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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6:1-18/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 한경직 목사
    2014-08-22 23:13:18   read : 1305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 六․一,四)

    주님께서 산상보훈(山上寶訓) 가운데서 우리에게 주신 경고의 말씀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의를 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특별히 주의할 것은 그것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하는 의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난 부활주일에 새로 학습을 받은 교우들도 여러분 계시고, 또 세례 받고 입교하신 교우들도 여러분이 계십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것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처음 주를 믿을 때,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세상에 있는 것 가운데 버릴 것은 다 버리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지마는 우리가 특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쫓기어 나갔던 옛 사람이 다시 다른 형태를 가지고 되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때는 그 옛 사람이 종교적인 옷을 입고, 다시 찾아와서 옛 행세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 대해 우리 주님의 경고를 잠깐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심령에게 친히 말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六장 一절에서 十八절까지에서 주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이 힘써야 할 것 가운데 특별히 빠지기 쉬운, 아주 간교한 시험에 대해서 경고하셨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특별히 힘써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구제하는 일입니다. 요사이 말로 하면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옳은 의무입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인 것입니다.

    셋째는 금식입니다. 지금은 보통으로 절제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절제는 자가 지신에 대한 의무인 것입니다. 기억할 것은 이 세 가지를 우리가 꼭 힘써야 하는데 여기에 따르는 시험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미리 알고 경계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1) 구제는 자선사업과 봉사활동을 말합니다.
    먼저 우리 믿는 사람의 봉사생활은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항상 강조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모든 계명을 가장 간단하게 두 가지로 주님께서 요약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서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봉사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二十五장 三十五절에 주신 교훈을 보면『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객이나 우거(寓居)하는 자처럼 너와 함께 하라.』고 권면 했습니다.

    혹은 신명기 十五장 七절과 八저에는 이런 권면이 있습니다.『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城邑)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뀌어주라.』

    예수 님께서도 그를 찾아온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시기를『만일 네가 온전케 되고자 하거든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로 부탁하신 것입니다.

    옛날 유대 사람들은 성경의 이 교훈을 그대로 실행하기를 힘썼습니다. 오늘날까지 유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옛날이나 오늘이나 유대 사람들 가운데는 거지가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생기면, 꼭 그 민족들이 피차에 상부상조해서 도와주어 같이 살도록 힘쓰는 까닭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성경의 교훈을 좀더 소중히 생각해서 믿는 사람들끼리 우선 서로 협력해서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도록 힘써야 하겠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전체가 이 원리를 배워서 민족 전체가 같이 살아 나가도록 하여, 복지국가를 만들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봉사생활에 시험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남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허영심 명예심에 움직여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을 돕기는 하되 어떻게든지 그 일을 알리기 위해서 힘쓰는 마음, 또 그런 것을 잘 알려줄 때에 구제 금을 더 잘 내고자 하는 그런 마음, 이런 유혹과 시험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전에 어떤 교회에서는 주머니로써 헌금을 받다가, 다음에는 구구나 헌금 내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둥근 그릇에 받아 보았더니 둥근 그릇으로 받을 때가 헌금이 훨씬 더 많이 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마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심리가 움직이는 것을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옛 사람에게 속하던 그 허영심, 그 교만, 그 명예심 같은 것들이 종교적 행사의 탕을 쓰고 신앙생활 가운데 들어와서 도사리고 있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것을 미리 아시고 특별한 경계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너희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은밀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네 영광을 위해서 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 교훈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구제하는 것, 남을 봉사하는 것을 남이 보는 데서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마태복음 五장에서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도리게 하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사람 보는 데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마음은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개인으로 남을 도와주는 것도 좋지마는 언제든지 교회를 통해서 남을 도와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2) 우리 믿는 사람들이 기도를 얼마나 힘써야 한다는 것은 여러 말로 권면할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보훈에『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만날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어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라고 권면 하신 것입니다.

    일찍이 제자들에게도 깨어 기도하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를 주신 것입니다. 또 항상 기도라고 낙심하지 말라고, 어떤 때는 기도의 응답이 곧 안 될지라도 계속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불법한 재판관이 미미한 과부가 어떤 호소를 할 때에 얼른 듣지 않았지마는 간절히 호소한 때에 그 간구를 들어주었거든 하물며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들이 간절히 기도할 때에 응답 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시며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권면 했습니다.
    요한 복음 十六장 二十三저에『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말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호흡과 같아서 언제나 쉬면 안 됩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으로도 기도를 힘써야 하고, 가족으로도 기도를 힘써야 하고, 구역으로도 기도를 힘써야 하고, 새벽에도 기도를 힘써야 하고, 저녁에도 기도를 힘써야 하고, 온 교회가 모두 기도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시험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인데 혹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 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는 그 때의 유대 사회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오래 서서 기도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것은 그 때에 꼭 일정한 기도 시간이 있어서 그 기도 식간이 되면 길을 가던 사람도 멈추고 잠깐 기도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잠깐 멈추고 기도는 누구나 하지만, 어떤 이는 특별히 오래 기도하는 것을 좀 보이기 위해서 길거리에 오래 서서 기도하던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조금 잘못하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사람이 듣는 것을 너무 많이 고려해서, 할 수 있으면 아름다운 구절과 미사려구(美辭麗句)를 써서 하려고 애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슨 국문학 선생이 아닙니다. 그런 심리가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을 대상으로 해서 하는 기도가 아니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사람께 하는 기도, 보이려고 기도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이방 사람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도 다 기도를 하였으나, 우상에 가서 기도하면서 한 말을 되풀이하고 곱해서 뜻 없이 중언부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일전에 어떤 잡지를 보니까 히말라야 산 아래에 네팔이라는 조그마한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에는 많은 절간들이 있습니다.

    그 절은 힌두교와 혼합된 이상한 불교로서 그 곳에 가면 절간마다 둥그런 기도하는 바퀴가 하나씩 있어서 그 바퀴에다 자기가 기도하려고 하는 것을 다 써서 그 바퀴를 여러 번 돌리면 기도도 여러 번 하는 것이 되는 것이랍니다. 그렇게 하면 기도가 응답되는 줄로 안답니다.

    뜻 없이 공연하게 하나님 앞에 나와서 방자하게 기도하지 맙시다. 물론 어떠한 중요문제를 가지고 간절히 반복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 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계속해서 세 번이나 반복해서 기도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떠나게 해주세요.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주기도가 그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내용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마는 간단하게 두 가지로 우리가 생각합니다.

    하나는 기도의 내용을 보아 하나님께 대한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달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도 이루게 해달라는 하나님께 대한 기도가 먼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에 대한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도 다 그렇게 하는지요? 조금 잘못하면 내 기도만 하다 맙니다. 하나님께 대한 기도는 맨 마지막에 조금 하든지 아주 잊어버릴 때는 없었습니까? 그것을 주의하세요. 또 하나는 이 기도가 매우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생활을 어떻게 하셨는가 하는 견지에서,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생활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는 아주 오랫동안 기도하신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 앞에서 기도할 때에는 언제든지 간단하게 기도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기도할수록 간단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만일 어떤 분이 혼자 있을 때는 간단히 기도하는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길게 기도한다고 하면 그 기도생활에는 어떤 결함이 없는가?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내 죄를 자복하고 내 죄를 토로하는 것인데, 언제든지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 앞에 내 심정을 토로하며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생활에 있어서 시험에 들면 안 됩니다. 특별히 나는 기도 많이 하는 삶이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어오게 되면, 그는 벌써 옳은 기도생활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3) 금식은 근본적으로 절제의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요엘서 二장 十二저에 보면『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고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하는 권면이 있습니다.

    금식은 구약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힘썼습니다. 모세도 금식한 적이 있습니다. 에스라도 금식한 적이 있습니다. 다니엘도 금식을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도 금식을 하셨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아도 흔히 주님께서 목 박히신 금요일에 일부 금식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령 육식을 금한다든 가 하는 것입니다.

    이미 말했지만 금식에 대한 근본 뜻은 절제입니다. 우리 육신을 근본으로 하는 모든 욕망을 제어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육신을 근본으로 하는 욕망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이 식욕입니다. 그래서 식욕을 제어하는 정신력을 강화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금식하는 풍속이 생긴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의 믿는 이들은 금주와 단연을 힘씁니다. 금주와 단연도 금식과 같은 이 절제의 원리입니다. 일부 금식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는 식욕만 절제해서는 안 됩니다.

    육신을 근본으로 하고 일어나는 모든 욕망, 모든 욕심, 정욕, 물욕, 명예욕, 권세욕, 등의 모든 욕심을 제어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기도하는 생활을 힘쓸 때에, 우리 신앙생활의 옳은 방향을 바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옛 사람들과 같이 식음을 전폐하지는 않으나, 언제든지 절제가 없이는 옳은 생활을 해 나가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귀한 절제생활에 있어서도 그 당시 사람들에게 유혹이 있었습니다.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 때의 어떤 사람들은 금식할 때에 특별히 슬픈 기색을 내고 얼굴을 흉악하게 하며 얼굴을 씻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왜냐면, 자기가 오래 금식한 것을 보이려는 때문입니다. 이런 시험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장로교인 가운데 나는 금주 단연하니까 다른 사람보다 낫다 하는 생각이 들어오면 벌써 그 금주 단연은 바로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때 그런 사람에게 머리에 기름을 바르라고, 얼굴을 씻으라고 했습니다. 물론 없는 기름을 사다 바라라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그때 사람들은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살았던 모양입니다. 평상시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금식이란 것은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네 육신을 제어하는 것이니 하나님과 너와의 관계이지 너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맙시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이 시험은 마치 뱀이 길가의 어떤 풀 속에 가만히 도사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의 발꿈치를 무는 것처럼, 오히려 신앙생활을 옳게 하고 바르게 해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이 시험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무리 봉사하는 생활을 힘쓰고 절제하는 생활을 힘쓴다고 하지마는 이런 시험에 빠지게 된다면, 즉 다란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는, 다른 사람보다 내가 낫다고 하는 시험에 빠지게 되면, 죽은 파리가 향수에 빠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향수에 죽은 파리가 빠지면 그게 어디 향수 구실을 하겠습니까? 그만 이런 시험으로 말미암아 옛 사람이 종교적 행사에 탕을 쓰고 다시 들어와서, 내가 옳다, 내가 낫다 하는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을 조심하라고 예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은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봉사는 이 은밀한 가운데서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서 겸손히 할 것입니다. 기도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내 생활 전부를 그대로 내어놓고 내 죄를 자복하고 내가 쓸 은혜와 능력을 간구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심리가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또 이 절제생활도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이 육신을 근거로 하고 일어나는 모든 욕심을 제어하고 이 음란하고 사악한 세계에서 깨끗한 생활을 하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내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더 낫지 않나 하는 시험이 들어오게 되면 벌써 옛 사람이 새 탈을 쓰고 우리 마음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은혜의 자리에서 아주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든지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을 상대로 한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보건 말건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어제 제가 우리 기도원에 가보니 기도원의 진달래꽃들이 아주 잘 피었습니다. 그 꽃들을 보면서 생각한 것은, 거저 길가에 핀 꽃이든지, 깊은 골짜기 바위틈에 홀로 핀 꽃이든지 꼭 같이 아름답고 꼭 같이 귀엽게 피었습니다.

    이 꽃들은 자기가 길가에 있든지, 깊은 골짜기에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곳에 있든지, 아무 불평이 없는가 봅니다. 어디 있든지 하나님 주신대로, 하나님 은혜 주신대로 아름답게 곱게 피어난 것입니다.

    우리 심령도 어디서든지, 어떤 위치에서든지, 사람이 보든지, 안 보든지, 사람일 알든지, 모르든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꽃과 같은 생활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참된 생활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은혜 받은 대로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내가 옳은 생활을 하고 내가 정직한 생활을 하고, 내가 부지런히 봉사를 하고 내가 기도를 열심히 하고, 내가 온전히 절제를 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과연 아름다운 꽃이라고 하는 말씀을 들을 수 있을 만큼 되어야 참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심령에서 예수님의 형상이 이루어져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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