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6:19-34/ 너와 네 집의 구원 / 한경직 목사 2014-08-23 06:30:48 read : 1304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十六․三十一)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간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읽은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억울하게 붙잡혀 가서 매를 많이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히고 큰 핍박을 받았지마는 바울과 실라는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서 기도를 드리고 큰 음성으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고 옥 터가 움직이며 감옥 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매었던 것이 풀어졌습니다. 간수는 자다가 깨어서 이 놀라운 현상을 보고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 생각해서 자기의 책임이 중함을 느끼어 검을 빼어 자결하려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보고 큰소리로 외쳐,『우리가 다 여기에 있으니 스스로 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 이 간수는 두렵고 놀라고 떨리는 가운데서 바울에게 와『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물어 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첫 마디입니다. 간수의 집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전파한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간수와 온 집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여기에 기록한 대로『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 하니라.』온 가정이 하나님을 믿게 되어 기쁜 가정, 행복한 가정이 된 것입니다. 여기 특별히『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하는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기독교는 개인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가정을 구원하며, 개인에게 축복을 가져오며, 또한 온 가정에 축복을 가져오는 종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있음과 같이 그리스도 가정이 있습니다. 개인만 회개하는 것은 부족합니다. 온 가정이 기독교화 되고 온 가정이 구원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한 주간을 기독교 가정주간으로 지키는 이 때에 이 기독교 가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성경의 교훈대로 가르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온 가정을 축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기독교 가정은 온 가족이 감화된 가정입니다. 옛날 아브라함은 혼자만 하나님을 공경한 것이 아닙니다. 온 가족이 같이 하나님을 공경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혼자만 하나님을 공경한 것이 아닙니다.『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리라.』온 가족이 같이 여호와를 섬긴 것입니다. 욥이 혼자만 하나님을 공경한 것이 아닙니다. 온 가족과 같이 하나님을 공경하며 의로운 생활을 한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 보아도 모든 사도의 가정이 그러했습니다. 베다니에 있던 마리아의 가정이 그러했습니다. 삭개오가 회개한 후에 자기만 구원 얻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오늘날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온 가정이 구원된 것입니다. 고넬료가 온 가정을 회개케 했습니다. 빌립도 온 가정이 기독교 가정이었습니다.
빌릴보에서 제일 먼저 회개한 루디아 라고 하는 여자도 온 가족과 같이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입니다. 온 가정이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전도하려니와, 제일 먼저 전도는 우리 가정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안드레가 예수 님을 만나본 후에, 제일 먼저 예수 님께 데려온 사람은 자기의 형, 시몬이었습니다. 먼저 가정에서 전도를 해야 합니다. 또 사실 내가 내 가정에서 전도할 수 없으면 다른 데서 전도하기도 아마 힘들 것입니다.
내가 내 가정에서 전도하려고 하면 사실 참 믿음이 내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말로만 믿노라해서 가정에서 전도할 수 없습니다. 안 믿는 온 가족들이,『과연 우리 어머니는, 과연 우리 아버지는, 우리 딸, 우리 아들들은 참 진실하게 믿어.』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믿음을 속이지 못합니다. 다 압니다.
얼마 전에 자기 아버지를 제가 잘 아는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아버지는 장로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교회를 잘 안 나와요. 그래서 왜 교회를 잘 안 나오느냐고, 잘 나오라고 하면서 장로 아들이 그래서 되겠느냐, 잘 나와서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청년 하는 말이『목사님 아직 나만큼은 모릅니다. 우리 아버지 장로이긴 했으니 실상 예수는 잘못 믿었습니다.』
그 아들에게 그렇게 보이면 전도할 수 있겠습니까? 전도할 수 없습니다. 사실인지는 모르나 이미 세상 떠나신 대구의 이문주 목사님 가정에서는, 우리 가정에서 누가 예수를 잘 믿나 투표를 했다고 합니다.
온 가족이 다 모여서 했습니다. 투표를 했더니 이문주 목사님이 표를 제일 많이 얻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 참 목사입니다. 가정에서 표를 얻을 만큼 예수를 믿는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 아들이 되고, 딸이 되면 그 다음에 전도할 것입니다.
가정에서 전도할 만큼 믿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하는 모든 일이 꼭 성경대로 하는 모범이 되어야 가정에서 감화를 받습니다. 물론 예수를 믿는 것은 사람의 뜻으로 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우리가 정성껏 기도하고 권면 하며 우리의 정성을 다하면, 제 경험으로 보면 그런 가정은 다 감화가 됩니다.
우리 교우 가운데 어떤 자매는, 상당한 가정의 자맨데, 그 이는 잘 믿으나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도 있고 큰 사업을 하는 그 남편은 다른 면으로 실수는 없으나 교회에 대해서, 기독교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늘 위해서 기도하고 권해서 교회 나가자고 권면 하지마는 다른 것 다 하면서도 이 말은 절대로 안 듣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온 가족이 감화하게 되었냐고 하면, 한 번은 그 자매가 갑자기 몸이 약해져서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고 병이 중해서 사람 보기에는 다시 살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남편이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떠난 후에도 한이 없게 하기 위해 자기 부인의 침상에 서서,『당신 나 보기에는 상당히 중한데 무슨 소원이 없겠는가?』고 물었습니다.
그 때 이 여자가 얼른 대답하는 말이『내 소원은 꼭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회개하고 예수 믿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회개하고 예수 믿는 것 보기만 하면 이제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남편이 그 자리에서 회개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떤 어머니, 아버지들이 그들의 아들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간절히 권면도 하지마는 종내 회개하지 않는 아들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어머니가 세상 떠난 다음에 관머리에 앉아서 회개하는 아들도 더러 보았습니다.
참 믿음으로써 구하고 힘쓰면 결국은 온 가정이 감화 받게 됩니다. 먼저 내 온 가족이 감화되는 참 기독교 가정이 되기 위해서 이 주간에 특별히 기도하고 힘을 써야 될 것입니다.
(2) 기독교 가정에서는 가정예배가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의 적은 교회입니다. 사실은 교회가 본래 가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옛날 아브라함의 가정은 한 적은 교회였습니다. 루디아의 가정은 한 적은 교회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적은 가정교회에서 제사장의 책임이 있었습니다. 욥은 그 가정에 있어서 제사장의 책임을 가지고 항상 그 자녀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이 원칙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곧 가정이 믿는 가정이면 그 가정의 주인은 제사장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목사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 가정의 주인은 그 가정의 온 가족과 같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책임이 있습니다. 주인이 없는 경우에는 그 부인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주인은 목사의 지위에 있고 어머니는 권사의 지위에 있고 자녀들은 어린양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세대주의 주인으로서 온 가정의 경제적인 책임을 지는 것과 같이 이 신령한 면의 가정예배를 인도한 책임이 내게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다음 주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 내가 이 책임을 얼마나 충성스럽게 감당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심판을 받을 때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바로 관찰하였는지는 모르나 제 어렸을 때 보니 그 때 믿는 가정들은 거의 가 가정예배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날 가만히 권찰 들의 보고를 듣는 대로는 가정예배를 드리는 가정이 점점 줄어가는 것 같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 줄 압니다. 사회 양상이 점점 변해 갑니다. 우리 사회가 공업화가 됩니다. 사업화가 됩니다.
혹은 공장에 가는 아들이 있습니다. 회사에 가는 아들이 있습니다. 혹 어떤 때는 부인이 취직해서 일할 수밖에 없는 때도 있습니다. 같이 모이기가 대단히 어려운 줄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기독교 가정에는 반드시 온 가족이 모여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이 제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침도 좋고 저녁도 좋고, 가정 형편에 따라서 하려니와 어느 때든지 한번은 온 가족이 주님의 무릎 앞에 앉아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때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서 찬송 소리가 그칠 때에 싸움하는 소리가 들리기 쉽습니다. 가정예배는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서 같이 죄를 자복 하고 같이 은혜를 받는 생명의 원천, 가정평화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이 가정예배가 있으면 혹 가정이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그 어려움을 뚫고 나갈 수 있습니다.
가정예배가 없는 까닭으로 조금 어려운 일만 있어도 가정의 불평이 많아지고 가정이 어지러워지고 낙심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제가 지금까지 늘 잊을 수 없는 경험 가운데 하나는 六․二五때 부산으로 피난 가서 보수산 과 다른 산기슭에 전부 가마니를 치고 그 추운 겨울을 나지 않았습니까?
그 때 이른 아침에 제가 무슨 일이 있어서 그 곳을 지나갔습니다. 지나가는데 가마니 친 그 집에서, 찬송 소리가 나고 저 집에서 찬송소리가 나고 이 집에서도 찬송 소리가 나고 사방에서 찬송 소리가 나요. 그 찬송 소리를 듣고 제가 큰 감화를 받았습니다.
아, 이 백성들이 이런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찬송을 드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면 이 백성들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뚫고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비결이 있었기에 우리가 六․二五와 같은 그 고생과 그 굶주림과 그 헐벗음과 모든 어려움을 다 뚫고 나온 것입니다.
기독교 가정에는 가정예배가 있습니다. 홀 우리 가운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 예배가 가친 가정이 있으면 내일 아침부터, 아니 오늘 저녁부터 이 가정예배를 다시 시작해서 가정 제단의 불길을 밝히시기 바랍니다.
(3) 기독교 가정은 기독교 원칙과 도덕에 기초하여 사는 가정입니다. 그것도 두 말 할 것 없지요.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셨는데, 그 가정을 세울 때 일정한 원칙 아래서 세우셨습니다. 일남 일녀는 지었습니다. 일부일부주의(一夫一婦主義)의 원칙입니다.『둘이 합해서 한 몸이 될지니라.』부부일시의 원칙입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고 우리 주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불가분의 원칙입니다.
참 기독교 가정에서는 이혼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원칙 아래서 살아야 합니다. 또 우리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에 대한 의무나, 아내가 남편에 대한 의무도,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신비한 관계에 의해서 그 깊은 진리와 도덕을 분명히 에베소 五장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 기독교 가정에 있어서 남편 된 사람은 주안에서 한 몸 된 내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주심같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아내 된 사람은 주안에서 한 몸이 된 남편을 공경하고 사랑하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을 본받아 그대로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은 남편의 책임이 있고, 아내는 아내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 책임은 조금씩 다릅니다.
세월이 변한다고 자연질서인 남녀의 구별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할지라도 남편은 남편이요, 아내는 아내요, 남자는 남자요, 여자는 여자요, 가정에서 남자의 할 일이 있고 여자의 할 일이 또한 따로 있는 것입니다.
남자는 온 가정을 지도하며 경제적인 책임을 주로 맡습니다. 여자는 온 가정에서 살림을 하며 특별히 어린 아기를 기르며 가르치는 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이 책임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그대로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디도서 二장에서 한 절을 읽을 때에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四절부터 읽습니다.『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 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고 근신하고 순전하고 집안 일을 잘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꼭 기억할 것은 실수 없이 옳은 길 그대로, 죄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꼭 성경 교훈대로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는데,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는 말은 아무 사업도 하지 말고 기도만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일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고 길가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가 혹 듣는 대로는 어떤 가정에서 기도를 힘쓰기 위해서, 딴 집에 기도하는 곳에 가서 밤 낮 거기에만 있어 남편이 들어와도 아내는 볼 수가 없어 기가 막혀 나에게 와서 걱정하는 이도 보았습니다.
바로 오늘 아침에 어떤 이는 나한테 와서 하는 말이『우리 아내는 아무리 가지 말라고 해도 어떤 따로 모여 기도하는 곳이 가더니 정신이 나가서 부득이 청량리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켰습니다』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앙생활은 똑바로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가정의 책임도 돌아보지 않고 모여서 기도만 하는 것이 신앙생활인 줄 알면 안 됩니다. 아내의 책임은 집안에서 살림을 잘 하고 자녀들을 바로 교육하고 그 책임을 잘하면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가정이 안 믿는 사람의 가정보다 깨끗하고 알뜰해야 합니다. 살림을 잘 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가정이 사치해서는 못씁니다. 그러나 깨끗이 하여야 합니다. 정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기도하는 가운데 실수하는 분도 있고 가정을 보면 교회 나오기는 하는데 다른 일이 너무 바쁜 것 같아요. 계를 한다. 윷놀이를 한다. 화투를 한다. 극장 구경을 간다. 심지어 어떤 이는 새로 유행하는 춤까지 추러 다닌다고 하니, 그래서야 살림을 바로 할 수 있겠습니까?
남편이 종일토록 수고를 하다가 가정에 들어오면 문은 걸려 있고 부인은 없습니다. 그 남편의 마음이 편안하겠습니까? 더욱이 그 남편이 예수를 안 믿는 남편이라고 하면, 그 남편의 마음을 감화시켜서 온 가족을 기독교 가정이 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꼭 성경대로 바른 가정생활을 해서 온 가족에게 감화가 되고 안 믿는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4) 기독교 가정의 특색이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성경입니다. 가정의 기초는 사랑인데 사랑의 근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중심 한 사랑은 성결합니다. 영원합니다. 불변합니다.
둘째는 이와 같은 가정의 특색은 화평입니다. 노한 물결에 시달리던 배라도 항구에 돌아오면 안정을 얻는 것과 같이 고해와 같은 세상에서 부딪치던 인생이 가정에 돌아와서는 고요한 평화를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화평이 충만한 가정은 우리 사회에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가정의 평화는 돈이 많은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이 큰 데 있는 곳도 아닙니다. 학식이 많은 것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손이 많은 데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정의 평화는 참된 신앙에 있습니다. 성경이 충만한 신앙생활에 있습니다. 가정의 화평을 유지하려고 하면 고귀한 덕인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가족 가운데 실수를 해도 용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온유한 성품입니다. 유순한 대답이 분노를 그치게 합니다. 이런 모든 덕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가정에 성령이 충만하면 죄가 못 들어옵니다. 에덴동산에 뱀이 들어오듯, 우리 가정에 죄가 들어오면 어떻게 가정이 화평합니까?
우리 가정에 또한 중요한 것은 서로 믿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믿고, 아내가 남편을 믿습니다. 서로 믿으려고 하면 정직하여야 합니다. 남편도 정직하고 아내도 정직해야 합니다. 한 몸이 피차에 속일 수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속이면 안 됩니다. 아내가 남편을 속여도 안 됩니다. 사랑엔 거짓이 없습니다. 이것도 참 신앙에서 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공연히 자기 아내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위 의처증이라는 병적 현상에 빠진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공연히 아내가 남편을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피차에 믿어야 합니다. 믿기 위해서는 서로 진실해서 한 몸으로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 가정의 특색은 평화입니다. 또 하나 기독교 가정의 특색은 봉사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봉사하고 가정에서 피차에 서로 서로 봉사하고, 온 가정이 합해서 사회를 봉사하고, 온 국가를 위하여 모든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기적 개인이 있는 것처럼 이기적 가정이 있습니다. 자기 집만 잘 짓고, 자기만 잘 살고, 못 사는 사람 안 돌아보는 것은 기독교 가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가정은 전도를 해야 하고, 위문을 해야 하고, 심방을 해야 하고, 구호를 해야 하고 생활개선 운동을 해야 하고, 인보상조(隣保相助) 운동을 해야 하고, 애국운동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가정의 특색은 봉사입니다. 디모데 전서 五장 四절에 이런 권면이 있습니다.『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먼저 자기 집에서」라는 말을 기억하세요. 먼저 자기 집에서 전도를 해야 합니다. 먼저 자기 집에서 예배를 봐야 합니다. 먼저 자기 집에서 서로 사랑하고 화평해야 합니다. 먼저 자기 집에서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먼저 자기 집에서 자기 책임을 잘 감당해서 살림을 잘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기도하고 힘써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는데, 근본적인 교훈은 우리 하나 하나가 중심에 그리스도를 영접하여야 합니다. 이 주간에 영락교회의 三천 세대가 다 기독교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목적을 위하여 기도하며 힘써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