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행 八․二十七)
여러분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 에티오피아 황제께서 한국을 방문중에 계십니다. 이 에티오피아라고 하는 나라는 제가 교회사를 읽은 대로는 제일 먼저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오랜 기독교 국이올시다.
또 지금 황제로 계신 하일레 셀라시에 一세는 참 신앙이 독실한 분으로서 二년 전 백림에서 모였던 세계복음화대회에 친히 입석 하셔서 축사하시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또 이 나라는 우리가 공산침략을 당하던 六․二五 때에 군대를 보내서 우리 나라를 도운 참전 十六개국의 하나인 자유 우방이기도 합니다.
이 나라는 성경에도 그 이름이 몇 번 나옵니다. 가령 구약에는 구스 혹은 스바라는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구약에 보면 이 나라는 옛날 향수와 향품(香品)과 금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신약에는 오늘 아침 우리가 읽은 바와 같이 사도행전 八장에 에티오피아의 한 내시가 빌립의 전도를 받고 회개하여 예수를 믿은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오늘 아침 빌립과 에티오피아 내시의 일화를 잠깐 돌이켜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 바랍니다.
빌립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 잘 아는 것입니다. 빌립은 초대 교회에서 선택을 받은 유명한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일곱 집사들은 본래 예루살렘 교회에서 구호사업을 전담하기 위해서 피택(被擇)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은 이들은 다 신앙이 독실하고 성령이 충만한 분들인 까닭으로 구호사업도 잘할뿐더러 복음 전파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리해서 그 가운데 한 분인 스데반은 복음을 전파하다가 큰 박해를 받아서 첫 순교자가 되었고
이 빌립은 이렇게 큰 핍박으로 말미암아 믿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서 사방으로 흩어질 때에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가서 그 곳에서 복음을 전파해서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고 그 성에 큰 기쁨이 충만케 하였다고 하는 위대한 전도사업을 하신 분입니다.
그 후에 그는 주의 사자의 지시를 받아서 예루살렘에서 남쪽 가사로 가는 길 곧 광야로 가게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뜻을 몰랐을 것입니다. 왜? 할 일 많은 도시를 떠나서 사람 없는 광야로 보내실 까라고 생각했을 줄 압니다.
그러나 그는 순종했습니다. 얼마 아니 가다가 그는 수레를 타고 예루살렘에서 내려오는 에티오피아 내시의 일행을 길가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지도로 가까이 가서, 마침 그가 읽는 성경 구절을 기초로 해서 그에게 예수를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믿게 되었고 그는 이방 사람으로서는 첫 믿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이제 이 에티오피아 내시에 대해서 조금 생각합시다. 그는 어떤 분입니까?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에티오피아에 여왕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아래서 국고를 맡은 아주 권세 있는 내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어떻게 그 길을 가시게 되었습니까.
성경에 기록한 대로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분은 순례자의 길을 가는 중이었습니다. 무슨 정치문제, 경제문제로 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참된 신앙을 위해서, 참 하나님을 위해서 이 길을 가는 분이었습니다. 보통 정치가가 아닙니다. 그는 진리의 탐구자이기도 하였습니다.
옛날에는 유대 사람은 아니지마는 구약을 읽고 유대인이 예배하던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던 이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도 그들 가운데 한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예루살렘이 얼마나 먼가요. 적어도 一천 二백 마일 이상이 될 것입니다.
제가 바로 한 서너 주일 전에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베이루트까지 에티오피아 항공기의 제트기를 타고 갔는데 근 서너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길을 수레를 타고 간다고 하면 실로 머나먼 길일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에티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려고 할 것이면 애굽을 지나야 합니다. 문자 그대로 장장 대하가 잇고 태산준령도 있으며 황막한 사막 길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순례의 길을 간 것을 보면 그는 한 나라의 전 국고를 맡은 경제인이지마는 그 심령은 물질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영원한 불멸의 세계에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그는 수레 위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저는 종종 기차를 타고 또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때에 책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하고 돌아보는 때가 있습니다. 보통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또 읽는대야 보통 시문 장이나 잡지 같은 것들을 읽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요사이 소위 대중 잡지라고 하는 것은 어느 나라 것을 불문하고 아마 그저 쓰레기통에나 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그런 독서가가 아니었습니다.
이 분은 성경을 읽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신약은 없던 때입니다. 구약을 읽었습니다. 구약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이사야서를 읽었습니다. 이사야서 가운데서도 핵심이 되는 이사야 五十三장을 읽으면서 그 길을 가던 중이었습니다. 이사야 五十三장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적혀 있습니다.
"그가 찔림을 받은 것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을 입은 것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으니라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 같이 잠잠하였고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 나실 때에 공변 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니라." 이런 구절을 이 내시가 아마 여러 번 크게 읽은 모양입니다.
왜? 암만 읽어도 그 뜻을 잘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마침 빌립이 성령의 지도로 가까이 가서 그 읽는 글의 뜻을 아는가 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때에 그는 솔직히 대답했습니다. "가르쳐 주는 이가 없으니 제가 어떻게 그 뜻을 알겠습니까?
선지자가 이 말씀을 한 것은 누구를 가리킴입니까? 자기를 가리켰습니까? 혹 다른 사람을 가리켰습니까?"
이렇게 대화가 시작되어서 내시의 요청에 따라 빌립도 같이 수레를 타게 되었고 같이 사막 길을 가면서 빌립은 예수를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은 다른 것이 아니고 장차 올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이 메시야가 되시는 예수께서 사실 이미 오셨고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아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시어 승천하셨다. 그런 까닭으로 이제부터는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복음의 진리를 믿어야 한다고 자세히 그 내시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이 구절의 뜻을 알았습니다. 누구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얼마쯤 가다 보니 물이 있는 곳이 있습니다.
내시가 그 물을 보더니 내가 세례를 받는 것이 무슨 거리낌이 있겠습니까? 나는 세례 받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보니 그는 결단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주가 되신 것을 깨달은 후에는 더 연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꼭 믿기로 작정하고 믿는 이상에는 그의 이름으로 세례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 때는 이렇게 곧 세례를 주던 때입니다. 요사이 교회에서 보면 어떤 이는 십 년을 다녀도 세례 받지 못하고 다니는 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내시는 이런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곧 결심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이방 사람으로서의 첫 신자가 되었고 모든 이방 신자의 조상이 되었고 에티오피아 교회의 창립자가 된 것입니다.
시편 六十八편 三十一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 그리해서 에티오피아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기독교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 후에 빌립은 성령의 지시를 받아서 자기 갈 길로 복음을 전파하러 갔습니다. 이 구스 내시는 계속해서 수레를 타고 사막 길을 지나갑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흔연히 그 길을 가더라." 기쁨으로 그 길을 가더라. 사막 길은 여전한 사막 길이지만 구스 내시의 마음속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공자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조문도면 석사라도 가이(朝楣夕死可而)라고. 아침에 도를 들었으면 저녁에 죽어도 가하다고 했습니다. 저녁에 죽어도 유감이 없는 기쁨을 이분은 가지게 되었습니다. 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까닭입니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받는 첫째의 큰 축복은 우리가 주를 알게 되고 죄 사함을 받게 되면 우리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여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찬송가의 가사와 같이,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니." 그 어디나 천국으로 화합니다.
인생 길이 아무리 광야 같이 황막하다고 하지마는 참으로 주를 모시고 인생 길을 가는 사람은 기쁨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인생 길을 걸어갑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이 기쁨이 있습니까? 혹은 비애와 절망 속에 아직도 헤매입니까?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 폴 틸리히라고 하는 분이 "현대 사람에게는 지식이 많고 현대 사람에게는 새로운 기술도 많고 현대 사람은 고도의 문화 생활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람의 심령 상태를 가만히 살펴보면 세 가지 희색 그림자가 항상 따라다닌다.
첫째는 공허감, 텅 빈 느낌, 둘째는 죄 감, 죄로 말미암아 오는 양심의 불안, 셋째는 공포감, 두려운 마음" 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뒤에는 따라 다니는 회색 그림자가 없습니까?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참으로 만나기 전에는 이들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결국 허무합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언제나 죄 의식에 고민을 당할 수박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이 없으면 불안과 공포를 이길 수 없습니다.
빌립보의 간수가 새벽에 사도 바울을 붙잡고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 부르짖은 말씀을 여러분께서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런 부르짖음은 옛날 빌립보 간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구주를 만나지 못한 사람의 깊은 심령 속에는 누구나 이런 부르짖음이 있습니다. 거기 대해서 사도 바울은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를 믿는 길만이 나와 내 집이 구원 얻는 길입니다.
제가 한 서너 주일 전에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베바에서 한 三, 四일 지날 때에 한 번은 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가는데 거리에 로터리가 하나 있고 그 로터리 가운데 큰 동상이 하나 있었습니다. 보니까? 성직 복을 입은 신부나 감독의 동상입니다.
그래서 저와 같이 가던 메큘리어 박사에게 이것이 무슨 동상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이가 하는 말이 그 동상은 에티오피아의 유명한 어떤 주교의 동상이라고 일러주면서 동상 바로 아래는 기관총을 하나 놓았다고 하며 설명을 하는데,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세계 二차 대전 바로 전에 이탈리아의 뭇소리니가 에티오피아를 침략해서 에티오피아가 잠깐 동안 이탈리아의 점령 하에 있을 때에 이탈리아 군대가 그 도시의 중요한 곳은 거의 다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그 산악 지대에는 수도원이 많은데 그 수도원을 근거로 해서 성직자들과 수도사들과 애국 청년들이 모여서 계속해서 게릴라전을 감행하였다고 합니다.
암만 해야 이것을 해결할 길이 없으니까, 이탈리아 사령관이 그때의 대주교를 청해서 당신이 성직자들을 다 모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다 모이면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때 주교가 모든 성직자들과 수도사들과 애국 청년들을 아무 날 아디스 아베바에 다 모이라고 하니 모든 사람들 이 다 모였다고 합니다. 여러 만 명이 왔다고 합니다
. 다 모인 다음에 이탈리아 사령관이 이 주교에게 더 이상 저항하지 말고 이탈리아와 협력하라고 강요를 했답니다. 그 때에 주교가 단 위에 올라서서 그 이탈리아 사령관이 한 말과는 정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는데 끗까지 자유를 위해서 싸우라고 외쳤답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사령관이 준비했던 기관총으로 주교를 쏴 죽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교 이하 거기 모였던 수천 명이 일시에 학살을 당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몇 해 후에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에디아피아 국민은 이렇게 용감한 국민이올시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끗까지 수호하려는 이 정신이야말로 귀중한 것입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아프리카 여러 국가 중에서 몇 천 년을 독립국가로 내려오는 나라는 이 에티오피아 한 나라밖에 없는 줄 압니다. 그 배후에는 기독교 신앙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은 특별히 자유를 수호할 위대한 사명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