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8:30-40/참 제자의 도 / 한경직 목사 2014-08-23 00:42:20 read : 1275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八․三十一 - 三十二)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올시다. 그러므로 지금도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적절한 교훈이올시다. 이미 믿는 이들에게 참 제자가 되는 길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참 제자가 되는 길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더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자가 되는 길의 첫 단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니 많은 사람이 믿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은 제자로서의 생활이 시작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꼭 알아야 할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말씀, 자신 곧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 성령에 대한 말씀, 인간의 생명과 사망에 대한 말씀, 인간의 죄와 구속에 대한 말씀, 인간이 세상에 살 때에 마땅히 지킬 도덕의 교훈, 인간의 영혼과 내세에 대한 말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필요한 교훈을 주님께서는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먼저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 믿어야 합니다. 지력으로 옳다고 시인하고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교훈을 듣고 믿는 것이 주님의 제자가 되는 첫 단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성경을 읽을 때에 주님의 교훈 그대로 받아들입니까? 믿습니까?
그러나 둘째 단계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라고 하셨습니다.
거한다는 말은 산다고 하는 뜻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살면 참 내 제자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요한 二서 九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지나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여야 아버지와 아들을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그 말씀을 믿지 않고 그 말씀 가운데서 살면, 곧 그대로 행하면 참 내 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동양의 성현도 인(仁)을 인지안택(人之安宅)이라 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인은 사람의 평안한 집이라 하는 얘기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의 교훈으로 집을 삼고 우리가 언제든지 그 교훈 안에서 살면 참 내 제자, 곧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는 줄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주의 말씀에 거할 수 있겠습니까? 주의 말씀이 성경에 있으니 우선 성경을 읽고 성경을 배우고 성경을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잘 몰라서 잘못된 길로 나가는 교우들도 종종 있는 것을 봅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 반에 들어가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고, 집에서 통신과를 통해서 공부하는 것도 필요하고, 할 수 있으면 성경 학원에 나와서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선 주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분명히 파악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거하려면 배울뿐더러 그 배운 말씀을 묵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시편 一편 二절에『복 있는 자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시편 一一九편 一四八절에는『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옛날에 참된 신앙을 하던 사람의 모습을 우리는 여기서 봅니다. 일찍이 밤에 깨어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십니까?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데는 성경을 암송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번 산상 기도회 때에 성경 암송 대회가 전기 후기에 걸쳐 두 번 있었는데 아주 은혜 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한 서너 분은 성경의 가장 중요한 열 서너 장을 암송하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암송하는 것도 보통 암송이 아니라 청산유수와 같이 잘 외었습니다. 주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여 주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항상 채우면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지고, 우리의 마음이 화평해 집니다. 우리의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없어집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님의 말씀에 거한다고 하는 것은 실제 생활에서 그 말씀에 순종하고 시행한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순종하면서 배우라고 하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했습니다. 실행하면서 그를 좇으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산상에서 귀한 교훈을 주신 후에 결론으로『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짓는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주의 말씀 가운데서 살게 될 때에 그 말씀을 먼저 배우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면서 살 때에 참 내 제자, 예수 님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주님께서 말씀하십시다. 이렇게 주의 말씀 안에 사는 이는 진리를 알겠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진리라는 말은 흔히 두 가지 뜻을 나타냅니다.
첫째는 주님의 말이 곧 진리올시다.
둘째는 주님 자신, 곧 그리스도가 진리입니다. 그래서『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 은 예수 님께 대하여 기도할 때에『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 가운데서 살 때에 주님과 주님의 말씀은 과연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안다고 하는 말은 그 범위가 넓습니다. 다시 말하면 안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달을 아는 가고 물으면 누구나 달을 안다고 할 것입니다. 달은 둥급니다. 달은 밤에 밝게 보입니다. 그러나 달이 얼마나 크며 지구에서 얼마나 멀며 달을 구성한 성분이 무엇인지 아는 가고 물으면 아마 거의 다 자세히는 모를 것입니다.
사실 지금 세상에 사는 이들 가운데 달을 제일 잘 아는 이가 누구일까요? 아마 얼마 전에 아폴로 十一호를 타고 달에 가서 걸어다니다가 돌아온 그이들이 제일 잘 알 것입니다. 왜? 달에 실제로 가서 보고 돌아 왔기 때문이지요. 실지로 체험했기 때문이지요. 달에서 살았으니까요.
그런 의미로 주님의 말씀에 사는 자가 주님을 알고 주님의 말씀을 안다고 하는 뜻입니다. 사람을 안다고 하는 말로 여러 가지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은 우리가 이름만 알고 어떤 사람은 얼굴만 압니다.
그러나 그이의 성품과 사상과 그이가 믿을 만한 가 하는 신용 여부까지도 아는가 하고 물어보면 흔히 그것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지내보지를 않아서 자세히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결국 어떤 사람을 참으로 알려면 그 사람과 실제로 접촉해서, 체험을 해보아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 가운데 살면 이 말씀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이 동행하면서 살게 되면 주님이 과연 진리인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참 지식은 언제나 체험을 통하여 오는 것입니다.
우리 찬송가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지요.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자기의 체험을 통하여 받은 증거가 많을 때 예수를 바로 믿을 수 있습니다. 시편 三十四편 八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니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맛보라는 말입니다. 수박이 단지 안 단지 알려고 할 때 제일 쉬운 방법이 무엇입니까? 물론 보아서도 알 수 있고 만져 보아서도 조금은 알 수 있으나 잘 알려면 먹어 보는 것이 제일입니다. 체험을 해서 우리가 진리를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대로 행해 보아야 그 말씀이 진리인 줄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과 같이 동행해 보아야 예수님께서 진리이신 것을 압니다. 말씀에 살아야 진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도 제가 이런 얘기를 한 것 같지마는, 서양의 어떤 여자가 늘 성경을 읽으며 성경에 줄을 치고는 어떤 구절에는 영어 자로 P자와 T자를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가 물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그는 대답하기를 T자는 영어로 트라이(try)라는 뜻이고 P자는 프르브(prove)라고 하는 뜻이라고 하였답니다. 트라이라는 말은 내가 해 보았다는 말이고 프르브라는 말은 해보니 그대로 되더라는 말이라고 했답니다. 그런 사람이 사실 주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넷째로 이런 사람에게는 큰 축복이 따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이렇게 알게 되면 진리가 우리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모든 진리는 인간을 구속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진리인 주의 말씀과 진리인 주님께서는 인간을 여러 가지 구속 가운데서 해방시켜 자유를 줍니다.
구약을 읽어보면 어떻게 진리가 이스라엘 민족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구속에서 자유를 주었는가 하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약에 와서는 진리이신 주님께서 이 모든 자유의 기초가 되는 정신적인 자유를 주신다는 사실을 또한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인 그리스도와 진리인 그 말씀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면 진리인 그리스도는 그런 사람들에게 몇 가지 자유를 줍니다.
첫째는 모든 공포심리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자유를 줍니다. 몇 주일 전에 소련에서 영국으로 탈출해 온 소련의 작가 쿠즈네쵸프라는 사람은, 소련에서 왜 탈출해 나왔는가 하는 질문에 한마디로 그 나라에서는 숨을 더 쉴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는 기사를 우리가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면 그 나라 백성이 얼마나 구속과 공포 가운데서 사는가 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슬픈 일은 소위 자유 세계에 살면서도 항상 공포심에 사로잡혀 사는 이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입니다.
자유 진영에 살면서도 여러 가지 공포와 근심과 걱정으로 인하여 심지어는 노이로제까지 걸리는 이를 우리는 봅니다. 그러나 주를 체험적으로 아는 이에게는 공포심이 없어집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실 때에 공포심은 떠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송을 부릅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와 동행하게 될 때에는 다시 말해서, 진리를 알 때에는 진리가 우리를 이런 공포 속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둘째로 우리가 참으로 진리인 그리스도를 알 때에는 여러 가지 무지와 미신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자유를 줍니다. 과학을 배워서 근대화는 되어 간다고 하면서도 아직 이 땅에는 무지와 미신의 종이 많습니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궁합 안 보고는 약혼 못하는 줄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날자 안 받고는 결혼식 못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현대식 공장을 지어 놓고도 돼지 대가리 놓고 제사 지내는 이들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미신에 젖어 노예가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참 진리인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이런 데서 해방해서 자유를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해서 자유를 주십니다. 주님 말씀대로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올시다. 다른 자유는 다 있지마는 죄의 종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정욕의 종 된 사람, 돈의 종이 된 사람, 술의 종들, 도박의 종들, 화투의 종들, 심지어 아편의 종들, 도벽의 종들, 그밖에 악한 여러 가지 습관의 종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고린도 후서 三장 七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 함이 있느니라.』주님께서 계시는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를 이와 같은 죄의 사슬에서 해방시켜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틀 전에 우리 八․一五의 해방을 경축했습니다. 二十四년 전에 우리가 일제의 압박에서 정치적으로 해방이 된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십니까?
우리 민족 가운데는 아직까지도 이 죄의 쇠사슬에 얽매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부정과 부패의 종 된 사람들 때문에 우리 나라의 발전은 부진하고 온갖 사회의 문제가 일어나서 사회가 명랑하지 못하고 항상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부정과 부패와 온갖 죄악의 쇠사슬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뿐입니다. 八․一五의 해방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런 정신적인 자유를 우리는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