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에 굳게 서라 2001-12-11 21:00:16 read : 1896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베드로전서 5:12-14
모든 성경이 귀하고 고맙지만, 베드로전서는 우리의 실제 생활에 매우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가정 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직장의 상사로서 아랫사람으로서 직장 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국가의 국민으로서 사회 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잘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또 예수님을 믿다가 핍박이나 환난을 받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잘 안내해 주는 말씀입니다.
아무쪼록 이 말씀이 두고두고 여러분 가정에 인생의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저는 베드로전서를 강해하다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섰는지 모릅니다. 또 이 말씀을 통해 경건 생활도 이전보다 한 단계 올라선 것 같아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말씀을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지 않습니까? 그 은혜가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오늘 이 시간에 베드로전서 말씀이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중요한 시간에 하나님께서 중요한 말씀으로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베드로전서를 쓰는 베드로는 백발이 성성한 노 사도입니다. 그러니 눈이 어둡고 손이 흔들려서 붓을 잡고 글을 쓰기가 어려웠나 봅니다. 그래서 신실한 형제 실루아노를 통해 글을 쓰고, 편지를 전해 준 것 같습니다.
실루아노가 누구입니까? 바로 실라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찬송 부를 때 감옥 문이 열린 기적이 있었는데, 그 실라가 바로 실루아노입니다.
실루아노에 대해서는 고린도후서에도 데살로니가후서에도 나오는데, 바울이나 베드로나 요한처럼 앞에 서서 사역한 모습은 적습니다. 바울 뒤에서, 베드로 뒤에서 그들을 돕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실루아노는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그 이름이 보석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교사로, 부장으로, 성가대로 앞서서 복음을 전하고 충성하는 것도 충성이지만, 앞서서 일하는 사람이 잘 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충성이고, 특별히 목회자인 제가 한국과 세계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복음을 잘 전하도록 기도해 주는 것도 하나님의 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한 사모님 묘지의 돌비에 이런 글귀가 기록되어 있답니다.
'당신은 나를 위하여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사모님이 교회에 나타나지 않고 숨어서 목사님의 일만 도왔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일은 다 하나님의 일이니 사모님이 목사님을 도운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우리가 앞서서도 일을 잘 해야 하지만, 실루아노처럼 뒤에서 협력하는 일도 잘 해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편지를 마감하면서 실루아노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은혜에 굳게 서라."
따라합시다.
"은혜에 굳게 서라."
Stand fast in the grace of God. 하나님의 은혜에 굳세게 서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일생 살아보니, 일생 목회해 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제일이었습니다.
미국의 한 연로하신 목사님이 목회를 마감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목회를 잘 하려고 이 방법도 쓰고 저 방법도 쓰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노력을 많이 해 보았지만, 지나고 보니 목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우리 양곡교회가 이렇게 크게 부흥된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교회 주위에는 주택도 아파트도 많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공장 지역에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니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빈 들에 있었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물이 가득한 옥토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니 아브라함은 잘 되었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어 가시니 롯은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자녀에게, 앞길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오래 전에 우리 구역장님들과 함께 밀양의 한 작은 강가로 수련회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강의 물이 아주 맑았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 시간이 있어서 강을 따라 산책을 했는데, 사람들이 한 켠에서 초망으로 물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물고기 잡는 것을 보면 제 마음이 당깁니다. 낚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도 낚시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어제 밤에도 물고기 잡는 꿈을 꾸었습니다. 폭이 10m 정도 되는 하천에 큰 물고기들이 잠이 들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제가 반바지를 입고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서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얼마나 많이 잡았는지 신바람이 나서 어쩔 줄 모르다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이어서 섭섭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물고기 잡는 꿈을 꾸고 나면 우리 교회에 전도 열매가 많이 맺히곤 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교회가 크게 부흥될 줄로 믿고 감사했습니다.
밀양의 작은 강에서 초망으로 물고기 잡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저도 한 번 잡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사람들의 인상이 아주 좋아 보여 용기를 내어 그 초망을 한 번 던져 보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던지니 아무리 힘껏 던져도 초망이 바로 코앞에 떨어졌습니다. 안되어 보였던지 그 사람들이 초망 던지는 법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대로 하니 네 번째에야 피라미 한 마리가 잡혔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기분이 좋고 자랑스럽던지 길가에 버려진 양재기에 그것을 담아서 구역장님들이 계신 곳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양재기에 담긴 물고기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걸었습니다. 구역장님들이 계신 곳으로 거의 다 와서 "이것, 내가 잡은 물고기예요."하고 자랑하려고 보니, 물고기가 없었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제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뛰어내렸나 봅니다. 모래 바닥이나 자갈밭에 떨어지면 죽지 않습니까? 그래서 왔던 길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그 양재기가 좁고 물이 적으니 답답했겠지만, 그래도 물고기는 물 속에 있어야 사는데, 그것을 참지 못해 뛰어내리고 만 것입니다. 자살하고 만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 있어야 자유도, 생명도, 사랑도, 미래도 있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을 벗어나면 그 날이 끝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의 상징은 물고기입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의 상징이 물고기였습니다. 물고기에게 물이 필요하듯이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벗어나는 것, 그것이 자살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은혜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본문 12절에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문장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는 베드로가 지금 실루아노에게 쓰게 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은혜에 굳게 서라는 말은 말씀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말씀 자체가 은혜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나가는 그 곳에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말씀에 기대어 살아야 합니다. 기도 응답이나 내 상황이나 하나님께 받은 축복에 기대어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축복은 언젠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욥이 받은 축복인 10남매, 그 많은 11000마리의 가축, 수많은 종들이 하루아침에 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욥이 살아갈 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욥은 그 축복에 의지하지 않고 말씀에 의지했습니다. 욥기 23장 12절에 그가 고백한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만일 욥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에 의지했다면 축복이 떠나갔을 때 그 자신도 무너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그 축복이 다 떠나가도, 심지어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말하며 떠나갈 때도 그는 상황을 의지하지 않고 말씀을 의지해서 모든 것을 회복했습니다. 말씀을 의지하는 욥에게 하나님께서 건강도 회복시켜 주시고, 아름다운 새 아내와 이전의 아들딸보다 더 좋은 아들딸 일곱도 다시 주시고, 재산도 갑절로 주셨습니다.
말씀을 의지한 욥에게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신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75세에 '내가 너로, 네 씨로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는데, 10년이 지나도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이루어 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한 부부는 결혼한 지 5년이 되어도 잉태되지 않으니 구역장님과 같이 저를 찾아와서 함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함께 드린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어 그 새댁이 잉태되었습니다. 그 부부가 얼마나 기뻐하며 감사하는지 모릅니다.
또 한 부부는 결혼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잉태되지 않았습니다. 결혼한 지 3년 후부터 제가 안수기도를 했습니다. 아마 그동안 안수기도를 일곱 번도 더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잉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몇 달 전에 잉태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10년이 지나도 하나님께 약속 받은 아들을 받지 못했습니다.
박 모 목사님은 결혼한 지 20년이 지나고 22년이 지나도 아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교인들이 목사님께 결혼 주례를 받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결혼한 지 23년 만에 사모님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더니, 그 후로 아들딸 셋을 더 낳았습니다. 그러니 목사님의 걸음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99세가 되어도 아들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의 몸은 이제 남자로서는 죽은 것과 같이 되었고, 아내 사라도 여자로서는 죽은 것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사기를 치셨네. 하나님 말씀대로 되지 않네.'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4장 18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따라합시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말씀을 믿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대로 100세에 이삭을 주시고 큰 민족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신앙 생활을 해도 내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 이럴까?'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5년을 기다려도 10년을 기다려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 상황을 보면 우리가 낙심할 수 있지만, 그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집회 때 만난 목사님이 개척교회에서 목회를 하실 때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추석이 되었지만 너무 가난하여 고기 한 근도 살 수 없었답니다. 그것이 너무 마음 아파 사모님이 울면서 아기처럼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내일이 추석인데 목사님과 아이들에게 고기 국도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 고기 좀 주세요. 고기 좀 주세요."
사모님이 간절히 기도하고 밖으로 나오니, 대문간에 청둥오리 한 마리가 앉아 있더랍니다. 마치 '날 잡아 먹어요. 날 잡아 먹어요.'하듯이 "꾹꾹꾹꾹" 하며 앉아 있더랍니다. 사모님이 큰 소리로 목사님을 불렀답니다. 마치 무슨 사고라도 난 듯이 소리쳐 부르는 소리에 놀라서 뛰어나온 목사님에게 사모님이 청둥오리를 가리키더랍니다. 가까이 가서 잡아도 그 청둥오리가 도망가지 않더랍니다. 자세히 살펴보아도 상처 난 곳도 없더랍니다. 그래서 사모님의 기도 응답이라 믿고 잡아서 뜯어 먹었답니다. 그것을 먹으면서 식구들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답니다.
상황을 보면 '좋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좋은 신학교에서 공부하여 목사가 되었는데 이런 거지 생활을 하다니…'하고 불평할 수 있는데, "구하면 주시리라"는 말씀을 붙잡으니 그런 재미를 맛보게 된 것입니다.
「말씀 위에 서서 내 뜻 버리고
감정을 버리고 말씀에 서니
불완전한 믿음 완전해지고
내가 이제부터 주만 붙드네
나의 생명 되는 내 주 예수님
영원토록 모셔 내 기쁨 넘치네」
말씀 위에 서면 모든 것이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모든 말씀에는 능력이 흐릅니다.
그리고 말씀보다 우리를 더 기쁘게 해 주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번 충주 집회 때, 호텔에서 성경을 읽다가 너무 행복해서 제가 막 울었습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이사야 43:25)
이 한 절의 말씀에서 제가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제가 태어나서 오늘까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할 일이 많습니다. 주님의 보배 피로 용서는 받았지만 '아이고,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내가 이렇게 지저분한 사람이라니…. 이렇게 거룩하지 못하다니….'하는 부담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 제게 '야! 내가 내 행복을 위해서도, 내 기쁨을 위해서도 네 허물은 다 덮고 네 죄를 다 씻고 기억도 하지 않겠다. 너의 좋은 점, 예쁜 점만 보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막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몇십 년 된 제 과거의 죄는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의 귀한 모습만 보신다는 확신이 서니 얼마나 좋은지….
「성령의 감화 받아서 하나님 말씀 배우니
그 말씀 한 절 한 절이 내 맘에 교훈 되도다」 할렐루야!
따라합시다.
"말씀이 은혜의 샘이다."
언제 어디서나 말씀에 서 있으면 은혜를 마시며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해리 모어는 미국인의 존경을 받는 위대한 정치가 중의 한 분입니다. 뉴욕 주지사를 네 번이나 하신 분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일찍 떠나셔서 그는 홀어머니와 둘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하루는 건더기도 없는 희멀건 국을 국자로 젓고 있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가 말했습니다.
"엄마,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사람들이 알아주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우리는 너무 가난하니 희망이 없겠지?"
그의 말에 어머니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습니다.
"모어야,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내가 너에게 늘 가르친 말이 있지 않느냐? 하나님께서 항상 너와 함께 계시며 너를 돕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었느냐? 우리가 가난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뭐가 걱정이냐? 그리고 이 세계에서 기회가 제일 많은 나라가 미국인데 너는 미국 국민이다. 그런데 뭐가 부러우냐? 네 선택에 따라 너는 위대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네 선택에 따라 너는 하찮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 말에 해리 모어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 내가 비록 가난하지만 하나님께서 내 편에 계신다.'
어머니가 준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꿋꿋이 살아 마침내 미국에서 존경을 받는 별 같은 인물이 된 것입니다.
오늘 내가 어떤 상황에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면 은혜로 승리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본문 13절, 14절 앞 부분을 보시겠습니다.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이 말씀은 교회 생활에 굳게 서라는 뜻입니다.
따라합시다.
"교회 생활에 굳게 서라."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양곡교회만 있으면 약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한국의 수많은 교회가 연합해서 하나가 되어 있으니 교회가 얼마나 강합니까? 또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있을 때는 얼마나 약합니까? 하지만 교인들이 모이면 얼마나 강합니까?
촛불 하나는 약해도 만 개 이만 개가 모이면 얼마나 아름답고 밝은지 모릅니다. 숯불 하나로는 계란 하나도 삶지 못합니다. 그러나 숯불 백 개, 오백 개가 모이면 쇠도 녹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로 강하게 살려면 교회 생활을 강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즈음에는 운동회가 시시하답니다. 그러나 저의 어린 시절 운동회는 정말 마을의 큰 축제였습니다. 운동회를 하는 아이들의 부모만 운동회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있든지 없든지 그 지역의 사람은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아이들까지 다 모였습니다. 그때 행진하면서 가장 힘있게 불렀던 노래가 무엇이었습니까?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 된 민족」
그 노래가 나오면 아이들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 할아버지들도 다 같이 불렀습니다. 운동장에 모인 사람들이 다 함께 노래를 부르면 천지가 진동하는 것 같았습니다. 만일 그 운동장에서 지용수 혼자 노래를 불렀다면 제대로 소리나 들렸겠습니까? 수많은 사람이 함께 부르니 천지가 진동하는 것 같았던 것입니다.
교인 한 사람은 약해도 교회는 위대합니다. 위대한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같이 하면 뜨겁게 되는 것입니다. 꺼져가던 숯불도 숯불이 모여 있는 곳에 갖다 놓으면 확 달아오르게 되듯이, 교회 생활에 굳게 서면 넘치는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레드우드라는 나이가 3천 살이나 되는 참나무가 있습니다. 높이가 100m가 넘고 둘레가 9m가 넘습니다. 3천 년간이나 어떻게 버텨 왔는지 학자들이 조사해 보았더니, 뿌리가 깊이 내려져 있고, 또 그 뿌리가 옆에 있는 나무들과 꽉 엉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비바람에도 뿌리가 흔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도서 4장 9절에서 10절에 보면, 두 사람이면 복이 있고 한 사람이면 화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입니까? 혼자 가다 넘어지면 일으켜 줄 사람이 없어서 화를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잘 아는 한 분은 혼자 등산 갔다가 뇌진탕으로 쓰러졌는데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만일 두 사람이 갔으면 응급 조치를 해서 살 수 있었을 텐데 혼자 가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등산은 혼자 가지 말자."
특별히 부인들은 혼자 가면 안 됩니다.
저는 아내랑 같이 등산갈 때는 꼭 무기를 가지고 갑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이상한 사람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조심합니다. 만일 아내가 저 몰래 혼자 산에 갔다오면 제가 얼마나 화를 내는지 모릅니다. 혼자 가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두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이 넘어져도 붙잡아 줄 수 있습니다.
신앙 생활도 혼자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적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목사인 저도 늘 신앙이 고르지 않습니다. 어제 새벽 기도회를 인도할 때는 얼마나 좋던지 '하! 여기서 이렇게 찬송 드리다 죽어도 좋겠다.'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이고, 힘들다.'하는 때도 있습니다.
한 개인의 신앙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영적인 분위기가 항상 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와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오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리스톨의 두 청년이 밤마다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느 날처럼 술을 마시러 가는 그 청년들의 눈에 하루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교회 게시판의 글이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한 청년이 말했습니다.
"나는 술집에 가지 않겠네. 교회에 갈 거야."
"뭐?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같이 술집에 가세."
"아니야, 이제 나는 술집에 가지 않을 거야. 교회로 갈 거야."
교회에 간 청년은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가를,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인격자가 되고 마침내 미국의 22대 대통령, 24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다른 한 청년은 사형수가 되어 감방에서 자기 친구가 대통령이 된 기사를 보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 대통령의 이름이 바로 클리블랜드입니다.
교회에서 사는 사람은 승리하게 되고 어디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아무쪼록 일생 교회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사야 66장 10절에서 12절을 보면,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아기가 엄마 젖을 넉넉히 먹은 것처럼 만족하겠고,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희 아이들이 어릴 때, 성이, 경이, 성찬이가 아기 때 엄마 젖을 먹다가 잠이 오면 젖을 탁 빼버리고 잠을 잤습니다. 입가에 젖을 흘린 채 엄마의 가슴에 안겨 자는 그 평화로운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없습니다. 젖을 실컷 먹고 엄마 품에서 잠든 아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 최고의 행복자인 것입니다. 더 이상의 행복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엄마 젖을 실컷 먹고 엄마의 가슴에서 자는 아기처럼 하나님의 품에서 만족할 것이다."
이런 축복을 입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은혜의 샘터입니다.
본문 마지막에 베드로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합시다.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서자."
예수님께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하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사람은 은혜가 충만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서는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어제 설교 준비를 일찍 마쳤습니다. 토요일 밤 늦게까지도 설교 준비를 마치지 못해서 주일 아침 6시나 6시 반까지도 쩔쩔 맬 때가 많은데, 1부 예배가 시작되는 7시까지도 마치지 못해서 5분이나 10분 늦을 때도 더러 있는데, 어제는 9시 반에 마쳤습니다. 기분이 좋아 아들과 함께 운동장에 가서 1시간 동안 운동을 했습니다. 그때 제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들아, 예쁜 여자랑 사귀고 결혼하는 것에 굉장히 기대가 크겠지만, 아예 그런 기대는 하지도 말아라. 결혼에 기대하지 말아라. 결혼해서 살다 보면 복잡한 일도 많고 화날 일도 많으니 그런 줄 알고 살아라. 아내가 잘 해 주면 고마워하고, 잘못해도 절대 잔소리하지 말아라. 잔소리하면 부부 싸움만 하게 된다. 밥을 해 주면 고맙게 먹고, 안 해주면 사서 먹고, 라면을 끓여 주어서 영양이 부족할 것 같으면 네가 계란을 풀어서 먹고, 절대 아내에게는 불평하지 말아라. 그리고 부족한 것은 주님께 받으며 살아라. 주님께 기대하면 은혜가 오지만, 아내에게 기대하면 속상한 일이 많다."
이렇게 아들에게 예방 주사를 주었습니다.
아무리 귀한 사람도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아무리 귀한 직장도, 아무리 귀한 자리도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장관이, 사장이 수갑을 차고 감옥에 가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어제까지 깃발 날리며 살던 사람이 오늘 어렵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에는 만족함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히 만족함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분은 예수님뿐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의 반석은 예수님이십니다.
미국 한 해변에 큰 바위가 있는 언덕이 있었는데, 그 아래에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 이사온 한 사람이 바위를 보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혹 저 바위가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주 당국에 '위험한 바위가 있으니 치워달라.'고 청원을 했습니다. 주 당국에서 그 청원을 받아들여 여러 날 동안 헬리콥터와 불도저를 동원하여 그 바위를 언덕 너머 고속도로로 굴러 떨어뜨렸습니다.
이 광경을 며칠이고 지켜보던 한 청년이 말했습니다.
"그 바위를 내게 파세요. 100불을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그것을 치워야 하는 주 당국에서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그 바위를 사들인 청년은 거기에 미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 존 웨인의 얼굴을 조각했습니다. 존 웨인이 조각된 그 바위는 곧 100만 불에 팔렸습니다. 100만 불이면 얼마나 됩니까? 100불의 만 배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큰 바위를 제거했던 마을은 산사태가 일어나 집들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바위가 막아 주었던 흙들이 폭우 때 쏟아져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보면,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예수만 믿지 않으면 내 마음대로 한 번 살아볼 건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고, 내가 교인만 아니라면 한 번 멋지게 살아볼 건데….'하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반석이신 예수님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산사태를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석이신 예수님을 잘 붙잡은 사람은 만 배로 잘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반석이신 예수님을 붙잡으면 영원히 잘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합시다.
"말씀에 굳게 서자."
"교회에 굳게 서자."
"주님 안에 굳게 서자."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은혜로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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