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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24:21-27/ 바울의 설교와 벨릭스/ 한경직 목사
    2014-08-23 06:36:49   read : 1237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행 24․25)

    사도 바울은 죄인으로서 유대인의 암살 계획을 피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 압송이 되었습니다. 그 곳에는 그 지방을 다스리는 로마 총독 벨릭스가 주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는 행정과 사법이 나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종종 벨릭스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은 그가 자기 아내인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같이 예수 믿는 도를 듣고자 하여 바울을 자기 집으로 청한 것입니다. 그리해서 사도 바울은 그 앞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설교의 대지가 二十五절에 있습니다.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이 그 것입니다.

    벨릭스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어도 다소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바울에게서 까지도 혹 돈을 받을까 해서 자주 청했다고 하는 구절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고대의 역사가 죠세퍼스나 태시터스를 통해서 우리는 좀 더 그 인물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본래 로마 황제의 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첨과 간교한 사교술로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게 되고 나중에는 유대총독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역사가 태시터스는 그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그는 종의 정신으로 포학(暴虐)과 욕심으로 통치하였습니다. 또 그 아내라고 하는 두루실라는 본래 다른 사람의 아내였는데 그를 꾀어 내어 자기 아내를 삼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이 이런 이들 앞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이 내용은 몰론 벨릭스와 드루실라에게 매우 적절한 교훈을 준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매우 적절한 교훈이올시다. 특별히 현대인에게는 더욱 그러한 줄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 내용을 이 시간 잠깐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의에 대하여 강론을 한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이 예루살렘 공회(公會)에 잡혀가서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위협을 받을 때에 사도행전 四장 十九절을 읽어보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베드로와 요한은 무엇을 하든지「옳은가」「하나님 앞에서 그 일이 옳은가」를 판단하여 항상 옳게 살려고 힘을 쓴 이들입니다.

    인간 행동의 기준은 이해(利害)가 아닙니다. 득실(得失)도 아닙니다. 편 불편(便不便)도 아닙니다. 쾌 불쾌(快不快)도 아닙니다. 인간 행동의 기본적인 기준은 그것이 옳으냐 옳지 아니하냐, 의(義냐) 불의(不義)냐에 있는 것입니다.

    시편 一一九편 一三七절에『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니이다.』

    시편 九七편 二절에『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라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의를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님께서도 산상보훈(山上寶訓)에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義)사모하기를 주리고 목마른 것같이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먼저 하나님과 옳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의 성호를 찬양하며 그에게 감사와 기도로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마땅히 할 일입니다.

    그의 뜻에 순복(順服)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의 뜻의 표현인 자연의 법칙과 도덕의 법칙에 순복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의 맡기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신인간에 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서로 옳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의가 있어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옳은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불륜의 행동은 이 관계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 때의 벨릭스의 가정은 불의의 가정이었습니다. 부모와 자녀간에도 이 의가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은 의입니다. 옳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권면(勸勉)합니다.『자녀들아 주안에서 네 부모를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곧 의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떤 잡지를 보니 어느 나라에서는 자녀들이 부모를 가르치려고 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혹 그런 면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원칙은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요새 어떤 학생들은 스승을 가르치려고 한다는 말이 혹 들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원칙은 아닙니다. 스승이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원칙입니다.

    요새 어떤 이들은 의와 불의, 정과 부정, 순결과 불결, 선과 악의 영원한 도덕의 법칙을 무시하려고 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시하려면 무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손해는 내가 본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자연 법칙을 무시하고 살려면 당분간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달아야 할 것은 손해도 내가 본다는 사실입니다. 사람 사이의 의를 거절하면 손해도 내가 봅니다. 더욱이 상거래에 있어서 의가 있어야 합니다. 가격만큼의 상품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상품만큼의 가격만 받아야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든지 같이 받아야 할 것입니다. 노사 관계에도 의가 있어야 합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이 빈부의 격차가 심하여 지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노사 관계에 의가 결여되는 까닭입니다. 그것은 불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까닭입니다.

    일반 행정은 물론 특별히 사법 재판에 있어서 의가 있어야 합니다. 부정 부패는 의가 없다고 하는 말입니다. 이 설교는 벨릭스 뿐이 아니고 오늘의 우리 법관들 내지는 모든 우리 국민 하나 하나에게 필요 적절한 교훈입니다. 먼저 그는 의를 강론했습니다.

    둘째는 절제에 대해서 강론했습니다. 절제는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인간의 이성과 양심과 또 하나님의 법에 의지해서 규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능은 본래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욕망도 본래 그러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 욕망 그대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짐승의 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제어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성을 주셨고 양심을 주셨고 또 법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들을 제어하면서 사는 생활을 절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네 자신을 알라.」는 권면은 매우 좋은 권면입니다. 특별히 자신의 약점을 아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부족합니다. 자신을 제어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을 이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극기라는 것을 아주 귀한 덕으로 인정하여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도『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이기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일에 절제가 필요하나 특별히 먹는데 입는데 그리고 일반 생활에도 절제가 아주 필요합니다. 필요한 거만 먹고 먹으리 만큼 먹는 것이 절제입니다. 입으리 만큼 입는 것이 절제입니다. 너무 많이 입는 것은 무절제입니다.

    반면에 너무 덜 입는 것도 무절제입니다. 어떤 여자들은 너무 덜 입는 것 같습니다. 수입에 맞추어서 생활하는 것이 절제입니다. 월급은 한 달에 5만 원 밖에 못 받는데 부인이 매달 七만 원씩을 쓴다고 하면 그 가정은 결국 파탄이 나고 말 것입니다. 수입에 맞게 사는 것이 절제입니다.

    그런데 옛날부터 인간들은 필요한 음식 이외에 다른 것도 많이 먹기 시작했습니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어떤 사람은 아편도 먹습니다. 요즘 서양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소위 환각제라고 하는「엘 에스 디(lsd)」「마리화나」니 하는 것들을 먹는다는 보도를 우리는 읽고 있습니다.

    대학생들 가운데 하기 농촌 계몽대로 나갔다 와서 보고하는 글을 읽어보니 농촌에는 한국의 三대 악이 있는데 그 첫째는 과음, 즉 술 많이 먹는 것이고 둘째는 도박 즉 노름하는 것이며 셋째는 이실 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이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三대 악이 있다면 그것은 과음과 부정 부패와 음란일 것입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아랍 사람의 이야기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한 번은 악한 마귀가 어떤 아랍 사람에게 와서『당신에게 앞으로 큰 화가 올 것입니다. 그 액을 피하려면 내가 말하는 세 가자 가운데 한 가지는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그 세 가지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마귀가 대답합니다.『하나는 당신의 종 가운데 하나를 죽이든지 또 하나는 당신의 아내를 때리든지 나머지 하나는 큰 술병을 가지고 와서 한 병 다 먹든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죄 없는 종을 죽일 수도 없고 살림 잘하는 부인을 때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그 술이나 먹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술병을 받아 잔뜩 먹고 취하자 공연히 트집을 잡아 가지고 살림 잘하는 아내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종이 보다 못해 너무 기가 막혀서『죄 없는 부인을 왜 때립니까?』하며 권면하니까 그만『네 놈이 무엇이기에 나에게 대들어?』하며 때리니까 매를 맞고 그만 죽었습니다. 그러니 술 한 병 받아먹고서는 아내도 때리고 종까지 죽인 셈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술의 영향이 어떻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입니다.「술은 일만 죄의 어머니」가 된다고 하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술 먹고 협잡합니다. 술 먹고 음란한 일 합니다. 술 먹고 부정 부패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전에 알렉산더 대제가 서른 세살 났을 때에 온 세계를 정복하리라 하고 그 다음엔 더 정복할 나라가 없어서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삶이 하루저녁은 친구를 모아놓고 요새 말로 대포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밤새도록 마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주독으로 말미암아 쓰러져 죽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제는 천하는 정복했으나 자기자신을 이기지를 못했습니다.

    절제와 극기의 덕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한국 사람의 약점 가운데 하나는 절제할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중국 사람들은 술을 더러 먹어도 술 주정하는 것을 못 봅니다. 제가 세계 여러 도시를 많이 다녀 보았지만 다 술 먹는 사람들일텐데도 우리 한국처럼 술 먹고 거리를 비틀거리며 다니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서울 거리를 다녀 보세요. 특별히 저녁거리가 어떤가 다녀 보세요. 문화인이라고 할 수 없는 광경을 많이 보게 됩니다.

    우리들의 이 약점을 잘 알았기에 초대 선교사들과 선배 목사님들은 우리 교회 안에서는 특별히 금주 단연(斷煙)을 엄격히 실행하도록 가르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한국 신교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은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금주 단연의 깨끗한 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맑은 새 물결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에는 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전통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입니다. 몸은 성령의 전이올시다. 성령의 전을 불필요한 것들로 더럽혀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셋째로 사도 바울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하여 강론하였습니다. 고린도 전서 四장 三절 이하를 읽으면 거기 사도 바울이 세 가지 심판 또는 판단을 말합니다.

    첫째, 사람의 심판이 있습니다. 곧 인간의 법정이 있습니다. 둘째로 마음의 심판이 있습니다. 곧 양심의 법정이 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법정이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항상 이 세 법정 아래에서 심판을 받으면서 삽니다.

    그런데 그 첫째 법정인 인간의 법정은 제일 부정확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외모는 보고 속을 보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그보다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법정은 양심인데 양심의 법정도 언제나 정확한 것은 못됩니다. 양심이 부패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정확한 법정은 하나님의 법정입니다. 우리는 이 법정 아래서 산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현재의 심판이요 또 하나는 미래의 심판입니다. 현재에도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역사적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맷돌이 천천히 돌아가나 매우 보드랍게 갈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사도 바울이 말하는 심판은 미래의 심판, 장차 오는 심판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아테네에서 선포한 말씀과 같이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의미합니다. 현재는 다 섞여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양과 면양을 갈라 세울 날이 옵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분별할 날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들어 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에 따라 심판을 받을 때가 오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二十장 十一절 이하를 읽어보세요. 장차 오는 심판이 기록돼 있습니다.

    자 그런데 사도 바울의 설교가 여기까지 이르니 벨릭스가 두려워서 지금은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내가 틈이 있으면 장차 너를 또 부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설교를 중단시켰습니다.

    이것은 큰 유감이올시다. 벨릭스가 조금만 참았으면『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은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하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강론했을 텐데 그만 중단을 시켜서 결론을 못 듣고 말았습니다. 설교는 끝까지 잘 들어야 합니다.

    벨릭스는 이렇게 설교를 연기시킴으로써 회개의 기회를 그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그런데 벨릭스는 만날 만한 때에 찾지를 못했습니다.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지를 못했습니다. 그리해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도자의 설교를 들었지만 회개하지를 못했고 악한 법관으로서 역사에 남았습니다. 그의 육과 영은 영원한 멸망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셔야 됩니다. 지금이 은혜 주실 때요 오늘이 구원의 날입니다.

    회개를 내일로 연기해서는 안 됩니다.

    『네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우리는 내일 무슨 일을 당할는지 모릅니다.

    우리 가운데 한 분이라도 교회 출입은 하지만 아직까지 온전히 회개하고 주님을 내 구주로 온전히 영접하지 못한 분이 계시면 이 시간에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이 구원의 날입니다.

    인간 생활에는 의가 있어야 합니다.

    인간 생활에는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늘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로마서 十三장 十二절 이하에, 일찍이 어거스틴을 깨우친 구절을 다시 읽을 때에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하게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라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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