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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딤후3:10-17/ 성경은 어떠한 책인가? / 한경직 목사
    2014-08-23 08:05:02   read : 1287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三․十五-十七)

    오늘 十二월 둘째 주일은 세계적으로 지키는 성서주일입니다. 이 날『성경은 어떠한 책인가?』한 번 더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물론 여러분께서 성경이 어떠한 책인 줄 대강 아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한 번 더 우리가 분명히 몇 가지를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모든 책 가운데 가장 많은 공격을 받은 책입니다. 사상적으로, 역사적으로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옛날 셀서스라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十八세기에 볼테르 같은 사람, 현대의 비판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성경을 공격하였습니다. 또 성경은 많은 박해를 받은 책입니다. 로마제국에서 큰 핍박이 있을 때 항상 성경을 빼앗아서 불살랐습니다.

    중세기에는 천주교에서 성경을 박해했습니다. 보통사람이 읽지 못하도록 금했습니다. 근대에는 공산당들이 성경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금도 세계의 어떤 책보다도 제일 많은 방언으로 번역된 책입니다. 현재에 一,二0二방언으로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세계에 이렇게 많은 방언으로 번역된 책은 다시 없습니다. 또 지금도 성경은 세계의 어떤 책보다도 제일 많이 팔리는 책입니다.

    요사이 말로 베스트 셀러입니다. 제가 알아보니 작년에 여러 성서공회(聖書公會)를 통해서 팔린 책이 四,八八七,四二八천 권이라고 합니다. 우리 한국에서만 발매된 수가 九,三三五,六六一권이라고 합니다. 세계에 이렇게 많이 판매된 책은 없습니다.

    지금도 성경은 어떤 책보다도 제일 많이 읽는 책입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읽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도 성경은 무적의 책입니다.

    十八세기 프랑스의 볼테르 같은 사람은『약 五十년 후에는 이런 책을 읽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혹평하는 예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五十년 후에는 그 사람이 앉아서 그런 말을 하던 집까지 성서공회가 되어서 성경이 마루에서 천장까지 가득 쌓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디모데 후서 二장 九절에 사도 바울이 기록한 바와 같이『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책은 하늘 아래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독일 무이(無二)한 책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째로 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인 까닭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후서 一장 二十一절에『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요한 복음 十四장 二十六절에 주님께서『보혜사(保惠師)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책이 많지만 이런 책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이런 책은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났습니다.

    둘째는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말이 아닙니다.
    저의 학생 시절의 신앙 경험을 지금 회고해 보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제일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거기엔 개인의 전기와,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도 있으며, 시도, 문학도, 편지도 있고 여러 사람들의 말과, 심지어 마귀의 말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가? 하는 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 점점 더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온 우주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 자기 자신의 실재와 그 뜻을 나타내실 것만은 사실인 것입니다. 온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영원히 침묵하실 리는 없습니다.

    자연계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느 정도까지 자기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시편 十九편에 있는 말씀과 같이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언어가 없어 들리는 것은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일반적으로 인간의 양심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그 뜻을 나타내십니다. 혹은 세계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 공의를 나타내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 구속적인 뜻을 말씀으로써 히브리 백성을 통하여 분명히 나타내신 기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자기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삭에게 그러했고 야곱에게도 그러했습니다. 모세를 특별히 불러서 자기 자신을 나타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속하심으로 구속적인 하나님인 것을 더 분명히 나타냈습니다.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그의 의를 나타내시고, 가의 성품을 더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그 아들을 통하여 친히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요한 복음 一장 十四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 아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친히 인간에게 나타내시고 복을 부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여러 시대에 여러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계시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통하여 창조의 하나님을 나타내시고 출애굽기를 통하여 구속의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레위기를 통하여 순결의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이렇게 모든 책이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구약의 역사를 통해서도 개인의 전기를 통해서도 모두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활동,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분명히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해서 성경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실 말씀을 다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은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이 말씀의 중심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성경의 중심은 구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은 장차 오실 구주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신약은 오신 구주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본 교회 이 광혁 장로님께서 신약성서를 한 장에 쓰셨습니다. 그것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십니다.

    신구약 성경을 다 한 장에 쓴다고 할지라도 그 가운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얼굴과 성품과 말씀과 생활로써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성경은 십자가에서 만민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를 죄와 비참(悲慘)과 사망에서 헤매 이는 인류에게 보여주십니다.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입니다.

    넷째로 성경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시고자 하는 목적 하나입니다. 그리해서 요한 복음 三장 十六절의 말씀과 같이,『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 요한 이 예수 님의 편지를 다 써 내려가다가 요한 복음의 끝에 가서,『만일 예수 님의 행하신 일을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고 하고 二十장 三十一절에는『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주신 목적은 인간을 죄악 가운데서 구속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 성경이 지금까지 많이 읽히고 보급되나요? 이에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구주 되시는 그리스도를 그려주십니다. 성경의 목적은 인간을 죄악 가운데서 구속하여서 새 사람이 되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고자 하는 데에 있는 까닭입니다.

    이제 성경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를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어떤 축복을 받게 됩니까?

    물론 여러 가지 고대의 역사와 문화도 배우게 되지만 그러나 제일 튼 축복은 누구든지 읽으면 이 가운데서 구주를 발견해서 죄를 깨닫고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악인이 변해서 선한 사람이 됩니다. 음란한 사람은 성결한 사람으로, 거짓된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 됩니다. 살인 강도라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그대로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세상에 위대한 서적들이 물론 많이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대학에서는 소위 위대한 책에 대한 과목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동서고금을 통하여 위대한 책들을 골라 통독을 시키는 그런 학교가 생겼다고 합니다. 플라톤이니, 단테니, 혹은 동양의 논어, 맹자, 도덕경 같은 책들을 한 번 읽어보도록 힘을 쓴다고 합니다. 세상에 위대한 책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책을 읽어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알고 구주를 만나서 새 사람이 되는 책은 성경 하나밖에 없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새 사람이 되었지만 아직 어립니다. 이 어린아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도덕의 젖이 필요합니다. 말씀의 젖이 필요합니다. 이 성경은 생명의 양식, 도덕의 젖입니다.

    성경을 계속해서 읽을 때 심령이 자라고, 건강하고, 힘을 얻습니다. 성경을 읽음으로 모든 유혹과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슬픈 일을 당할 대에도 위로를 받고, 사업에 실패하고 낙심할 때에도 새로운 용기를 얻고, 성경을 통해서 새로운 능력을 얻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성경을 읽는 사람은 매일매일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 신앙의 유일한 표준입니다. 전통도, 이성도, 어떤 감정도 신앙의 표준일 수는 없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 신앙의 표준입니다. 이단과 사설이 횡횡(橫橫)하는 이러한 때에 우리가 어떻게 하면 신앙의 정로(正路)를 밟아갈 수 있는가? 성경을 읽고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행위의 정확한 표준입니다.
    성경에는 지고의 윤리가 있습니다. 최고의 도덕적 법칙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십계명을 비롯해서 산상보훈(山上寶訓)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간이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 행해야 할 모든 규례(規例)를 분명하게, 똑똑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이렇게 성경은 우리에게 사람이 되게 하고, 생명의 양식이 되고, 신앙의 모든 행위의 표준이 됩니다.

    전에 허다벌스 잉그설 이라고 하는 무신론자가 역시 무신론자의 친구 류 월리스 라는 대장에게 기독교를 반대하는 책을 쓰라고 권면 했습니다. 그 권면을 듣고 그런 책을 쓰기 위해서 우선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려고 성역부터 읽어보았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어 가는 가운데 생각이 점점 변했습니다. 나중에는 회개하고 오히려 성경에 감화를 받았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분이 예수의 생활을 묘사한 그 유명한「벤허」라는 책을 썼던 것입니다.
    성경의 감화력은 이렇습니다.

    성경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살펴보면 거의가 성경을 읽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입니다. 전에 프린스턴에 찜 윌슨 박사라는 유명한 구약학자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프린스턴 대학의 학생들이 성경토론을 하려 왔습니다.

    이 늙은 박사는 웃으면서『성경 토론하는 것은 좋은데 그래 도대체 성경을 몇 번이나 읽어봤나 요?』하고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고 솔직히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박사가 정색을 하면서 하는 말이『나는 적어도 四十년을 밤잠 안 자고 몇 백 번을 읽고 연구해서 믿지 못할 것이 없는데 우선 몇 번 읽고 오라』했다고 합니다. 보통 성경을 읽지도 않고 반대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묵상해 보면 어려운 문제는 성경 자체가 모두 대답해 줍니다.
    성경이 우리 사회에 주는 영향은 어떠합니까? 바로 내일 모래 十二월 十일에 세계 인권 선언 일이고 이 주간이 인권 옹호주간입니다. 한국에 있어서 얼마나 적절한 주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인권 평등의 사상의 원천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이 가는 곳마다 인간의 죄와 무지와 정치적 사회적 모든 구속에서 해방했습니다. 노예제도는 없어졌고, 남존여비의 사상이 타파되었으며 만인평등의 사상이 사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민주주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전에 토마스 헉슬리의 말과 같이 성경은 가난한 자와 피압박자의 대헌장입니다. 인간은 성경 없이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유의 대헌장인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성경은 박애와 자선사업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사회에는 병원이 생기고, 고아원이 생기고, 양로원이 생기고, 적십자사 운동이 생기고, 모든 인도주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이 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한 것도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성경이 가는 곳에는 미신을 타파하고 학문의 연구를 권장케 되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누구나 성경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게 된 이후에 자연과학도 발전되었다고 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최고의 문학과, 미술과, 음악과 같은 예술은 성경의 감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고 하는 사실도 우리는 압니다.

    성경이 가는 곳이 그 사회의 도덕이 향상됩니다. 이렇게 성경은 국가 사회 도덕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전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때에 어떤 외국 사절이 와서『영국이 이와 같이 흥왕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니까, 여왕은 책상 위에 놓인 성경책을 가리키면서『저 책이라』고 했다 합니다.

    성경은 오래된 책 같지만 항상 새로운 책입니다. 성경 가운데 새로운 진리가 무진장으로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성경 가운데 우리 인류가 찾아내지 못한 진리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十六세기에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새로운 진리가 발견되어서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고, 十八, 十九세기에는『온 세상에 가서 진리를 전파하라』고 하는 새로운 말씀이 발견되어서 세계 선교운동이 일어났습니다. 二十세기에는『교회는 하나』라고 하는 이 진리가 발견되어서 신 구교를 막론하고 이른바「에큐메니칼」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오래된 책 같지만 항상 새로운 책입니다. 교회는 성경을 중심하여 부흥합니다.
    성경을 상고하는 교회가 성공합니다.
    교회는 언제든지 성경을 중심 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의 뜻이 여기 있습니다.

    지난주간에 로마에서 제二차 바티칸 회의가 폐회되면서, 미사 때에 라틴어를 쓰지 않고 자기 나라 말을 쓰는 것이 허락되었고, 다른 교파와 결혼하는 것도 허락되었다고 하는 이런 좋은 소식을 듣고 우리가 다 환영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성서의 빗 깔만 본 것에 불과합니다. 혼상(婚喪)문제, 마리아 예배문제, 미사문제. 교황 전제정치 문제, 이런 것이 좀더 성경에 가까이 와야 비로소 신구 교회의 합동문제는 선언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 중심으로 교회가 돌아와야 합니다.
    개인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이웃 사람이나, 감정에, 또는 행동에 너무 따라가지 마세요. 언제나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실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성경을 전파하고, 성경대로 살고 죽어야만 합니다.

    여러분! 성서주일을 맞이해서 이 몇 가지를 스스로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나와 우리 가정에서는 이 귀한 성경을 매일 읽고 있는가요?』
    『주일 예배와 함께 성경공부도 하는가요?』
    『삼일 기도회에 참석해서 성경 공부를 하는가요?』
    『성경 보급에 협력하는가요?』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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