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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12:1-8/ 신앙생활과 정성/ 한경직 목사
    2014-08-23 00:27:40   read : 1361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막 十二․四十三)

    오늘 아침에 읽은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올시다.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 동편 기슭에 깃들이고 있는 작은 베다니라고 하는 마을에서 예수님을 위해서 잔치를 한 것입니다. 거기는 마르다도 와서 일을 보고 나사로도 같이 참여하였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그 날 저녁에 베다니 에 있는 그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 곧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은 것입니다. 향기가 온 방안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는 여기에 대해서 불평을 말하였습니다.『저 향유는 값이 대단히 비싸니 판다고 하면 삼 백 데나리온이나 받을 텐데 그 많은 돈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지 아니하고 왜 허비하는가』하고. 그 때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가 하루에 받을 수 있는 삯이올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저를 가만히 두라. 그리해서 나의 장사할 날을 준비하게 하라. 가난한 사람들은 너희들과 항상 이 앞으로도 있겠지만 나는 너희와 항상 같이 있을 것은 아니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예수 님은 마리아의 정성을 물리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옥합(玉盒)에는 향유라기보다는 마리아의 예수 님에 대한「지극한 정성」이 가득히 있는 줄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베다니 마리아의 정성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우리가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가복음 十二장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성전 뜰에서 한 번은 연보궤에 가까이 앉으셔서 여러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연보 하는 것을 보셨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많은 연보를 드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적게 드린 줄 생각합니다. 그 가운데 어떤 가난한 과부가 오더니 적은 돈, 엽전 두 닢을 던졌다고 했습니다.
    그저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옛날 동전 두 푼쯤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적은 돈을 드릴 땡 이 과부는 물론 남이 볼까 두려워하면서 드린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특별히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과부가 드린 연보를 보았느냐? 내 생각에 이 과부는 어떤 사람들보다도 제일 많은 연보를 드린 줄로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 유여(有餘)한 가운데서 드렸지만 이 과부는 자기의 연명할 것을 드렸느니라.』

    주님은 헌금의 양을 보시지 아니하시고 그 정성을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저울에는 정성이 무겁습니다. 이 정성이 주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우리 동양에도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 가운데『지성은 감천』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지극한 정성은 하늘을 감동시킨다고 하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정성, 그런 생활이 참된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문자 그대로 지성의, 지극한 정성의 생활이올시다. 신앙 생활에는 이 정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찾아보면 이런 말로 권면 한 말이 종종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달라.』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반면에 성경을 읽어보면 정성 없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 책망을 한 것입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가운데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느니라』책망하셨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이런 말씀으로 책망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이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희생의 제물은 병신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흠 있는 것으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타락한 말라기 시대에 와서는 병신, 병든 짐승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가져왔던 모양입니다.

    주님께서도 또한 말씀하셨습니다.『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신앙생활에는 이 정성이 필요합니다. 가령 기도를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기도는 단순히 묵상이 아닙니다. 명상도 아닙니다. 다만 자성도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쓸 것을 간구 하는 가장 거룩한 일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천사가 금 향로에 향을 가득히 담아 하나님께 드리는 장면이 보이는데 이것은 성도의 기도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향로에 성단 불을 담아 땅에 던지니 지상에 지진과 뇌성이 일어나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곧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하고 또한 상달한 후에는 그 응답이 지상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떤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하며 어떤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하지 못합니까? 정성 없는 기도는 천언(千言) 만언(萬言)으로 기도를 할지라도 하나님께 상달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입니다. 바리새인은 여러 가지 말로 자기가 잘하는 일을 쭉 벌려 놓으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위를 보지도 못하면서 오직 자기의 가슴을 치면서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를 한 것입니다. 주님 말씀이『이 세리의 간단한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어서 의롭다 함을 얻고 바리새인의 기도는 상달되지 못하였다.』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정성을 다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남에게 보이려고 길가에서나 회당에 가서 길게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공연히 중언부언해서 기도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한 마디를 드릴지라도 정성을 다해서 드리라고 하는 말씀이올시다.

    또한 우리가 복음서의 기록을 읽어보면 우리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정성의 간구(懇求)는 반드시 응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수로보니게 여인이 자기의 딸이 병났을 때에 그 병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께 와서 간구 한 이야기를 다 기억하십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지만, 처음에는 주님께서 들은척 만 척하셨습니다.『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노라』고 말씀했습니다. 가까이 와서 그래도 그냥 간청을 하니까 주님께서 멸시하는 말을 하셨습니다.

    『아들에게 줄 떡을 개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말씀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그 말을 듣고도 이내 하는 말이,『그렇습니다. 옳습니다. 그러나 개라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아니합니까?』

    이 때에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여인이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 평안히 가라. 네 믿음이 네 딸을 구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간절한 정성 어린 간구를 주님께서는 언제나 응답하셨습니다.

    가버나움의 어떤 집에서 그르치실 때에 많은 사람이 둘러쌌습니다. 그 때에 어떤 반신불수 된 사람을 네 사람이 메고서 예수님 앞에 데려오기는 왔지마는 무리로 둘러싸여서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지붕 꼭대기로 올라가서 그 곳을 헤치고 반신불수를 달아매어서 예수님 앞에 놓은 얘기를 여러분 다 아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반신불수의 믿음보다도 메고 온 그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 반신불수를 고쳐 주셨습니다. 정성 있는 간구를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물리치지 아니하셨습니다.

    불의 한 법관의 비유를 들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이 불의 한 법관이 가난한 과부가 와서 신원 해 달라고 할 때 처음에는 듣지 아니했지마는 그냥 계속해서 간구 할 때에 이 간구를 들어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물며 하나님께서 너희의 간절한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겠느냐』하고 기도할 때에 정성을 다해서 기도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전에도 말씀했지만,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와 같이 十년을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신 것입니다.

    종교개혁 시대에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개혁자 존 녹스의 기도가 있습니다.『오, 하나님이시여, 우리 나라 이 스코틀랜드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그렇지 못할진대 내 생명을 불러 가시옵소서.』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이의 기도, 정성 어린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새벽 기도회를 힘쓰는 것도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하는 뜻입니다. 이것은 기도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주의 역사를 할 때에 우리가 정성을 다해서 해야 될 것입니다. 목사만 주의 역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로도 주의 역사를 하는 것이고, 집사도 주의 역사를 하는 것이고, 모든 평신도들도 믿는 그 날부터 주의 일을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이방의 사도가 되는 직분을 받은 후에 얼마나 큰 정성을 가지고 그 사도직을 감당하였는지 기억하시지요. 빌립보 一장 二十절에는 이런 말이 기록되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 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그 때에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 물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말씀하였습니다.

    여러분,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만일 너희들이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바쳐서 드린다고 하면, 나는 죽어서 내 피로써 그 위에 부어서라도 너희와 같이 기뻐하겠다는 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정성의 기도를 보시고 그를 통해서 많은 생명을 구워하고 초대 이방 교회에 기초 석을 놓게 된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만일 우리 영락교회의 목사를 비롯해서 모든 당회원 이나 제직원 들이나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정성을 가지고 내가 맡은 바 책임을 다 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얼마나 축복을 더하시겠는가, 잠깐 상상해 보셔도 알 수 있는 줄 생각합니다.

    가령 주일학교 반사가 재가 한 주일에 몇 시간을 가르친다고 할지라도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하고 정성을 다해서 준비하고 가르친다고 하면 얼마나 효과가 더 있겠는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권찰 직분도 그렇고, 성가대 직분도 그렇고, 모든 직분이 다 그렇습니다.

    제가 이번에 칠레에 가서 목사 수양회 때에 우리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하라고 하기에 이 얘기를 하다가 우리 상례 부에서 하는 이야기를 잠깐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어떤 가정에 상례가 난다고 하면,

    상례부원들이 가서 먼저 예배를 보아 드리고, 그들이 수의를 만들고, 그들이 상복을 만들고, 그들이 관을 준비해 오고, 묘지까지 모신다고 하는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한국 교회가 그와 같이 정성을 가지고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가 하면서 모두들 큰 감동을 받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정성이 같이 할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찬송도 정성을 들여서 부를 때 감동이 있습니다. 음식도 정성 들여서 만들어야 그 음식이 맛이 있습니다. 헌금도 역시 그렇습니다.

    헌금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 정성으로 드려야 열납(閱納)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들이 자녀를 드릴 때에는 맏아들을 하나님께 먼저 드렸습니다. 목식을 드릴 때에는 첫 이삭을 먼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열매를 드릴 때에도 첫 열매를 먼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소나 양을 드릴 때에도 첫 새끼를 흔히 드렸습니다.

    제가 들으니 우리 교회 집사 가운데도 어떤 한 분은 산양 목장을 하는데 문자 그대로 산양의 첫 새끼를 낳을 때마다 전도 회에 바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성이올시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정성 어린 예물을 통해서 큰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예수님께서 들에서 많은 사람을 가르칠 때에 해는 점점 저물어 오고, 음식을 살 곳은 멀고, 많은 백성들이 주리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먹일 수 있을까 하고 예수 님과 제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 때에 한 소년이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쳤지요. 이것이 적지마는 그 어린 마음의 정성은 태산 같은 줄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정성 어린 물건을 받아서 축복해서 오 천 명에 달하는 많은 사람을 먹였다고 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헌금에도 정성이 같이 할 때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김포 가도로 나가는 곳에 새로이 기독교 선명회에서 고아를 위하여 병원을 잘 지어 놓았지마는 몇 해 전에는 대구 동산병원 안에 역시 고아를 위해서 병원을 지었습니다. 그 때에 병원 낙성식에 피얼스 박사께서 오셔서 하시는 말씀 가운데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미국 사람들은 돈이 많아서, 큰 부자가 헌금을 많이 해서 이렇게 지은 줄 아십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내가 이 병원을 지으려 할 때에 꼭 필요하다고 라디오 방송을 몇 번했는데 그 다음에 내가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어떤 부인이 돈 五十 불을 편지 속에 넣어 보내면서「나는 항상 병중에 사는 반신불수가 된 사람인데 내가 라디오를 통해서 당신의 음성을 듣고 어떻게든지 그 병원을 도와줄 마음이 간절하지만 다른 돈이 업은즉 이 라디오를 팔아서 그 값 五十불을 보냅니다.」이런 정성 어린 헌금이 모여서 이 병원이 되었습니다.』

    헌금하는 이 가운데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부득이해서 하는 이, 둘째 기쁨으로 하긴 하지마는 힘껏은 안 하는 이, 셋째는 기쁨으로 하고 정성껏 힘있는 대로 하는 이.

    우리 믿는 사람은 만사에 성의의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일이 바로 됩니다. 그래야 성공합니다. 정성을 가지고 제품을 만들어야 그 제품이 바로 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들으니까 일을 허술하게 하는 것을 가리켜『처삼촌의 벌초하듯 한다』고 그럽디다. 처삼촌의 벌초하듯이 주의 일 하는 이는 없습니까? 처삼촌의 벌초하듯 모든 일을 보는 이는 없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정성을 가지고 하는 그 일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올시다.

    옛 글에『성자는 천지도야요 성지 자는 인지도』 란 말이 있습니다. 정성되게 하는 것이 하늘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정성이 없는 신앙생활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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