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1:25-30,마28:16-20/복음전파/한경직 목사 2014-08-22 23:16:29 read : 1308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十一․二十九)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二十八․二十)
이 두 말씀은 다 우리 주님의 말씀이올시다. 十一장에 있는 말씀은 주님께서 일을 시작하시던 초기에 하신 말씀이올시다.『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그리하면 편히 쉼을 주시겠다』고 하시면서『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멍에를 멘다고 하는 말은 순종하면서 배우라고 하는 뜻입니다.
둘째 번 읽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이올시다. 거기에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할 것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 것을 명하시면서『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것을 다 가르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에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은 이대로 순종한 줄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나와서 안식을 얻고 예수님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후에는 예수님이 분부하신 대로 온 세계에 흩어져서 복음을 전파하고 그 분부하신 것을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기독교라는 새로운 역사의 물결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 교육주일을 당해서 우리는 특별히 이 말씀을 중심해서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가르치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를 배우고 다음에 예수를 가르쳐야 될 것입니다.
먼저 배우라고 하는 말씀을 생각하십시다. 배우는 이를 흔히 학생이라고 합니다. 학생이 되라고 하는 말입니다. 학생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어린이나 중 고등 학생 또는 대학생까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깊은 의미에서 인간은 그 일생이 학생 생활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세상은 인생의 학교입니다. 또 모든 인간은 학생입니다. 이 학교에는 아기 때 입학을 하는 것이고 죽을 때에야 교문을 나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또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교 교육만은 부족합니다. 학교에서 나온 후에도 계속해서 공부를 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한 학생 하나가 부모와 함께 어떤 집의 초대를 받아 갔습니다. 마침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은 유명한 천문학자였습니다. 학생은 그가 누군 지를 모르고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다가『선생님은 무엇을 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나는 천문학을 공부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이『나는 작년에 벌써 천문학을 다 배웠습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학생들과 어른들이 많이 있습니다. 공부는 학교에서 하면 다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공부는 학교에서 나온 다음에도 계속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동양의 제일 큰 스승은 누구나 공자님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공자님의 생활과 교훈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자기 자신이 배우기를 힘썼고 또 배우라고 강조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논어(論語) 첫 장 첫 줄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 不亦悅呼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쁜 일이 아닌가 라는 뜻입니다. 공자 님에게 있어서 제일 기쁜 일은 배우고 익히는 일이었습니다.『박학이 독지하고 절문이 근사하면 인재그중이라(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仁在其中)』고 했습니다.
넓게 배우고 독실히 뜻을 가지고 간절히 묻고 생각을 가까이 하는 그 가운데 인물이 있다는 말입니다. 혹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민이호학 하문불치(敏而好學 下問不恥)』민첩히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공자는 七十 평생을 다 산 후에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내가 十五살 때에 학에 뜻을 두고 三十살에 학에 섰다고 할 수 있고 四十살에 이르러서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五十살에는 천명을 알게 됐고 六十살이 되어서는 귀가 순해서 무슨 말이든지 바로 들을 줄 알게 되었고 七十살에 나서야 마음에 원하는 대로 구도에 우그러지지 않더라.』
이것을 보면 공자 님은 일생 동안 계속해서 공부하고 수양한 분입니다. 공자 같은 이도 그렇다면 우리 범인은 얼마나 더 공부하여야 하겠습니까?
특별히 오늘날 二十세기에 사는 한국 사람의 견지에서 볼 것이면 우리가 어떠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날마다 발전하고 변천하는 과학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기술을 날마다 계속해서 배우지 아니하면 시대에 떨어집니다. 어떤 잡지를 보니까 미국의 대학에서는 교수를 채용하는데 四년 제 계약서를 쓴다고 합니다.
四년 동안 교구를 시켜보고 그가 계속해서 장성하는 사람이면 四년간 계약을 더 연장하고 그렇지 못하고 교수의 지적인 향상발전이 없으면 계약을 정지시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수가 자기의 자리를 지키려고 하면 계속 공부를 하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제 생각 같아서는 한국에서도 대학의 교수와 고등학교의 선생들에게 다 그런 방법을 적용했으면 좋겠습니다. 계속해서 배워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민주주의 시대에 삽니다. 민주주의의 이론과 생활과 양식과 제도를 새롭게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제 시대에는 우리 교인들이 모든 방면에 일반 사회보다 앞섰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문화가 먼저 기독교를 통해서 이 땅에 들어온 까닭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현대 문화를 빨리 배워서 오히려 교인들이 뒤떨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현대의 교직자, 제직, 주일학교 반사 및 일반 교인들은 새로이 각성해서 배움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시대에 떨어지지 아니합니다.
배우를 길은 여러 가지입니다. 물론 학교에 들어갈 수 있으면 제일 좋습니다. 그러나 학교에 안 가고도 배울 수 있습니다. 야학이나 강습도 할 수 있고, 강의를 읽을 수도 있고 독서나 방송을 통해서 얼마든지 자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학교에는 몇 달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자습으로 공부하여 마지막에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뜻만 있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미국의 월리엄 캐리 같은 사람은 양화 직공으로 있었지만 라틴어를 배우고 헬라어를 배우고 철학을 배우고 신학을 배워서 결국 유명한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실업가가 기업을 경영하면서도 계속해서 배우고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을 배우지 아니하면 현대 실업계에서 낙후합니다. 계속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부지런한 것입니다. 더 힘써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천하에 힘쓰지 않고 되는 일이 없습니다. 힘쓰고 부지런만 하면 연령 같은 것은 별로 큰 상관이 없는 줄 압니다. 나이 많아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노령에 악기를 배웠다고 합니다. 유명한 정치가 케로 같은 사람은 八十六살에 헬라어를 배웠다고 합니다. 문예부흥 시대의 푸주타 같은 사람은 七十살에 라틴어를 처음 배웠다고 합니다.
우리 영락성서 학원에 가보니까 六十세 이상의 학생이 더러 있었습니다. 대단히 좋게 보았습니다. 나이 많다는 것으로 구애될 것은 없습니다. 계속해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 무식한 교인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꼭 공부하세요.
배우를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나 자신이 배워서 수양하는 것이요, 둘째는 그것을 가지고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누구나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학생만 되면 안 됩니다. 교사도 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책을 보니 미국의 한 청년에게 그의 삼촌이 죽으면서 많은 재산을 물려주면서 이렇게 유언을 했습니다.
『저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매년 수천 불씩 학비를 대주어라.』그러니까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매년 수천 불씩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청년은 그후부터 대학에서 공부만 했습니다. 한 대학을 졸업하면 다른 대학에 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七十살까지 계속했습니다. 박사 학위를 열 개도 더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박사 학위를 열 개나 땄으면 무엇을 합니까? 배우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가르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성지에 가면 갈릴리 바다와 사해 두 종류의 바다 가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 가면 물고기가 많이 있고 사해에는 고기가 한 마리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배우기만 갈릴리 바다는 요단강 물을 한편으로 받고 다른 한편으로 흘려보냅니다. 사해는 요단강 물을 받기만 하고 주는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인 물이 썩어서 죽은 바다 가 된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은 쓰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공부만 하고 쓰지를 않으면 썩어지고 맙니다.
옛날 분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아무개는 공부를 많이 해서 암글이 되었다.』암 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숫글이 되어야 합니다. 교인들도 암 글 교인이 되지 맙시다. 숫글 교인이 됩시다. 배우기도 하고 가르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 학교의 선생이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넓은 의미에서 남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라는 말입니다. 공자님도 배우기를 싫어하지 말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가르치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에게는 특별히 자녀들을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날도 같은 대량 교육시대에 있어서는 학교 교육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집안의 가정교육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전에 에디슨 같은 사람은 학교 공보를 잘못해서 퇴학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계속해서 그 아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후에 에디슨은 유명한 발명가가 되었습니다.
부모들은 계속해서 배우고 계속해서 자녀들을 가르쳐 줄 줄 알아야 됩니다. 부모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른은 투구나 어린이와 청년들을 가르쳐 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직장에 있든지, 어떨 일터에 있든지 그곳에서 모르는 사람을 가르쳐 줄 책임이 있습니다. 회사에 있는 이도 그렇습니다. 공장에 있는 이도 그렇습니다.
관청에 있든지 군대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공장을 경영해도 일만 부려먹으면 안 됩니다. 직공들을 계속해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모든 직장이 다 그렇지만 특별히 문화 방면에 헌신하는 이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신문, 잡지, 텔레비전, 연예 등 소위 매스 미디어에 관계 있는 이들은 이런 것들을 통해서 모든 대중에게 가르쳐 줄 교육적 사명이 있는 것을 기억하고 자기 책임을 바로 해야 합니다. 너무 오락 중심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에도 사회 교육의 큰 책임이 있습니다. 사실 교회는 언제나 교육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현대에는 이 교회의 교육적 사회적 사명이 더 큽니다. 현대는 소위 인구 폭발시대입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나고 자라는지 모릅니다. 이 아이들이 다 커서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겠나 하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만큼 책임이 중해집니다.
과학의 교육만은 부족합니다. 참 기독교 교육이 필요합니다. 사람 만드는 교육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기초는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 사상에 있습니다. 기독교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교회는 앞으로 더욱 교육에 힘써야 합니다. 교회 안의 주일학교 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에서 국민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교들을 많이 세워서 기독교 교육을 보급하는 것이 한국 교회의 지상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통한 전도가 제일 효과적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다.
오늘의 기독교 교육은 장래 민주 한국의 기초가 됩니다.
오늘의 기독교 교육은 내일의 한국의 건축자들입니다.
오늘의 주일학교 교사들은 내일의 한국 교회의 건축자들임을 기억하고 내 책임을 바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교는 본래 교육에 치중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 가는 곳마다 문화가 먼저 발전했습니다. 제네바에서 장로교회를 처음 세운 존 칼빈은 제일 먼저 성경의 요리를 빼어서 요리문답을 만들어 온 교인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철저히 성경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제네바의 평신도들은 천주교의 신부들보다도 성경을 더 잘 안다』는 세평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존 칼빈은 이렇게 성경만 가르친 것은 아닙니다. 국민 교육을 위해서 국민학교를 설립하고 나아가서는 대학을 설립해서 온 세계 학생들이 제네바에 모이게 되었고 따라서 이 대학이 신교 부흥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대학이 얼마나 중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재인식해야 합니다. 미국에 처음으로 건너간 청교도들도 꼭 이대로 했습니다. 예배당을 짓고 자기들이 살집을 대강 지은 후에는 곧 학교를 지었습니다. 이리해서 하버드니, 예일 이니, 프린스턴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온 초대 선교사도 꼭 이 모범대로 했습니다.
제가 숭실대학에 다닐 때에 한국의 초대 선교사 중 한 분인 마포삼열 박사의 회갑연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렸어도 한가지 지금도 기억에 새로운 것은 그 마 목사님이 평양을 중심으로 전도를 하면서 무려 二五0개의 학교를 세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교회를 세우고는 이어서 학교를 세웠습니다. 다소 큰 도시에는 중학교를 세웠습니다. 평양에는 대학교도 세우고 신학교도 세웠습니다. 이리하여 기독교로 하여금 한국 문화에 큰 공헌을 끼치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의 믿는 사람들은 기독교 교육을 위해서 좀 더 시간과 재산을 바칠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 직접 간접으로 우리가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교육에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국 교회가 우리 한국의 장래를 위해서 마땅히 공헌할 수 있을 줄로 압니다.
교육, 특별히 기독교 교육은 장래의 국가나 교회를 위해서 최대의 봉사가 된다고 하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중용에『물유본말하고 사유시종이라(物有本末 事有始終)』는 말이 있습니다. 물건에도 본말이 있고 일에는 마지막과 시작이 있다는 말입니다. 요새 우리 한국에서 우위성이라는 말을 더러 씁니다. 영어로는 소위 프라이오리티(Priority)라는 말입니다.
무엇을 먼저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 가지 할 것이 많지만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 배울 것이 많은데 무엇을 먼저 배울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예수를 먼저 배우라』는 말입니다.『예수를 먼저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방금도 칼빈 이야기를 했지만 그의 저서 가운데 유명한「기독교 강요」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 첫 장 첫 면 첫 문장에 무슨 말이 있는지 압니까?『사람이 마땅히 배워야 할 지식이 많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고 둘째는 인간에 대한 지식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예수를 먼저 배워야 합니까? 먼저 하나님을 알고 다음에 사람을 바로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요, 그리스도는 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의 종류를 허다합니다. 지식은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 놓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요, 둘째는 인간에 대한 지식이요,
셋째는 자연에 대한 지식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을 신학이라 합니다. 사람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을 인문과학이라고 합니다. 자연에 관해서 공부하는 학문을 자연과학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다 필요합니다. 다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흔히 세상 사람들은 자연과학을 제일 소중히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인문과학을 소중히 생각하고 맨 마지막에 신학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자연과학을 바로 쓰는 것은 사람이니 인문과학이 더 중요하고 바른 사람을 만드는 것은 신학이 제일 중요합니다.
예수를 배워야 바른 사람이 되고 과학적 지식을 바로 쓸 수 있습니다. 현대의 제일 큰 문제는 원자력을 바로 쓸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만들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배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대인으로서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예수입니다. 현대인에게 제일 먼저 가르칠 것은 예수 님의 교훈입니다. 어떤 교도소에서 무식한 죄수에게 글을 가르치고 만기된 후에 내보냈습니다.
몇 달 후에 또 그가 잡혀 들어왔습니다. 죄목은 문서 위조죄였습니다. 글을 배워 가지고 나가서 문서위조를 해 먹은 것입니다. 글만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예수를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을 배워줘야 합니다. 사도신경을 배워야 합니다. 주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열 가지 계명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혹 문답을 해보면 교회에 몇 해 다녔지만 열 가지 계명도 분명히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별히 지난 주일에 보니까 열 가지 계명 가운데 넷째 계명을 바로 못 배운 사람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넷째 계명이 무엇인지 압니까? 주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입니다.『단 추석날을 제외하고.』이렇게 배웠습니까? 이 가운데 예배당에 안 오고 묘지에 갔던 분은 없습니까?
예수를 바로 배워야 합니다. 먼저 배워야 됩니다.
오늘 교육주일을 맞아 주일학교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재인식합시다. 어린이들을 꼭 주일학교에 보내세요. 반사들은 꼭 책임을 바로 하세요. 성경반의 중요성을 기억하십시다. 기독교 교육기관, 국민학교, 중 고등학교, 대학교, 신학교, 성경학교의 중요성을 기억하십시다. 이것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가르치는 길입니다.
모세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일 큰 감화와 영향을 준 분은 학자 에스라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바벨론에 종으로 팔려가 살다가 다시 고국에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 동안에 율법을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 공경하는 법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이 때에 에스라가 바벨론 에서 돌아왔습니다. 당시 에스라에게는 한 가지 결심이 있었습니다. 에스라 七장 十절에 있는 그 말씀을 읽을 때에 들어보세요.『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 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
세 가지 결심입니다.「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이것을 배웠다는 말입니다.「그대로 준 행하여」이것은 그 자신이 그대로 행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그것을 자기 백성에게 가르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에스라는 결심대로 했습니다. 이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히 여길 줄 아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선민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은 전환기에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믿는 사람들이 에스라와 같이 내가 먼저 성경을 배우고, 그대로 준행하고, 이 백성에게 그것을 가르치기로 결심하고 그대로 한다면 우리 한국 민족의 장래가 결정이 될 것입니다.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이 결심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