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4:1-12/ 오직 하나이신 구주 / 한경직 목사 2014-08-23 06:32:11 read : 984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四․十二)
이 말씀은 사도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유대인의 관원들과 제사장들 앞에서 예수님께 대하여 증거 한 말씀입니다. 예수 외에 다른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은 없다고 여기에 분명히 베드로가 증언 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기억하는 요한 복음 三장 十六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인 것입니다. 요한 복음 六장 六十八절에 시몬 베드로는 이렇게 주님께 대답했습니다. 즉,『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 게로 가오리까?』
영생의 말씀은 오직 주님께 있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八장 二十四절에는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즉,『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너희가 만일 내가 그 매시야 인줄, 구주인 줄 믿지 않으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三장 十一절에『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여 구원의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온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전 인류를 구원하는 구주인 것을 우리에게 증언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간에서 때때로 어떤 도든지 한 가지 믿는 것이 좋은데 도는 다 같은 것이므로 무엇을 믿든지 는 관계치 않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에 대한 정당한 태도일까요? 가령 우리가 삼정에 가서 어떤 물건을 살 때에 상품은 다 일반이다. 비단은 다 같다. 이런 태도로 물건을 삽니까?
우리가 어떤 약방에 들어가서 감기 약을 산다고 하면 감기 약은 다 같은데 어떤 약이나 사겠다 하는 생각으로 삽니까? 요사이 한국 제약 계와 같은 사회에서는 이렇게 약을 사먹으면 병이 잘 낫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런 태도로 어떤 상품을 사지 않습니다. 진가를 구별합니다. 이것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우열을 구별합니다. 이것이 좋은 약인가, 좋지 못한 약인가, 구별해서 상품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신문의 사회면을 보면 또다시 유사종교에 대한 기사가 종종 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몇 주일 전에는 서울 시청 앞에 상투를 틀고 갓을 쓰고 푸른 도포를 입은 一00여 명의 무리들이 와서 데모를 벌였던 일이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三八이북에까지 가서 평화통일을 주창하겠다고 호언했던 모양입니다. 남원에서 올라온 일심교도라는 무리였습니다. 지난주간에 보면 동방 교라 하는 명목으로써 부녀자의 재물을 편 취하고 그 정조까지 농락하는 무리들이 또한 생긴 모양입니다.
우리가 듣는 대로는 충청도 계룡산을 중심해서 이와 같은 유사종교의 수가 六十여 단체나 된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왜 우리 민중들이 이와 같은 미신에 빠지게 됩니까? 그것은 우리 인간은 종교성이 있어서, 어떠한 종교가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심경이 비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이 특별히 위기를 당하든지 사회의 불안한 상태를 당할 때에는 어떤 종교든지 의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알지 못하는 무지와 무식 가운데서 이와 같은 거짓 지도자들의 교훈을 따를 수 있고, 또한 가석한 것은 공부를 한 사람들 가운데도 종교에 대해서만은 무비판적 태도를 가지는 까닭으로 이런 사람들에게 유혹 받게 되는 것을 종종 목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귀한 것일수록 가짜와 유사품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간하고 비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품 하나를 살 때에도 이런 분간이 필요하거든, 하물며 우리 인간에 있어서 가장 귀한 우리의 영혼을 영원히 맡길 만한 종교에 대해서 분간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태도인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유사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이른바 세계적인 종교, 역사적인 종교도 반드시 비판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1) 가령 우리 한국 민족과 과거 五00년 동안 관계를 가졌던 유교에 대해서도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줄 압니다.
이 유교로 말하면 과거 五00년간 우리 조상들의 정신을 지배한 종교입니다. 그 중심 인물은 공자와 맹자인 것을 우리가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경전은 사서삼경(四書三經)혹 五경에 있다는 것도 우리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장점은 도덕인데, 정치에는 태도를 버리고 왕도를 하라고 권면했고, 개인생활에 있어서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기초로 해서 인과 의와 예와 지와 신의 생활을 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여기에 좋은 도덕적 교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종교적 견지에서 볼 때에 이 유교라고 하는 종교에는 인간 심령에 가장 큰 갈망이 되는 하나님과 영혼과 내세에 대한 분명한 교훈이 없습니다. 우주문제나 인생문제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해주지 못합니다.
종교는 사람과 하나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각관계에서 성립이 되는데 유교는 단순히 인간과의 관계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곧 도덕적, 윤리적 교훈뿐입니다. 단순히 도덕만 가르쳐서는 죄에 타락한 인간을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유교에는 죄인이 구원을 받는 구원의 이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도덕사상도 완전한 것은 되지 못합니다. 가령, 너무 허례에 치중한 것입니다. 부모에 효도하는 것은 좋지마는, 세상을 떠난 후의 여러 가지 제사제도가 복잡한 것입니다. 또한 그 도덕관념은 너무 남성 중심이 되어서, 여자들에게 대해서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이니 하는 것으로 거의 도외시한 감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교가 지배하던 이조시대에 살던 대중들은 각종 미신과 잡신숭배와 온갖 원시적인 종교생활을 하여온 것이 사실입니다.
윤리적 교훈 중에 좋은 것은 우리가 받아들일 것이지마는, 종교로서는 결여된 점을 우리가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우리가 잘 아는 불교에 대해서도 분명히 기억할 것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이 불교는 삼국시대에 우리 조상들의 정신을 지배하던 종교입니다. 본래 주전 六세기경 인도 북방에서 삼국시대 초기에 우리 한국에 전래되어 삼국 전 시대를 통해서 우리 조상의 정신을 지배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 불교는 본래 석가여래가 가르쳤는데 그 도리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그는 특별히 네 가지 진리를 깨달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성제(四聖碲)를 깨달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첫째는 고(苦)라고 하는 원리인데, 모든 존재를 고라고 본 것입니다.
둘째는 이 고의 원인이 어디 있는가 생각할 때에 모든 고통의 원인은 혹정(惑情) 이른바 욕망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셋째로 어떻게 하면 고를 없앨 수 있을까 하여 생각한 것이 혹정을 없애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넷째로 혹정을 없애는 길이 어디 있는가에 대해 석가여래는 소위 팔정도(八正道)라고 하는 여덟 가지 길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보는 정견(正見), 바로 생각하는 정사유(正思惟), 바로 말하는 정어(正語), 바른 행위를 해야 한다는 정업(正業), 바른 직업을 가지라는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이라고 해서 바른 기억을 할 것이요, 정정(正定)이라고 해서 바른 묵상을 하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석가 이후에 수 천년 동안 내려오면서 이 불교 가운데도 많은 종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바라문교와 힌두교에서 많은 사상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불교에는 정경제도가 없습니다. 가령 우리 기독교에는 신구약 六十六권이 있어 우리는 그것을 온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서 믿습니다.
그들은 이런 정경이 없습니다. 역사를 통하여 내려오면서 유명한 불교의 지도자들이 써놓은 저서를 다 경전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경전은 아주 방대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하는 말과 같이「八만 대장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파를 통한, 공통적인 현재 불교의 대의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의 공통사상 가운데 하나는 우주를 볼 때에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보는 것입니다. 만상이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불증불감(不增不減)하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있는 존재로 봅니다. 이들은 우주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창조의 원리를 알지 못합니다. 우주 자체가 무시무종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신을 안다고 하여도 일종의 범신론적 사상에 가까운 것입니다.
둘째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사상이 있습니다. 물심(物心),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상입니다. 셋째로 제법무연(諸法無然)이라는 사상입니다. 자아를 부정합니다. 자아라는 것은 태평양의 물 한 방울 같아서 따로 떨어져 있을 때는 존재하지마는 합하면 그만 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원칙을 믿습니다. 이른바 카르 마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이 현시의 삶은 다 전생에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그 업보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바라문교에서 받아들인 윤회전생설(輪廻前生說)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이 세상에 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좋은 생활을 한 사람은 더 좋은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심지어 인간 이하의 짐승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이 고통이 많은 세상에 오지 않고 영원한 열반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열반에 들어가려면 수행 즉, 닦고 행하는 것이 있어야 하며 또 참회를 해야 하고 삼학(三學)이라고 해서 도리를 배워야 되고 이미 말한 八정도를 행해야 하며 육도(六度)라고 하는 포시(布施) 염불 등 여러 가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드디어 열반이라는 경지에 들어가고 이 세상에 다시 오지 않게 되는데, 열반의 경지를 혹은 멸도(滅道), 혹은 적정(寂靜) 혹은, 불생불멸의 경지, 혹은 무한절대경이라는 말로도 묘사를 하였습니다. 그리해서 이 열반에 들어가는 경로도 굉장합니다. 가령「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지나야 한다고 합니다.
즉 생각은 아닌데 생각 아닌 것을 묵상하는 처정(處定)을 지나야 한다고 하고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혹은 식무경처정(識無경處定), 공무경처정(空無경處定) 그리고 二선과 三선과 四선을 지나야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고 그렇게 되면 내 자신도 전적으로 합해서 그것에 화해 버리고 다시 이 세상에 오니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지에까지 들어간 사람을 그들은 부처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교는 무신론적 종교입니다. 우주 안에서 인격적인 유일신을 그들은 찾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불교는 염세적이요, 비관적인 종교입니다. 생을 근본적으로 고통이라 보고 어떻게 하면 이 생의 고통에서 해탈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윤회전생을 피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종교입니다.
따라서 불교는 소극적 종교입니다. 영혼을 부정하고, 자아를 부정하고, 욕망을 부정하고, 심지어 생존도 부정해서 허무에 돌아가기를 원하는 종교입니다.
따라서 이 불교는 정적(靜的)종교입니다. 활동적 종교가 아닙니다. 그리해서 불교의 상징은 절간입니다. 절간은 깊은 산골에 있습니다. 깊은 산골에 조용히 앉아서 염불을 하는 것이 불교의 모습입니다.
이런 종교에 진보와 발전이 있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불교에서는 참되고 풍부한 생명을 찾을 수 없습니다.
(3) 그리고 한 가지 종교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회교입니다.
회교는 본래 한국에 없었는데 六․二五때 터키 군대가 한국에 주둔하면서 그들과 접촉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신문에 보니 서울에도 회회교 예배당이 섰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앞으로는 회회교를 믿는 사람들과 접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회교는 어떠한 종교인가 미리 말아두는 것이 좋을 줄 압니다.
이 회회교 혹은 마호메트교는 주후 六세기 아라비아에서 일어났습니다. 마호메트라는 사람은 별로 공부 못한 사람으로 四十세까지 장사를 하던 사람입니다.
四十세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그 계시를 모아 놓은 책을「코란」이라고 하여 그들의 경전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가 장사하는 동안에 여러 곳으로 여행을 하면서 유대교와 기독교와도 접촉해서 그 내용을 어느 정도까지 안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회회교는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파생된, 변태적이고 타락된 종교입니다.
즉, 사교입니다. 말하자면 이단의 종파입니다. 그래서 사실 기독교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가령 그들은 일신교를 믿습니다.
그들이 부르는「알라」라는 하나님은 한 분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우상을 배격하는 것도 우리와 꼭 같습니다. 그들은 또한 구약의 율법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지금까지도 돼지고기를 절대로 먹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은 구약과 신약에 있는 유명한 이들을 선지자로 받아들입니다. 예수님도 한 선지자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마호메트가 선지자 가운데 으뜸 되는 선지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기도를 장려하고, 기도를 하되 언제나 메카를 향해서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메카는 마호메트가 태어난 곳입니다. 금식과 순례도 장려합니다. 그 밖에 아라비아 사람들의 원시적 풍습이 많이 섞인 종교입니다.
이 종교 가운데 또 한 가지 특색은 매우 광신적이요, 배타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도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는 회회교가 국교로 되어 있는데 그 나라에서는 누구든지 회회교를 배타하고 다른 종교를 믿으면 사형에 처하는 법률이 있습니다.
얼만 전에 말레이시아의 수상이 한국을 방문한 일이 있었지만 그 나라의 국교는 회회교입니다. 그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누구나 회회교를 배반하면 그 곳에서 살 수 없고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말레이시아에 기독교회가 있기는 하나, 그 교회는 전부 중국 사람의 교회요, 말레이시아 사람으로 된 교회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회교의 도덕 수준은 매우 낮습니다. 다처주의(多妻主義)를 채택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첩을 네 사람까지 얻는 것은 괜찮다고 합니다. 마호메트 자신도 첨이 十二명이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회회교 나라에서 여성의 지위라고 하는 것은 말할 수 없이 낮습니다. 거의 인격을 무시합니다. 회회교 예배당에는 여자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밖에서 구경이나 할 정도입니다.
또 그들의 내세사상이 매우 저열합니다. 이 다음 천당에 가면 세상에서처럼 큰 연회나 세속적인 재미를 본다고 설명해 줍니다.
여러분, 기억하는 바와 같이 마호메트가 맨 처음 이 교를 시작할 때에 무력으로 포교를 했습니다. 자기 신도들을 모아놓고 무력으로 근동 일대를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표어가『이 코란경을 받아라, 그렇지 않으면 이 칼을 받아라』하는 것이어서 무력으로 근동일대와 아프리카 북부일대를 점령하고 정치적으로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습니다.
회교는 이와 같은 종교입니다. 아무 종교나 믿으면 된다고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태도는 없습니다. 적은 상품을 사면서도 분간을 하는데 인간의 가장 귀한 영혼을 맡기는 종교를 우리는 신중히 분간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종교는 인간의 머리로 짜낸 종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서 세상에 보내신 구주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이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는 사다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사다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으로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참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모든 죄를 속죄하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해서 승리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이 지킬 수 있는 가장 고상한 도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풍부한 생명을 얻고 금생과 내생의 영원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무는 열매를 보아서 압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는 곳마다 참된 자유와 번영과 문화의 꽃이 핍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 한국의 소망입니다.
여러분,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민족의 거의 八할이 무종교 상태에 있습니다. 빈 영혼이 오랫동안 그냥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 빈 영혼에 참된 그리스도, 참된 구주를 보여주지 않으면, 이렇게 불안하고 공포가 충만한 세상 가운데서 그들이 어떠한 미신, 어떠한 그릇된 종교에 유혹될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에게 오직 한 분밖에 계시지 않으시는 그리스도를 전파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금년에 전국 복음 화 운동을 일으킨 것이요, 우리는 三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 혼자만 믿는 것은 너그럽지 못합니다. 이 죄로 말미암아 불안과 공포에 싸이고 올바로 갈 바를 몰라 허덕이는 우리 민족에게 참된 구주를 보여주는 것이 믿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금년에는 나 혼자 믿지 말고 많은 우리 동포를 우리 주님께로 인도해서 온 민족이 같이 축복을 받는 금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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