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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딤후1:1-19 / 경건한 어머니, 아들 / 한경직 목사
    2014-08-23 08:26:47   read : 1729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을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一․五)

    사도 바울이 자기가 극진히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두 번째로 주신 편지 가운데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의 마음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는 것을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와 같은 믿음은 본래 디모데의 외조모가 되는 로이스 라고 하는 여인의 마음속에 있었고, 그 다음은 디모데의 모친 되는 유니게 속에 역시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었는데, 이 믿음이 오늘에 와서 디모데의 마음속에 또 있게 된 것입니다.

    경건한 어머니에게서 경건한 아들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여기뿐만이 아니고 신구약 성경과 전 교회사를 통해서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한나와 같은 경건한 어머니에게서 사무엘과 같은 경건한 지도자가 나온 것입니다.

    요게벳과 같은 경건한 어머니를 통해서 모세와 같은 경건하고 위대한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가 나온 것입니다. 엘리사벳과 같은 경건한 어머니에게서 세례 요한과 같은 경건한 그리스도의 선구자가 또한 나오게 된 것입니다.

    교회사를 통해서 특별히 우리들이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마는 그 가운데서도 특히 모니카와 같은 경건한 어머니 아래서 어거스틴과 같은 귀한 아들이 회개하고 위대한 종교적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또는 수산나와 같은 경건한 어머니에게서 요한 웨슬레와 같은 위대한 부흥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경건(敬虔)은 참 신앙을 가진 이의 생활을 묘사한 말입니다.

    신명기 十장 十二절에『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規例)를 지킬 것이 아니냐?』

    참 경건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를 행하며 그를 사랑하며 정성껏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언자 미가는 六장 八절에 이렇게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여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경건한 생활은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는 생활입니다. 참 기독교 신앙은 경건한 생활을 가져옵니다. 한 정치가가 참된 신앙을 가지게 될 때 그는 경건한 정치가가 됩니다.

    실업가가 참된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될 때 그는 경건한 실업가가 되는 것입니다. 군인이 참된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될 때 그는 경건한 군인이 됩니다. 교육가가 참된 기독교 신앙에 들어올 때에 그는 경건한 교육가가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참된 신앙을 가지게 될 때에 그는 경건한 어머니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아들이 참 신앙을 가지게 될 때에 그는 경건한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 어머니주일에「경건한 어머니, 경건한 아들」에 대해서 잠깐 묵상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축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경건한 어머니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 이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소극적으로 다른 어머니와 다른 것 몇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경건한 어머니는 사치하지 않습니다. 외모의 단장에 힘을 많이 쓰지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 三장 三절에『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외모의 단장보다도 그 속 사람을 온 유와 안정한 심령으로 다시 말하면 불멸의 썩지 않는 단장에 힘쓸 것입니다.

    (2) 경건한 어머니는 다투지 않습니다. 다투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잠언 二十一장 九절에『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집에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하는 말도 있습니다.

    싸움 잘하는 어머니를 우리는 더러 봅니다. 제가 일전에 어느 거리를 지나가다 보니까, 어떤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면서 굉장한 싸움을 합니다. 그럴 때에는 해로운 젖이 난다고 합니다.

    어떤 어머니는 남편과도 사소한 일로 싸움 잘하고, 다른 이들과도 싸움 잘하고, 어떤 때에는 아이들 교훈 하는 것보다 아이들과 싸움 잘하기 쉽습니다. 거리에서도 싸움 잘하고, 상점에서도 싸움 잘하고, 수돗가에서도 싸움 잘하고, 어떤 이들은 교회에 와서까지도 싸움 잘하는 모양입니다. 경건한 어머니는 다투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3) 경건한 어머니는 말을 조심하여 실수하지 않도록 힘을 쓰며 특별히 남을 참소 하거나 훼방하지 않기를 힘씁니다. 베드로 사도는『모든 악독(惡毒)과 모든 궤휼(詭譎)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벧전 二․一)라고 권면 하였습니다.

    야고보 장로는『죄는 곧 불이라.』고 하면서 불같은 혀를 쓸 때에 조심하라(약 三․六)고 경고했습니다. 남의 말의 평론을 삼가 할 것입니다. 경건한 어머니는 입이 거칠지 않습니다. 자녀들에게 말의 모범이 되도록 힘을 쓰는 것입니다.

    (4) 경건한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볼 때 우리 어머니는 마을 돌이를 너무 한다, 놀기를 좋아한다 하는 인상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잠언 二十五장 十七절에『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아무리 아는 이웃집에라도 너무 자주 다니면 싫어할 수 있습니다. 심방은 결코 마을 돌 이가 아닙니다. 놀러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경건한 어머니는 윷놀이나 화투할 사이가 없을 것입니다.

    (5) 경건한 어머니의 모습은 자녀들이 보기에 우리 어머니는 너무 구경을 좋아한다 하는 인상을 안 줄 것입니다. 지금처럼 구경할 것 많은 때가 없습니다. 특별히 서울 같은 데는 골목마다 극장이요, 운동경기는 거의 매일 있고, 창경원에 들어가기가 좋고, 웬만한 집은 전부 텔레비전이 있으니 집에 않아서도 종일 텔레비전과 마주앉아서 구경만 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 一장 八절에는『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 도다.』구경은 암만 해도 족함이 없습니다. 구경 밤낮 하고 언제 자녀들의 옷을 빨아주고 아이를 바로 기를 사이가 있겠습니까? 그런 것들이 보통 어머니와 다를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적극적인 면을 보면,

    경건한 어머니, 참된 신앙이 있는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사명을 절실히 각오할 것입니다. 어머니가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이 세상에서는 가장 귀한 인간의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그 생명을 내 몸을 통해서 세상에 나오게 하고 세상에 나온 이 생명을 잘 길러서 하나님께 바치고, 교회에 바치고, 사회에 바치고, 국가에 바치는 귀한 책임이 어머니에게 있는 것입니다. 실로 중대한 책임입니다. 어떤 보물보다도 더 귀한 인간을 기르는 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어머니들이 이 책임을 각오합니까? 지금 영아원에 가보면 대부분이 버림을 받은 기아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에 있어서 매년 몇 천명의 어린이들이 어머니에게서 버림을 받고 문자 그대로 하늘을 향해서 살려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이런 불쌍한 어린이들의 부르짖음이 三천리 강산에 사무쳤습니다. 실로 무서운 일입니다. 천벌을 받을 만한 일들을 감행합니다. 모성의 타락이 이렇게 심한 때는 우리 한국 역사상 처음일 것입니다.

    어머니가 되었으면 그 아기를 바로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한 책임입니다. 이것이 어머니로서의 지상의 사명입니다. 엄숙한 하나님의 맡긴 바 사명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경건한 어머니는 이 사명이 얼마나 중한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둘째로 경건한 어머니는 이 사명을 깨닫는 까닭으로 이 사명을 나 혼자 할 수 없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서 겸손히 이 아기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친 것이요, 경건한 엘리사벳이 아기 요한 을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 내 뜻대로 기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 아기는 꼭 하나님의 뜻대로 기르겠습니다. 서약을 하고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옛날 할례의 깊은 뜻이 여기 있고, 오늘날 아기 세례를 베푸는 것은 뜻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든지 안 받든지 아기 세례를 받기 우든지 안 받기 우든지, 어떤 어머니든지 믿음이 있는 경건한 어머니라고 하면 온전히 아기를 하나님께 드려서 내 뜻대로 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르고,
    내 뜻대로 가르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교육을 시키고, 내 뜻대로 장래를 지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장래를 지도하기로 서약할 것입니다.


    셋째로 경건한 어머니는 아무리 자기가 힘쓸지라도 자기가 부족한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매달려서 간절히 이 아이들을 위해서 계속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경건한 어머니들은 기도를 힘쓰는 어머니들이었습니다.

    기도생활을 잘못해서 살림도 안 돌아보고 아이도 안 돌아보고, 아이들은 집에 놓고 바깥으로 쇠를 채우고 다른 데 가서 밤새도록 놀다가 온다는 말이 아닙니다.

    경건한 어머니는 언제나 아침과 저녁으로 가정을 중심해서 자녀가 바로 되기 위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은 꽃을 가꾸는 사람이 물을 많이 주는 것과 같습니다. 농사하는 삶이 비료를 많이 주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를 많이 받은 자녀가 영적으로, 모든 방면으로 잘 장성합니다.

    모니카가 어거스틴을 회개하기 위하여 十五년을 기도해도 회개하지 않고, 자기의 뜻을 거슬러서 오히려 지중해를 건너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모니카는 붙잡고 간절히 권했지마는 홀로 기도하는 가운데 이 놈이 도망해서 배를 타고 로마로 갔습니다. 기가 막히고 눈물이 강같이 흐릅니다. 자기 목사에게 가서 이 사정을 고하고 내가 이 놈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고 이렇게 애썼는데 몰래 도망을 갔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 때 목사의 말씀이 그렇게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많은 기도를 받은 아이니 반드시 돌아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뜻밖에 로마의 밀라노에 가서 위대한 암브로스라는 목사를 만나게 됐고 거기서 감화를 받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반드시 이깁니다. 세상에 살았을 때 이기지 못하면 죽어서도 이깁니다. 경건한 어머니는 기도의 어머니입니다.


    넷째로 경건한 어머니는 범사에 모범이 되도록 힘을 쓸 것입니다. 교육은 말로만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자녀들은 부모의 말보다도 부모가 어떻게 행하는 것을 봅니다. 부모의 행동 여하, 생활 여하가 자녀교육에 절대적인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어머니는 염치와 정절, 온유(溫柔)와 겸손, 근면과 진실, 사랑과 봉사의 모범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을 읽는 일, 기도를 하는 일, 십일조를 드리는 일, 주일을 거룩 히 지키는 일에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경건한 어머니는 과연 진주보다 귀한 것입니다.

    경건한 아들에 관해서 생각해 봅시다. 경건한 어머니 아래에서 경건한 아들과 딸들이 나옵니다. 경건한 신앙을 가진 아들은 부모의 은혜를 알 것입니다. 얼른 생각하면 누가 부모의 은혜를 모르랴 하고 생각되지마는,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아들과 딸들이 비일비재입니다.

    말은 부모의 은혜가 태산보다 높고 하늘보다 넓다고 하지마는, 아마도 너무 높고 넓어서 못 보는 모양입니다.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 있는 경건한 아들딸들은 부모의 은혜를 우선 아는 것입니다. 알뿐더러 부모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부모의 은혜를 알지마는 잊어버리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물론 공부하기에 바쁘지요. 다 장성한 사람들은 사업하고 자기 사무보기에 바쁘지요. 부모의 형편이 어떻게 되었는지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멀리 나와 있으면서도 부모에게 편지하는 것도 잊어버리기 쉽고 자기 아이들의 옷은 해주면서도 부모님의 의복을 해드리는 것은 잊어버리기 쉽고 자기 용돈은 늘 넉넉히 쓰면서도 어머니의 용돈은 늘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참된 신앙이 있는 경건한 아들은 부모를 잊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참된 신앙 있는 경건한 아들은 부모를 존경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를 보면 청년들과 학생들이 지식 수준에 있어서 부모들보다 훨씬 높습니다.

    대학 출신이 많아졌습니다. 학사도 많고 석사도 많고 박사도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물론 우리들의 부모는 그런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잘못 생각하는 이들 가운데 내가 고등교육을 받았으니 부모보다 낫다 하여 부모의 교훈을 경멸(輕蔑)히 여기기 쉽습니다.

    기억하십시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으로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부모가 비록 박사와 석사와 학사는 안 되었다고 할지라도 경험과 실제의 인생생활을 六十년 七十년 걸어오는 동안에 배운 것은 학교에서 四, 五년 동안 배운 것보다 얼마나 더 많은지 모릅니다.

    더욱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랑에 있어서는 여러분보다 얼마나 더 큰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경건한 아들과 딸들은 부모를 존경하며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어미의 모든 교훈을 받드는 것입니다.

    한 걸음 나가서 경건한 아들과 딸들은 뜻을 기쁘게 하여 부모의 쓸 모든 것을 잊지 않고 도와드릴 것입니다. 물론 경건한 아들들은 부모가 기대하는 인물이 되고 일을 하려고 힘쓸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한국 사회 같은 데는 아들과 딸이 먼저 예수를 믿고 경건한 아들과 딸이 되고 부모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지내온 대로 경건한 아들과 딸들은 시간문제이지 반드시 부모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 안에 경건한 어머니들이 많이 있습니다.

    경건한 아들과 딸들도 많이 잇는 것을 감사합니다.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이를 지적해 말해도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주간에 우리가 장례식을 해드린 김유순 권사님 같은 이는 그런 어머님 가운데 한 분입니다.

    젊어서 어린 아들 하나를 데리고 홀로 되어 일생토록 깨끗한 생활을 하며 주님의 교회를 봉사하여, 이 아들을 잘 길러서 교회를 봉사하게 하고, 사회를 봉사하게 하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충성된 마음으로 교회를 봉사한 어머님입니다. 이런 경건한 어머니, 경건한 아들이 있는 동안, 우리 민족의 앞날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왜? 이 어머니들이 장래의 한국을 지배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어머니로서 자녀들에게 남길 수 있는 최대의 유산은 참된 신앙과 경건한 생활입니다. 돈이 아닙니다. 집도 아닙니다. 사업도 아닙니다. 아들과 딸들은 기억하세요. 자녀로서 부모에게 드릴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참된 신앙과 경건한 생활입니다.

    오늘날처럼 모성, 아니 부성이 타락한 때는 일찍이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처럼 자녀의 도가 부패하여 패륜의 자녀가 많았던 시대도 일찍이 없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 영락교회의 어머니들과 우리 영락교회의 아들과 딸들은, 문자 그대로 경건한 어머니들이 되시고, 경건한 아버지들이 되시고 경건한 아들과 딸들이 되어서, 이런 사회에 새로운 생명의 물줄기를 보내 주어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혁신의 운동이 경건한 어머니를 통하여 일어나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어머니 주일을 맞이해서 여러 어머니를 축복하시고, 위하여 기도하시고, 공경하시고, 경건한 어머니들이 되시기 위해서 더욱 기도를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 영락교회의 아들과 딸들은 한 사람이라도 부모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신앙심과 효도심은 한 셈에서 나오는 물줄기입니다. 보이는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은 효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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