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지 않겠느냐? 2001-12-25 17:28:45 read : 1837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마태복음 18장 12-14절)
<목회기도>
사랑의 하나님!
생명 주셔서 오늘을 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복된 주일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모인 우리들
허물과 죄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모든 부끄러운 모습들을 용서하시고 이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여기 삶이 평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저들이 넘어질까 조심하며 겸손하게 살게 하시고,
삶이 힘든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소망 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육신의 병으로, 마음의 상처로, 영적인 괴로움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치유함과 간증거리가 있는
삶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나라는 전쟁을 경험하였고
지금도 전쟁이 끝나지 않아 휴전선으로 나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의 나라의 전쟁을 보면서도
두렵고 떨림이 없음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이 나라에 평안을 유지시켜 주시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위정자들 모두가
실망만 안겨 주고 답답함을 느끼게 합니다.
저들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백성들을 두려워하며,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이 귀한 자리에 앉지 못한 군대에 나가 있는 이들,
객지에 나가 있는 이들, 외국에 나가 있는 이들에게도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따라서 하십니다. "자리를 지키자".
아버지의 자리, 어머니의 자리, 남편, 아내, 학생의 자리… 등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주일에는 예배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오늘 기둥교회 강단 꽃꽂이 장식은 코스모스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금년 들어 코스모스를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의식없이 보고 그냥 지나쳤을 지도 모르지만 코스모스라는 것을 인식하고 본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요즘이 코스모스철인지는 모르겠지만 '들로 산으로 단풍 구경 가느라고 예배에 안 나온 사람'도 자리를 지키지 못한 사람입니다. 유다서 6절에 보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자는 천사라도 심판"하셨고, 또 심판을 받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삶의 자리, 예배의 자리, 영적인 자리를 잘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난 주일에 "복음(福音)"에 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한 마리 양을 잃어 버렸다가 다시 찾는 [잃은 양의 비유]를 가지고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이 말씀은 "복음(福音) 중의 복음(福音)" 이라고 불려지는 말씀입니다. "복음(福音) 중의 복음(福音)"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보여주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비유로 이르시되
본문 말씀 마태복음 18장 12~14절과 누가복음 15장 3~7절의 말씀에 나오는 "잃은 양의 비유"는 100마리의 양을 치는 목자가 양 1 마리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을 때 99마리를 두고 잃은 한 마리를 찾으러 나갔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았을 때 그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잃은 양의 비유"를 들어 말씀 하셨는지 알려면 누가복음 15장 1-3절을 보면 됩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비유로 이르시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미움 받는 사람들의 대표는 세금을 걷는 '세리'였습니다. 그들은 바르게 세금을 걷지 않고 더 많은 세금을 걷어 자기의 주머니에 챙기는 부정한 방법을 썼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사는 죄인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창녀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의 접근을 막지도, 피하지도 않으시고 오히려 그 사람들을 영접하시고, 음식을 함께 나누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무엇보다 귀중한 것은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 곁에 올 수 있도록 예수님이 열어 놓으셨고 영접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행동과 태도는 당시 대표적인 종교지도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보기에 도무지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구약을 정경으로 풍유법을 사용하여 해석했다. 형식과 관습을 중요시하였고(마23:23, 눅18:11), 철저하게 금식을 지켰다(눅18:12). 율법을 잘 알고 있었던(행26:5, 빌3:5)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깊이 연구했고, 레위기의 청결의식(레11장)도 철저하게 지켰다. 하지만 전통이나 유전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고(마15:2, 막7:3, 5~8) 그것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하게 생각하기도 하였다. 지나치게 외적인 면을 중요시하고 안식일 준수에 얽매이다 보니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거나(요9:13, 16) 이삭을 잘라먹는 것(마12:2, 눅6:1~11)까지 죄로 간주하였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은 6천여명 이었다(당시 예루살렘의 인구는 2만 5천~ 3만 명으로 추정된다). 바리새인들은 주로 율법을 연구하는 서기관, 성전 제사에서 소외당하고 있던 제사장들, 율법대로 살기를 원하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로 구성 되어 있었다. 이들은 지나치게 외적인 것을 강조하였고(눅7:36~50). 예수님과는 여러 면에서 대립했다(마3:7, 12:12, 막 7:5~16). 또한 그들은 세리나 죄인들과는 교제하려고 하지 않았다(막2:14~17). 바리새인들은 천사와 영의 존재, 부활 등을 믿었으며 메시야가 오실 것을 믿었으나 헬라 문화에 대해서는 거부했다.
서기관들은 율법을 해석하고 보존하는 일에 주력하였고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승을 생활에 적용하도록 세칙을 만들어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장로의 전승, 유전 준수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율법의 근본 정신보다는 형식주의와 외식에 빠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마15:2~9). 이들은 공회에서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권력층에 속하였고(마16:21, 26:3, 57) 유대 사회에서 존경 받는 자리에 있었다(눅20:46).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외식과 형식주의를 책망하셨다(마23:2~36). 그들은 예수님께 적대적인 세력이었다(마21:15, 눅22:2).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율법 지식을 동원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죄를 저질렀(눅22:66, 23:10).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핍박하는 무리들 가운데 한 세력이었으며(행4:5),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도 참여하였다(행6:12). 이들 중 어떤 이들은 부활 문제에 대하여 바울의 편을 든 사람도 있었고(행23:9), 예수님을 믿은 사람도 있었다(마8:19).
잃은 양 한 마리
예수님은 예수님의 하시는 일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미움 받는 세리, 사람 취급 받지 못하는 죄인들, 그런 버림 받은 사람, 잃어 버린 사람까지도 구원해야 할 사람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잃은 양]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동물들은 대부분 "자기 방어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컹크는 냄새를 풍겨 따라오는 적을 물리치고, 고슴도치는 몸을 웅크리고 자기 몸에 있는 가시를 내밀어 방어합니다. 웬만한 동물들은 방어수단 뿐 아니라 공격무기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은 공격 무기도 없고 방어수단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가라면 가고, 먹으라면 먹고, 죽이면 도망가지도 못하고 그냥 죽을 수밖에 없는 아주 바보 같은 동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은 광야에, 사막에 혼자 버려두면 생존하기가 어렵습니다. 쉽게 이리의 밥이 됩니다. 양은 목자와 함께 있을 때, 목자의 뒤를 따를 때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양이, 길을 잃었다면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목자를 잃었다면 당연히 죽음입니다.
• 양이 길을 잃어 버리는 것은 방황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잃어 버린 것과 같다고 합니다.
미국의 백화점 메이시(Macy)의 통계에 의하면 쇼핑 중 아이를 잃어 버리는 것은 엄마의 관심 부족이 아니라 아이의 방황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백화점이나 놀이공원에 갔을 때 한번씩은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5세된 빨간색 셔츠를 입고 청치마를 입은 여자 아이를 찾습니다…. 이렇게 생긴 남자아이를 잃어 버리신 분은 방송실로 연락바랍니다."라는 잃어 버린 아이를 찾는 방송을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방송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혹 "아유, 어쩌다가 아이를 잃어? 칠칠치 못하게…"라는 생각을 하셨습니까? 그런데 아이를 잃어 버려 보지 못했던 분들은 그 심정을 모릅니다. 아이를 잃어 버리면 완전히 바보가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경우의 대부분이 엄마의 방심으로 된 것일 수도 있지만, 아이가 무엇인가를 구경하다가 엄마 곁을 떠난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얼마 동안의 방황을 하다가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당황하고 울기 시작하는 것이 아이들입니다.
양이 길을 잃어 버리는 것은 목자를 따라 가고, 다른 양무리들을 따라 가야 하는데 엉뚱한 곳에 관심을 가지고 가다가 길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목자를 잃은 양은 목자의 소리보다 자신의 판단을 더 따르는 양입니다. 한마디로 잘난척해서 그렇습니다. 교인들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지식과 경험, 자기 판단을 가지고 다 아는 양, 다 아는 것처럼 하다가 길 잃어 버리기가 쉬운 사람입니다.
• 양이 길을 잃어 버리는 이유의 대부분은 먹는 것 때문입니다.
맛있는 풀에 정신이 팔려 목자가 더 맛있는 풀, 더 좋은 풀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는데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양은 개와 달라서 일단 길을 잃으면 혼자서는 집에 못 찾아갑니다. 양은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먹기 위하여 길을 잃고 목자를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느니라"(약1:15)는 말씀처럼 인간도 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의 대부분이 욕심 때문입니다. 재물의 유혹, 권력의 유혹, 의·식·주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하면서 자기를 인도하는 목자의 안내를 따르는 것보다 다른 목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양을 예로 들면 자기를 인도하는 목자를 따라가야 하는데 다른 목자가 이끄는 양무리를 따라간다는 말입니다.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다니고, 먹이는 대로 먹기도 바쁜데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는 양은 결국 길을 잃어 버리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하는 사람도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는 사람은 길을 잃어 버리기 쉬운 사람입니다.
바꿀 수 없는 하나
그렇다면 양을 잃은 목자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잃은 양에 대한 목자의 마음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목자는 저녁 때 양떼를 데리고 집에 돌아와 한 마리씩 점검합니다. 상처 입은 양, 없어진 양이 없는지 알아봅니다. 어느날 목자는 백 마리 중 한 마리가 없음을 발견합니다. 이 목자는 아흔 아홉 마리나 되는 많은 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아 나섰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아흔 아홉을 가졌는데 한 마리 잃어 버린 것이 무슨 문제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람을 99대 1로 평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한 마리 한 마리 귀중히 여기는 목자처럼, 모든 한 영혼 한 영혼, 한 사람 한 사람을 귀중히 여기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한국에 사는 교인들], [부천에 사는 교인들], [기둥교회 출석하는 교인들…] 이렇게 묶어서 취급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중히 여기시고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잃어 버린 양을 찾는 목자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더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고향에 사시는 제 고모님은 자녀를 9명 두었습니다. 아이를 9명 둔 엄마가 저녁이 되어 보니 아이 1 명이 없다고 했을 때 "뭐, 아직 8명이나 남았는데…"하면서 편하게 있을 수 있습니까? 이웃 사람이 "남은 애가 8명이나 있는데, 하나 없으면 어때? 고아원에 가면 애 많은데 하나 데려와."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9명이 아니라 90명의 자녀를 두었어도 한 명이 없으면 찾으러 나가는 것이 부모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목자가 잃은 양을 찾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잃은 영혼을 찾는 간절한 마음이 그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그렇게 천하보다 귀한 존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기둥교회 성도들 가운데도 "뭐 나 하나 빠지면 어때?"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가 모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천하보다 귀한 존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
- 빌립보서 3장 20절에 보면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천국 시민권을 가졌습니다.
-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영생을 보장 받았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함부로 "나 같은 거, 이까짓 거"라고 생각하거나 말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천하보다 귀한 존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죄의 길에서 돌아서서
우리가 살다가 보면 실패하고 실수도 할 수 있습니다. 실수나 실패는 누구나 경험하는 삶의 한 부분입니다. 또 잘못해서 잠시 동안 죄의 길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받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누가 죄인입니까? 길을 잃어 버린 양이 죄인입니다. 길을 잃은 양이 다른 양을 괴롭히거나 못된 짓을 한 일이 없습니다. 이 양은 단지 목자와 헤어진 것, 길을 잃어 버린 것 그것이 죄인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목자와 헤어지는 것, 하나님을 떠나는 것,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 그것이 죄입니다. 그 죄의 길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길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回改)"입니다. "회개"는 눈물 어린 기도로 "하나님 잘못했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하고, 회개의 기도를 한 사람은 용서받은 사람으로,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의 날개 아래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목장(牧場) 중심의 삶,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을 향해 [잃은 양을 찾는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참된 목적은 "잃어 버린 양을 구원하기 위해서"오신 것임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한 생명 한 생명 모든 사람을 귀중히 여기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목적을 상실한 채, 형식과 전통에 얽매여 그런 것에 집착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예수님이 [잃은 양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도 현대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많습니다. 형식에 얽매여, 제도에, 전통에, 습관에… 얽매여 정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교회, 정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목사와 장로, 권사, 집사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법이, 전통이, 제도가… 운운하면서 생명을 구원해야 하는 일은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교회와 교인들이 많습니다.
- 교구를 맡아 심방하고 교육하는 목사님, 전도사님들, 지역장들, 심방자들… 왜 심방합니까? 담임목사가 하라고 해서 합니까? 담임목사가 부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이 기록한 일지를 살피고 무슨 일을 했는지 점검한다고 해서… 그 평가 때문에 교육하고 심방합니까? 그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 교회에서 중요한 일을 협의하여 결정하고, 병자를 심방하고, 어른 자리에 계신 장로님들은 왜 회의를 하며, 왜 심방합니까?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교회의 장로라서, 담임목사가 하라고 해서 합니까? 그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 속회 강사, 주일 학교 교사들은 왜 가르칩니까? 찬양대원들은 주일에 왜 까운을 입고 찬양대를 합니까? 무엇 때문에 하는 것입니까?
- 여선교회에서 노인들에게 식사를 접대하고 복지관에서 봉사를 합니다. 왜 하는 것입니까? 어제도 부천 시청 광장에서 우리 기둥교회가 운영하는 [소사노인종합복지회관]을 중심으로 노인들을 모셔 놓고 엄청난 "잔치"를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왜 합니까?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 기둥교회가 어린이집, 야간학교, 2개의 복지관을 운영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왜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께 찬양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교회로서 빛되고 소금된 삶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가르치고 배운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잃어 버린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1년 12달 여선교회가 수고하고, 복지관의 직원들이 애쓰고, 교회 온 성도들이 최선을 다해서 단 한 사람의 영혼을 찾았다 할지라도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목사, 전도사, 장로, 지역장, 속회강사, 심방자, 교회학교교사, 선교회장 모두 한 영혼, 한 영혼, 한 사람, 한 사람을 귀중히 여기고 남아 있는 아흔 아홉 뿐 아니라 길을 잃고 방황하는 한 영혼을 귀중히 여기고 찾아 헤매는 목자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우리 모두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 목자와 함께 있는 양은 두려움에 떨지 않습니다.
- 목자와 함께 있는 양은 방황하지 않습니다.
- 목자와 함께 있는 양은 갈 길을 명확히 압니다.
- 목자와 함께 있는 양은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갑니다.
그러나 목자를 떠난 양은 두려워합니다. 방황합니다. 갈 길을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면, 하나님이 귀히 여겨 주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인정 받지 못하는 것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귀중하게 여기십니다.
저는 어제 병원에 심방을 가서 입원해 있는 권사님 손을 붙들고 "권사님, 이렇게 여기 누워 있으면 주일날 목사가 강단에 서서 '권사 하나 빠졌구나'라는 생각 하는 게 아니라 입교인 15명에 해당되는 권사 한 분이 빠졌구나'라는 생각으로 설교하니까 빨리 나으셔서 예배의 자리에 오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기쁨으로 "아멘"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기둥교회의 예배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여러분은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도 이 자리에 오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버리시지 않으시고, 잃어 버리고 싶지 않으시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계시고, 찾아다니는 분임을 믿으면서… 길을 잃어 버리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투신 대학생, 80m아래 소나무걸려 살아
(조선일보 2001.10.04)
○…부산 영도구 동삼동 태종대 전망대의 이른바 ‘자살바위’에서 120m 높이의 절벽에서 뛰어내린 20대 대학생이 80m 아래 소나무에 걸려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4일 오후 10시20분쯤 태종대 전망대 1층 난간에서 충북 모대학 2학년 이모(23·경북 문경시)씨가 가족의 지나친 기대와 공부에 대한 중압감으로 ‘자살바위’에서 절벽 아래로 투신했다. 이씨는 80m쯤 추락하다 절벽에 난 소나무에 걸려 골반과 다리 등에 중상을 입은 채 쓰러졌다.
관광객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부산 항만소방서 119구조대는 어둠 속에서 1시간 넘게 수색을 벌이다 오후 11시45분쯤 “살려달라”는 이씨의 비명을 듣고 위치를 확인, 1시간 20분에 걸친 사투 끝에 5일 오전 1시10분쯤 나무에 걸려 있던 이씨를 구조했다.
이렇게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사는 것이 낫습니다. 이 학생의 부모가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죽을려면 잘 죽지. 왜 살아"라고 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천하 보다 귀한 생명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 오늘 생명을 주신 것은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잃어 버린 양 한 마리를 애타게 찾는 목자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한 생명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성경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목사의 음성에도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 말씀 대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 하셔서 여러분이 어느 곳에 가든지 "나는 하나님이 천하보다 귀하게 생각하는 존재다"라는 것을 생각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도 방황하는 사람들, 천국에 소망을 두지 못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양을 한 마리 잃어도 목자가 찾거든,
하나님은 우리를 귀중히 여기시고 또한 찾으시는 분이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길 잃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아직도 길을 잃고 방황하며 헤매는 양떼들을 향해
주의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성도들의 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1년 10월 14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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