운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그냥 계속해서 살려고 하니 그의 마음속에 깃들인 민족적 양심이 그를 괴롭힙니다. 또 그렇게 산다고 할 것이면 그는 불의를 행하는 편에 서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그의 도덕적 고민이 있게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사실 이스라엘의 사람이니 이스라엘 사람으로 나타나서 살 것이냐, 이것은 사실 양심이 명하는 바요 그의 애국심이 명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이런 길을 택하려고 하니 거기에는 위험이 따르고 곤란이 따르고 투쟁이 있을 수밖에 없고, 혹은 사망을 의미할는지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젊은 사람 모세는 오랫동안 이 두 가지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 심령이 고민을 당하고 헤매 인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때가 될 때에 결단을 내렸습니다. 바로 오늘 아침에 읽은 말씀대로 히브리 저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좋아하고(그리스도를 위해서) 의를 위해서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좌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기었다.』
고난을 의미하나 의의 길을 택하였고 양심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애국심이 지향하는 그 길을 택했습니다. 자유를 위한 길을 택한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입니까? 믿음으로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편에서 이것을 볼 때에 그는 이런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교우 여러분들, 특별히 우리 가운데 젊으신 분들, 우리 인생의 앞에는 언제나 이 두 갈림길이 있는 것입니다.
장성한 사람도 항상 이러한 갈림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돈이냐, 의냐, 이익이냐, 정욕이냐, 경건한 생활이냐, 세상이냐, 그리스도냐, 어떤 자리에 우리가 가든지, 어떤 직장에 우리가 몸을 바쳤든지,
두 갈림길에서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청년들은 인생의 분기점에 섰으므로 확실한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오는 것을 보니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런 결단을 분명히 내렸습니까? 우리가 교회에 나오니 믿음이 있는데 믿음으로 우리가 어떤 지장에 있든지, 어떤 자리에 있든지 우리가 당하는 일마다 이런 모세와 같은 선택을 하여 옳은 결단을 내립니까? 이것이 모세의 신앙이올시다.
모세는 이런 선택을 했으므로, 이런 결단을 내렸으므로 부득이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가 모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마침내 모세는 화려한 궁전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명의 나라인 애굽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멀리 황막한 광야, 미디안 들판에서 헤매 이는 생활을 사십 년 동안이나 하게 된 것입니다. 비싼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을 하시려고 할 때에, 어떤 큰 일을 하시려고 할 때에 합당한 사람을 불러서 그 일을 시킵니다, 어떠한 사람을 부릅니까? 옳은 것을 택할 줄 알고 옳은 일에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날 아침도 모세는 다른 생각 없이 양을 데리고 시내산 기슭으로 갔던 줄 압니다, 이상스러운 떨기나무에 불이 붙습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불은 붙으나 타지는 아니합니다. 이상한 불 구경을 하느라고 옆에 섰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바와 같이 그때에 하나님의 소명이 왔습니다.『모세야, 모세야!』불렀습니다.『내가 내 백성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이 백성을 이제 구할 수밖에 없다. 너는 내 이름으로 애굽에 돌아가서 내 백성을 구해내어 이 산으로 인도하라.』
물론 뜻밖의 일이올시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제가 누구관데 애굽 왕 바로 에게 가서 얘기할 수 잇습니까? 나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옳은 선택을 할 줄 아는 이에게 하나님께서 큰 책임을 지워 맡기십니다.
여러분, 모세의 신앙을 생각해 보세요.
모세에 대한 얘기는 모세 오경에 가득하니 우리가 그의 얘기를 다할 수는 없습니다. 또 여러분은 대부분 다 압니다. 그러나 모세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특별히 뛰어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출애굽기를 읽고, 모세에 대하여 읽을 때에 특별히 모세가 힘쓴 것이 무엇입니까? 아마 무엇보다도 뛰어난 것은 그의 기도 생활입니다.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자기 백성을 시내 산으로 인도한 후에 시내산 꼭대기에 홀로 올라가서 사십일 사십 야를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도 또한 사십 일이나 기도했습니다. 아마 세 번 시내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한 사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이 기도하는 가운데 그는 하나님과 교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을 다 다 들었습니다. 열 가지 계명을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모든 율법도 하나님께로부터 기도하는 가운데 받았습니다.
절기를 어떻게 정할까? 모든 제사하는 법을 어떻게 만들까? 성막(聖幕)을 어떻게 지을까? 심지어 제사장의 옷을 어떻게 만들까? 세밀한 부분가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로부터 그 말씀을 분명히 듣고 내려와서 그대로 한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그 백성들을 데리고 광야를 지나갈 때에 원수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레베림에 가니까 아말렉 사람들이 일어나서 싸우게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종노릇이나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겁이 많습니다. 이렇게 광야까지 나왔으나 애굽 군대를 홍해에서 멸했지만 이 광야에 사는 아주 용감한 무리들이 대적을 하는데 큰일이 났습니다.
제일 용감해 보이는 여호수아에게 청년들을 데리고 나가서 대적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싸우는 전쟁터를 내리다 보면서 두 손을 들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겼고 피곤하여 그만 손을 내리면 아말렉 사람들이 이겼습니다.
종일 싸우는데 너무 피곤하니까 아론과 훌이 와서 모세를 앉게 하고 두 손으로 부축해서 계속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청년들은 싸움을 하고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아론과 훌은 그 손을 받들어 주어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첫 승리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만하면 무슨 성공을 할 줄 압니다. 사람이 싸움만 잘하면 성공 할 줄 압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기도하는 사람을 협력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협력하는 가운데 승리가 오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도 그렇습니다, 실제로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전도를 하고, 실제로 가르치고, 실제로 일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뒤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기도해 주는 사람을 협력하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십자가의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나라도 그렇습니다. 나라 일도 그렇습니다, 실지로 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나라를 위하여 귀한 책임을 맡은이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파월 장병을 위해서도 기도하여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다 겸할 때에 승리가 오는 것입니다. 적은 일이나 큰일이나 성공하는 데는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모세는 기도의 생활을 힘썼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얼마나 자기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애써 기도했는가를 나타내는 이런 문구를 출애굽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세가 그 백성을 위해서 힘쓰건만 이들이 죄를 지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모세의 마음이 얼마나 상했겠습니까? 그 받은 비석을 던져 깨뜨릴 만큼 마음이 상했습니다. 회개치 않을 때는 부득이 형벌까지 내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백성을 위하여 이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구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심지어 무슨 말로 기도하는고 하니,『오 하나님이시여, 이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지 않을진대 차라리 내 이름을 생명 록에서 도말 해 주세요.』얼마나 간절한 기도입니까? 이런 기도의 사람이 바로 모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민족을 구해달라고 종종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합니까?
우리 민족을 죄악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 빈궁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 공포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부패와 부정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와 간절히 기도합니까? 사도 바울도 이와 비슷한말을 했습니다.
『내가 내 백성 내 혈족을 위해서는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다.』
거기에 간절한 기도가 있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신앙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서 모세를 가르쳐 주시고, 모세에게 능력을 주시고 모세를 통해서 위대한 일을 하시고, 물이 없을 때에 물을 주시고, 양식이 없을 때에 만나를 주셨습니다.
얼마나 늘 하나님과 대면하여 살았던지 그의 얼굴에는 광채가 나서 보통 사람은 처다 볼 수도 없었다고 하는 기사를 우리가 읽어볼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신앙을 무엇으로 압니까? 기도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기도에 힘씁니까?
모세의 신앙은 그의 성품으로 나타났습니다. 민수기 十二장 七절에 보면『모세는 내 온 집에서 충성되다』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틀림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 저자도 히브리 三게장 二절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록하면서,『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 한 것 같다.』모세가 충성한 것처럼 그리스도도 충성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기록한 것을 보니 모세가 얼마나 충성된 사람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는 내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사람도 모세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합니다.
그 때에는 처음으로 부르던 때요, 모세를 처음으로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실상 옛날의 종은 자기의 뜻이 없습니다. 주인의 뜻이 자기 뜻입니다, 자기 말이 없었습니다. 주인의 말이 자기의 말이었습니다. 자기의 재산이 없었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은 다 주인의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생명이 없었습니다. 자기의 생명은 주인의 것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자기의 전 생명이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모든 말씀을 충성스럽게 그대로 전했습니다. 바로 왕 앞에 가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습니다.『내 백성을 놓아 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나라는 망한다.』
모든 백성을 가르칠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충성스럽게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충성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전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솔직하고 충성스럽게 전합니까? 담대히 전합니까?
모세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습니다. 성막을 지을 때도 꼭 하나님 말씀대로 지었습니다. 모든 제도를 만들 때도 꼭 그대로 했습니다. 광야 四十년의 쓰고 단 경험을 다 겪으면서, 말할 수 없는 역경의 길을 가면서 죽을 때까지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가나안을 바라보고 채 들어가지 못하는 한을 품으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종여일하게 모세는 충성된 하나님의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는 것은 재주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는 것은 충성입니다. 우리에게 큰 일을 맡겼든지 적은 일을 맡겼든지가 문제가 아닙니다. 맡은 그 일에 대한 충성을 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서 나의 맡은 일에 충성합니까? 내가 내 직장에서 맡은 일에 충성합니까? 내가 내 가정에서 내 맡은 일에 충성합니까? 믿음을 충성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속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중심을 보십니다. 이 하나님 앞에서 내가 맡은 일을 하는데 충성 안 할 수가 있습니까? 충성 안 하면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하시는 일을 보시고, 여러분이 책임을 감당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집에서 충성한다. 하는 말씀을 우리가 듣습니까? 모세는 그 말씀을 들을 만큼 충성된 신앙을 가졌습니다.
여기 二十七절에 히브리 저자는『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 같이 언제나 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러나 보이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보이시는 하나님 앞에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합니까?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씀했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언제나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 모세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임재(臨在)와 능력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지팡이를 들어서 홍해를 가르기도 하고, 그 지팡이를 들어서 반석에서 물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 지팡이를 통해서 모세는 하나님께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 같이 알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합니까?
이것이 모세의 신앙이올시다. 모세는 이런 신앙을 가진 까닭으로 바른 결단을 내리고, 기도의 생활을 하고, 충성된 종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하시기를 원한 일을 하였고, 그를 통해서 그 민족을 축복해 주셨고, 아니 온 세계 만방의 사람들을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모세의 신앙을 우리가 얻기 위하여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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