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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2:36-47/ 은혜받은 초대교회 / 한경직 목사
    2014-08-23 06:22:53   read : 1240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여 떡을 떼면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느니라』(행 二․二十二)

    지난주일 어떻게 성신께서 오순절에 임하심으로써 다락방에 모였던 一二0명이 충만한 은혜를 받고 베드로의 첫 설교를 통해서 三천 명이 회개한 사실을 우리가 한번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이 아침은 계속해서 이렇게 은혜 받은 교회의 내적 생활이 어떠하였는가? 그것을 생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은혜 받은 초대 교회가 특별히 힘쓴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것은 이미 제가 이 자리에서 읽은 四十二절의 말씀입니다.

    첫째로 사도의「가르침을 받은 사실」이요.

    둘째로「서로 교제를 힘썼다」고 기록했습니다.

    셋째는「떡을 떼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넷째는「기도에 전혀 힘썼다」고 이와 같이 기록된 것입니다

    먼저 이처럼 은혜 받은 초대 교회는「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이와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사도들은 가르치고 교인들은 배웠습니다. 제일 먼저 사도의 교훈을 배우기를 힘쓴 것입니다.

    갓난아기가 젖을 사모하는 것과 같이 처음으로 믿는 믿음의 아기들이 도(道)의 젖을 크게 사모해서 사도들의 교훈을 열심히 배운 것입니다. 그 때 사도들의 교훈의 내용은 우리가 지금도 잘 짐작할 수 있는 줄 압니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에 대한 모든 이야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여러 가지 귀한 교훈 또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심과 그 뜻, 혹은 부활하심과 승천의 모든 사실과 그 뜻,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지금의 말로 바꾼다고 할 것이면 기독교 우주관이나 기독교 인생관, 혹은 구속관 내세관 등 여러 가지 우리 믿는 사람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진리를 사도들이 가르쳐 주신 줄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읽는 신약성서는 본래 초대 교인들에게 사도의 교훈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마태라고 하는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기 위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마가복음도 그렇고 누가복음도 그렇고 물론 요한 복음도 그렇습니다.

    신약 가운데는 여러 서신이 많은데 그 중에 누구보다도 사도 바울의 서신들이 많습니다. 이 서신들은 하나 하나가 새로이 세운 교회에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서신의 형식으로 먼저 진리를 설명하고 그 다음으로는 진리를 기초한 우리 믿는 사람들의 윤리적 생활이 어떠하여야 되겠다고 하는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 신약에 수록된 것 외에도 우리가 역사를 보면「십이 사도의 교훈 집」이라고 하는 것이 아주 옛날부터, 아마 주후 二세기 중엽부터 내려오는 문헌(文獻)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아침에도 외었지마는 사도신경도 본래 사도의 교훈을 가장 간략하게 수집해서 읽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정수를 간단히 가르치기 위해서 이 신경이라는 형식으로 점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신앙에도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지적 요소(知的要素) 정적 요소(情的要素) 의지적 요소(意志的要素)가 있습니다.

    머리로 아는 부분이 있어야 되고 감정으로 느끼는 부분이 있어야 되고 의지로 행하는 부분이 있어야 됩니다. 이 지적요소, 먼저 무엇을 깨닫는 것, 무엇을 아는 것, 기독교의 진리와 사상을 아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이 진리를 배워서 철저히 기독교 사상을 깨달아야 신앙의 기초가 철저하고 튼튼히 뿌리가 박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이 사도의 교훈을 옛날 믿는 사람들과 꼭 같이 배울 수 있습니다. 지금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가진 신약전서는 사도들이 본래 믿는 사람들에게 그 교훈을 주시기 위해서 준 것을 문헌으로 기록한 것뿐입니다.

    특별히 어느 때 이와 같은 배움이 필요하지 아니하리요 마는 이 시대에 특별히 필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야말로 문자 그대로 사상전의 시대입니다.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 민주주의냐? 독재주의냐? 정신주의냐? 유물주의냐? 이와 같은 사상의 대립이 어느 시대보다 첨예화(尖銳化)한 이러한 시대에, 이 사상전의 제 일선에 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 진리와 사상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없으면 우리 사명을 바로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찌해서 교회에 출석하는 이들 가운데도 이따금 사교나 이단에 미혹되어 그릇된 사상이나 타락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까?

    기독교 진리와 사상에 대한 튼튼한 지적 기초가 부족한 탓입니다. 은혜를 받은 초대 교회의 교인들은 무엇보다도 사도의 교훈을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런 까닭에 한국의 교인들도 어느 때 보다도 성경을 철저히 조직적으로 더 배워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이 아침 예배만 드리는 것이 아니고 공부 예배다 따로 있어서 교육관에서는 지금도 성경을 기초로 하고 조직적으로 성경을 배우는 것입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우리 청년들이 특별히 이 기독교에 대한 철저한 지적 준비가 필요한데 성경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사명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한번 더 이 시간에 간절히 여러 청년들과 장년들에게 권면하는 것은 이렇게 아침 예배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꼭 교육관에 들어가서 성경을 매주일 한 시간 더 배울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서로 교제하였다」고 기록되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서로 교제하기를 힘썼습니다. 성도들에게는 교제가 필요합니다. 신앙과 사상이 같은 이가 서로 교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요, 또한 신앙 상 필요한 일입니다.

    여기 교제라는 말은 헬라 말대로 코이노니아라는 독특한 말을 썼습니다. 이것은 보통「사귄다」는 뜻보다 한 걸음 나아가서 서로 나눈다고 하는 뜻이 있습니다. 서로 동정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연보를 이런 말로도 또한 기록하였습니다. 사귈뿐더러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서로 나누는 생활을 하였다고 하는 뜻입니다.

    성도들은 성도들끼리 서로 사귀면서 나누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먼저 신령한 은혜를 서로 나누는 가운데 피차에 은혜가 더 있습니다. 우리의 받은 은혜가 각각 다른데 그 은혜를 피차에 나눔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서로 더 많은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개인적으로나 어떤 때는 집회 가운데 서로 우리의 신앙의 간증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은혜는 예수님의 손에 있는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 같아서 주안에서 받은 은혜를 우리가 나누어줄수록 우리 은혜는 더 불어나서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어떻든지 단순히 이렇게 나와서 예배만 보고 갈 것이 아니고 내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만 이렇게 설교를 들을 것이 아니고 내가 들은 설교를 듣지 못한 사람에게 전하여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교회에 특별히 누구를 가르치는 책임이나 무엇을 봉사하는 책임을 받으면 그 책임을 잘 감당할 때에 자연히 은혜의 분담이 피차에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 가운데에는 자연히 경험도 서로 나누게 됩니다. 기쁨도 서로 나누어서, 믿는 사람들과 같이 기뻐하면 그 기쁨이 배가(倍加)가 되는 것입니다. 슬픔도 서로 나누어서 슬픈 일이 있을 때에 같이 동정하고 같이 슬퍼하는 성도가 있으면 그 슬픔이 절반이나 감하여지는 것입니다. 질병도 우리가 서로 나누어서 병날 때에 서로 심방하고 서로 기도하면 피차에 위로가 되고 또한 병도 빨리 낫게 되는 것입니다.

    이밖에 모든 경험 성공도 서로 나눌 수가 있고, 실패의 쓴잔도 서로 나눌 수가 있고, 고독한 경험도 서로 나눌 수가 있고, 서로 억울한 일도 서로 나눌 수가 있고, 모든 경험을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서로 나눌 때에 그 가운데서 우리가 은혜를 더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께서는 개인 개인을 불러서 구원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을 사람을 한 가지로 불러서 교회를 조직하고 성도의 교제 가운데서 그 은혜가 더욱 충만케 하며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읽는 대로 여기 초대 교회의 된 일을 볼 것이면 이렇게 은혜만 나눈 것이 아닙니다. 경험만 나눈 것이 아닙니다. 물질도 서로 나누었습니다. 여기 보니까『토지와 가옥이 있는 넉넉한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사도의 발 앞에 갖다 두고 사도들은 각인의 필요에 의지해서 그것을 나누어주었다』이와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유무상통(有無相通)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공산주의사회 비슷한 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우리가 아는 공산주의와는 천양(天壤)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공산주의는 강제로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요 이 때는 모든 은혜 받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기의 물질을 나누어준 것뿐입니다.

    지금 공산주의는 그 동기가 물질에 있고 이기주의에 있습니다. 그렇지마는 이때에 이와 같은 현상이 오래 계속된 것 같지는 아니합니다. 또 자연히 이와 같은 것은 오래 계속되기는 어려운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물질까지라도 피차에 서로 나누는 이 정신은 언제든지 계속하여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 교회 안에서도 어떻든지 二세기와 三세기의 교회를 볼 것이면 가난한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을 어떻든지 피차에 상부상조하고 구호해서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오늘날도 범위가 대단히 넓지마는 세계적으로 이와 같은 정신을 계승하는 기관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여러분 아시는 대로 세계 기독교 봉사 회입니다. 이 세계 기독교 봉사 회는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물질을 바쳐서 세계 어느 곳이든지 전쟁이 나든지 기근이 있어서 구제가 필요할 때에는 그 곳으로 집중해서 구제하는 기관입니다. 六․二五 이후로 우리 한국이 세계 기독교 봉사 회를 통하여 받은 혜택은 상당히 많이 있는 줄 압니다.

    또 기독교 세계 연합회 안에 교회상호 협조부(敎會相互協助部)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이 기관도 역시 세계 각 교회에서 물질을 거두어서 재난이 있는 지방에 많은 도움을 지금까지 계속하여 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인도네시아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많은 고난을 받는 사람을 구호하기 위해서 전세계 교회에서 물질을 거두어 보내라고 하는 통지를 우리가 기독교 연합회를 통하여 방금 우리 한국 기독교연합회에서도 받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얼굴을 알던지 모르던지 세계 어느 곳에 있던지 불쌍한 사람, 베고픈 사람, 헐벗은 사람이 있을 때에 세계의 믿는 사람들이 자기의 힘있는 대로 물질을 바쳐서 그 이들을 도와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우리 믿는 사람들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아름다운 행실인 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서로 성도의 교제를 힘쓴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가 어느 교회에 필요하지 아니하리요 마는 특별히 도시 교회에 필요합니다. 도시 교회 가운데도 좀 큰 교회에 더욱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실 도시 교회일수록 성도의 교제가 어렵습니다. 또 교회의 규모가 클수록 성도의 교제가 어렵습니다.

    그리해서 도시교회나 좀 큰 교회에서는 특별히 성도의 교제를 도와주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 말한 대로 주일학교 각부에 들어가서 성경을 공부하고 성경을 토론하고 이와 같이 될 것이면 우선 작은 반가운데 있는 여러 사람들과 사귀게 되고 피차에 알게 됩니다.

    둘째 길은 무엇인고 하니 각 단체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중등 면려회, 고등 면려회, 청년 면려회, 장년 면려회, 그 위에 남전도회, 여전도회, 여러 단체가 있습니다. 연령에 따라서 이 단체의 목적은 간단히 말하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 단체 회원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를 도모하는 것입니다. 우선 믿는 사람, 믿는 사람끼리 서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같은 연령에 있는 사람들이 특별히 아는 것이 좋습니다. 성도의 교제입니다.

    둘째로는 이 단체의 목적은 신앙의 연습입니다. 자기네끼리 모여 앉아서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고, 어떤 사람은 성경 강해도 하고, 이렇게 해서 신앙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 단체를 통해서 교회를 봉사합니다. 혹은 전도도 하고, 혹은 구제도하고, 여러 가지 교회를 봉사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단체에 가입하면 자연히 회원들을 알게 되고, 자연히 신앙도 연습되고 자연히 교회도 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좀 용서하세요. 여기 현재 학생들도 많은데 학생들 가운데는 영어에「섬바디」(somebody)란 말을 다 알 것입니다. 영어에「섬바디」라는 말이 있고 또「노바디」(nobody)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르는 이들도 오늘 이 아침에 배우세요. 이「섬바디」라는 말을 그냥 그대로 번역하면 한국말로 번역하기가 어려운데 무슨 뜻인고 하니「아무개라」하는 뜻이에요.「아무개라」누구나 다 아는 이라는 뜻입니다.「노바디」라 할 것이면 그건 보통 무슨 뜻이냐 하면「아무도 모르는 사람」을 흔히 노바디라고 합니다.

    가령 우리가 다 농촌에 있다가 서울로 이사와서 영락교회에 다닌다고 하면, 농촌교회는 작습니다. 한 백 명쯤 모입니다. 그러면 그 동리는 작으니까 그 사람이 농촌에 있을 때에는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러니까 이 이가 농촌교회에 있을 때에는 섬바디입니다. 섬바디라고 합니다. 다 아니깐 아무 게도 다 아는 사람이란 말이에요.「섬바디」라는 말이에요, 그러다가 복잡한 서울로 이사와서 영락교회에 출석해서 예배봅니다. 자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이「섬바디」가「노바디」가 됩니다.

    아무에게도 모르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에요. 이게 큰 걱정입니다.「노바디」가 된단 말이에요. 아무에게도 모르는 사람이 된단 말이에요. 자 여러분 이것 보세요. 이렇게 아무에게도 모르는「노바디」로 있는 그 기간은 우리 신앙에 매우 위험 기입니다. 위험합니다. 왜 위험한고 하니

    첫째 우선 고독합니다. 외롭습니다. 고독하고 성도와 같이 믿는 사람을 미쳐 사귀기 전에 그만 믿지 않은 동무를 먼저 알아서 사귀게 되어 조금 잘못하면 세상으로 흘려나가지 쉽습니다.

    여기 군인으로 나가는 학생들이 자기 교회에 있을 때는 잘 믿을지라도 군대에 가서 신앙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까닭은 무슨 까닭인지 압니까? 본 교회에 있을 때에는 암만 청년이라도 다「섬바디」입니다. 그러나 군대에 나가면 같은 청년이 많은데 누구 하나나 알아 줍니까.「노바디」가 되고 맙니다.

    제가 이것을 염려하는 것은 우리 교회 가운데 참「노바디」가 여러분 있는 것 같아요. 본래 고향에서는 아무개나 알지마는 이렇게 도회에 와서 처음에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때 고독하고 많은 시험을 받습니다.

    그러므로「노바디」에서 빨리 변해서「섬바디」가 되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노바디」에 그냥 그 자리에 있지 말고「섬바디」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세 가지 내가 분명히 가르쳐 주겠어요.

    첫째 꼭 교회에 등록을 하고 출석을 해서 우리 교회의 심방을 받아서 우선 교역자와 연락이 되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 등록 한하고 거저 예배나 혼자 와서 슬쩍 보고가면 거저 십 년 다녀도「노바디」그냥 있습니다.

    그러다가 무슨 어려운 일이 생겨서 상례(喪禮)가 나든지 무슨 어려운 일이 있게 되면 교회에 다니긴 다녀도 매우 고독해집니다. 꼭 등록을 하고 우선 교회 당국과 연락이 되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이제 말한 대로 성경 공부 예배에 꼭 들어가서 적은 수 가운데서 성경을 공부하면서 우선 그 사람들과 사귀고 서로 알아야 됩니다.

    다음에는 무엇인고 하니 단체에 가입해서 단체의 회원들을 피차에 알고 같이 신앙을 연습하고 무슨 일을 함께 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여러분 나성 할리우드 장로교회는 미국 북장로교 가운데 제일 큰 교회인데 아마 그 모이는 수는 우리 교회만 할 것입니다. 그 교회에 단체가 몇 개나 잇느냐 물어보니까 七十단체가 있다고 합니다.

    각계 각층의 직업별로 전부 클럽이 있습니다. 의사는 의사의 클럽이 있고 공무원은 공무원의 클럽이 있고 심지어 새로 결혼한 사람들은 신혼 클럽이 따로 있고 그 각각 형편에 따라서 단체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선 단체 안에서 서로 친목을 도모해서 어떻든지 성도의 교제를 가지도록 힘씁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 앞으로는 단체가 많이 있어야 하겠고 또 어떻든지 꼭 가입하시기를 바랍니다. 우선 장년 면려회 할 것이면 二十九세에서 아마 四十세쯤 된 이들이 가입할 수 있는데 거기에 가입하면 피차에 서로 알 수 있지 않아요? 청년이면 청년 면려회에 가입하시면 피차에 서로 잘 알고 함께 일할 수 있지 않아요?

    그밖에 각계 각층을 따라서 적은 신앙의 동지들끼리 모여서 단체를 조직해서 우선 이런 단체를 통해서 성도의 교제를 가지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이 은혜 받은 초대 교회에서 성도의 교제를 힘쓴 것입니다.

    그 다음에 셋째는『떡을 떼어먹었다.』이와 같은 말로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을 처음으로 보는 이는 이상히 여길 줄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떡이라 하는 것은 특별히 명절이든지 잔치할 때에 해 먹는 것인 줄 생각합니다. 이 때 유대 사람들은 떡을 매일 먹는 것입니다. 매끼 이 사람들은 빵 떡이라는 것을 먹습니다. 떡을 떼었다 하는 말은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고 하는 말입니다.

    초대 교회에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속이 있었는데 두 가지 형식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애찬(愛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아가페」라고 하는 사랑의 잔치라고 해서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저녁을 같이 나누어 먹는 그런 풍속이 있었습니다.

    아마 처음에는 매일 저녁 그렇게 한 모양입니다. 매일 저녁 할 수는 없으니까 그 다음에 점점 변해서 한 주일에 한번씩 그렇게 한 모양입니다. 또 이렇게 애찬을 나누어 먹은 다음에는 계속해서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자! 여러분 이건 꼭 예수님이 남겨 주신 모범대로 하려고 이렇게 한 줄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어떻게 했습니까? 열두 제자들을 다 다락방에 모아 놓고 먼저 무엇을 잡수셨어요? 애찬을 잡수셨습니다. 그리고 가 다음에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나누어주어서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자 초대 교인들이 이 은혜 받은 교회에서 이렇게 애찬을 나누어먹고 또 성찬 자주 나누어 먹었습니다.

    자 여러분 이거 우리 믿는 사람들이 종종 모여서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대단히 좋은 풍속인 줄 압니다. 여기 외국 교회의 형편을 볼 것이면「교회 저녁」이라 해서 작은 교회도 아마 한 달에 한 번쯤은 온 교회가 하루 저녁 다 예배당, 혹은 아래층 식당에 모여서 저녁을 함께 나누어 먹는 풍속이 지금도 있습니다.

    그 때 보면 흔히 두 가지 방법으로 음식을 준비하는데 보통으로는 자기 음식을 각각 해 가지고 와서 나누어 먹고 또 어떤 때는 그 예배당 아래층에 주방이 있어서 그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해서 나누어 먹습니다. 큰 교회는 구역을 따라서 모여서 먹는 풍속이 있습니다. 또 그 외에도 여기 영어로 파티라 해서 음식은 별로 안 나누어 먹고 단순히 차나 한잔 마른 과자 한 조각 먹으면서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피츠버어그 제一장로교회에서는 저녁 예배를 본 다음에는 비공식 집회가 있습니다. 예배당 뒤에 있는 우리 교육관 같은 곳에서 비공식 집회로 모이는 것입니다.

    거기 들어가면 비공식으로 그저 찬송고 하고 음악 순서도 있고 이야기도 하고 마지막에 헤어질 때에는 그저 헤어지지 않고 여름이면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고 혹 겨울이면 커피를 나누어 마시면서 매주일 저녁마다 남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남아 있어서 성도간에 서로 교제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하고 헤어지는 풍속이 있습니다.

    다른 교회도 다 있는 줄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에 이렇게 애찬이나 사귀는 풍속이 별로히 성립 못된 것은 거기 해로가 없지 않아 있는 줄 생각합니다.

    첫째는 우리 한국 사람들은 무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 그저 음식을 보통으로 장만해서 나누어 먹는 것은 손님 대접이 아닌 줄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어떤 집에서나 손님을 청한다고 하면 큰 잔치를 합니다.

    자! 그러니까 어떻게 계속합니까? 보통 우리 나라 사람들은 손님을 안 청하면 모르지만 청하려면 잘해야지 하고 말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어서 청하는 일이 적어집니다.

    우리기 이 풍속을 좀 고치면 좋겠습니다. 서양 사람들처럼 손님을 청해도 간단히 하십시다. 음식 대접이 목적이 아닙니다. 성도의 교제가 목적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이와 같은 간단하게 모여서 저녁을 나누는 풍속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또 파티식도 우리가 본받았으면 좋겠는데 이것은 우리 교회에서 친목회라 하는 이름으로 종종 모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 친목회에 들어가 보면 으레 앞에다 상 놓고 그 상에는 과자라도 두둑하니 놓고야 친목회를 할 줄 압니다.

    그럴 필요가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상이 필요 없습니다. 간단하게 차나 한잔 마시면서 서로 자유로이 섞여서 사정도 알고 이야기도 하는 그런 파티식 성교의 교제가 매우 필요할 줄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찬식에 대해서는 그렇습니다. 성찬식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참된 교인이 된 표로서 그리스도의 지체다 된 표로서 마지막 천국 잔치의 예표로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면서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학습을 서고 세례를 받아서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말씀하는 것은 기도를 전혀 힘썼습니다. 성신 받기 전에도 힘썼지마는 성신 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기도를 힘썼습니다. 힘써야 기도 생활을 합니다. 힘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기도 생활이 안 됩니다.

    이 네 가지를 힘쓰는 가운데서 초대교회는 사랑이 충만하고 화평이 충만하고 기쁨이 충만한 교회가 되었고 이런 교회에 주님께서 축복해서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더해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고 기도하고 각각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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