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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27:33-44/ 폭풍우 중에 감사 / 한경직 목사
    2014-08-23 06:36:10   read : 1562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먹기를 시작하매』(행 二十七․三十五)

    여기에 있는『축사』라는 말은『감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떡을 떼어먹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한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고 로마에 가다가 지중해에서 유라굴로라는 큰 태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十四일 간을 해와 별을 못 보고 풍랑에 이리 저리 밀려가는 동안에 선장이나 선원이나 여객이나 군인 할 것 없이 모두 정신을 잃고 문자 그대로 빈사 상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때에 정신을 차리고 모든 사람을 격려한 이는 오직 사도 바울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는 十四일 되는 날 아침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러분, 안심하세요. 당신네들의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배만 잃게 될 것입니다. 어제 저녁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이렇게 분명히 내게 말씀해 주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음식을 먹으라고 권면 하면서 떡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그 떡을 떼어서 나누어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떡을 받아먹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폭풍우 중에 감사를 드렸고 폭풍우 중에 연회를 가진 것입니다.

    인생이 살아가는 항로에는 때대로 폭풍우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환난의 폭풍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재난의 폭풍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실패의 폭풍우가 있습니다. 어려운 질병의 폭풍우도 있습니다. 큰 슬픔의 폭풍우를 만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도 사도 바울 처럼 감사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 할 수 없이 어려운 때에도 감사를 드린 분입니다.

    여러분이 잘 기억하시거니와 그가 빌립보에서 전도를 하다가 억울하게 붙잡혀 매를 많이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혀서도 자기 친구 실라와 같이 어두운 밤에 기도와 찬송을 드렸다고 하는 기록을 사도행전에서 찾아봅니다. 폭풍우 가운데서도 감사와 기도를 드린 분입니다.

    다니엘 六장 十절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御印)이 찍힌 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밤에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을 열고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본래 유대 사람이올시다. 그러나 소년 시절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비록 외지에 잡혀갔지마는 그의 뛰어난 지혜와 총명으로 그 나라의 고관으로 승진케 되었고 그 후 바벨론이 망하고 바사 조로 바뀐 이후에도 계속해서 바사 조정에 등용이 된 것입니다. 다리오 왕 때에는 세 총리 가운데 하나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또 그 세 사람 가운데도 모든 것이 탁월하여 제일인자로 하려는 왕의 의도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의도를 안 그의 정적은 한 모략을 꾸몄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앞으로 三十일간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지기로 작정하는 조서를 내리라고 왕을 꾀이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왕은 그 배후에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을 모르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왕이 그 조서에 어인을 찍은 줄 알고도 여전히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와 감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때에는 누구든지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를 드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니엘도 문자 그대로 극심한 폭풍우 가운데서 감사를 드린 사람이올시다.

    인간의 역사와 현 사회를 가만히 살펴보면 대략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은혜를 거의 잊어버리고 전혀 감사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흔히 배은망덕이라는 말로 표현을 합니다. 이런 무리들은 옛날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一장 三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도다』했습니다. 소나 나귀만도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가운데 압살롬은 자기 아버지의 자리를 탐내서 반역을 일으키고, 아버지를 궁중에서 쫓아낸 후에 그 궁(宮)에 들어가서 갖은 추행을 다 감행했습니다. 그러다가 물론 마지막에는 패해서 죽은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배은망덕하는 젊은 사람들을 봅니다.

    누가복음 十五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탕자의 비유도 역시 그런 것입니다. 이 탕자의 심리를 보세요. 자기 아버지에게 가서, 그에게 줄 분 깃을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분 깃을 나누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그것을 다 팔아 먼 나라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왜? 아버지가 상관할 수 없는 곳에 가서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 재산으로 허랑 방탕하며 음란하며 도박하며 갖은 추한 행동을 계속하다가 결국 재산을 다 탕진해 버렸습니다. 은혜를 모르고 배은망덕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전에 내가 이북에서 들으니까, 어떤 부잣집 아이가 자기 동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합니다. 자기네 큰집을 가리키면서,『이제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만 죽으면 저 집이 다 내 것 돼.』이런 생각을 가진 이는 지금도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신문에는 아버지를 때린다는 기사도 나고, 자녀들이 부모를 쫓아내었다는 소리도 더러 나고, 심지어 부모를 죽인다고 하는 이야기가 보도되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이런 배은망덕하는 무리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생활이란 종으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횡으로는 내 이웃, 내 사회, 내 나라, 한 걸음 더 나가서는 모든 우방국가, 전 세계 인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깊이 생각하면, 우리가 하루의 생활을 평화롭게 산다는 것은 종으로 우리의 선조, 선열, 부모의 은혜와 횡으로 우리 이웃, 사회, 나라, 우방국가, 전 세계 인류의 은혜가 다 모여서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지금 아폴로 十一호가 달을 향해서 가는 중입니다. 이 분들이 달에 무사히 다녀오기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이 많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그들의 성공만을 위해서 하는 기도만은 아닙니다. 그들이 달에 가서 달의 형편을 탐험하고 돌아오는 일은 전 인류에게 혜택이 미치는 일인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버스를 타고 다니시고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집에서 라디오를 듣고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이 모든 문화적 혜택의 배후에는 우리가 얼굴도 모르는 수없이 많은 과학자들의 은혜가 모여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런 면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사는 이가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 나라의 은혜, 이웃의 은혜, 온 세계 사람들의 은혜, 이런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런 생활이야말로 인간 이하의 생활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은혜를 다소 알기는 하나 너무 얕은 감사의 생활을 하는 이들이 없지 않아 많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쉽게 말하면 맑은 날은 감사하고 흐린 날은 불평하고, 건강할 때는 감사하고 병날 때는 불평하고,

    장사가 잘되고 사업이 잘되면 감사하고 잘 안될 때는 불평하고, 아이가 학교에 입학이 잘되면 감사하고 잘 안되면 불평하고, 취직이 잘 되면 감사하고 취직이 안 되면 불평하고, 다른 사람이 선물을 잘 주면 감사하고 열 번 주다가 한 번 안주면 불평하고, 기분 좋을 때는 감사하고 기분 나쁠 때는 욕하고 하는 것입니다.

    어린애들을 보면, 초콜릿을 주면 감사하고 너무 많이 먹어 배아플까봐 조금 주면 눈을 흘깁니다. 그런 사람들은 없습니까?

    제가 전에 어떤 책을 보니 어떤 지방에 가서 선교하던 선교사가 어떤 아프리카 토인 부락을 지나다가 깜짝 놀랄 일을 당했다고 합니다. 가만 보니 그 부락의 한 토인이 자기 옆에 늘 모시고 다니던 우상을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볼기를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가 놀라서 어떻게 당신이 섬기던 우상을 매달아 놓고 볼기를 칠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토인이 대답하는 말이, 내가 이 우상을 十년이나 섬겼는데 복은 하나도 주지 않고 화만 주니 이런 우상을 어떻게 섬기겠느냐고 말합니다. 이런 종교 사상을 가진 이들이 지금도 상당히 많은 줄 압니다.

    전에 들으니 어떤 집에서 어느 부인이 몇 주일 동안 교회에 잘 나오더니 갑자기 안 나오기에 그 교회 권사님이 가서 물었다고 합니다.

    『왜 잘 나오시다가 안 나오십니까?『나는 이제 안 나가렵니다. 글쎄, 지난 주일날 문을 걸고 교회 다녀오니 도둑놈이 와서 모두 다 가져갔습니다. 그때 집도 못 봐주는 하나님을 무엇 하러 섬기겠습니까?』이런 유치한 종교 사상을 가진 이가 지금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감사하지만 얕은 생활을 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이 있는 줄 압니다.

    그 반면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성경의 교훈대로 모든 일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을 만듭니다. 기독교 신앙이 꼭 지혜 있게 만든다고 보증하기 어렵지요. 꼭 지식이 많은 사람을 만든다고 보증하기도 어렵겠지요. 돈을 잘 버는 사람으로 만든다고 보기도 어렵겠지요. 그러나 누구든지 참된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되면 그이는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 신앙은 이 우주에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 우주의 창조자 시오 섭리자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그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이 우주 안의 모든 것, 일월성신, 산천초목, 오곡백과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은혜로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까지, 지식이나 재능이나 물질이나, 시간이나 아니 내 자신까지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저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은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속하기 위해서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주셨다는 것을 또 알게 됩니다. 십자가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올시다. 우리와 같이 계시는 하나님이올시다. 곧 우리와 항상 같이 계셔서 날마다 우리의 짐을 져주시는 하나님이올시다. 우리와 동행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올시다.

    약할 때에 붙들어 주시고 쓰러지려고 할 때에 도와주시고 우리가 슬픔을 당할 때에 위로를 더해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인생 길을 다 간 후에는 우리의 심령을 에녹과 같이 영원한 하늘나라에 영접하신다는 것도 기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이는 자연히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을 읽어보세요. 여러 사도들과 초대 신자들은 감옥에서도 감사를 했고 매를 맞고도 감사를 드렸고 재산의 손해를 받고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교회사를 읽어보세요. 많은 순교자들이 순교하면서도 감사를 드리며 죽었습니다.

    외적 세계 혹은 환경은 안경의 빛깔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검은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검게 보입니다. 그러나 분홍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분홍빛으로 보입니다. 믿음의 안경을 쓰고 보면 모든 일에 감사할 것이 있습니다.

    검은 구름에도 햇빛이 비치면 아름답고 무지개가 나타납니다. 근심의 안개, 슬픔의 구름에도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면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 프랜시스의 태양의 노래를 기억하시지요. 그 노래의 내용을 보면, 그는 햇빛을 위해서 감사 드립니다. 달을 위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별을 위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산천의 초목을 위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오곡백과를 위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산해어별(山海魚鼈)을 위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형제자매를 위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에 드린 감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죽음을 위하여 감사를 드렸습니다. 죽음을 자기의 자매라고 부르면서 이 죽음을 주시니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죽음도 주안에서의 죽음은 감사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된 신앙은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 가슴을 채워 줍니다.

    사실 감사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로마서를 읽어보면 믿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에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뿐 아닙니다. 감사한 마음은 믿음의 척도입니다. 믿음이 있을 수록 감사한 마음이 더 많아집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그렇게 많은 추수를 했을지라도 하나님께 대해서 감사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가난한 과부는 그 가난한 가운데서도 너무 감사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믿음의 척도입니다.

    옛날 로마의 유명한 문호 시세로는『감사한 마음은 최고의 덕일 뿐 아니라 모든 덕의 어머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한 이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한 이가 남을 해치는 언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한 이는 어떤 직장에서든지 그 자리에서 충성을 다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한 이가 교회에 나와서도 봉사를 제일 잘 합니다. 전도도 제일 잘 합니다. 헌금도 제일 정성껏 합니다. 국가를 위해서도 충성을 다합니다.

    두 가지 종류의 시내가 있습니다. 한 종류의 시내는 빗물이 모여서 흐르는 시내입니다. 비가 오면 물이 많이 내려갑니다. 그러나 가물면 물이 없습니다. 다른 한 시내는 높은 알프스산 꼭대기에 수없이 쌓인 눈, 빙하 같은 것을 근원으로 해서 내려오는 시내입니다. 이런 시내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는 법이 없습니다. 왜? 그 근원이 높은 산봉우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마음은 이러한 시내와 같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심령 속에는 높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생명의 물을 근원으로 해서 언제나 감사와 기쁨이 충만히 넘치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이와 같은 은혜를 받는 사람은 어디가나 기쁨과 화평으로 충만케 되고 봉사를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충만한 은혜를 주시기 원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 사랑의 충만한 은혜 능력의 충만한 은혜를, 감사의 충만한 은혜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원컨대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 개인의 가슴, 가슴마다, 아니 우리 온 교회에 감사의 충만한 은혜를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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