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二十․二十三-二十四)
사도 바울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밀레도라고 하는 성에 들려서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자기 마음속의 깊은 생각을 흉금을 열어 놓고 그들에게 말할 때에 이와 같은 말씀이 포함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데 사실 올라가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다. 성령이 나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은 각 성에서 환난과 결박이 나를 기다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마는『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로부터 받은 바 그 사명을 마치기 위해서는 내 생명을 조금도 귀히 여기지 아니하노라.』말씀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의 신앙 생활의 일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달려갈 길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는 받은 바 사명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 달려갈 길을 마치고 자기의 받은 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히 여기지 아니하고 생명을 통해서 그 사명을 마치려고 하는 결심을 가진 것입니다.
여러 해 후에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장차 순교의 날이 점점 가까워 오는 것을 예감하면서 자기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최후 편지를 쓸 때에 디모데 후서 四장 七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었으니』사도 바울은 자기의 달려갈 길을 분명히 보고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 달려갈 길을 마치려고 하는 결심을 가지고 일생을 달음질하는 사람과 같이 산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달려갈 길을 마치었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신앙 생활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의 길에 나선 사람은 자기의 달려갈 길과 사명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 달려갈 길을 다 마치려고 하는 견고한 결심과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만이 그 달려갈 길을 다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생활이자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입니다.
요한 복음 四장 三十四절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수가성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먹을 것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시장하실 터인데 잡수라고 권면 하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가 먹을 양식이 따로 있다.』계속해서 이르시되『나의 양식은 나의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그의 일을 온전히 이룬다고 하는 말은 원어에는 마친다고 하는 말입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서 행하여 나를 보내 사 나로 하여금 하게 하신 그 일을, 아버지의 일을 온전히 마치는 것이다. 양식은 매일 먹어야 되는 것과 같이 나는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이 나의 양식이다.』
그리고 우리 주님도 이 세상에서 다 사시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실 때에 최후로 남긴 말씀이 요한 복음 十九장 三十절에 기록되었습니다.『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십자가상에서)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이 말씀도 다 마치었다 하는 말과 똑같은 말입니다.『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 일을 하시기 위해서 밤이나 낮이나 노력하였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교훈도 하셨습니다.
이적도 행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핍박도 받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까지 달리셔서 자기의 생명을 바친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주신 그 일을 마치려고 하는 결심을 가지고 일생을 노력하시고 마지막에 문자 그대로 인류를 구속하는 위대한 사업을 다 마치시고 이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내려오는 속담 가운데「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작이 매우 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마치는 것은 시작하는 것보다 더 귀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귀합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을 이루는 것은 더 귀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좋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 귀합니다. 그러나 이 시작한 일을 온전히 마치는 것은 더 귀합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시작하는 것이 매우 귀합니다. 그러나 시작한 이 주님의 일을 마치는 것은 더 귀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보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마치 경주자가 달음박질 마당에서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경주 자는 마지막 모든 코스를 다 달음질해서 그 경주를 마쳐야 한다고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마치 경주 자들이 마라톤 코스를 향해서 떠나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라톤 경주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시작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끝까지 그 코스를 다 마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경주 장에서도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마는 끝까지 마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또한 의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보면 달리는 사람에게 주시는 권면이 많습니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서 계속해서 달음질하라고 했습니다. 뒤에 있는 죄, 실패한 것을 기억하지 말고 잊어버리고 뒤에 어떠한 생활을 했던지 앞만 보고 달음질하라고 하는 권면이 있습니다.
만일 사도 바울 같은 사람도 회개하기 전 자기가 잘못한 죄를 항상 돌아보았던들 그 경주에 큰 장애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도 전에 자기가 지은 죄를 그냥 돌아보았던들 자기가 앞으로 달리는데 큰 장애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습니다. 뒤에 있는 실패, 뒤에 있는 성공까지도 돌아볼 필요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우리가 성경에 보면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오직 달음박질 마당에 달리라고 그랬습니다. 여기에 무겁다고 하는 것은 경주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떤 것은 분명히 죄인 것이 나타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죄가 아닌 것이 분명히 나타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명한 죄와 죄 아닌 사이에 소위 회색 지대가 있습니다. 도덕적 견지에서 죄 되는 경우도 있고 되 안 되는 경우고 있는 회색 지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회식 지대에 있는 어떠한 일, 무슨 오락이나 습관이나 사업이나 이런 방면은 무거운 것이 되어서 우리의 경주를 장해하는 것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다 벗어버리고 경주하라고 권면 하는 말씀입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라고 하는 말씀은 사람을 따라서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믿고 모든 죄는 다 회개했지마는 아직까지도 사람을 따라 온전히 회개하지 못한 죄가 더러 있습니다. 그것까지 온전히 회개하고 달음질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인내로써 달음질하라고 그랬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달음질하는 마당은 마치 장애물 경주와 같아서 여러 가지 우리의 경주를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유혹과 위협과 핍박과 여러 가지 장해되는 것이 있습니다.
길이 험합니다. 그러므로 인내로써 달음질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달음질을 할 때에 경주자의 모범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달음질하라고 우리에게 권면 하신 것입니다. 시작이 귀합니다. 그러나 마치는 것은 얼마나 더 귀한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을 집을 짓는데 비유해서 가르친 데도 있습니다. 집을 짓기 시작하는 것이 귀하기는 하지마는 마치는 것은 더 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떤 사람이 망대를 짓기 시작했다가 그 망대를 다 마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산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룹바벨의 지도 아래 바사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마자 그 다음해부터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했습니다. 큰 열심을 가지고 전심전력해서 성전 짓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호사다마로 그 근방에 있던 사람들은 성전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여러 가지로 방해하려 하였습니다. 바사 황제에게 여러 무고의 편지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바사 궁전으로부터 이 성전 공사를 정지하라는 명령이 내리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안타깝게 짓던 성전 공사가 十五년 동안이나 중지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후에 하나님의 사자 학개가 나타나서 마땅히 우리가 시작한 이 성전을 마쳐야 되겠다고 부르짖을 때에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어나서 이것을 마친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집도 짓기를 시작하는 것도 귀하지마는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이것을 마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신앙생활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창세기 十二장 五절을 읽어보면 이와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아브라함이 모든 사람과, 같이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 땅을 가려고 거기를 떠났습니다. 그리고『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마침내 마지막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장망성 같은 이 세상을 떠나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천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천성을 향해서 떠나는 것, 매우 필요합니다. 시작하는 것,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귀한 것은 마지막에 온전히 천성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과 같이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광야를 지나가는 동안에 이런 죄를 짓고 저런 죄를 짓고 하나씩 둘씩 쓰러지고 마지막에 가나안 땅으로, 장년으로 나왔다 들어간 사람은 둘 밖에 없다고 하는 기록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향해서 떠나는 것이 귀하지마는 그 보다 더 귀한 것은 온전히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전쟁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전쟁을 다 원하지 아니하지마는 일단 시작된 다음에는 끝까지 싸워서 승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서 보셨을 줄 믿습니다. 맥아더 장군에게 자유 군인의 훈장 수여식 때 그의 연설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유를 보존하는 무기는 둘이 있다. 하나는 팬이요 하나는 검이다. 팬은 평화 때에 필요하다. 그러나 전쟁이 나면 검으로 싸울 수밖에 없다. 한 번 검을 뺀 다음에는 완전한 승리를 얻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패전의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하며『한국 전쟁의 실책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쟁을 원하지 아니하지마는 전쟁이 일단 난 다음에는 최후 승리를 얻을 때까지 싸워야지 최후 승리를 얻지 못하고 휴전된 까닭에 아직까지 남북 통일도 되지 못하고, 반면에 중공으로 하여금 오늘로 말하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 국가로 장성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을 탄식하면서 말한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마땅히 싸울 면이 있습니다. 안목의 정욕과 싸울 수밖에 없고, 육신의 정욕을 향해서도 싸울 수밖에 없고, 모든 내 신앙을 방해하는 세력과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에 온전한 승리를 얻어야 우리가 온전히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시종 여일 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과 나중이 하나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 적으로 생각할 때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인 줄 분명히 알고 어떠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였으니 이 일을 온전히 마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영락교회로서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가운데 그중 하나는 기도원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벌써 六년 전에 우리가 十주년 기념식 때 하나님께 향해서 우리가 교육관을 짓고 기도원을 짓겠다고 약조한 일입니다. 六년이란 세월이 흘러왔지마는 아직까지도 우리가 이 약조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금년에는 이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마쳐야 되겠습니다.
또한 이 진리는 우리 민족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민족은 민주주의 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시작일 뿐입니다. 남북이 통일되지 못하였고 자유로써 북한을 해방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남한에 있는 우리들은 온전한 민주국가를 남북한을 통해서 이룰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마치기 위해서 싸우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으로나 교회로나 민족적으로나 좋은 일을 시작해야 할뿐더러 그 일을 마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