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3:1-5/ 딤후3:10-17/ 최선의 생활 / 한경직 목사 2014-08-23 08:02:12 read : 1253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의 완전한 자라.』(창六․九)
창세기 六장에서 제가 몇 절을 먼저 봉독(奉讀)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貫盈)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六畜)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當世)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敗壞)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 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창세기 六장에 기록된 노아 때의 형편을 그대로 봉독하였습니다. 여기에 보니『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피괴하였더라.』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에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이런 문구로써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니 그 시대가 얼마나 죄악이 관영하고 악하게 된 시대였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이런 말씀도 기록되었습니다.『오직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이런 말이 삽입되었습니다.『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의 완전한 자라, 하나님과 동행하였고……』이런 문구도 기록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노아는 이와 같이 죄악이 관영한 최악의 시대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의인의 생활, 최선의 생활을 하였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아침 문제를「최악의 시대에 최선의 생활」이렇게 정하였습니다.
노아는 과연 최악의 시대에서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최선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과 일반 육축을 홍수로 멸하기까지 된 그 시대가 얼마나 악하였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노아는 그와 같은 시대에 그와 같은 환경에 살았지마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의인의 생활, 온전한 사람의 생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 쉽게 말하면 최선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생활은 노아뿐만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十一장에 기록된 모든 신앙의 용사들의 생활을 우리가 생각해 볼 때에 이들은 다 이와 비슷한 생활을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겨의 이분들은 그 시대가 선해서 의로운 생활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 시대는 죄악이 많고 악하지마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최선의 생활을 한 사람들이올시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되는 아브라함을 기억할 때도 역시 그러합니다. 아브라함이 산 시대는 영적으로 아주 캄캄한, 암흑한 시대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가나안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간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가장 암흑한 시대에서 광명한 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요셉의 생활을 잠깐 돌이켜 생각해 볼 때에도 역시 그러합니다. 그 환경이 선해서 그런 생활을 한 이는 아닙니다. 종으로 외국에 팔려간 생활, 노예 생활, 감옥의 생활, 이런 모든 것은 말하자면 젊은 사람들이 당할 수 있는 최악의 환경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최선의 생활을 한 분이올시다.
우리가 모세의 생활을 돌이켜 생각할 때에도 역시 그렇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로 보아서는 죄악의 시대 가운데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정에서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던지는 악한 법률이 공공연히 시행되던 때에 난 사람이올시다.
까닭 없이 압박을 받고 노예 생활을 하며 벽돌을 구우며 말하자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말살정책(抹殺政策)을 쓰던 애굽의 시대에 나고 장성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와 같은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자기 민족을 오히려 이런 때에 구원하고 위대한 사업을 이룩하여서 최악의 시대에서 최선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세만 아닙니다. 모든 선지자들의 생활을 생각할 때에 그랬습니다.
가령 예레미야의 생활을 기억해 보세요. 그는 자기 나라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암흑한 시대, 눈물의 시대에 산 사람이올시다. 망국의 비애를 문자 그대로 맞은 눈물의 사자올시다. 그러나 그는 그와 같이 가장 암흑한 시기, 최악의 경로, 그 시대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자기 민족을 인도하고 민족을 위로해주는 귀한 최선의 생활을 한 분이었습니다.
에스겔이나 다니엘의 생활을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들은 포로 가운데에 산 분들이었습니다. 자기 백성과 같이 이국에서 포로의 생활을 합니다. 그야말로 그 때는 눈물의 시기였습니다. 거문고를 버드나무 가지에 걸고 우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이든지 다니엘은 그와 같은 죄악시대에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자기 민족을 위로하며, 자기 민족 가운데서 새로운 생명운동(生命運動)을 일으킨 최선의 생활을 한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一세기를 돌아다볼 때에 어떻게 보시는지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가만히 돌이켜 생각하면 제一세기야말로 무서운 세기였습니다. 오직 자기 민족을 사랑해서 요단강에서 회개하라고 외치던 의인 세례 요한을 목 배인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언약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시대입니다.
그리스도를 증거 하던 스데반을 예루살렘 성밖에서 돌로 쳐서 죽인 시대입니다. 예수 님의 제자 가운데 하나 야고보를 목베어 죽인 시대입니다. 로마 정부에는 가장 악한 황제라고 불리우는 네로가 지위에 올라앉았던 시대입니다.
팔레스틴으로 말하면 돈만 아는 빌라도 혹은 데스도 벨릭스가 총독 자리에 앉았던 시대입니다. 말하자면 무서운 시대요. 암흑의 시대요, 최악의 시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때에 여러 사도들이 살았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살면서 여러 사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여 최선의 생활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최악의 시대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최선의 생활을 하는 그것입니다. 최악의 시대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최선의 생활을 하는 것이 신앙 생활이올시다.
오해를 하지 맙시다. 최부(最富)의 생활이란 말이 아닙니다. 돈 많이 모으고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최고의 생활이란 말도 아닙니다. 반드시 높은 지위를 얻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최안(最安)의 생활이란 말도 아닙니다. 반드시 안일(安逸)한 생활을 의미하는 말도 아닙니다. 최선의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 이와 같이 최악의 시대에 살면서도 최선의 생활을 잠깐 생각해 보면 몇 가지 특색을 또한 우리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이들은 퇴폐한 세상에 살지마는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는 정결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살지마는 죄악에는 물들지 아니하는 정결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들 생활의 공통된 특색이었습니다. 양심이 마비된 사회에 살지마는 이들은 양심에 살았습니다.
동양의 옛 글에도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仰不愧於天 俯不作於人)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굽어서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다고 하는 글귀가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이런 말이 적합할는지 모르지마는 하여간 세상이 아무리 패괴하였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정결한 생활을 한 것이 이들의 생활의 특색이었습니다.
요셉의 생활이 그렇지 않았습니까? 종의 생활을 하면서 그 당시에 얼마나 부패한 그 사회 가운데서 얼마나 성결한 생활을 하였습니까? 다니엘의 생활이 그랬고 에스겔의 생활이 다 그러한 것입니다.
둘째로는, 이들의 생활의 공통된 특색은 이들이 죄악이 관영한 사회에 살면서 물론 죄는 미워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백성은 사랑하였습니다. 죄를 책망하였지만 죄에는 참예하지 아니했지마는 그 사람들은 불쌍히 여겨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를 쓴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과 봉사의 생활을 한 것입니다.
죄악 가운데 모든 사람이 빠졌다고 정죄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서 그 사람들의 영혼과 그 사람들의 생활을 가엾게 여겨서 참아 이기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민망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도와주며 어떻게든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의 전 정력을 바친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생활을 돌이켜 생각해 보세요. 그가 얼마나 그 당시에 죄악을 책망하였습니까? 왕들의 죄악을 책망했고, 당시 백성들의 죄악을 책망하였고, 제사장들의 죄악을 책망하였고, 일반 백성들의 음란과 사치와 여러 가지 불의와 거짓과 여러 가지 우상 숭배를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얼마나 백성들은 사랑해서 그들과 같이 울며 그들과 운명을 같이 하며 그들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해서 애썼는가는 우리는 생각만 해도 넉넉히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도 사랑과 봉사의 생활을 한 것이 그들의 특색이었습니다. 또한 그뿐만 아닙니다.
셋째로는, 이분들은 죄악의 시대에 산 까닭으로 언제든지 그들은 역경에 서게 되었습니다. 언제든지 거스리는 물결에서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난관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마음이 상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오히려 그 마음속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고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의 생활을 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 환경으로서 어려운 일이 많으나 그의 마음 가운데는 즐거움이 있었고 만족이 있었고 그의 심령의 깊은 속에는 언제든지 생명 샘이 솟아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함은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하는 줄 우리가 아는 까닭이라고 그는 감옥에 앉아서 장차 순교 당할 것을 예감하면서도 빌립보 교인들에게 글을 쓸 때에,
『항상 즐거워하라. 주안에서 즐거워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즐거워하라. 너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라.』주께서 너희들을 권고하신다고 항상 즐거워하라고 격려를 한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당시에 여러 가지로 핍박을 받는 모든 흩어진 성도들에게 편지하기를 베드로 전서 一장에 이런 글귀를 썼습니다.『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이런 글귀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들이 역경 가운데 살므로 말미암아 자연히 여러 가지 난관을 돌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믿음이 눌림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언제든지 그 심령 속에는 자유가 있었고 화평이 있었고 즐거움이 있었고 감사와 만족이 충만한 것이었습니다.
유다 말기에 산 하박국 예언자는 이런 노래를, 그 당시 어려운 가운데서 장차 그의 민족이 멸망을 당할 고비를 내다보면서도 이러한 노래를 지은 것입니다. 하박국 三장 十七절 이하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 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것이 그들의 내적 심령의 생활이올시다. 겉으로 여러 가지 난관이 있으나 그 마음속에는 언제나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했던 것입니다.
넷째는, 이들의 생활을 다른 사람이 보면 그야말로 미미한 생활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지내놓고 보면 이들이야말로 새 역사를 창조하는 창조적 생활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생활을 우리가 돌이켜 생각해 볼 때에 그이가 갈대아 우르와 하란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친척을 버리고 고향을 버리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땅으로 나아갈 때에 고독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일생토록 막 아래서 살며 나그네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四, 五천 년을 돌이켜 생각해 볼 때에 아득한 그 옛날에 아브라함처럼 창조적 생활을 한 이가 어디 또 있습니까? 창조적 생활을 하였습니다.
요셉의 생활이 그렇고, 모세의 생활이 그렇고, 모든 선지자들의 생활이 그렇고, 여러 사도들의 생활이 그러하였습니다. 여러분, 베드로와 요한 이 이곳 저곳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한 일이 세상 사람의 눈에 크게 보이지 아니하였습니다.
혹 바울과 바나바가 구브로에 가서 전도를 하고 혹은 그 후에 고린도나 아덴이나 이런 지방에 가서 전도를 하는 것이 당시 세상 사람의 눈에 크게 보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신문이 있다고 하면 신문에 그 기사가 날 이가 만무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二十세기를 돌이켜 생각해 본다고 하면 제一세기에 있어서 장차 오는 유럽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큰 생명의 운동, 창조적 생활을 한 이가 누구였습니까? 제一세기에 산 황제들이었습니까? 제一세기에 산 정치가들이었습니까? 제一세기에 산 군인들이었습니까? 제一세기에 산 철학가들이었습니까? 누구였습니까? 오직 사도들이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장차 오고 오는 유럽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생명 운동의 창조적 생활은 이들이 하였습니다. 혹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하여 보았습니까? 이 二十세기 중엽에 있어서 한국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운동 가운데 장차 우리 한국 민족에게 오고 오는 세대에 가장 영향을 줄 생명 운동은 무엇입니까?
이 앞으로 역사가 판단하려니와 우리가 분명히 믿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이 복음 운동, 생명 운동 이야말로 장차 이 민족의 장래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위대한 운동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 보기에는 미미한 운동 같지마는 이 곳에 가서 교회를 세우고 저 곳에 가서 교회를 세우고 젊은 사람 하나 하나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기독교 교육을 주는 것이야말로, 장차 우리 민족이 과연 자유의 민족이 되고 과연 자립하는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과연 이 동남아에 있어서 위대한 민족이 될 수 잇느냐, 그렇지 못한 민족이 될 수밖에 없느냐는 이 운명은, 결국 우리 기독교 운동이 이 땅에서 승리하느냐, 쇠퇴하느냐? 거기에 달린 것이 아닙니까? 이 여러 사도들과 같이 선지자들은 세상 사람 보기에도 미미한 생활을 한 것 같지마는 실상은 새 역사의 창조적 생활을 한 분들입니다.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합니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 살기는 살지마는 언제나 순례자로서「한 나그네」라고 말하면서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 살기는 살지마는 시민권은 언제나 하늘에 두고 살았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생활은 이 세상에만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의미를 가진 생활이었습니다. 이들의 생활은 사실 영원한 생활의 준비인 생활을 이 세상에서 한 것입니다.
『인생 七十은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인생은 이 세상에 오래 산대야 七十, 八十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지내놓고 보면 잠깐입니다.『인생의 사후 길 노소 없이 뫼로 가』무덤으로 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결국 우리 사람이 세상에 살 때에 잠깐 되는 이 세상만 위해서 사느냐, 영원한 의미가 있는 영생을 준비하는 생활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 최악의 시대에서 최선의 생활을 한 사람들, 잠깐 되는 이 세상만 위해서 살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하늘 나라의 의미가 있는 생활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어떠한 시대인가? 물론 그것은 이 앞으로 역사가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껏 생각하면 최악의 시대 가운데 하나일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二十세기에 접어들자마자 전에 없던 세계적 큰 전쟁이 두 번씩 일어나서 말할 수 없는 많은 피가 이 땅을 적시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아주 끝난 것이 아닙니다. 냉전과 열전은 계속해서 도처에 일어나는 중에 있습니다. 무신론적 유물론(無神論的 唯物論)을 그 배경으로 하는 악한 공산당은 점점 창궐(猖獗)하는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전에 없던 원자탄, 수소탄은 산더미처럼 쌓여지게 되어서 오늘날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불안과 공포에 떠는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한 편 우리도 역시 최악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는가 생각이 됩니다. 오늘 성경 말씀 가운데 여러분이 읽었지마는 t하도 바울은 디모데 후서 三장에 이런 말로 경고를 하였습니다.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그리고 얼마나 죄악이 관영한 시대가 오겠다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예고하였습니다. 얼마나 죄악이 관영한 시대가 오겠다고 하는 것을 경고하면서, 우리에게 부탁하는 말씀이
『너희들은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너는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라고, 이 시대가 이와 같이 최악의 시대가 올 터인 까닭으로 너희들은 마음을 지키고 확실히 믿음 우에 거해 최선의 생활을 하라.』고 우리에게 경고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신앙생활이란 별것이 아닙니다. 최악의 시대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최선의 생활을 하는 것이 신앙 생활이올시다. 최선의 생활은 무엇을 의미하지요? 죄악이 관영(貫盈)한 이 세상에 살지라도 물들지 아니하는 성결한 생활을 의미합니다.
죄악을 책망하면서도 사람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여러 가지 역경 가운데서도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의미합니다. 남이 보기에는 미미한 생활 같지마는 실상은 새 역사의 창조적 생활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만 위해 살지 아니하고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며 사는, 하늘의 본향을 바라보고 사는 새 생활이올시다.
최악의 시대에 최선의 생활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받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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