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이 없는 복 2001-12-25 16:59:17 read : 1859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장 16절)
<목회기도>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복된 주일, 거룩한 자리에 찾아 나와
예배 드리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은혜로운 찬양을 부를 수 있고 하나님의 크신 뜻을 구하며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를 할 수 있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 복된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도 있습니다.
군대에 나가 있는 믿음의 아들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외국에 나가 있는 사람, 객지에 나가 있는 사람
여러가지 형편과 사정이 있어
이 귀한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난 한 주간 동안에도 형편과 사정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세상에 살다가 여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짐을 가볍게 허락받는 복된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주장하여 주셔서
은혜와 평강이 충만한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제가 머리를 아주 짧게 깎았더니 저를 불쌍히 여기는 여자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머리를 짧게 하고 나니 좀더 젊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는 저보고 '아들과 형제 같다'는 말을 하기보다는 그런 말을 기대하는 저를 불쌍히 여깁니다. 여러분, 오늘 주일입니다. 옆의 분들과 이왕이면 기분 좋은 말, 듣기 좋은 말로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부활절 전 예수님의 삶과 우리를 위한 죽음의 고난을 생각하며 경건하게 지내는 "사순절"기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전하신 최고의 복음 [멸망이 없는 복(福)]을 전하려 합니다.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행해지는 일들을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기독교적인 것이 종교적인 것과 혼동되어 사용되기도 합니다. 현재 기독교적이 아닌 것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기독교적인 것처럼 '기독교화(化)'되어 있고, 마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 것처럼 행해지고 있는 일들이 교회 안에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어떤 것을 원하시는 지 깊이 생각해 보고 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기독교」란 곧 '예수 그리스도'이며,
- 「기독교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 들이고(요3:16), 그 예수를 입으로 시인하는사람(롬10:10), 그가 하늘의 시민권자이며 구원받은 기독교인입니다(빌3:20).
성경 중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in Christ)"라는 말이 많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은 믿음 안에서 사는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믿음 안에서 살지 못하는 사람은 오늘 예배를 통해서 믿음 안에서 살기를 결단하고 이후부터 믿음 안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 안에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Christian)"이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사는 사람, 믿음 속에 사는 사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교회는 다니는데 믿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은 '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그리스도인'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기를 원하시고,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순간 순간 우리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에게 우리의 문을 열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기를 원하십니다. 마음 문을 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에게 붙어 있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1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모셔 들이면…
- 요한복음 3:16 : 우리는 영생을 보장 받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빌립보서 3:20 :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 요한복음 1:12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달라집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 요한일서 4:15 : 예수를 시인하면, 예수를 구주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그 속에 하나님이 들어가 계시고 그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그리스도인(Christian)'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마음 속에 모셔들인 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11장 26절에 보면 예수를 믿는 사람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음으로 갖는 천국의 소망과 하늘에서 오는 평안을 소유할 뿐 아니라 세상의 소망과 세상이 주는 평안을 포기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을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은 하늘이 주는 소망 때문에 세상이 주는 소망을 포기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신자(불신자, non-christian)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지 못한 사람, 세상이 주는 평안과 만족 때문에 하늘이 주는 소망과 만족을 받아 들이지 않고 거절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멸망치 않고…
성경(창세기-요한계시록까지)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인 우리를 향한 모든 섭리, 계획과 목적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 오셨고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이고, 전하는 것이고, 예수님 때문에 그밖의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 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 갈 1:9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런데 요즈음 성경을 현대적인 문화와 현대인들에게 적합한 것이 되도록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절대성, 성경에 담긴 초자연적인 계시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 그리고 누구든지 그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는 것, 그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셨고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등… 이 모든 것들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예배는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모여서 즐기는 것이 중심인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점점 '범신론(Pantheism)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신은 여럿이다, 그 중에 '예수'라는 신을 믿는 것이 기독교이다"라고 하며 '꼭 예수만을 믿어야 하느냐'고 말합니다. 또한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부 목회자와 신학자들 가운데도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 역사를 통해 볼 때 수많은 사람들이 왜 복음을 전하다 짐승의 밥이 되고, 목이 베어 죽음을 당해야만 했습니까? 왜냐하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행4:12), 구원 받을 다른 이름이 없기 때문에 구원 받을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 죽어간 것입니다.
- 이그나티우스의 순교
2세기 초기의 안디옥 교회 감독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로마에 압송되어 순교를 당했습니다.
- 폴리갑의 순교
서머나 교회의 감독인 폴리갑(Polycarp)도 젊었을 때는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의 순교에 대한 이야기는(155년에 순교한 것으로 추정- 일부는 166 혹은 177년일 가능성도 인정함) [폴리갑의 순교에 대한 서머나인들의 편지]라는 책에 기록되어 남아 있습니다. "내가 86년동안 그분의 종으로 살았지만 그분은 결코 나를 해치지,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는가?"라며 설득을 거절하고 불에 타 죽어갔습니다.
기독교는 유일신(唯一神)을 믿는 종교입니다. 이 고집(편협성) 때문에 기독교는 핍박을 받는 것이며, 이 변할 수 없는 진리 때문에 "이단"과 싸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고집', '편협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분명한 진리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복음을 위해 죽어가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신앙생활 하면서 거룩한 주일에 예배 드리기 위해 참석한 여러분도 예수를 믿기 때문에 예배의 자리에 참석하신 줄 믿습니다. 아직도 그 예수를 마음 속에 구주로 영접하지 못한 사람은 지금 이 시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특출나고 신기해도,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복음"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無神論)자나, 하나님이 계신 지 안계신 지, 신(神)이라는 것이 정말 있는 지 없는 지에 대해 잘 모른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자를 배격하는 것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유신론(有神論)자들이며, 그분이 유일하신 분 하나님임을 믿기 때문에 고백하는 것입니다.
길과 진리,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의 길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한 진리가 되시며 참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다 보면 죄 가운데서 살며 죄를 짓고 삽니다. 알게 모르게 짓는 죄가 있고, 어두움 속에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빛되신 주님 앞에 다가오면 됩니다. 어둠이 무서워서 벌벌 떨고 어둠을 내쫓으려고 몸부림 칠 필요가 없습니다. 빛을 가까이 하면 어둠은 자동으로 없어집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 다가오는 사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사람…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 나와 죄를 고백하기만 하면 용서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께 모든 것을 의뢰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인 곧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은(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0)
성경은 우리에게 놀라운 복을 공짜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누구든지 하나님이 주신 그 독생자를 믿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요즘 TV 광고 가운데 예쁜 엄마하고 그 엄마보다 조금 덜 예쁜 딸이 나오는 광고가 있습니다. 엄마가 딸에게 "더 멋있어지고 싶다, 더 예뻐지고 싶다"고 하니까 그 딸이 "뭘 더 바라느냐"고 하는 광고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멸망치 않게 하신다고 했는데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어떤 점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 우리가 꿈꾸는 것, 우리가 달라고 하는 것은 사실 우리가 지금 받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욕심일 수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만 아는 생각, 당장 편한 것만 추구하고, 쉬운 것만 찾는 것을 고쳐야 합니다. 저는 경제나 정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한 가지 답답한 점이 있습니다. 외국에서 한국 자동차가 많이 팔린다는 내용이 뉴스에 보도되면 우리는 "우리 국산 차가 수출이 많이 되어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고 하면 "나쁜 놈, 사치한다, 외화를 낭비한다"고 합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감주를 먹고 좋아하면 "야, 외국 사람도 감주를 먹고 좋아하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커피를 먹으면서 '참 좋다'고 하면 "자기가 언제부터 커피를 마셨느냐"고 합니다.
한국 물건이 외국에 잘 팔리면 수출이 잘 되서 '세계적인 한국'이라고 말하지만, 한국 사람이 외국 물건을 사용하면 '나라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박세리가 골프를 잘 쳐서 우승하면 영웅이라고 하고, 어떻게 하든지 박세리가 이기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웃집 아저씨가 골프 치러 다닌다고 하면 '좀 잘 산다고 사치하네'라고 말합니다. 더욱이 목사가 골프 치러 다닌다고 하면 '목사님이 사탄의 유혹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제가 수술을 받고 난 후 의사가 운동을 하라고 권했습니다. 하나는 수영인데, 그것도 누워서 하는 '배영'만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부천에 갈 수영장이 있어야지요. 한번 수영장에 갔더니 우리 교회 집사님이 "아이구머니나"하면서 놀라서 도망가고, 청년도 만나고… 갈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잔디밭을 걷는 것이 좋은데 골프치러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따라 가서 잔디를 밟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둥교회 교인 가운데 한 분이 "목사님,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마세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왜 박세리가 골프를 치면 영웅이고, 이웃집 아저씨가 치는 것은 사치이며, 목사가 골프를 치면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합니까? 여러분, 이제 생각을 고쳐야 합니다. 우리나라 언론기관이나 정치인들도 모두 세계적으로 넓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좁은 생각으로 자기를 위해, 자기 입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말합니다. 그런 우물안의 개구리와 같은 생각에서 이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 사람으로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서 살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좁은 이 세상이 우리의 무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믿고 담대하게 이 세상을 사시기 바랍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너무 편하고 좋은 것, 쉬운 것, 즐겁고 맛있는 것만을 찾다가는 스스로 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저술가이며 강연가인 '지그 지글러'(Zig Ziglar)라는 사람이 쓴 [정상에 오르는 길에서 배운 것- What I learned on the way to the top.]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에스키모인들이 늑대를 사냥하는 방법에 대해 나옵니다. 에스키모인들은 늑대를 잡기 위해 아주 날카로운 칼에 피를 발라서 얼린다고 합니다. 그 칼날이 숨겨진 피얼음 덩어리를 늑대들이 지나는 길에 세워 놓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피냄새를 맡은 늑대가 그 얼은 피덩이를 핥다가 자기의 혀까지 무감각해져 나중에는 자기 혀가 잘려서 나는 자기의 피를 빨며 지쳐가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죽은 늑대를 에스키모인들이 끌고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쉽게, 맛있고, 배부른 것을 먹기 위해 욕심을 내다가 자기 피를 빨아 먹는 늑대와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예수 믿으면 영생을 얻고,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 주일을 지켜야 하고, 성경도 읽어야 하고, 봉사하라고 하지, 십일조 생활을 하라고 하는 등 여러 가지 해야 할 어려움이 많습니다. 세상에 가면 재미있고 쉬운 일이 많은데 예수 믿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세상에서의 재미와 맛있는 것, 편한 것, 좋은 것만 찾다가 늑대와 같이 스스로 파멸에 빠지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16장 16-31절에 바울과 실라는 옷이 찢기고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발에는 쇠고랑이 채워져 있었고 옥문은 잠겨 있었으며 간수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안에서 자유로웠습니다.
몸은 감옥에 있었으나 바울과 실라의 마음과 영혼은 감옥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안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육체는 묶여 있고, 갇혀 있고, 사람들의 감시를 받고 있었으나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놀라운 기쁨과 감사로 찬양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들은 감옥에 갇혀 있었으나 그들은 감옥 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이라는 추하고 더럽고 살기 어려운 곳에 살고 있지만, 여러분들은 그 세상에 갇혀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벗어나야 합니다. 오늘도 여러분은 세상이라는 곳에서 벗어나 거룩한 제단에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는 천국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해야 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평안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이라는 곳에, 직장에, 빚에, 배움에, 여러 가지 세상 것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서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육체적인, 사회적인 고난과 소외와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국 백성이기 때문에, 진리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것을 가지려는 사람은 하찮은 것에 손대지 않습니다.
저는 목에 보호대를 차고 있습니다. 얼마나 불편하지 모릅니다. 특히 잠잘 때가 제일 불편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사람의 말을 이렇게 잘 들어보기는 처음입니다. 의시가 낮에도 밤에도 계속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고 하기에 말을 잘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 속에 "순종도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3월 22일이 되면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고 결과가 좋으면 풀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제가 의사의 말을 잘 듣고 있습니다. 목에 보호대 하나만 묶여 있어도 얼마나 불편하고 힘이 든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에 더 많이 묶여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이런 저런 일에 묶여 있으나 예수 이름으로 자유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찬양 2회) 예수 결박 푸셨도다
예수 결박 푸셨도다
모든 결박 푸셨도다
나의 결박 푸셨도다
나는 자유해
<기도>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천국 백성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멸망치 않는 복을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자유케 하심을 감사합니다.
비록 이 세상에 살지만,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으나
감옥에 있지 않았던 것 처럼
주여, 저들의 육체가 비록 세상을 밟고 있으나
천국 백성처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땅위에 살면서 땀흘리고 애써 모은 것들을
하나님께 정성으로 드리려고 합니다.
십일조, 감사헌금, 일천번제 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 등
저들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임에
보물을 하늘에 쌓으려 하오니 주여 받아 주시옵소서.
이 복된 시간 찬양하는 입술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시고
일평생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찬양을 하며 살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1년 3월 11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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