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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11:1-13/ 기도를 배우자 / 한경직 목사
    2014-08-23 00:11:09   read : 1408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눅 十一․一)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이와 같이 제자들이 예수님께 간구 하였습니다. 매우 적절한 간구(懇求)인 줄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에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은 거듭 말할 필요가 없는 줄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숨쉬지 아니하고 우리가 살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는 신앙생활의 청우계(晴雨計)라고 말하였습니다. 기도로 보아서 그 사람의 신앙생활을 헤아릴 수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접촉하고 하나님과 교통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仰望)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지시를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며 위로부터 내려오는 새로운 능력을 받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위로를 받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격려를 받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심령이 장성하며 열매를 맺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 성도들은 은혜의 보좌 앞에서 피차가 위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오직 성도들만이 가질 수 있는 거룩한 교제를 가질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는 모든 축복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과 사도들과 온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줍니다. 오늘 이 시간, 기도의 교훈을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선, 우리가 주님의 교훈과 성경을 상고하여 보면 기도를 하기는 하지마는 응답되지 않는 기도가 있습니다. 소용없는 기도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六장 五절 이하의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세요.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장과 큰 구리 어구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이것은 외식하는 바리새인의 기도로서 하나님께서 응답할 리가 없습니다.

    또 누가복음 十八장에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 두 사람이 선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비유가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따로 서서『하나님이시여, 내가 감사하옵기는 나는 토색(討索)을 하지 아니하고 불의도 하지 아니하고 저기 선 저 세리와도 같지 아니합니다.

    나는 금식도 하며 십일조도 드립니다.』이런 교만한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아니하신다고 우리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둘째로, 죄를 회개하지 않고 드리는 기도는 쓸데없는 기도입니다. 이사야 一장 十五절에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죄가 많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기도할지라도 죄 있는 손을 들어 기도할 때에 듣지 아니하시겠다고……. 시편 六十六편 十八절에『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리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 기도, 죄를 회개하지 않고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셋째로, 정욕으로 구하는 기도를 응답지 아니하십니다. 야고보 四장 三절에서 야고보 장로는 우리에게 경고합니다.『너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한 번은 요한 과 야곱이 예수 님께 나와서『주님, 주님께서 이제 영광으로 오실 때 우리 하나는 주님 우편에 앉게 해 주시고 하나는 주님 좌편에 앉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하였습니다. 바로 그 기도입니다. 예수 님은『너희가 구할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가실 때 사마리아 사람이 영접지 아니하였습니다. 여기에 분개한 어느 제자는『선생님, 이 사람들이 이렇게 선생님을 영접지 아니하니 하나님께 기도해서 불을 내리어 이 사람들을 멸망하게 합시다.』하였습니다. 예수 님께서는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정욕으로 구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할 이치가 없습니다.

    넷째로, 의심으로 하는 기도는 쓸데없는 기도올시다. 야고보 장로는 야고보 一장 六절에 이렇게 경고합니다.『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아니하십니다. 이것은 몇 가지 실례를 든 것뿐입니다. 그 밖에도 성경을 상고하면 어떤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 안 하신다고 하는 말씀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러면 어떤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까? 여기에 대해서도 분명히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죄를 회개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역대 하 七장 十四절에 하나님께서『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야고보 장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五․十六). 회개 있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둘째는 믿음으로 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마가복음 十一장 二十四절에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그러므로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받을 줄로 믿으나.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어떤 사람이 혹 병 낫기를 구하니까 예수 님이 반문하시기를『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 네가 믿느냐?』물어 보셨습니다. 그 때 그 사람이 하는 말이『주여, 믿습니다.』라고 하자 예수 님은『네 믿는 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대로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신 후에 항상 주님께서는『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그 다음에 셋째로는 진심으로 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예레미야 二十장 十三절에『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진심이라고 하는 말은 온 마음, 중심의 욕망으로 기도할 때에야 그 기도를 이루어 주신다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떤 때에 기도를 하기는 하지마는 마음속으로 중심으로 원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겸손케 해 달라고 기도를 하기는 하지만 마음에 교만을 사랑합니다. 죄를 떠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긴 하지마는 실상은 죄를 사랑합니다.

    어거스틴의 자서전에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채 회개하기 전에 기도하는데『오! 하나님, 나를 이 음란한 죄에서 떠나게 하여 주옵소서!』입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속으로『그러나 지금은 마소서!』하는 것입니다.

    음란한 죄를 지으면서 떠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지만 실상 중심으로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심으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전심으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넷째는 감사함으로 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빌립보 四장에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어라.』

    우리가 항상 하나님께 은혜를 달라고 기도는 하지마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보면 항상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여호와께 사례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심이로다.』감사하면서 하나님 앞에 우리가 기도를 하여야 됩니다.

    다섯째는 생활에 따르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요한 일서 三장 二十二절에 사도 요한 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사람의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요한 복음 十五장 七절에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다 이루어 주시리라.』하셨습니다.

    한 가지만 더 지적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요한 복음 十六장 二十二절과 二十四절에서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여야 그 기도를 응답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마지막에 예수의 이름으로 늘 기도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뜻을 잊어버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간단히 생각하면 거기에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 죄 있는 사람이 오직 예수를 통하여야만 하나님께 올 수 있는 까닭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가 많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수에 우리의 중보 예수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중보로 해서야 하나님께 와서 구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이렇게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은 사람은 예수와 연합해서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우리도 예수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로 딸로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와서 기도한다고 하는 뜻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빈다고 하는 말은 나도 예수 님과 같이 당신의 아들로서 내 아버지께 와서 아들의 권세를 가지고 기도한다는 그 뜻입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으로 기도하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내 먹은 양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범적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에 주 기도를 가르쳐 주셨는데 제일 먼저 기도한 것이 무엇입니까?『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의 뜻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능치 못하는 것이 없으십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나에게서 떠나게 하여 주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 주옵소서』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게 기도하는 것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기도는 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기도합니다. 이교도도 기도합니다. 불교 믿는 사람도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가 다릅니다. 그들의 기도는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자기의 소욕(所欲)으로 기도합니다.

    우리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내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기도합니다. 이것이 다릅니다. 이렇게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우리의 기도가 응답됩니다. 이와 같은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 줍니다.

    어떤 때는 꼭 우리의 말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하나 그 이상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의 육체에 있는 가시를 없이해 달라고 간절히 세 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권능을 약한 데서 오히려 완전케 되느니라.』였습니다. 더 큰 은혜를 바울에게 주었습니다. 바울이 원하는 그것보다 더 크게 응답이 되었습니다.

    전에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가 어거스틴이 회개하기 전에 간절히 회개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十五년 동안이나 하였습니다. 그 기도가 응답이 안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이 그 다음에는 저 칼타고를 떠나서 이태리로 가겠다고 합니다.

    이태리에 가면 로마가 있고 밀란 이 있고 큰 도회가 있는데 여기에 가게 되면 큰 죄악에 빠질 터인데 여기 가려는 것을 안타깝게 붙잡으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가지 못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동안 몰래 어거스틴은 배를 타고 달아났습니다.

    원하는 대로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후에 보면 이태리에 감으로 말미암아 어거스틴이 회개하였습니다. 말보다도 그 이상으로 더 크게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는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이렇게 기도가 이루어진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 혹은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 여기 앉은 어떤 학생 가운데서 이런 생각이 날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우주는 다 자연법칙에 의지해서 꼭 그 법칙대로 되는 것인데 우리의 기도가 응답이 된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그러나 이 몇 가지만 생각하세요.

    자연법칙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자연계에 나타나는 것은 자연법칙이라고 합니다. 사람도 자연법칙을 이용해서 내 뜻을 이룰 수 있거든 하물며 자연법칙을 내신 하나님께서 자연법칙을 이용해서 자기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까? 물론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람도 원자의 핵의 구조를 분열시켜서 전에 알지 못하던 새로운 능력을 나타내게 해서 그것을 이용하거든 하물며 본래 핵의 구조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혹 어떤 물질의 핵의 구조를 잠깐 바꾸어서 이적을 행할 수 없습니까? 물론 행할 수 있지요.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고 하는 것을 크게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현대 과학을 통해서 오히려 이 우주가 얼마나 신기한 우주인지 이것을 우리에게 점점 계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과 같이 나타나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마는 전파라고 하는 것, 일렉트릭 웨이브(electric wave)는 항상 우리 가운데 지나가고 있습니다.

    눈에는 안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실 꼭 이 전파사이클에 맞게 통신기를 만들고 수신기를 만들 수 있으면 내가 지금 하는 말을 세계 어떤 사람이든지 금방 다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말만 들을 수 있습니까? 여기 이런 텔레비전이나 텔레스터를 통해서 제 얼굴까지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봅니까? 신기합니다. 보이지 않는 전파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리로 경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은 어디나 계십니다. 무소 부재합니다.

    이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준비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모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지시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준비가 되면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볼 수 없겠습니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기억하세요. 성경이 얼마나 우리 믿는 사람에게 기도에 힘쓰라고 하셨습니까?『항상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성령으로 무시로 기도하라. 깨어서 기도하라.』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로되 그 자신이 얼마나 기도에 힘썼습니까? 모든 사도들이 얼마나 기도에 힘썼습니까? 다니엘이 얼마나 기도에 힘썼습니까? 엘리야가 얼마나 기도를 간절히 하였습니까?

    왜 이렇게 기도에 힘쓰라고 하고, 왜 이렇게 기도에 힘썼습니까?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올시다. 숨쉬는 것이올시다. 기도 없는 신앙생활은 죽은 믿음이올시다. 기도하지 않으면서 예수 믿는다고 하는 까닭으로 오고 가는 유혹에 잡히고 오고 가는 시험에 다 들고,
    믿기는 믿지마는 항상 근심과 염려에 싸여 있고, 믿기를 믿지마는 항상 시기와 질투를 버리지 못하고, 믿기를 믿지마는 능력은 없고 교회를 봉사할 수도 없고 전도할 수도 없습니다. 왜? 기도하지 아니한 까닭입니다.

    그 믿음이 죽은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말하기를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말하였습니다. 내가 내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지 아니하면 이것이 내 죄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오늘날 삼천만 민족이 이렇게 큰 죄악의 구덩이로 무리째 들어가는 이런 때를 당해서 이 민족을 구원할 마음이 없고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할 마음이 없으면 그 무슨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죄입니다.

    三八 이북에 우리 민족이 문자 그대로 붉은 용의 이빨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이 때를 당해서 이북 동포를 위해서 간절한 기도가 없다면 이런 죄가 어디 있습니까? 기도하지 아니하고 믿는 것은 죄를 지으면서 예수를 믿는 것과 같습니다.

    미안한 말이지마는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영락교회의 약점은 기도를 게을리 하는 것입니다. 모든 모임 가운데 삼일 저녁에 제일 적게 나옵니다. 기도를 게을리 합니다.

    이 인근에도 많은 교우들이 있지만 새벽 기도회에 제일 조금 모입니다. 대구 영락교회에 가보니까 다 멀리 흩어져 있지만 그 여러 제직(諸職)들이 먼 곳에서도 새벽 기도는 반드시 나옵니다. 우리 교회는 가까운데 있는 이들도 새벽 기도회에 안 나옵니다. 기도를 게을리 합니다. 가정 기도회 보는 집도 적습니다.

    구역 기도회 보는 구역도 적습니다. 기도를 게을리 합니다. 우리가 사는 때가 어떠한 때이고 우리의 책임이 어떠한데 우리가 이렇게 기도를 게을리 합니까? 우리 믿는 사람이면 적어도 아침에 자고 깨서 기도를 하고 저녁에 잘 때에도 반드시 기도를 하여야 되겠습니다. 보통 우리가 세례문답이나 학습문답 할 때 물어보면 기도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런 이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서 기도하였습니까, 기도 안 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대답하십시오. 가족 기도회를 봅니까, 안 봅니까? 하나님 앞에서 대답하십시오, 새벽 기도회에 나가려고 힘써 보았습니까, 힘쓰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대답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그랬습니다. 항상 기도하라 하였습니다. 깨어 기도하라고 우리 주님께서 가르치십니다. 성령으로 수시로 어느 때나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락교회로 하여금 기도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요한 계시록을 읽어보았습니까? 요한은 네 장로가 큰 대접에 향을 가득히 받아서는 하나님 보좌에 바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물으니까 이것은 땅에서 드리는 성도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우리 영락교회에서 바치는 이 기도가 향과 같이 하나님의 보좌에 매일 올라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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