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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20:19-31/ 제자의 길 / 한경직 목사
    2014-08-23 00:29:25   read : 1265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二十․二十七)

    오늘 아침에 읽은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그 날 저녁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굳게 닫고 어떤 방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그 손을 친히 보이시고 상한 옆구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불행히도 제자 중의 하나 도마는 그 때 없었습니다.

    그 후에 도마를 만나서 이 이야기를 하니, 도마는 반갑기는 반갑지마는 너무 이상한 일이기 때문에『내가 친히 그 손을 보고 내가 그 옆구리를 만져보기 전에는 나는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후 여드레가 지났습니다. 그 날 저녁 도마 도 같이 있을 때에 주님께서 다시 부활하신 몸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때에 도마를 향해서 친히 하시는 말씀이『네 손을 내밀어서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또한 내밀어서 내 옆구리를 만져 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도마는 주님의 손을 보고 과연『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도 주님의 손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렌트 시간에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또한 그의 손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손은 우리 몸의 가장 중요한 지체 가운데 하나입니다. 손으로 모든 일을 합니다. 예술가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문필가는 글을 쓰고, 음악가는 악기를 다루고, 장사하는 사람은 상품을 다루고, 농사하는 사람은 농사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의 손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의 손을 볼 때 그 손은 깨끗한 손이올시다.
    이것은 자주 물로 씻는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손을 자주 씻는 것은 좋은 습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 된 일을 보면 손 씻는 문제에 대해서는 바리새인들이 예수 님 제자들보다도 더 잘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다고 비난한 구절을 우리가 복음서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기억합니다.

    빌라도가 죄 없는 줄 알면서도 유대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내어주고는 대야에 물을 떠오라고 해서 손을 씻으면서 하는 말이『이 사람의 피가 내게는 관계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물로 손을 씻는다고 그 손이 깨끗하여졌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그 손은 더러웠습니다. 사실 피가 묻은 것입니다.

    손이 깨끗하다고 하는 말은 죄가 묻지 않았다고 하는 말입니다. 손은 마음의 실행기관으로서 선한 일도 손으로 하고 악한 일도 손으로 합니다. 사도행전 十二장 一절에『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손을 들어 요한 의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많은 죄를 손으로 짓습니다. 손으로 남의 것을 훔칩니다. 손으로 뇌물을 주며, 손으로 뇌물을 받습니다. 손으로 거짓 글을 씁니다. 손으로 거짓 도장을 찍습니다. 손으로 사람을 때립니다. 손으로 사람을 죽입니다. 손으로 죄를 짓습니다. 죄인을 잡으면 곧 손에 수갑을 채웁니다. 손으로 죄를 짓는 까닭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二十四편 三절 이하에 보면『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자가 누군 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虛誕)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하였습니다. 야고보 장로는 야고보서 四장 八절에『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손이 회개하여야 됩니다. 손이 주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손이 거룩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조금도 죄가 묻지 않은 손은 오직 주님의 손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손은 깨끗한 손입니다. 주님의 손을 바라봅시다.


    다음에 주님의 손을 보면 그 손은 근로의 손입니다.
    부지런히 일한 손입니다. 나사렛에 가보면 그이가 일하였다고 하는 방을 보여줍니다. 신약 외경에는 어떻게 예수 님께서 요셉을 도와서 목수 일을 부지런히 하였으며 어머니를 도와서 먼 우물까지 내려가서 물을 길었다고 하는 기사를 많이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손은 일한 손입니다. 노동한 손입니다. 그는 한 가지 일을 배운 손입니다. 목수 일을 한 손입니다. 사도 바울의 손이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는 장막 치는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권면 할 때에『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들에게 모범을 보였노라』고 기록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손 마른 사람을 불상 히 여겨서 그 손을 고쳐주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하기 위해서 손을 고쳐주십니다. 성경에 보면『손으로 선한 생업을 하라』고 했습니다. 게으른 손을 책망했습니다.

    한국의 재래사상 가운데 좋지 못한 것 중 하나는, 손으로 일하는 것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특별히 공업방면에 종사하는 이들을 천대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이렇게 문화가 퇴보하게끔 만들어 놓았습니다. 주님의 손이 노동한 손이었습니다. 주님의 손으로 말미암아 모든 노동은 신성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번 태국에 갔다 오다가 동경에서 하루를 지냈는데 친구 十여 명이 같이 모여서 저녁을 나눴습니다. 그 때 특별히 동경교회 오 목사님께서 어떤 청년을 나한테 소개하였습니다.

    그이는 본래 일본서 대학을 졸업하고 그 부인은 의학을 공부하였는데 우리 한국 사람이 꼭 사업을 해야 된다고 하는 결심을 가지고 벌써 十여 년 전에 자기 부부가 친히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양돈을 하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 결과 十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큰 회사가 되어서 수천 마리의 양돈을 하고 큰 재산가가 되었고, 언제든지 교회에 중한 일이 있을 때에는 항상 이 분이 제일 먼저 물질을 바치는 이라고 소개하는 말을 듣고 감격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저는 우리 교회에 이런 분이 여러 분 되지마는, 특별히 집사님 한 분이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분을 소개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어떤 집사 한 분은 본래 대학을 졸업했는데, 꼭 사업을 해야 될 줄을 생각해서 저 산골로 들어가 처음에는 조그맣게 염소를 한 두 마리 기르기 시작하여 친히 젖을 짜고 그 젖을 배달하고 이렇게 하여 지금은 염소가 수십 마리 되었는데 특별히 이 집사는 언제든지 첫 새끼를 낳을 때에는 개척 교회에 보내서 이 염소를 보급시킨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접 손으로 일하는 이런 정신이 있어야 황폐한 이 강산을 금수강산으로 재건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에 가장 긴급한 문제는 여러분이 아시는 바 식량 증산과 산업 진흥입니다.

    이 두 가지가 다 손으로 일하는 사람을 부릅니다. 식량 증산도 손으로 개간할 수밖에 없습니다. 산업 진흥도 손으로 기술을 배워서 발전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근로의 손을 부릅니다.

    브라질 이민을 말하고, 이번에 태국에 가서도 이민에 대해서 좀 의논하고 돌아왔지마는 이민을 받고자 하는 나라에서도 손으로 일할 사람을 받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손은 근로의 손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주님의 손을 보면 그 손은 봉사의 손입니다.
    그는 손으로 문둥이는 어루만지면서 문둥병 자를 깨끗케 하였습니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을 때 그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열병이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소경의 눈을 손으로 만지면서 그 눈을 밝게 하였습니다. 귀머거리와 벙어리를 만지면서 귀를 밝게 하고, 말을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손으로 떡을 떼어서 五천 명 이상의 주린 자를 먹였습니다.

    그는 손으로 물에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를 건져서 배간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는 손으로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어 주셨습니다. 그는 떨어진 말고의 귀를 주워서 다시 붙여주었습니다. 그는 그의 손을 어린이들에게 얹어서 아이들을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손은 다른 사람을 봉사하는 봉사의 손이었습니다.

    모든 손들 가운데 특별히 우리가 어머니의 손을 생각할 때 봉사를 생각합니다. 또한 수술하는 의사의 손, 간호사의 손을 볼 때, 봉사를 우리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어떤 손이든지 봉사의 손이 될 수 있습니다.

    농부의 손도 그러하고, 의사의 손도 그러하고, 예술가의 손도 그러하고, 음악가의 손도 그러하고, 어떤 사람의 손이든지 사실 나만 위해서 쓰지 말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쓰게 될 때에 우리의 손은 봉사의 손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모든 봉사가 귀하지마는 손수 할 때 그 봉사가 더 귀합니다. 같은 음식이지마는 손수 지어서 대접할 때 그 음식이 더 맛이 있습니다. 같은 선물이지마는 손수 자기가 무엇을 만들어서 어떤 친구에게 줄 때에 더욱 마음이 감격합니다.

    같은 쌀이지마는 내 손으로 털어서 내 손으로 예배당에 가져오고, 내 손으로 다같이 모아서 가난한 형제와 자매를 구제할 때에 그것이 더욱 귀합니다. 같은 봉사지마는 손수 할 때에 더욱 귀합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특별히 여성들 가운데는 손을 곱게 하려고 애쓰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국 여자들은 손톱을 길게 기르기도 하고, 미국 여자들은 손톱을 빨갛게 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일 아름다운 손은 어떤 손인지 아십니까? 봉사하는 손입니다. 미국 어떤 가정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멀리 가 살던 아들딸들이 다 모여서 즐겁게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다가 젊은 사람들 사이에 누구 손이 제일 고우냐 이런 토론을 하였다고 합니다.

    맨 처음에는 젊은 사람의 손이 곱다거니 또는 아기의 손이 곱다거니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다가 마지막에는 결국 투표해서 정하기로 하고 투표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투표의 결과는 어머니의 손이 제일 아름답다고 나왔습니다.

    주름살 많이 잡힌 어머니의 손입니다. 그것은 봉사를 많이 한 손인 까닭인 줄 압니다. 봉사의 손이 제일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생각할 때에는 주님의 말씀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하면 이 봉사는 더욱 아름답습니다.


    다음의 주님의 손을 자세히 보면 그 손에 못 자국이 있습니다.
    이것이 특별히 다른 손과 다른 점인 줄 압니다. 스코트랜드의 수호성자로 존경을 받는 성 까일스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본래 아덴의 한 왕자로서 태어났지마는 주를 믿은 다음에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깊은 산에 들어가서 수도사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진 하나 즉 어렸을 적부터 자기가 사랑하던 암사슴 하나만은 자기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에 가서 다닐 때도 이 암사슴과 같이 다니고 또 암사슴의 젖을 짜서 먹고 초근목피로써 생활하면서 산에서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그 때에 마침 불란서의 어떤 왕이 사냥을 하기 위해서 깊은 산 속에 들어갔는데 한 골자기에 가보니 먼 곳 바위아래 사슴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이 사슴을 향하여 활을 겨누어 쏘았습니다. 그 때 성 까일스가 조용히 묵상기도를 하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얼른 눈을 더 보니까 화상이 자기의 사랑하는 암사슴을 향하여 옵니다. 이 성자는 이것을 막기 위해서 자기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화살이 성자의 손을 뚫고 나가면서 사슴을 맞혔습니다. 사슴이 맞긴 맞았지마는 손을 뚫고 지나간 살이라 힘이 없어서 사슴은 별로 상하지 않았습니다.

    불란서 왕이 이런 것도 모르고 사슴이 죽었거니 하고 사슴을 얻기 위해서 헐레벌떡 뛰어왔습니다. 와보니 난데없이 어떤 성자가 손을 들고 있는데 그 손에서는 피가 흘렀습니다. 이 광경을 본 불란서 왕은 주님의 손이 연상되어서 그 자리에 꿇어앉아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님의 손은 다른 사람의 죄악 가운데서 구속하게 위하여 상한 손입니다. 그 손에 못 자국이 생긴 손입니다. 그 손에 상처가 생긴 손입니다. 주님의 이 손을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도마가 이 손을 바라보고 이 못 자국을 만져보고 예수 님 앞에 꿇어앉아서 하는 말이『과연 내 주님이시요. 내 하나님입니다.』하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 가운데 아직도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 확실히 알지 못하는 분이 계시면 성령의 감화로써 주님의 이 피 흘리는 손을 바라보고 과연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인 것을 깨닫고 나와서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얻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도마가 특별히 예수님의 손을 보기 원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오늘날 세상에도 주님의 손을 보기 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주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이 어떠한가, 주님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손을 보기 원합니다.


    오늘날 주의 손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습니까? 주를 믿는 우리의 손으로 이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의 손을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손이 과연 깨끗합니까? 우리의 손이 과연 부지런히 일하는 손입니까? 우리의 손이 과연 봉사하는 손입니까? 우리의 손이 다른 사람을 봉사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상처받은 손입니까? 희생의 자취가 있습니까?


    한국의 현실이 주님의 손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부패한 사회가 깨끗한 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황폐한 강산이 근로의 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빈곤과 기근에 주린 대중이 봉사의 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죄악에 휩쓸려서 멸망으로 들어가는 많은 생명들이 피 흘리는 구속의 손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주님의 손을 보여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손을 주님께 드려야 되겠습니다. 주님께서 옛날 이 세상에 계실 때와 같이 오늘날도 주님의 일을 계속하기 원합니다. 오늘 주님이 쓸 수 있는 손은 우리의 손밖에 다른 손이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은 네 손을 내게 달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손을 주님께 바쳤습니까?

    우리의 손이 온전히 회개했습니까? 제가 금년 권찰회가 첫 번 모였을 때에 여러 권찰 님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의 현실, 특별히 서울 주변의 사정을 들어보면 사실 베고프고 헐벗은 동포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집단자살이라고 하는 끔찍한 일도 저지르는 우리 동포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선 내 구역 구역마다 잘 살펴서 우리 믿는 교구 가운데 말은 안 하지마는 사실 굶주리는 가정이 있으면 이것을 알아서 먼저 그 구역에 있는 여러분들이 힘을 합해 그들을 구호하도록 힘쓰고 그들의 힘이 미치지 못할 때에는 교회에 알려서 같이 구호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사람만 돌보지 말고 구역마다 안 믿는 사람으로서 사실 가난해서 밥 굶는 사람이 있으면 그 구역에서 힘을 모아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도와주고, 그 구역에서 힘이 부족하면 교회에 알려서 돕게 하면 적어도 서울 안에 우리 교회의 구역이 一三0구역이니 一三0여 세대는 도와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미 이런 일을 시작한 구역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손을 바라보고, 우리 손을 주님께 드려서 우리 하나 하나가 주의 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중요한 책임을 맡을 장로를 택하려고 합니다. 주의 손이 될 수 있는 장로들을 택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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