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4:1-11/ 길, 진리, 생명 / 한경직 목사 2014-08-23 00:35:20 read : 1362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十四․六)
이 요한 복음 十四장에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주신 귀한 말씀이 실리어 있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은 예수 님께서 오래지 않아 자기들을 떠날 것을 예감하면서 염려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보면 주님께서는『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위로하십니다.『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권면도 하셨습니다.『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하늘 나라에 집이 있는 것을 분명히 말씀했습니다.『내가 위하여 초소를 예비하려 가노니 내가 가는 곳이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에 언제나 확실한 증거를 찾기 원하는 제자 도마는 솔직히 불어보았습니다.『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자기가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과 아버지께로 가는 길은, 오직 자기 자신인 것을 분명하게 선언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하는 가운데 길, 진리, 생명 이 세 가지 뜻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이 간증주일에 우리 각자를 축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 二장 十一절에 이런 말씀으로 권면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나그네와 행인 같다고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인생은 한 나그네요. 인생은 한 길을 가는 나그네라고 하는 사상은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동서고금, 모든 지자, 지혜 있는 사람, 어진 사람들이 이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동양에도 옛날부터 인생여로(人生如路)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이 나그네길이라는 것입니다. 인생행로라는 말도 있습니다. 인생의 가는 길이란 것입니다. 또 생각해 보면 인생의 가는 길은, 말하자면 일방통행입니다. 그것은 한 번 가고 다시 못 돌아오는 일방통행의 길입니다.
그러면 인간으로서 갈 길을 바로 택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다고 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북한에서 피난하여 남한에 오신 분이 많지마는, 북한에서 오실 때에 혹 길을 잘못 들어 고생을 많이 하신 분도 계시고, 가련하게도 어떤 분은 길을 잘못 들어 공산당에게 붙잡혀 오지 못한 동포들도 많은 것을 우리가 압니다.
벌써 十五년이나 지났지마는 六․二五사변 초기에 미군 사령관 딘 소장이 대전 남방에서 길을 읽은 까닭으로 괴뢰군에게 포로가 되어 수십 개월 고생한 후에야 석방된 사실을 우리가 지금도 새롭게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인생행로에서 길을 잃어서, 어떤 이는 사상적으로 길을 잃고, 혹은 경제적으로 길을 잃고 혹은 사회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길을 잘못 들어서 큰 고난을 당하고 실패하고, 어떤 때는 가정이 파탄되고, 갖은 비극이 연출되며 일생을 그르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서대문 교도소에 많은 동포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인생 길을 잘못 들어서 그곳에 간 것입니다. 소년 감화 원에 불량 소년소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길을 잘못 들어서 그런 곳에 오게 되는 것입니다. 왜 젊은 부부가 가정법원을 찾아다니게 됩니까? 둘 가운데 하나가 길을 잘못 들은 까닭입니다. 대부분은 다 그러합니다.
오늘날 우리 신문의 사회면을 메우는 여러 가지 범죄사건과 자살 소동 같은 것이 왜 이렇게 많이 있습니까? 우리 사회, 우리 동포들이 길을 잘못 들은 까닭으로 그러합니다.
한 번밖에 갈 수 없는 인생의 마땅한, 옳은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곧 길이요, 예수님이 바로 그 길입니다.
이사야 三十五장 八절에는『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고 하겠다는 예언이 있습니다. 이 거룩한 길, 인생이 마땅히 걸어야 할 대로가 곧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시편 一편 六절에『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을 망하리로다.』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걸은 길은 이 길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천로역정」의 말을 빌리면 이 장망성을 떠나서 천성을 향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하는 가는 밝은 길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진리 시고 생명이신 까닭입니다.
신약을 상고하면, 예수님과 진리에 대하여 자주 기록한 곳이 있습니다. 가령 요한 복음 一장 十四절에『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조금 내려가서 一장 十七절에『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요한 복음 八장 三十一절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증언하셨습니다.『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혹은 예수님께서 빌라도 법정에서 심판을 받으실 때에 빌라도에게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내가 진리에 대하여 증거 하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내가 곧 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슨「뜻입니까?」자세히 봅시다. 과거의 많은 사람들, 많은 철학자, 많은 종교가, 많은 도덕가들이 진리에 대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그 자신으로 온전히 보여주신 이는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런데 과학적 진리를 가르치는 데는 그 교사의 품격이나 생활이 관계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인이나 악인이나 수학을 가르칠 수 있고, 물리학을 가르칠 수 있고, 화학을 가르칠 수 있고 천문학의 진리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덕적 진리를 가르치는 데는 그 교사의 품격과 생활이 큰 관계가 있습니다. 가령 자기는 도둑질하면서 남에게 성실한 생활을 하라고 가르칠 수 있겠어요? 도덕적 진리는 말로만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모범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점에서 모든 인간은 실패합니다. 오직 예수만 진리를 말로 가르칠 뿐 아니라 그 생활로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진리를 가르쳤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리를 보여주신 이는 예수 님 한 분밖에 없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선지자들, 많은 종교가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은『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말씀하신 것입니다.
오직 말씀이신 그 분만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고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 진실, 온유, 겸손, 성결, 용기, 인내에 대하여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만이 그의 말씀, 그의 성품, 그의 생활로 친히 도덕적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진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인을 불쌍히 여겼고 회개와 죄 사함의 진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만이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죄를 대속(代贖)해 주시고 그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십니다.
로마에 구경 가는 사람은 로마서, 바티칸시티 속에 씨스틴 채플이라고 하는 작은 예배당을 찾아갑니다. 이 예배당은 작지마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그것은 十六세기에 가장 유명하였던 미켈란제로의 그림이 천장과 모든 벽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 그림은 보통 그림이 아니라, 창세기 一장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까지 다시 말하면 천지창조부터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의 성경에 있는 중요한 장면을 여러 해 동안 그려서 성전의 벽에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그 예배당을 구경하러 갑니다. 천장 중앙에 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는 장면과 아담을 창조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가락이 아담의 손가락에 닿을 때에 아담에게 생명이 있게 됩니다. 아담이 산 사람이 됩니다.
생명의 근본은 하나님이십니다. 산 것이 산 것을 낳습니다. 죽은 것이 산 것을 낳지 못합니다. 이 우주의 생명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무기물이 유기물을 만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신약에 와서 사 복음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일대기(一代記)가 기록되었는데, 예수님의 여러 행적이 자세히 기록되었으나, 한 가지 찾을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주의해 보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하셨지마는 장례식 했다는 기사는 없습니다. 사 복음을 다 훑어보아야 장례식 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꼭 살려 주셨습니다.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주셨습니다. 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상여에 메고 나오는 것을 살려 주셨습니다. 베다니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 된 것을 무덤에서 살려 내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三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와 접촉하면 그냥 죽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살아나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十一장 二十五절에『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를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를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하신 그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을 때에, 그리스도와 접촉할 때에,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 심령이 살아납니다. 이 살아난 우리의 심령은 육신이 무너진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계속해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산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적 견지에서 볼 때에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생명입니다. 아들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작년에 영국의 처칠 수상이 九十평생을 살다가 서거했습니다. 몇 해 전에 세계적으로 존경받던 유명한 신학자요 의사인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역시 九十평생을 살다가 아프리카 람바레네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래도록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한말(韓末) 한국 사회와 교회의 유명한 지도자 가운데 한 분이었고, 일찍이 YMCA의 총무 이셨던 월남 이 상재 선생의 일화 하나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상재 선생이 나이 퍽 많았을 때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도 영국의 로이드 죠지 같은 오래 사는 이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이 사람들은 말하기를 내가 건강하니 一00세를 살겠다. 一二0세를 살겠다고 하는 말이 신문에 났다고 합니다.
그런 신문을 본 어떤 청년이 연로하신 이 상재 선생에게 가서 묻기를『누구는 얼마를 살겠고 누구는 얼마를 살겠다고 말하는데 선생님은 얼마나 사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선생님이 얼른 대답하는 말씀이『그게 야 다 사는 법을 몰라 그렇지. 나는 영원히 살 테야』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 十九세기에 미국에서 유명한 부흥 사로 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무디라고 하는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빌리 그램처럼 유명한 이였습니다. 이 분이 점점 나이 많아 갈 때에 어느 곳에서 설교를 하며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아마 오래지 않아서 여러분은 나에 대한 소문을 쉽게 들을 것입니다. 이 무디가 죽었다 하는 소문을 들을 것입니다. 혹 신문에도 나서 여러분이 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내가 미리 부탁하는 것은 그런 소문을 곧이 듣지 마세요. 나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내가 이 육신을 벗어 놓을 때는 지금보다 더 분명히, 더 똑똑히, 더 깨끗이, 더 풍부하게, 더 행복하게 영원히 살 것입니다.』이것은 사실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생명의 근본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그와 하나가 될 때에는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이런 것도 구하고 저런 것도 구하지마는, 요컨대 인간에게서 최고로 요구되는 것은 생명입니다. 왜 돈을 모으려고 합니까? 돈이 있어야 생명이 윤택하게 살 수 있어요. 왜 지식을 많이 얻으려고 합니까? 지식이 있어야 우리의 생명이 지적으로 풍부해져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그가 친히 요한 복음 十장 十절에 설명했습니다.
『너희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의 도덕적 생명, 우리의 문화적 생명, 모든 방면의 생명이 풍부해집니다. 영원해집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인생은 한 나그네입니다. 길가는 나그네입니다. 이 길은 한 번밖에 가지 못합니다. 인생에 한 번밖에 가지 못하는 길을 올바로 택했습니까? 우리 가운데 아직까지 한 분이라도 이 의인이 갈 길을 택하지 못하였으면 이 시간 택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그 길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성과 양심을 통하여 간절히 원하는 것은 진리를 얻는 것입니다. 이 진리가 곧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화신입니다. 우리 인간이 첫째로 요구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이 참된 생명, 이 성결한 생명, 이 풍부한 생명, 이 행복 된 생명, 아니 이 불멸의 생명은 예수님인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올 때에 이 생명을 얻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죽어도 삽니다. 영원히 삽니다. 여러분! 다 이 생명을 얻었습니까?
이 一九六五년 간증 주일이 여러분에게 있어서,
참 길을 찾으시고 진리를 체득하시고 생명을 얻는 영원한 축복의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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